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가 잡은 터 대체로 '명당'… '진혈' 벗어난 묘소 후손에 안 좋은 영향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일대에 위치한 이병철 삼성 창업주 묘소.
이병철 잠든 용인 명당 많기로 유명… 정주영 영면한 검단산은 '고전명당'
한화가 이장전천안 묘소가 '명당'… 신격호 성공 배경은 조부모 묏자리
박인천 묘소는 수맥에 위치해 우려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이 지난 8일 별세했다. 1922년 경북 영일군에서 태어난 이 명예회장은 1957년 4월12일 부친인 이원만 창업주와 '한국나이롱주식회사'를 창립, 국내 최초로 나일론사를 생산해 한국 섬유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눈에 띄는 건 이 명예회장의 장지가 경북 김천시 봉산면 금릉공원묘원이라는 점이다. 국내서 내로라하는 재벌가들의 선영은 대부분 이른바 '명당'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전 소탈한 삶을 살아온 이 명예회장답다', '여느 재벌가와 다르다'는 평가가 동시에 나왔다.

재벌가는 묘소나 사옥 등과 관련해 '풍수지리'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기운이 성한 자리에 선친을 모셔 대대손손 부귀와 영화를 지속하고 싶다는 바람에서다. 그렇다면 부자를 만드는 묏자리는 정말 있을까. 국내 재벌가 선친의 묏자리를 살펴봤다.

양대 재벌 삼성가 용인…현대가 검단산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예로부터 재벌가와 풍수가들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재벌총수들이 사업 외적으로 가장 많이 만나는 사람이 풍수학자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서울대 교수 출신 풍수가 최창조 박사도 언론을 통해 한국의 웬만한 재벌 총수는 다 만나 봤다고 밝힌 바 있다.

창업총수들은 물론 2ㆍ3세 경영인들도 사옥이나 공장, 자택 등의 터를 구할 때 풍수가들의 자문을 구하는 경우가 많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심혈을 기울이는 건 묏자리다. 길ㆍ흉지 여부에 따라 후손에 영향이 미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렇다면 재벌가의 묏자리는 어디에 있을까. 먼저 국내 최대기업인 삼성그룹을 일궈낸 이병철 창업주의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일대에 있다. 정확히 용인 에버랜드 내에 있는 호암미술관 우측 산자락에 위치해 있다.

예로부터 용인은 명당이 많기로 유명한 지역이었다. '죽어서는 용인이 최고'라는 의미의 '사거용인(死居龍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정몽주와 채제공 등 역사적 인물은 물론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양친도 용인에 안장돼 있다.

특히 이 창업주의 선영은 용인을 대표하는 명당으로 꼽힌다. 풍수가들에 따르면 운을 북돋아주는 생기혈이 응축돼 자손들이 더욱 융성한다고 한다. 삼성그룹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하는데 긍정적 영향을 줬다는 설명이다.

경기도 하남시 창우동 검단산 자락에 위치한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묘소.
이 창업주와 더불어 한국 경제의 양대 산맥인 현대가 정주영 창업주의 묘역은 경기도 하남시 창우동 검단산 자락에 위치해있다. 풍수를 중요시한 정 창업주가 생전에 유명 풍수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이 자리를 골랐다는 전언이다.

현대가 소유의 선산 면적은 3,000평 규모다. 하지만 묘역의 크기는 100여평 불과하다. 일반인 가족묘원 수준이다. 정 창업주의 묘도 국내 최대 재벌의 묘소치고 소박한 편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선친의 봉분 크기대로'라는 정 창업주의 뜻에 따른 결과다.

봉분 양옆으로 자그마한 돌기둥과 봉분 앞 '하동정공주영지묘'라는 글씨가 새겨진 비석만이 서 있다. 정 창업주의 묘소 아래쪽에는 아들인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의 묘가 자리 잡고 있으며, 위쪽으로는 정 창업주 양친의 묘가 나란히 있다.

검단산은 조선시대부터 손꼽혀 온 명산이다. 큰 곰이 새끼를 품고 있는 듯한 형상을 띠고 있어 후손들이 번창하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조선시대 당시 세종도 이곳에 능을 쓰려다 여주로 옮기게 되면서 닦아 놓은 능터가 남아 있다고 한다.

