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5일장...
전남 구례로 가는 봄 길은 5일장 덕분에 더욱 들뜬다.
지리산에서 나는 약재에 온갖 산나물까지 쏟아져 시끌벅적한 봄 풍경을 만들어낸다.

장옥으로 단장된 구례 5일장
구례장이 서는 날이면 읍내 분위기부터 떠들썩하다. 이른 아침 버스정거장에서 만난 마을 할머니들은 장 보는 것은 뒤로 한 채 안부부터 묻느라 여념이 없다. 구례읍 봉동리 장터는 한식 장옥들로 ‘구수’하게 단장돼 있다. 장터는 예전에 성했던 모습을 재현하듯 번듯한 장옥내 점포와 좌판들, 정자 앞 골목에 산나물을 늘어 놓은 촌부들이 조화를 이룬다. 모습은 깔끔하게 바뀌었지만, 투박한 사투리가 오가고 덤으로 나물 한줌 얹어주는 살가운 정과 풍취만은 예전 그대로다. 구례 5일장은 끝자리가 3,8로 끝나는 날 들어선다.

200년 세월... 섬진강 뱃길 사연

옛 정취가 가득한 구례 장터는 200년 가까이 역사가 거슬러 올라간다. 하동포구에서 시작된 섬진강 물길은 구례까지 닿았고, 조선시대 때는 섬진강 뱃길을 따라 타지 상인들도 이곳 구례 5일장까지 와서 물건을 거래했다고 한다. 봉동리 장터는 한때 구례 상설장쪽으로 터를 옮겼다가 1950년대 후반 다시 봉동리에 정착해 마을 주민들의 왁자지껄한 만남의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구례 5일장은 과거에는 목기시장으로도 유명했다. 장터 초입 골목길로 들어서면 은은한 약재와 산나물 향기가 코를 감싼다. 구례 5일장은 예부터 지리산에서 나는 약재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산수유부터 당귀, 더덕, 칡, 생지황 등 약초들이 한가득이다. 듣기에도 생소한 약초를 넌지시 물으면 약재상 주인장은 큰숨 한번 몰아쉬고는 다락 깊숙한 곳에서 한줌 떡하니 꺼내다 준다. 여기에 봄이 무르익으면 지리산 일대의 기름진 땅에서 나는 고사리, 쑥, 냉이 등 산나물들이 곁들여져 골목길이 풍성해진다. 할머니들의 정성스런 손길에 한번씩 다듬어진 나물들은 한결 먹음직스럽다. 뜨내기 손님들이 이것저것 물어도 돌아오는 대답에는 수줍은 미소가 봄 햇살만큼이나 한가득이다.

약재상, 대장간 등 정겨운 볼거리

구례장터 약재상 / 어물전
구례 5일장은 약재를 파는 곳과 쌀을 파는 싸전이 어우러져 있고 또 다른 골목으로 접어들면 채소전, 잡화전과 어물전이 이어져 있다. 구례 5일장의 어물전은 규모도 제법 크다. 홍어, 민어에서 낙지, 굴비까지 남도에서 나는 해산물이 총집결했다. 대장간도 볼거리다. 시뻘건 불에 낫과 호미를 달구고 두들겨 대느라 이른 아침부터 열기가 후끈하다. 장터에 놀러 온 꼬마들에게는 투닥거리는 대장간 풍경이 마냥 신기하고, 본격적인 밭일을 앞둔 아주머니들은 호미 자루를 꼼꼼하게 쥐어보며 흥정을 하느라 바쁘다. 장터풍경에서 빠질 수 없는 뻥튀기 점포 안은 겨우내 말린 옥수수 등을 간식거리로 튀겨가려는 할머니들의 정담이 훈훈하게 오간다.

대장간 / 봄나물과 할머니 / 산수유 열매
인근 화개 5일장이 상설 장터로 변한 이후로는 구례장이 섬진강 줄기에 들어서는 5일장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난전으로 유지되던 5일장은 2000년대 중반 전통 5일장을 되살리는 취지에서 30여동의 한식 장옥과 4동의 정자를 갖춘 모습으로 새롭게 재단장됐다.

장터 구경을 끝냈으면 구례의 봄꽃을 만끽할 차례다. 3월중순이면 꽃망울을 터뜨리는 상위마을 산수유는 3월말까지 노란 자태를 뽐낸다. 오래된 사찰에서도 완연한 봄기운은 묻어난다. 지리산 자락의 화엄사는 백제 성왕때 창건된 1500년 세월의 고찰이다. 경내에는 국보 4점, 보물 5점 등의 문화재가 보존돼 있으며 템플스테이가 가능하다.

화엄사 각황전

※여행메모 ▲ 가는 길=서울남부터미널에서 구례행 버스가 오간다. 자가운전의 경우 호남고속도로, 순천완주고속도로를 이용한뒤 화엄사IC에서 빠져나온다.

▲ 먹을 거리=섬진강 자락 곳곳에서 재첩국을 맛볼수 있다. 섬진강 간전교 지나 동방천 앞 다슬기 전문점은 토종 된장국과 다슬기 수제비가 별미다. 산동면에서는 ‘백제회관’의 산채정식이 먹을 만하다.

▲ 기타정보=토지면의 운조루, 곡전재 등 구례의 옛 한옥들은 봄이면 풍취를 더한다. 조선 후기 양반 고택의 멋을 잘 살려낸 운조루는 대청마루앞 동백꽃이 단아하다. 운조루 건너편, 높은 돌담과 대나무숲이 인상적인 곡전재는 하룻밤 묵어가기에도 안성맞춤이다.

글·사진=서 진(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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