이미경 작, 청송수퍼, 140×70㎝ with a pen, use the acrylic ink on paper, 2008
서양화가 이미경…‘따뜻한 밥상’전 출품, 12월9~29일, ‘통의동 보안여관’

“너무 오랫동안 타고 다녀서 핸들이며 몸체며 페달이 온통 녹슨 내 자전거/혼자 힘으로는 땅에 버티고 설 수가 없어 담 벽에 기대어 서 있구나/얼마나 많은 길을 바퀴에 감고 다녔느냐/눈감고도 찾아갈 수 있는 길을 많이 알수록 삶은 여위어 가는 것인가, 나는 생각한다”<안도현 詩, 낡은 자전거, 외롭고 높고 쓸쓸한, 문학동네 刊>

초겨울 저녁, 가랑비 흩뿌린다. 나지막한 저울 옆 색 바랜 스텐 양푼 가득 고개를 내민 노랗고 빨간 과일들. 하나가 떨어지면 금방이라도 우르르 미끈한 바닥으로 떼굴떼굴 구를 듯 구멍가게 앞마당은 불빛 드리워져 반질반질하다.

촘촘히 엮은 황태꾸러미가 출입문 맨 앞 도열하듯 길쭉하게 걸려 시선을 끌어당긴다. 주인은 보이지 않고 빗줄기는 점점 깊어가는 겨울을 재촉하며 푸슬푸슬 진눈개비로 뿌려댄다. 속을 훤히 보이는 사각냉장고엔 막걸리며 두부와 청국장 봉지가 제 모습을 가지런히 드러내며 허기를 보챘다.

“경기도 남양주 마석 작업실에서 전국 곳곳 발길 닿는 대로 떠났다. 그렇게 20여년이 흘렀다. 내가 찾고 그리고자 하는 것은 있는 그대로 살아남아 오랜 세월을 간직한 작고 소박한 가게이다.” 작가는 올 가을 80년 동안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충북 괴산군 감물면의 구멍가게를 다녀왔다고 했다.

“스물셋 수줍던 새색시는 어느덧 백발이 되었다. 한 시절 빼곡하게 가득 찼던 돈벌이를 기억하며 손때 묻어 반들거리는 오래된 나무 돈 통을 만져보는 할머니….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른다. 그런 곳에서 욕심을 덜어내는 마음을 배우고 나의 삶도 되돌아보게 된다.”

이미경 작, 운수리에서, 65×53㎝, 2013
충북제천출신의 는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유화나 아크릴로 하지 않고 25여년을 종이 위에 펜으로만 작업해 오고 있어 펜화 작가로 불리는데 이제는 능숙하고 익숙해져 그림이 회화느낌으로 변하게 되는 것 같다고 전했다. 구멍가게의 사계느낌을 들어보았다.

“봄은 따사롭고 여름은 찰나의 아름다움에 현혹되며 가을은 형형색색 낙엽과 주변풍경이 잘 어울린다. 겨울은 풍성했던 나뭇가지에 소복하게 눈이 쌓이면 그 어떤 벚꽃보다 눈부신 황홀감을 선사한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연통 옆에 앉아 몸을 녹이며 고즈넉한 풍경을 보노라면 산다는 것의 감사함이 절로 배어난다.”

전시장에서 장시간 인터뷰한 그에게 화가로서 소감을 물어 보았다. “많은 시간을 들여야 그림이 나오는 작업방식이다. 소소하고 앙증맞은 것들이 그려지는 동안 나의 존재 역시 수없이 일깨우게 된다. 매일매일 성실한 삶을 잘 지켜내야만 그들이 오롯이 화폭에 제 모습을 드러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미경 작가
따뜻한 시장경제정신 확장

한편 ‘민주주의자 고 김근태 선생 6주기 추모전-따뜻한 밥상’전은 12월 9일 오픈해 29일까지 서울시 종로구 통의동 2-1번지, 경복궁 영추문(迎秋門) 건너편에 위치한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12명의 작가가 참여, 전시하고 있다.

이곳은 1936년 김달진, 김동리, 여상현, 서정주, 오장환, 함형수 등이 창간한 격월간 문예동인지 시인부락(詩人部落)이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오늘까지 시대의 숱한 파란을 간직한 채 원형을 유지하며 현재는 갤러리, 북 카페 등 복합문화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번 전시는 홍익대학교 융합예술연구센터 박계리 연구교수와 ‘김근태의 평화와 상생을 위한 한반도재단(김근태 재단)’ 김병민 위원이 공동 기획했다. “묵묵히 살아가고 있는 소시민의 일상에 의미를 두었다. 김근태의 ‘따뜻한 시장경제’ 정신확장일환으로 그러한 작품들을 전시장으로 초대했다.”

권동철 @hankooki.com

#작품 및 인물사진 캡션

-청송수퍼, 140×70㎝ with a pen, use the acrylic ink on paper, 2008

-운수리에서, 65×53㎝, 2013

-이미경(李美京, ARTIST LEE ME KYEOUNG)작가



권동철 미술전문기자 dckewon5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