반면 일부 풍수가들은 검단산이 명단인 건 맞지만 정 회장의 묘소가 혈을 정확히 짚지 못해 명당 반열에 들지 못한다는 견해도 있다. 이 때문에 득보다 실이 많으며, 흉사 등 예상치 않은 일들이 발생하게 될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SKㆍLGㆍ효성가 묘터도 '양호'

SK가 선영은 현재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에 있다. 최종건 창업주와 부친인 최학배 옹, 맏아들인 최윤원 전 SK케미칼 회장, 동생이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부친인 최종현 전 SK그룹 회장 등 4기의 묘소가 차례로 안장돼 있다.

이곳도 입지가 양호한 편이다. 풍수가들은 최학배 옹의 묏자리는 재벌 후손이 나는 자리이며 최종건 회장의 묘는 대재벌이 되는 자리라고 입을 모았다. 최종건 창업주가 선경그룹을 오늘의 SK로 일구는 데 큰 발자취를 남겼다는 분석이다.

다만 최종현 전 회장의 묘는 혈맥에서 벗어난 비혈지라는 분석이 많다. 이를 SK그룹 사옥과 연관짓는 풍수가들도 있다. SK그룹 구사옥은 진혈지인 명당이지만 신사옥은 음기가 있는 비혈지로 최종현 전 회장 묘터의 영향이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풍수가들 사이에선 최종현 전 회장의 묘터가 후손들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리란 견해가 우세하다. 현재 화성 선영에 있는 이 묘는 가묘의 형태인 때문이다. 최종현 전 회장의 경우 생전에 강조한 장례 문화 개선 의지에 따라 화장했다.

광주광역시 북구 운암동의 죽호학원 내에 마련된 박인천 금호그룹 창업주의 묘.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에 위치한 LG가 구인회 창업주의 묘소도 여느 재벌가에 못지않은 명당으로 평가받는다. 동래는 부산의 지덕(地德)을 받은 지역이라고 한다. 풍수가들은 이를 LG가가 그동안 별다른 부침없이 순항해 온 배경으로 꼽는다.

이밖에 LG가의 묘터는 좋기로 유명하다. 특히 경남 함안군 군북면의 선영은 풍수가들 사이에서도 유명하다. 일반인은 물론이고 풍수가들조차 이해하기 힘든 곳에 자리하고 있어 '하늘이 감추고 땅이 숨겨둔 땅'이라는 의미의 '천장지비(天藏之秘)'로 통한다.

효성가 조홍제 창업주가 잠들어있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가족묘의 입지도 양호한 편이다. 선영은 이 지역에 위치한 벽제기념관 일대에 자리 잡고 있다. 대체로 경사가 있는 편이지만 묘소들이 혈에 자리 잡고 있어 대체적으로 무난하다는 평가다.

한화ㆍ롯데 선대 묘터가 명당

한화가의 선영은 충남 공주시 정안면 보물리에 있다. 그러나 다른 재벌가의 선영과 달리 그리 주목할 만한 명당은 아니라고 게 풍수가들의 분석이다. 현재보다는 오히려 과거의 선영이 주목을 받는다. 한화가는 앞서 천안에서 공주로 선영을 이장한 바 있다.

박인천 금호그룹 창업주.
과거 천안시 중심에 위치했던 한화가 가족 묘원에는 김종희 창업주 묘소를 비롯해 일가의 묘소 10여기가 모여 있었다. 강한 생기가 감도는 명당으로 특히 김 창업주의 증조부 묘소가 진혈에 위치해 있어 한화그룹 발복의 근원이 됐다는 설명이다.

롯데가는 창업주인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집안이다. 풍수가들은 롯데가의 성공 배경으로 울산 울주군 삼동면 작동리에 위치한 조부모의 묏자리를 꼽는다. 호수에서 많은 물고기들이 모여드는 형태로 풍부한 재물을 불러오는 명당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신 총괄회장 5대조의 묘소도 정중앙으로 강한 생기가 있어 후손들의 역동적인 창조력의 원천되고 대부를 배출할 명당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선친의 묘소도 5대조 묘소 못지않은 진혈이 묘역 내에 자리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호가 박인천 창업주의 유택은 광주광역시 북구 운암동의 죽호학원 내에 마련돼 있다. 공원처럼 꾸며진 잔디 동산 한가운데 자리한 묘소에는 박 창업주 내외가 영면을 취하고 있고, 그 앞엔 박 창업주의 동상이 살아있듯 서 있다.

이처럼 묘역 주변의 경관은 잘 조성돼 있지만 풍수적으론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묘역 일대를 통틀어 명당이라고 할 요소가 없는데다, 특히 박 창업주의 묘소가 수맥에 위치해 후세들에 악재와 분란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풍수가들은 전망했다.



송응철기자 sec@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