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급' 관료 출신 대기업에 둥지… 4대 권력기관 집중, '방패' 비판론대기업 관피아 출신 선호도 높아 49개 그룹 사회이사 중 37% 차지검찰·국세청·공정위·감사원 출신 대다수방패용·로비용 활용 논란 커

세월호 참사 이후 '관피아'에 대한 사회적 비판 여론이 비등하다. 정부도 관피아 척결에 양팔을 걷었다. 그러나 관료 출신 사외이사에 대한 대기업의 선호도는 여전하다.

새정부가 경제민주화에 속도를 내면서 오히려 이런 경향은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이는 사정기관의 칼날을 막기 위한 '방패막이'가 필요한 대기업과 고액의 연봉을 챙길 수 있는 '자리'를 꿰차고자 하는 관피아 양측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과연 대기업의 방패를 자처하고 나선 '매머드급' 관피아 사외이사들은 누가 있을까.

국세청ㆍ검찰ㆍ공정위 출신 대거 포진

대기업의 관피아 출신 사외이사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추세는 최근 한 조사 결과에서도 읽을 수 있다. 그 결과에 따르면 국내 49개 그룹 238개 상장사의 사외이사 750명 중 36.9%에 해당하는 277명이 관료 출신이었다. 지난해 268명에서 9명 늘어난 규모다.

특히 검찰·법원 등 법조계와 국세청·관세청 등 세무당국, 공정거래위원회, 감사원 등 이른바 '4대 권력기관' 출신 인사는 165명에서 173명으로 늘었다. 전체 관료출신 사외이사 중에서 이들 인사가 차지하는 비중도 61.6%에서 62.5%로 높아졌다.

관피아 사외이사 중에서도 가장 많은 대기업의 '러브콜'을 받는 건 세무당국 출신 인사들이다. 박근혜정부가 세수확보 차원에서 진행하는 세무조사에 대비한 행보라는 분석이다. 그만큼 세정가 출신 사외이사 중엔 굵직한 인물도 많이 눈에 띈다.

신세계와 삼천리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 손영래 전 국세청장이 대표적이다. 서울지방국세청 특별조사국장과 본청 조사국장, 서울지방국세청장 등을 역임한 손 전 국세청장은 과거 썬앤문그룹 세무조사 당시 추징세액 감축 지시 및 SK그룹 수뢰로 실형을 받은 바 있다.

SK네트웍스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 허용석 전 관세청장도 '장급' 관피아 인사다. 재정경제부에서 소비세제과장, 조세정책과장, 세제실장 등을 역임한 인물이다. 2010년 현대엘리베이터 사내이사 선임이 예정돼 있었으나 공직자윤리법에 걸려 무산된 바 있다.

이병국 전 서울지방국세청장도 올해 LS산전 사외이사에 선임됐다. 서울지방국세청에서 대기업 저승사자로 통하는 조사4국을 비롯해 조사1국 과장, 세원분석국장, 납세지원국장 등을 역임했고, 한때 청와대 사정수석비서관실에 파견돼 행정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여기에 박찬욱 전 서울지방국세청장도 현대모비스와 대신증권 사외이사직을 맡고 있고, 오대식 전 서울지방국세청장은 SK텔레콤에 자리를 잡고 있다. 윤종훈 전 서울지방국세청장과 김갑순 전 세울지방국세청장도 한진과 CJ제일제당 사외이사 명단에 각각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밖에 김재천 전 대전지방국세청장은 CJ오쇼핑 사외이사를 지내고 있으며, 박동열 대전지방국세청장은 롯데쇼핑과 KT&G의 사외이사를 겸직 중이다. 또 이승재 전 중부국세청장은 SKC 사외이사로 재임 중이고, 임성균 전 광주지방국세청장이 HMC투자증권에 자리를 잡았다.

법조계 출신도 세무당국에 못지않다. 검찰총장 출신 사외이사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CJ오쇼핑에서 사외이사를 지내고 있는 정구영 전 검찰총장이 그런 사례다. 정 전 총장은 대검찰청 수사기획관과 중수부장, 서울고검장 등을 거친 바 있다.

송광수 전 검찰총장도 삼성전자에서 사외이사 자리를 지키고 있다. 충무지청장과 서울지검 2차장, 법무부 법무실장, 대구지검장, 법무부 검찰국장 등을 거쳐 33대 검찰총장에 오른 송 전 청장은 검찰 내에서 신망이 두텁기로 유명한 인물이다.

