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연을 그렸나, 자연이 나를 묘사했나?”

‘손’과 ‘마음’으로 자연과 현실의 간극(경계) 메워

우주의 근원, 생명의 진화 등 본질적인 것들 ‘회화’에 담아

6월 12일∼7월 3일, 크라운해태제과 본사 갤러리서 200여 점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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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활동중인 중견작가 이 한층 새로워진 작품을 들고 관객과 소통한다.

황 화백은 이달 12일부터 서울 용산 한강대로 크라운해태제과 본사 쿠오리아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에서 ‘손’과 ‘마음’으로 그려낸 신작 ‘마법의 순간’ 시리즈 200여 점을 선보인다.

회화, 조각, 설치 등 다양한 작업을 통해 근원적 질문에 대한 고민을 작품에 투영해온 황 화백은 이번 전시에서 자연, 우주의 근원, 생명의 진화 등 본질적인 것들을 ‘회화’에 담았다.

특히 경기도 청평 작업실에서 자연과 호흡하며 몸과 마음이 이끄는 대로 창작한 작품들에는 연륜의 내공과 여유가 가득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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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화백은 1984년 파리 국립고등장식미술학교를 졸업한 직후부터 1980~90년대 프랑스 최고 화랑인 장프루니에 갤러리 전속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최근까지 파리, 뉴욕, 서울 등 국내외 유수의 화랑에서 100회에 가까운 개인전과 그룹전을 가졌다.

황 화백은 30여년 화업에서 80년대 추상회화를 시작으로 대략 10년 주기로 ‘회화’에 변화를 보였다. 초기에는 폴록이나 샘 프란시스 같은 예술가들과 궤를 같이하는 작업으로 붓 대신 손을 사용해 물감을 뿌리고 뭉개는 작품을 선보였다. 이후 회화에서는 캔버스에 뿌려진 물감을 물로 씻어내는 작업을 반복하거나 물감을 바람에 날려 흩뿌리는 등 새로운 양식을 시도했다.

그는 회화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붓을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손’으로 작업을 한다.

“붓은 계산된 도구로 여겨진다. 무언가를 그려야 하는 ‘계산’ 이. 난 그런 계산을 탈피하고 싶었다.”

황 화백은 붓 대신 손으로, 몸으로 마음이 이끄는 대로 나아간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몸과 마음이 합치된 작품에 이른다. 그런 그의 시선(마음)은 늘 근원(본질)적인 것을 향한다.

황 화백의 회화는 일정한 시점을 기해 큰 변활를 거치지만 일관되게 유지하는 것이 있다. 바로 ‘자연성’이다. 사물과 자연의 본질에 천착하면서 무언가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 저절로 심상(心像)이 발현하는 식이다.

황 화백은 이번 전시에서 하얀 여백 위에 둥근 개체들을 등장시키며 변화하는 생명의 움직임과 과정을 새로운 방식으로 형상화했다. 이 개체들은 마치 생물체의 기초를 이루는 세포와 유사한 모양을 한 채로 서로 뭉치듯이 혹은 흐트러지듯이 움직이며 화면에 자리한다.

이 불완전한 개체들은 상호작용을 하며 역동적인 리듬감을 만들어낸다. 서로 뭉치며 더 큰 개체를 만들어나가며, 부딪히며 깨어지기도 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이 마치 생명의 진화 과정을 함축적으로 나타내는 듯하다.

(왼쪽) untitled. 160x130cm. (오른쪽)untitled. 195x130cm

이번 신작이 이전 작품들과 다른 점은 '절제'의 울림이다. 작가 스스로 말하듯 신작들에선 ‘여백’이 두드러진다. 이전 작품들에서 물감을 구석구석 채우고 마티에르마저 느껴졌던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어느 순간 더 잘하려는, 다 채우려는 욕망이 사라지면서 마음이 비워지고 손(몸)도 멈춰졌다. 채움과 비움의 간극에서 한없는 자유와 희열, 영혼의 울림을 경험할 수 있었다.”

황 화백은 파리 유학시절 그린다는 것과 그리지 않는 것과의 경계로부터 출발해 자기와 비(非)자기 사이의 심리적 경계를 드러내는 작업을 해왔는데 이번 신작들은 그러한 경계조차 찾기 어려울 정도로 무아(無我) 경지에서 우러나온 듯하다.

그런 가운데 하나의 생명체, 우주를 이루는 작은 세포들을 연상케 하는 작품들에선 극도의 집중력이 보이지만 이 또한 무념, 무상의 몸과 마음이 이끌어낸 결과로 여겨진다.

경기도 청평호수 옆 작업실.

황 화백의 프랑스 작업 활동을 30년 가까이 지켜본 피에르 캉봉 파리 기메 박물관 수석 큐레이터는 그의 회화를 “탐구이며 명상”이라고 말한다.

“그의 회화는 정신과 손, 영혼의 조화 속에서만 궁극적인 충만함을 완성할 수 있다. 그렇게 얻어진 조화는 색채와 형태 앞에서 침묵과 경이로움을 부르며, 불가사의한 만남과 무한한 놀라움으로 초대한다.”

전시를 앞두고 만난 황 화백은 “내가 자연을 그린 것인지, 자연이 나를 묘사한 것인지 모르겠다”며 지난 매서운 겨울 찍은 청평호수 사진을 보여줬다. 두껍게 얼어있는 청평호수는 군데군데 옹이처럼 뭉쳐있는 부분이 전체와 조화를 이루며 황 화백 작품과 너무 흡사해 그의 독백을 대변한 듯했다. 황 화백의 지극히 자연스런 작업의 궁극이 자연과 통한 듯한 모습이다.

이번 전시를 국내 대표적 제과업체인 크라운해태제과 갤러리에서 여는 것은 황 화백과 크라운해태제과 윤영달 회장과의 각별한 인연이 한몫했다.

황호섭 화백

윤영달 회장은 저명한 미술애호가로 젊은 조각가를 지원하는 등 미술예 조예가 깊고, 경기도 양평 송추아트벨리에 작가들의 작업실과 전시공간을 마련하는가 하면 각종 미술행사를 지원하고 있다.

윤 회장은 독창적인 예술 활동을 하는 황 화백과 인연을 가져왔으며, 2010년 4월에 열린 서울오픈아트페어(SOAF) 조직위원장으로서 황 화백의 특별전에 큰 관심을 보였다. 윤 회장은 또한 지난해 4월 서울 코엑스 전시장에서 열린 ‘2017 서울아트엑스포’ 조직위원장을 맡았으며, 황 화백의 초청 특별전이 열리기도 했다.

크라운해태제과 본사 갤러리에서 열리는 ‘황호섭전’은 7월 3일까지 이어진다.

박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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