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에겐 '신의 직장' 국가경제엔 '뇌관'… 혈세 낭비 국민 부담으로인건비 후생비 아낌없이 지급… 낭비된 혈세 12조원대로 추산지난 5년간 경영실적은 반토막… 증권공기관 인건비 1억700만원민간증권사보다 58.1%나 높아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감사원 전경. 주간한국 자료사진
금융공공기관에 대한 감사원 감사 결과가 최근 발표됐다. 이들 공공기관은 아직도 '신의 직장'이었다. 방만경영도 여전했다. 재무건전성 악화에도 인건비와 복리후생비, 성과급을 아낌없이 지급했다. 이 때문에 낭비된 혈세는 무려 12조2,00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공공기관 부채는 한국 경제의 뇌관이다. 총 523조원으로 이미 국가채무인 482조원을 앞지른지 오래다. 공공기관의 방만경영을 방치할 경우 국가경제에 자칫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어느 기관의 어떤 행태가 우리 경제를 위협하고 있을까.

여전한 방만경영 '신의 직장'

감사원의 감사 결과 금융공공기관의 방만경영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대상은 한국은행·한국산업은행·한국수출입은행·중소기업은행·한국정책금융공사·한국거래소·한국예탁결제원·코스콤·예금보험공사·한국자산관리공사·한국주택금융공사·신용보증기금·기술신용보증기금·한국무역보험공사 등 14개 금융공공기관이다.

감사원이 공개한 '금융공공기관 경영관리실태'에 따르면 조사 대상이 된 금융공공기관의 2013년도 정규직 1인당 평균인건비(연말정산 근로소득 기준)는 8,950만원으로, 민간금융회사 평균인 7,340만원보다 1.2배 높았다.

특히 한국거래소·한국예탁결제원·코스콤 등 3개 증권공공기관의 평균인건비는 1억700만원으로 4개 민간증권회사 평균인 6,770만원보다 58.1%나 높았다. 격차는 2009년 1,950만원에서 2013년 3,950만원으로 4년 만에 2배 가까이 벌어졌다.

근속연수가 길어질수록 인건비 격차는 더욱 확대됐다. 25년 근속 기준으로 수출입은행은 4대 시중은행 평균인 1억1,400만원보다 38% 많은 1억5,755만원을 지급했고, 한국거래소는 1억4,749만원으로 민간증권사 평균인 9,630만원보다 53%를 더 줬다.

복리후생비도 금융공공기관이 높았다. 금융공공기관(394만원)이 민간금융회사(301만원)보다 30.9%, 국책은행(537만원)이 민간은행(421만원)보다 27.6% 많았다. 증권공공기관(382만원)의 경우 민간증권회사(181만원)보다 111%나 많은 복리후생비를 지급했다.

문제는 이들 금융공공기관의 경영실적이 좋지 않다는 데 있다. 감사 대상에 포함된 금융공공기관의 수익은 2009년 6조2,894억원에서 지난해 3조516억원으로 반토막이 났다. 특히 예금보험공사는 저축은행 사태 등으로 2011년과 2012년 사이 대규모 적자가 발생했다.

감사원은 "독점에 의한 경쟁부재, 정부손실보전 등 좋은 경영환경과 짧은 근로시간, 높은 직업안정성 등 더 나은 근무여건에도 인건비를 지속적으로 인상해 왔다"며 "그 결과 민간금융사와의 임금 격차가 확대되는 등 방만경영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또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에 "금융공공기관의 방만 경영 실태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선 민간금융회사와 비교해 적정한 수준으로 총인건비 인상률을 차등 적용하는 등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통보했다.

다양한 방만 사례 대거 적발

감사원은 이번 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금융공공기관에 제도개선 등 조치를 요구하는 88건을 통보했다. 이 가운데 38건에 대해서는 주의를, 6명에 대해서는 문책을 각각 요구했다.

주요 사례를 보면 먼저 한국은행은 직원에게 14년간 무상으로 사택을 이용하도록 편의를 준 점이 적발됐다. 한은은 본부와 지역본부 간 인사이동이 가능한 직원의 경우 생활 근거지와 상관없이 지역본부에서 근무하면 무상으로 사택을 이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로 인해 한국은행 지역본부 직원은 1985년 이후 지역본부 근처에 거주지가 있었음에도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사택을 무상으로 사용했다. 이밖에 다른 직원 4명도 10년 이상 무료로 사택을 자신의 집처럼 이용하며 장기거주했다.

산업은행은 18건의 주의(5건).통보(13건)와 1명을 징계조치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감사원은 388억원의 사내복지기금을 임의로 운영한 것과 관련해 당시 관련자 5명의 비위내용을 인사자료로 활용하라고 산업은행과 금융위원회에 통보했다.

수출입은행의 경우 정책금융기관이라는 설립 취지에서 벗어나 민간 은행 영역까지 침범하는 영업을 일삼은 사실이 문제가 됐다. 포괄수출금융이나 외국 법인 사업 자금 대출 등 시중은행에서 취급하는 대출상품을 운영했다.