금호산업에는 김도언 전 검찰총장이 사외이사로 있다. 김 전 총장은 서울지검 검사와 대검 중수부 3과장, 대전지검장, 법무부 검찰국장, 부산지검장 대검차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또 정구영 전 검찰총장도 두산엔진 사외이사진에 포함돼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출신도 눈에 띈다. 먼저 정호열 전 공정거래위원장이 현대제철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정 전 위원장은 한국경쟁법학회장, 공정위 경쟁정책자문위원장 등을 역임한 경쟁법 분야의 최고 전문가다. 신세계에 몸담고 있는 손인옥씨도 전 공정위 부위원장 출신이다.

장관 출신도 대기업에 둥지

장관 출신도 상당수다. 삼성그룹엔 2명이나 있다. 삼성생명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 박봉흠 전 기획재정부 장관과 삼성증권 사외이사인 김성진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 그 주인공이다. 특히 박 전 장관의 경우 최근 총리 후보 하마평에 오르기도 했다.

SK그룹도 삼성그룹과 마찬가지로 장관을 지낸 사외이사가 2명이다. 이환균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SK C&C에서, 김영주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SK이노베이션에서 각각 사외이사로 선임돼 활동을 하고 있다.

이외에 이귀남 전 법무부 장관(GS)과 김종구 전 법무부 장관(KT), 이기호 전 고용노동부 장관(CJ대한통운), 이규용 전 환경부 장관(고려아연), 김성호 전 보건복지부 장관(코오롱인더스트리), 곽결호 전 환경부 장관(삼천리) 등도 모두 장관직을 거쳤다.

방패 전락한 사외이사, 문제는?

사외이사는 오너와 관련 없는 외부인사를 이사회에 참가시켜 대주주의 독단경영과 전횡을 사전에 차단하는 제도다. 한국에선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사외이사를 처음 도입, 의무화하고 있다. 자산규모 2조원 이상 기업이 대상이다.

초창기만 해도 주로 학계와 시민단체 인사가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이미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특히 박근혜정부 들어 경제민주화에 속도가 붙으면서 관피아 출신의 '힘 있는 사외이사 모시기' 양상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이는 기업들이 사정기관 '신세'를 질 일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 때문이다. '방패용' 내지는 '로비용'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라는 시각이 많다. 세월호 사태 이후 관피아에 대한 비난 여론에도 대기업들이 여전히 관료 출신을 선호하는 이유다.

재계에선 '고위급 관료를 얼마나 영입했느냐가 해당 회사의 영향력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는 말이 공공연히 회자될 정도다. 대주주 일가의 독단경영과 전횡을 차단하기 위해 도입된 사외이사 제도가 오히려 외풍을 막는 '바람막이'로 전락한 셈이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현재 경영감시라는 취지로 대기업에서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며 "대기업들은 이사회가 갖는 무게감을 외부에 과시하고 규제 이슈에 대한 로비 통로 확보를 목적으로 권력기관 출신을 사외이사로 임명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결국 사외이사 제도가 취지와 전혀 무관한 방향으로 운영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사외이사들이 이처럼 제구실을 해내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그 이유에 대해 재계 안팎에서는 사외이사 선임구조와 연관짓는 시선이 많다.

사외이사는 사외이사 후보 추천위원회의 추천을 거쳐 주주총회가 선임하게 돼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오너, 대주주, 최고경영자, 기존 이사가 사실상 결정권을 행사한다는 점이다. 결국 회사와 오너의 권익을 위해 힘 써줄 인물이 선임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사외이사가 제기능을 하려면 지배주주가 전권을 휘두르는 선임 구도를 전면 수정해야 한다"며 "대주주 입김을 최대한 배제하고 공익을 대변할 수 있는 인물들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의 역할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높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를 비롯해 200개사 이상의 주요 기업 지분 5%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국민연금을 통해 제도를 개선해 나갈 여지가 크다는 까닭에서다.

국민연금도 이런 기대를 의식한 듯 지난해 '의결권 행사 지침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은 사외이사 이사회 참석률 기준을 60%에서 75% 수준으로 강화하고, 재직 연수 제한도 '당해회사 10년'에서 '당해회사 및 계열회사를 포함해 10년'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사외이사의 성실성을 증진시키기 위해 참석률을 높였고 대주주와의 유착을 막고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장기 재임을 봉쇄했다"며 "향후 국민연금이 사외이사 제도를 원래의 목적에 맞게 수술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고 말했다.



송응철기자 sec@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