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에 '칼날'… 정치권 로비 추적중흥건설 사장 영장 청구… ‘제2의 성완종 사태’ 관측도동국제강 회장 비자금ㆍ해외도박 도마에… 로비 의혹 추적신원그룹 회장 탈세혐의… 정·관계·금융계 로비 여부 수사

왼쪽부터 정원주 중흥건설 사장,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박성철 신안그룹 회장
검찰의 기업에 대한 수사가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간 사자방(4대강ㆍ자원외교ㆍ방위사업) 수사에 집중됐던 검찰의 칼날이 기업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는 것. 게다가 일부 기업에 대한 수사는 정치권과 연계된 흔적들이 나오고 있어 '제2의 성완종 사태'로 비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검찰은 20일 200억원대 횡령 혐의를 받고 있는 정원주(48) 중흥건설 사장에게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정 사장이 중흥건설을 경영하면서 회삿돈 200억원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에 따른 것이다.

중흥건설은 호남의 중견 업체로 전국 건설사 중 주택 공급 실적 3위에 오르기도 한 대형 건설사다. 중흥건설은 김대중정부 시절이던 1990년대 후반부터 성장하기 시작해 지난해 도급 순위 54위로 뛰어올랐고 자산 또한 지난해 3조8,000억원에서 올해 5조6,000억원으로 급증했다. 정 사장은 호남의 '마당발'로 통하며 광주ㆍ전남 지역 의원들과도 네트워크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선 중흥건설 비자금 수사가 본격화되면 '제2의 성완종 사태로 번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돌고 있다. 검찰은 "호남 출신 야당 정치인들에게 비자금이 유입된 정황은 아직 포착하지 못했다"고 선을 그었으나, 정 사장이 구속되면 그 사용처를 강도 높게 조사할 방침이다

앞서 검찰은 정 사장과 횡령을 공모한 혐의로 자금담당 부사장인 이모씨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 위반 상 횡령혐의로 구속기소한 바 있다. 또, 지난 16일과 17일에는 정 사장의 부친인 정창선 회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순천 신대배후단지 개발사업과정에서 불법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에 대해 조사를 벌였다.

지난 21일엔 장세주(62) 동국제강 회장이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회삿돈으로 수백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하고 해외 원정도박을 벌인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배임 등) 때문이다. 장 회장은 검찰이 '부정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 성완종 전 경남회장에 이어 두 번째로 소환되는 대기업 총수다.

검찰에 따르면 장 회장은 동국제강이 해외에서 고철 등 중간재를 사들이는 과정에서 미국법인인 동국인터내셔널(DKI)에 실제 단가보다 거래대금을 부풀려 지급한 뒤 거래대금을 미국 법인인 동국인터내셔널(DKI) 계좌에 집어넣었다가 손실처리하는 수법 등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장 회장이 빼돌린 회사 돈을 조세회피처에 세운 특수목적법인(SPC) 등으로 송금해 세탁한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까지 검찰이 파악한 비자금 규모는 200억원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비자금을 조성하는 과정을 적극 지시했는지 추궁하고 있다. 검찰은 장 회장을 상대로 빼돌린 회사 돈을 정치권 로비 등에 썼다는 의혹도 조사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검찰은 장 회장의 상습 해외도박 혐의에 대해서도 강도 높게 조사하고 있다. 검찰은 장 회장이 회삿돈으로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고급 호텔 등지에서 도박을 했고 수십억원을 땄다는 내용의 미국 수사당국 자료를 입수한 상태다. 장 회장은 지난 1990년에도 마카오 카지노에서 상습 도박을 벌인 혐의로 구속된 바 있다.

한편 동국제강은 장 회장 일가가 지분을 보유한 부동산업체 페럼인프라에 본사 건물관리 업무를 맡기는 과정에서도 거래대금을 부풀렸다는 의혹을 받았다. 아울러 동국제강이 IT계열사 DK U&C와 부당한 내부거래가 있었다는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검찰은 22일 국세청이 박성철(75) 신원그룹 회장을 탈세 혐의로 고발함에 따라 본격 조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국세청은 박 회장이 ㈜신원의 경영권을 되찾는 과정에서 가족과 지인 등의 명의로 주식을 매입하고도 증여세 등을 내지 않은 혐의(조세포탈)가 드러났다고 밝혔다.

박 회장은 1999년 신원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신원이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보유 지분을 모두 포기했으나 2003년 워크아웃 졸업 후 대표이사를 맡아왔다. 박 회장의 부인 송모씨가 ㈜신원의 1대 주주이자 광고대행사인 티엔엠커뮤니케이션즈의 최대 주주(26.6%)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로 보인다. 박 회장의 세 아들도 티엔엠커뮤니케이션즈 지분을 1%씩 보유하고 있다.

세무당국은 올해 초 시작한 세무조사를 통해 박 회장이 티엔엠커뮤니케이션즈를 통해 ㈜신원 주식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증여세 등을 포탈한 혐의를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원그룹 관계자는 "박 회장이 워크아웃 당시 주식을 모두 반납하고 사재까지 출연해 신원을 살리겠다고 했는데, 부인과 아들 등 가족 이름으로 신원 주식을 취득했을 때 외부의 시선이 불편할 수 있어 이런 방법을 사용했다"면서 "당시에는 이런 절차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국세청은 주식 주인이 바뀌는 과정에서 관련자들이 증여세를 제대로 내지 않았다고 보고 190억원을 추징했다. 국세청은 박 회장이 부인 명의의 이른바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편법적으로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신원 측은, 세법을 잘 몰라서 벌어진 일일 뿐이고 회사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해명했다.

한편, 검찰은 조만간 박 회장 등을 상대로 본격 조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검찰은 박 회장이 경영권을 편법으로 되찾는 과정에서 정·관계나 금융계에 대한 금품 로비가 있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이홍우 기자 lhw@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