정부는 2007년 수출입은행에 시중은행과 마찰을 최소화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그러나 2009년 시설 확장·증설용 자금 대출을 신설하는 등 민간 은행 영역인 '일반 여신'이 2007년 6조2,502억원에서 2013년 말 17조1,690억원으로 늘어났다.

수출입은행은 또 런던과 홍콩,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해외법인 역시 '대규모 수출금융을 위한 조사·연구와 자금조달업무 지원'이라는 법령상 취지와 달리 자금 대출과 유가증권 투자 같은 종합금융업무를 반복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기업은행은 퇴직금과 성과급, 상여금 등을 반복적으로 과다하게 지급했다. 실제 지급됐어야 할 수준보다 더 지급된 임금과 퇴직금 규모는 모두 2,634억2,000만원에 달했다. 감사원은 기업은행에 부적절하게 지급된 자금 일부에 대한 즉시 회수조치를 내렸다.

기업은행은 성과연봉제를 실시하면서 부점장급 이상이거나 부점장급으로 승진하는 직원 844명의 호봉을 임의로 1호봉씩 올린 후 기본급 초임을 계산했다. 이런 셈법으로 과다지급된 임금은 2011년 1월부터 2014년 3월까지 27억7,700만원으로 추산됐다.

기업은행은 또 승진한 직원들의 성과급을 중복 지급해 19억5,600만원의 상여금을 더 줬다는 지적도 받았다. '꼼수' 임금삭감도 있었다. 기업은행은 2009년 10월 기획재정부의 공기업·준정부기관 예산편성지침에 따라 2010년 인건비를 5% 삭감했다.

그러나 기업은행은 인건비 삭감 직전 통근비와 시간외근무수당, 연차휴가보상금을 모두 기본급에 넣도록 복지규정을 개정했다. 결국 실제 임금삭감률은 2.2%에 그쳤다. 이를 통해 2009년 10월부터 2013년 12월까지 최소 705억여원이 더 지급됐다.

퇴직금도 과도하게 챙겨줬다. 정부는 국책은행 직원의 경우 국가공무원의 명예퇴직수당 지급 규정을 준용해 명예퇴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은행은 이를 무시하고 퇴직금을 총 1,690억4,200만원 더 지급했다.

만연한 방만…통제 기능 부재

한국예탁결제원은 부적절한 골프회원권 취득이 문제가 됐다. 외부 영업활동상 긴요하지 않은데도 지난 2010년 13억3,000만원에 특정 골프클럽의 무기명 골프회원권을 취득했다. 이후 해당 골프클럽 운영사의 재무상태가 악화되면서 11억400만원의 손실을 입게 됐다.

한국주택금융공사는 법률비용을 과다하게 지급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2013년 법률자문 계약에 응찰한 특정 법률사무소가 자문 1건당 550만원으로 제안서를 제출했음에도 한국주택금융공사는 220만원이 높은 770만원에 계약했다.

뿐만 아니라 2012년부터 2014년까지도 법무법인들이 제안한 가격 중 가장 높은 가격으로 일괄 계약했다. 그 결과 이 기간 법무법인들이 제안한 가격대로 수수료를 지급하였을 경우와 비교할 때 6,154만5,000원의 법률비용이 추가로 지급됐다.

감정평가 수수료를 특정법인에 몰아준 사실도 발견됐다. 보금자리론 담보주택에 대한 감정평가 위탁기관으로 3개 법인을 선정했으나 업무량 배정에 대한 기준을 두지 않은 채 공사 상품내용을 전화로 소개해 주는 콜센터 상담사가 마음대로 배정하도록 운영했다.

그 결과 2013년 1월부터 2014년 3월 사이에 지급된 총 13억6,300만원(9,914건)의 수수료 중 특정 평가법인에 8억4,700만원(62.2%)이 지급된 반면, 또다른 평가법인에는 1억1,300만원(8.3%)만 지급되는 등 특정업체에 편중된 모습을 보였다.

한국무역보험공사는 직원들에게 회사 명의의 콘도회원권 23개 구좌를 무료로 사용하도록 하면서 3년간 5억원 가까운 금액을 지원했다. 1994년부터 작년 6월까지 직원들이 휴가기간 중 개인적으로 이용한 콘도이용료를 기금운영비로 지원해오고 있다.

또 정부가 정한 '공공기관 명예퇴직제도'와 달리 명예퇴직자 자격요건을 '만 15년 이상 근속자'로 완화해 운영해온 사실도 드러났다. 이를 통해 2009년 8월부터 3년간 근속연수 20년 미만의 직원 10명에게 12억3,100만여원의 명예퇴직금을 지급한 것으로 파악됐다.

감사원은 "정부의 지속적인 개혁 노력과 감사원의 반복적인 지적에도 금융공공기관의 경영 상태가 여전히 방만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는 예산승인과 경영평가를 통해 이들 경영 상태를 관리 감독해야 하는 금융위원회가 통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본 기사는 <주간한국>(www.hankooki.com) 제256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송응철기자 sec@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