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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컬렉션 ‘세기의 전시’...국보급 미술품 드디어 공개

티켓 매진 사례로 ‘열풍’
"대한민국의 문화재다, 골동품이다 하는 것은 한 데 모아야 가치가 있는 것이다.”(1993년 6월 삼성그룹 내부 회의)

“문화유산을 모으고 보존하는 일은 인류 문화의 미래를 위한 것으로서 우리 모두의 시대적 의무라고 생각한다.”(2004년 10월 삼성미술관 Leeum 개관식 축사)

고(故) 이건희(1942~2020) 전 삼성그룹 회장은 미술품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을 이같이 말했다. 이 전 회장이 평생 모은 미술품은 총 2만3000여점. 지난 4월 이 전 회장 유족들은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을 국가에 기증하겠다고 밝혔다. 고미술품 2만1693점은 국립중앙박물관에, 근현대미술작품 1488점은 국립현대박물관에 각각 기증됐다. 우리나라 역사상 최대 규모의 문화재·미술품 기증 사례다.

  • 국립중앙박물관의 ‘위대한 문화유산을 함께 누리다: 고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 전시관 입구/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세기의 기증’...관람예약, 연일 매진
지난 21일 ‘세기의 기증’이 베일을 벗었다. 이건희 컬렉션 전시는 이날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동시에 시작됐다. 앞서 양구·대구 등 지방 미술관에서 소규모 전시가 진행된 적은 있지만 대표작만을 엄선한 대규모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국보 12건과 보물 16건을 포함해 시대와 분야를 대표하는 고미술품 77점을 전시했고, 국립현대미술관은 김환기·이중섭·박수근 등 근현대 한국미술 주요 작가 34명의 작품 58점을 공개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위대한 문화유산을 함께 누리다: 고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은 9월 26일까지 약 두 달간 진행된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은 내년 3월 31일까지 이어진다.

한편 두 전시는 ‘생활 속 거리두기’ 방침에 따라 관람인원을 제한하고 있다. 박물관은 30분 단위로 관람 인원을 20명으로 제한하며, 미술관은 한 시간 간격으로 30명씩만 입장을 허용한다.

전시는 무료.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온라인 사전 예약제로 진행된다. 예약 신청은 양 기관 홈페이지에서 가능하다. 23일 오후 2시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한 달 치 예약, 국립현대미술관 2주 치 예약이 모두 매진된 상태다.

국민적 기대치에 힘입어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건희 컬렉션 예약 성공하는 법’이란 게시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한 네티즌은 “고사양 컴퓨터와 빠른 인터넷 속도를 확보하기 위해 PC방을 이용하라”며 “티켓팅 시작 1시간에서 30분 사이에 미리 전시관 로그인을 해 두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 겸재(謙齋) 정선(鄭?, 1676~1759)의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국보 제216호)/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교과서 속 문화재, 여기 다 있네”
이 전 회장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2만1600여 점은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금속, 도토기, 전적, 서화, 목가구 등으로, 시대의 폭이 넓고 분야가 다양하다. 국립중앙박물관 측은 “유례없는 대규모 기증으로 높아진 국민의 관심에 부응하고자 신속하게 전시를 마련했다”며 “기증품 중 시대와 분야를 대표하는 77점(국보·보물 28건)을 특별 공개한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교과서 속 문화재를 직접 볼 수 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겸재 정선의 최고 걸작 ‘인왕제색도’(국보 제216호), 삼국시대 금동불의 섬세함을 보여주는 ‘일광삼존상’(국보 제134호), 글씨와 그림이 빼어난 고려 사경(寫經) ‘대방광불화엄경 보현행원품’(국보 제235호), 현존하는 유일의 ‘천수관음보살도’(보물 제2015호), 단원 김홍도가 말년에 그린 ‘추성부도’(보물 제1393호) 등이 전시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전시관에 들어서자마자 첫 번째로 관람객을 맞이한 문화재는 ‘인왕제색도’ 영상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인왕산 풍경을 담은 영상 ‘인왕산을 거닐다’를 98인치 대형 화면으로 제공해 기증품의 가치를 높였다. ‘인왕제색도’는 76세의 노대가(老大家) 정선이 눈길과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던 인왕산 구석구석을 자신감 있는 필치로 담아낸 최고의 역작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치마바위, 범바위, 수성동계곡 등 인왕산 명소를 찾을 수 있다. 국립중앙미술관은 여러 기증품들 중에서 ‘인왕제색도’가 특히 독보적 가치를 지녔다고 평가했다.

당대 최고의 기술과 디자인을 보여주는 문화유산도 눈에 띈다. 대표적인 예로 청동기시대 '붉은 간토기', 초기철기시대 '청동방울', 삼국시대 '쌍용무늬 칼 손잡이 장식', 조선시대 '백자 청화 산수무늬 병'을 꼽을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측은 “신소재 개발과 기술혁신이 가져온 문화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며 “기술혁신과 디자인을 중시한 기증자의 경영철학과 맞닿아 있다”고 설명했다.

