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글자’에 담긴 고전의 지혜 오늘을 비추다 고전 속 사자성어 일상과 접목해 성찰과 삶의 지침 일깨워

김풍기 지음|을유문화사|284쪽|1만3000원

격동의 2017년, 지성 집단인 대학교수들은 ‘파사현정(破邪顯正)’을 한 해의 사자성어로 선정했다. ‘그릇된 것을 깨뜨리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의미로 적폐청산으로 어수선했던 2017년의 상징들을 함축적으로 표현했다.

옛 성현들의 사상과 지혜가 담긴 고전(古典)은 시공을 달리할 뿐 현재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도 삶의 지침이 된다.

최근 강원대 김풍기 교수가 펴낸 <작은 생선을 요리하는 마음>(을유문화가)은 광활한 고전의 세계를 현대의 일상과 연결해 그 가치를 빛나게 한다. 논어, 맹자, 중용 등 사서삼경 에서부터 노자, 장자, 한비자 등 동양의 주옥같은 고전에서 수천년 회자돼온 사자성어를 일반의 생활과 결부시켜 현재성을 살리고 삶 가까이 있게 한 것이다.

책은 따뜻하고 소소한 일상을 네 글자의 사자성어와 버무려 독자에게 오늘을 대하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준다. 특히 저자 개인의 생생한 경험에서 깨닳은 바를 조곤조곤 들려주는 듯해 딱딱하고 고리타분할 것 같은 고전이 동화처럼 알기 쉽고 편하게 다가온다.

예컨대 사자성어 ‘규생구석(圭生垢石)’은 ‘천하를 다스리는 천자가 지닌 아름다운 옥도 결국 땅속에 묻혀 있던 돌을 가지고 만든다’ 는 말로 아무리 더럽고 하찮은 것이라 하더라도 그 속에는 진귀하고 아름다운 자질을 품고 있다는 의미이다.

저자는 이를 1970년대 초ㆍ중학교에서 아이들 옷을 벗겨 때가 나오는지 확인했던 ‘때 검사’로 풀어서 설명한다. 선생님이 무서워 급하게 배에 수돗물을 묻힌 뒤 자갈로 박박 문질러 때를 벗겨냈지만, 가슴까지 검사하는 바람에 혼이 난 자신의 일화를 소개한다. 땟국이 몸에 흐르지만 마음만은 티 없이 밝고 아름다운 보배로 가득했던 아이들의 모습이 ‘규생구석’과 같다는 것이다.

책의 제목인 ‘작은 생선을 요리하는 마음’도 마찬가지다. 이는 <노자>에 나오는 ‘약팽소선(若烹小鮮)’을 해석한 말로, 작은 생선을 삶을 때 이리저리 뒤적거리면 생선이 부서지고 맛이 없는 것처럼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흐르는 대로 두라는 뜻이다.

저자는 자주 가는 매운탕 집의 주인이 “자꾸 뒤적거리지 말라”고 손도 못 대게 야단하는 것에 비유해 약팽소선을 풀어낸다. 지도자 위치에 있는 사람은 억지로 일을 진행시키지 말고 자연스럽게 물이 흘러가듯이 처리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책은 ‘1부 네 글자 속에 담긴 따스한 배려’, ‘토끼에게 배우는 삶의 자세’, ‘하찮은 돌도 옥같이 여겨라’, ‘공부하는 즐거움’, ‘지위가 오를수록 필요한 네글자’ 등 총 5부로 구성돼 있으며 70여개의 사자성어를 수록했다.

이들 사자성어는 자기 성찰과 세상을 대하는 삶의 지혜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발밑을 잘 살펴서 현재 자신이 서 있는 자리는 어떠한가를 면밀히 알아보라는 뜻의 ‘조고각하(照顧脚下)’, 돌로 옥을 갈고 다듬을 수 있듯이 이 세상에 하찮은 존재란 아무것도 없으며 모두 소중하게 쓰일 수 있음을 이야기하는 ‘공옥이석(攻玉以石)’ 같은 사자성어는 오늘을 돌아보고 내일을 대비하게 만드는 삶의 자세를 일깨운다.

지도자나 윗사람들이 마음에 새겨야 할 만한 구절이 많은 것도 이 책의 특징이다. 쓸 만한 사람은 쓰고 공경할 만한 사람은 공경해야 한다는 뜻의 ‘용용지지(庸庸祗祗)’, 가령 아무리 작은 약속이라도 지켜야 한다는 뜻의 ‘사목지신(徙木之信)’ 등의 사자성어를 들 수 있다.

책은 고전의 사자성어가 현학적이고, 고리타분한 박제된 언어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우리의 삶을 비추고 풍요롭게 해주는 값진 생활어라는 것을 저자의 경험을 곁들여 실감나게 전한다.

박종진 기자

김풍기 지음, 을유문화사, 284쪽,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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