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적 분위기에 국악… '2차'도속 비치는 저고리 입고 시중T요정 식비 1인당 40여만원… 서비스 추가시 100만원까지고위 공무원, 기업인 주고객… '2차'시 단속 회피 위한 편법

드라마 속 요정의 한 장면.
최근 국세청 직원들에 이어 감사원 고위직원들이 성매매 혐의로 적발됐다. 감사원 간부들은 한국전력 직원들로부터 술접대를 받은 후 이른바 '2차'로 통하는 성매매를 하다 여성가족부와 합동 단속에 나선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이런 가운데 문제의 감사원 직원들이 접대를 받은 곳이 '요정'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해당 장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요정은 한때 접대의 장으로 애용됐지만 현재는 대부분 자취를 감춘 곳. 대체 어떤 모습으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을까.

빌딩숲 속 독특한 분위기 건물서 성업

요정은 한때 접대문화의 장으로 애용되던 곳이다. 197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가 전성시대였다. 당시 정·재계 인사들의 회합 장소로 이용됐다. 1990년대 '룸살롱'에 밀려 자리를 잃었다. 현재 강남 일대에서 몇 곳 정도가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감사원 간부들이 한전 직원들로부터 접대를 받은 곳은 서울 강남구의 D요정이다. 지하 1층과 지상 3층으로 이뤄진 해당 요정은 연면적이 500평에 달하고 내부엔 30여개의 방이 있다.

요정의 실내는 동양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복도와 계단, 방들은 고풍스런 서랍장과 장식품들로 꾸며져 있다. 차림상은 한정식으로 구성됐다. 30여가지가 넘는 요리가 차례로 상에 오른다. 술은 양주만 1인당 1병씩만, 소주와 맥주는 무제한으로 제공된다.

1인당 식사비 100만원까지도

접대 여성은 얇은 한복을 입고 손님들의 옆에 앉아 시중을 든다. 이렇게 1인당 식비는 40만원 수준이다. 여기에 국악공연이나 밴드 등 각종 서비스를 추가하면 1인당 식비는 100만원까지 올라간다. 여기에 팁까지 추가하면 식대는 더욱 커진다.

국악공연 관람 가격은 30분에 15만원 정도다. 부채춤부터 가야금 병창, 살풀이, 어우동춤 등 다양하며 장구를 치는 고수와 대금 반주에 맞춰 진행된다. 국악기 연주자들 대부분은 모두 용돈벌이를 노린 국악 전공자들로 구성돼 있다.

D 요정과 함께 요정 명맥을 잇고 있는 T요정 역시 은은한 조명과 고급스러운 실내장식으로 꾸며져 있다. 주요고객은 고위공무원이나 기업인 등이다. 특히 최근에는 IT업계 기업인들의 출입이 부쩍 늘었다는 후문이다.

요정은 한국적인 분위기 때문에 외국인 접대의 장으로 애용되기도 한다. 이를 위해 요정 측은 외국어가 가능한 여성을 우대한다는 설명이다.

신분이 높은 손님들을 상대하는 만큼 접대 여성들의 지식수준도 높은 편이다. 때문에 시사와 관련된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다고 한다. 업주의 방침에 따라 매주 쪽지시험을 치르는 곳도 있다. 합격점을 받지 못하면 한주 동안 손님을 받지 못하는 벌칙이 주어진다고 한다.

은밀한 성매매로 이어지기도

이들 요정에서는 이른바 '2차'로 통하는 성매매도 이뤄진다. 성매매 방식은 조금 독특하다. 여성과 남성이 따로 업소 차량으로 이동해 지정된 숙박업소에서 만나는 식이다. 고객 신변 보안 유지와 당국의 단속을 피하기 위한 행보로 분석된다.

이는 근래 룸살롱에서도 주로 사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런 편법에 대응하기 위해 수사당국도 새로운 단속 방법을 고안해 냈다. 요정이나 룸살롱의 지정 숙박업소로 알려진 곳들 주변을 순찰하며 남성과 여성이 따로 밖에서 만나는 경우를 찾아내는 식이다.

실제 이번에 적발된 감사원 간부 2명 이런 방법을 통해 성매매를 하다 수사당국에 덜미를 잡혔다. 이들 직원은 D요정에서 술을 마신 뒤 차를 타고 약 500m 떨어진 숙박업소로 이동한 후 요정의 접대 여성 2명을 다시 만나 방에 들어갔다.

여성가족부와 합동 단속에 나선 경찰은 이런 장면을 포착하고 모텔방을 급습해 감사원 직원들을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경찰은 D요정 관계자들을 참고인으로 불러 당시 상황을 확인했고, 감사원 직원들의 통화내역 조회를 통해 성매매 여부를 가릴 계획이다.


'접대의 장' 요정의 역사는?


70년대 성업하다 룸살롱에 밀려


국내 요정의 역사는 한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1908년 국가 소속 공인 예술가인 관기가 폐지되면서 궁중 기녀들이 가무영업 허가를 받고 만든 유흥음식점이 그 시초다. 이때 일본식 요정을 본뜬 한국식 요정이 탄생하게 됐다.

해방 전후로 요정은 급격하게 늘어났다. 당시 서울에는 명월관을 비롯해 국일관, 송죽관 등의 요정들이 이름을 날렸다. 정관계 고위층들이 요정을 드나들었다. 유착을 의미하는 '사바사바'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등장한 시기도 이때다.

이후 1970년대 요정은 전성기를 맞는다. 고위공직자는 물론 재벌이나 언론사 간부들도 고급 요정에서 만나 관계의 끈을 맺었다. 북한산 자락에 위치한 '선운각'과 성북동의 '삼청각', 종로구 익선동의 '오진암' 등이 당시 성업하던 유명한 요정이다.

요정이 퇴락의 길을 걷게 된 건 1980년대 경제성장 및 통행금지 해제 등의 유화조치와 더불어 현대판 요정이라 할 수 있는 룸살롱들이 대거 등장하면서다. 요정에 비해 저렴한 가격으로 일반 회사원들도 접대 명목으로 룸살롱에 출입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룸살롱은 접대문화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서울 강남에는 종업원을 200명 이상 거느린 기업형 룸살롱이 출현했고, 각종 변종 영업전략을 새운 룸살롱도 나왔다. 룸살롱의 급격한 영토 확장에 밀려 요정은 현재 대부분 자취를 감춘 상태다.



이홍우 기자 lhw@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