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안 개정 위해 불법 후원금 의혹

한전KDN이 위치한 서울 서초구의 한전아트센터 전경. 주간한국 자료사진
개정법률로 인한 사업제한 회피 위해 본사 직원들에 후원금 모집
'공공기관 제외' 예외 조항 삽입…후원금 의도 알았는지 여부 촉각
경찰 수사과정서 운영비리 포착… "사실 무근, 정치적 탄압" 반발도

한국전력공사 자회사인 한전KDN이 입법로비를 벌인 정황이 경찰에 적발됐다. 자사에 불리한 규제가 적용되는 개정법률로 사업 제한을 받지 않기 위해 본사 직원들을 총동원해 여야 의원들에게 불법 후원금을 건넸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로비대상에 이름을 올린 의원들은 사실무근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 안팎에선 로비가 성공했다는 견해가 적지 많다. 후원금 공세가 이뤄진 이후 문제의 의원들이 한전KDN에 유리한 예외 규정이 삽입된 수정안을 재발의했거나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불리한 법안에 대처팀 조성

경찰에 따르면 한전KDN 국회의원 입법 로비사건의 발단은 2012년 11월 중소기업 보호를 위해 공공발주 소프트웨어사업에 대기업의 참여를 제한한다는 내용을 담은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개정법안이 국회에서 발의되면서다.

개정 법률이 시행될 경우 한전KDN은 그동안 사업을 수주해 오던 한전ㆍ발전회사 등으로부터 사업 수주를 받을 수 없게 되는 상황이었다. 한전KDN의 경우 한전이 100% 출자한 회사여서 대기업으로 분류되기 때문이었다.

한전KDN 2012년 당시 4,000억원 수준의 매출은 법안 통과와 동시에 '반토막'이 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이 나왔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한전KDN은 즉시 김모 본부장을 팀장으로 하는 '소프트웨어사업대처팀'을 발족해 대책 마련에 나섰다.

그리고 다음달인 12월 회의를 거쳐 입법 발의하거나 영향을 줄 수 있는 국회의원 4명을 선정하고 이들에게 후원금을 단체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대상이 된 의원은 입법 발의한 것으로 알려진 지경위 소속 전순옥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개정 법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판단한 여야 의원 3명이었다.

직원 1인당 10만원씩 모아 전달

소프트웨어사업대처팀은 즉각 행동에 나섰다. 김 본부장을 비롯한 복수의 직원들이 국회의원실을 수차례 방문해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개정과 관련해 한전KDN의 사업에 영향이 없도록 참여제한 대상기관에 '공공기관 제외' 조문을 삽입한 법률안을 전달했다.

물론 '맨입'은 아니었다. 한전KDN 부서별로 국회의원을 지정해 직원 491명이 개인당 약 10만원씩 의원 1인당 995만원에서 1,430만원을 전달했다. 이를 '국회의원 OOO 후원금 기탁자 명단(의원실 제출용)'이라는 서류로 정리해 후원금 기부 사실 알리기도 했다.

기업이나 법인이 국회의원에게 후원할 수 없다는 정치자금법 조항을 피함과 동시에 개인명의의 10만원 이하 소액 후원에 대해서는 세액공제를 통해 전액 환급한다는 규정을 교묘하게 악용하는 '꼼수'를 부렸다는 평가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전KDM은 '공공기관 제외' 조문을 삽입한 개정법률안이 소위원회를 통과한 지난해 8월26일에는 기부금을 내지 않았던 직원 77명에게 입법발의 의원들의 후원금 계좌에 2차로 536만원을 기부하도록 하기도 했다.

한전KDM은 또 지난해 6월 전순옥 의원 출판기념회에서 책자 300권 900만원 상당을 일괄 구입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개정법률은 한전KDN의 요구대로 '공공기관 제외' 조문이 삽입돼 본회의를 통과, 지난 3월31일부로 시행에 들어간 상태다.

물론 의원들이 정치후원금을 받았다고 해서 불법은 아니다. 경찰은 아직 이들 의원의 입건 여부는 결정되지 않은 상태로 알려졌다. 문제는 의원들이 후원금의 의도를 알았는지와 그 대가로 입법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여부다.

경찰 관계자는 "후원금 받은 의원들은 향후 '공공기관 제외' 조문이 들어간 개정안 통과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행위를 했는지 여부와 의원이 후원금 기부 사실을 통보받았는지 여부 등에 대해선 아직 조사가 덜 끝난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지난 4월 한전KDN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한전KDN 후원금 기부 내역, '소프트웨어사업대처 팀' 회의자료 등 증거물을 토대로 국회의원 4명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해 계속 수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전 의원 "전혀 사실무근"

전 의원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명백한 정치적 탄압"이라고 반발했다. 전 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경찰이 입법로비 대상 법안으로 지목한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개정안' 발의에 대해 "입법로비를 받은 사실도 없고 받을 이유도 없다"고 주장했다.

전 의원은 '공공기관 제외' 조문을 삽입한 이유에 대해서도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법의 취지와 달리 공공기관이 공공부문 발주 사업 참여가 배제돼 공공기관이 민영화(외국계 대기업 수주) 되는 상황을 막아보자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전 의원은 또 "개정안 발의 약 한 달 후인 지난해 3월29일 당시 정부의 업무조정에 따라 이 법안 심사의 소관위원회가 산업위에서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로 바뀌었다"며 "법 발의 후 법안 상정이나 법안 심사 등은 모두 미래위에서 진행됐다"고 강조했다

한편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운영비리도 포착됐다. 한전KDN 임직원 358명은 출장을 간 사실이 없음에도 4,160회에 걸쳐 허위 출장 보고서를 작성, 2012년부터 출장비 11억2,000만원을 수령하여 본인이 개인적으로 사용하거나 상급자에게 상납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홍우기자 lhw@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