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총수 꺼내 내수 경제 살린다기업인 사면 당초 연말로 전망… 잇단 사건·사고에 결국 해 넘겨설날이나 3·1절 가석방 전망돼각계각층에서 선처 호소 목소리황교안 장관 가석방에 '부정적?'

최태원 SK그룹 회장
경제인 가석방이 최근 활발하게 검토되고 있다. 당초 지난해 연말로 전망되던 경제인 사면은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 파문'과 '조현아 대한항공 땅콩회항 사건'으로 기업인 사면에 부정적인 여론이 증폭되면서 결국 해를 넘기게 됐다.

그러나 청와대 안팎에선 '기업인 사면론'이 새해 핵심 안건으로 처리되리란 전망이 나온다. 이미 정부와 여당, 재계는 군불 때기에 나선 모양새다. 재벌에 부정적인 여론을 환기시키기 위해서다. 정재계 최대 이슈로 떠오른 '경제인 가석방'의 내막을 짚어봤다.

기업인 사면 추진 배경은?

박근혜정부는 최경환 의원을 경제부총리로 임명하고 각종 경기부양책을 내놓는 등 경제활성화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그러나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그러자 청와대 안팎에선 기업 자금이 풀려야 경기가 활성화될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런 공감대는 구속된 기업인 사면을 검토해야 한다는 분위기로 이어졌다. 그러나 당초 정부는 기업인 사면에 강경모드로 일관해 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부터 비리 기업인 '불관용 원칙'을 천명해 온 때문이다. 뒤늦은 입장 선회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재현 CJ그룹 회장
실제 박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과 3·1절, 광복절, 성탄절 등에 정치인 및 기업인 등 사회지도층에 대한 특사를 단 한번도 실시한 적이 없다. 박 대통령 취임 이후 현재까지 단행된 특사는 지난해 1월 서민생계형 사범에 대한 특사가 유일하다.

그런 정부가 사면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게 된 건 최경환 부총리와 김기춘 비서실장, 황우여 사회부총리 등 박 대통령 측근 인사들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경제인들에 대해 무자비 원칙에 대한 우려를 지속적으로 표시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삼성과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대부분 대기업이 긴축경영에 돌입한 가운데 SK나 CJ처럼 총수가 구속된 그룹은 경영의사 결정이 지연되거나 신규사업 투자 부진, 실적 악화 등의 부작용이 잇달아 나타나면서 내수 경제엔 '적색등'이 들어온 상황이었다.

실제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의 구속으로 대형 인수합병(M&A)이나 투자에 모두 '브레이크'가 걸린 상태다. 특히 그룹의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육성해 오던 태양전지 및 연료전지 개발 사업 역시 최 회장 구속 이후 투자가 중단됐다.

CJ그룹도 이재현 회장의 공백이 1년 넘게 길어지면서 지난해 투자금이 당초 계획의 65% 수준인 8,900억원에 그쳤다. 이 회장 공백 상태로 대형 프로젝트 추진에 대한 과감한 의사 결정이 이뤄지지 않아 투자 차질이 커지고 있었다.

구본상 전 LIG넥스원 부회장
경제활성화에 차질이 예상되자 정부는 결국 특단의 대책을 내놨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정부에서 지난해 9월 말부터 기업인 사면카드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고, 10월 중순 사면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대상 선별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인 사면론' 새해 핵심 안건

청와대 관계자에 따르면 기업인은 사면은 크리스마스 직후나 연말에 추진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최근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 파문'과 '조현아 대한항공 땅콩회항 사건'으로 기업인 사면에 부정적인 여론이 폭증하면서 결국 사면은 해를 넘기게 됐다.

그러나 정부는 국내 경제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라는 최경환 부총리의 독촉에 '기업인 사면론'을 새해 핵심 안건으로 처리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경제인 사면을 추진하는 시점이 설날 내지는 3·1절 정도에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다만 사면은 '특사'가 아닌 '가석방' 형식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앞서 청와대 내부에선 특사를 통해 사면을 진행할 경우 2015년 총선 정국을 염두에 둔 여당이 본격적인 '거리두기'에 나서리란 우려가 만연했고, 이런 걱정을 감안한 판단이라는 전언이다.

현재 대법원 최종 판결을 받고 형이 확정돼 수감 생활을 하고 있는 기업인 가운데 가석방 대상으로 유력하게 지목되고 있는 건 SK그룹의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부회장 형제와 등이다.

이들은 모두 '형기의 3분의 1을 복역한 모범수에 대해 법무부 장관이 조건부 석방을 결정한다'는 가석방 요건을 채웠다. 하지만 2007년 이후 50% 안팎의 형기를 채운 요건만으로 출소한 전례가 없어 향후 형평성에 논란이 제기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정부ㆍ여당은 '군불 때기'

최근 정부와 여당, 법조계, 재계에선 '군불 때기'에 나서고 있다. 최 부총리에 이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친박의 '맏형' 서청원 최고위원, 이정현 최고위원, 김태호 최고위원 등 당정 핵심부가 기업인들의 사면·가석방 필요성을 들고 나왔다.

여기에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도 최태원 회장의 가석방에 대해 적극적으로 호소하는가 하면 양승태 대법원장도 '기업인 역차별'에 대해 언급하고 나섰다. 청와대도 직접적인 언급은 피했지만 "가석방은 법무부 장관의 고유권한"이라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법무부는 일단 "원칙대로 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기업인 가석방에 다소 부정적인 입장으로 전해졌다. 전례에 비해 완화된 요건에 맞춰 기업인들을 가석방할 경우 다른 수감자들도 형평에 맞춰 풀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자칫 기업인 사면이 '죄수대방출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 황 장관이 기업인 가석방에 반대 입장을 피력하면서 청와대는 외통수에 걸린 상황"이라며 "청와대가 지속적으로 황 장관을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본 기사는 <주간한국>(www.hankooki.com) 제255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송응철기자 sec@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