  • 대방광불화엄경 보현행원품/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이 전 회장은 고려불화가 국내로 돌아오는 데 힘쓰는 등 해외에 있는 국보급 문화유산에도 관심을 쏟았다. 이번 전시에는 고려불화 특유의 섬세한 미를 보여주는 ‘천수관음보살도’와 ‘수월관음도’가 포함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고려불화 세부를 잘 볼 수 있도록 적외선과 X선 촬영 사진을 터치 스크린 영상으로 제시했다. 적외선 사진에서는 먹으로 그린 밑그림을 볼 수 있다. ‘천수관음보살도’에서는 천수관음보살의 여러 손의 모양, 손바닥과 광배에 그려진 눈, 손에 들고 있는 다양한 물건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조선시대(세종) 한글 창제의 노력과 결실을 보여주는 ‘석보상절 권11’(보물 제523-3호)과 ‘월인석보 권11·12’(보물 제935호), ‘월인석보 권17·18’도 관람객을 맞는다. 국립중앙박물관 측은 “귀중한 한글 전적으로 15세기 우리말과 훈민정음 표기법, 한글과 한자 서체 편집 디자인 수준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 작품이 모두 한 자리에
이 전 회장이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 국내?외 우수작품은 총 1488점. 이로써 국립현대미술관은 소장품 ‘일만 점 시대’를 열게 됐다. 7월 현재 소장품은 1만621점이다. 이건희 컬렉션 1488점은 한국 작가 작품 1369점, 해외 작가 작품 119점으로 구성돼 있으며, 부문별로는 회화 412점, 판화 371점, 한국화 296점, 드로잉 161점, 공예 136점, 조각 104점, 사진 및 영상 8점 등으로 분류된다.

  • 천경자 <오란 산책길> 1983, 종이에 채색, 96.7x76cm/국립현대미술관 제공
특히 이건희 컬렉션에는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 장욱진, 유영국, 변관식, 이응노, 권진규 등 한국미술사 거장들의 작품이 대거 포함됐다.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이건희 컬렉션은 미술사적 가치는 물론 규모에서도 미술관 역사상 최대 기록”이라며 “근?현대미술사를 아우르며 20세기 초 희귀하고 주요한 국내 작품에서부터 해외 작품까지 포함해,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의 질과 양을 비약적으로 보강시켰다”고 평가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번 전시에서 한국인이 사랑하는 작가 34명의 주요 작품 58점을 선보였다. 192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제작된 작품들을 주축으로 크게 세 개의 주제로 나눴다.

첫 번째는 수용과 변화다. 일제 강점기에 새로운 문물이 유입되면서 미술계도 변화를 맞이한다. 서구 매체인 유화가 등장하였고 인물화, 정물화, 풍경화 등 생경한 용어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를 즈음하여 조선의 전통 서화도 변화를 모색한다. 백남순의 ‘낙원’(1936년경), 이상범의 ‘무릉도원’(1922) 등 주옥같은 작품들을 통해 이 시기 동서양 회화의 특징이 융합과 수용을 통해 변모하는 과정을 비교감상할 수 있다.

두 번째는 개성의 발현이다. 1945년 광복을 맞이하고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는 격동의 시기에도 작가들은 작업을 멈추지 않고 전시를 열고 새로운 미술을 추구하며 예술 활동을 이어갔다. 김환기, 유영국, 박수근, 이중섭 등 작가들의 파란만장한 삶과 그들의 독창적인 작품은 한국미술의 근간이 된다.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1950년대), 이중섭의 ‘황소’(1950년대),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1954) 등 이건희컬렉션에는 특히 이 시기의 작품이 집약되어 있다.

  • 이중섭 <황소> 1950년대, 종이에 유채, 26.5x36.7cm..jpg (17 MB)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마지막은 정착과 모색이다. 전후 복구 시기에 작가들은 국내?외에서 차츰 정착하며 꾸준히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모색한다. 이성자, 남관, 이응노, 권옥연, 김흥수, 문신, 박생광, 천경자 등이 고유한 조형세계를 구축하며 한국미술을 보다 다채롭게 만들었다. 이성자의 ‘천 년의 고가’(1961), 김흥수의 ‘한국의 여인들’(1959) 등 이 시기의 대표작을 만날 수 있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번 전시가 개최될 수 있도록 미술사적 가치가 높은 국내?외 미술작품을 대량 기증해주신 이건희 회장의 유족들께 깊이 감사드린다”며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시작으로 양질의 기증 작품을 국민들이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증대하고, 지속적으로 조사, 연구하여 미술사 연구의 지평을 넓히는 기회로 삼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노유선 기자 yoursun@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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