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 경영권 방어의 '등불'… 기업 옹호 개미들엔 '눈물'?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가결… 최대주주 국민연금의 힘보여국민 위한 국민연금 대차거래$ 기업만 배불리는 상황

17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2가 삼성생명 빌딩에서 열린 제일모직 임시 주주총회에서 삼성물산과의 합병계약서 승인의 건이 통과됐다.
삼성그룹(이하 삼성)의 사실상 지주회사인 통합 삼성물산이 본격 출범한다. 삼성물산은 지난 17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센터 5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임시 주주총회(이하 주총)에서 제일모직과의 합병계약서 승인건을 찬성률 69.53%로 가결했다.

이날 주총은 삼성물산 의결권이 있는 1억5,621만7,746주 중 83.57%인 1억3,054만8,184주의 주주들이 참석했다. 그 중 69.53%인 9,202만3,660주가 찬성해 합병이 결정됐다.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가 주주이익을 앞세워 합병 반대를 집요하게 주장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로써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삼성물산의 법인명으로 오는 9월 1일 통합된다. 이번 합병을 통해 삼성은 지배구조 개편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승계 구도에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측된다.

이번 합병 과정에서 삼성물산의 최대 주주인 국민연금은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국민연금의 향배에 따라 합병이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국민연금은 주총 이전에 합병에 찬성하는 입장을 나타내 사실상 삼성 측에 유리한 구도를 형성했다.

국민연금은 삼성물산뿐만 아니라 국내 주요기업에 상당한 지분을 갖고 있어 그의 행보에 따라 기업의 명운이 좌우될 수도 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 캐스팅보트로 급부상한 국민연금의 국내 증시에서의 위상과 역할 그리고 명암 등을 살펴봤다.

캐스팅보트로 주목받은 국민연금

'삼성-엘리엇' 공방전은 삼성이 지난 5월 26일 계열사 두 곳인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안을 공시하면서 시작됐다. 이에 엘리엇은 지난달 4일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히며 합병 반대를 주장하고 나섰다.

양측은 국내외 주주들을 상대로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삼성물산은 지난달 10일 자사주 899만주(5.76%)를 우호관계인 KCC에 매각했다. 엘리엇은 주식 매각과 지난 17일에 열린 합병결의 주주총회(이하 주총)를 둘러싸고 가처분신청을 냈다.

서울지방법원은 지난 1일, 7일 엘리엇이 낸 두 건의 가처분 신청을 모두 기각했다. 이로서 최대 반대세력인 엘리엇을 기선 제압한 삼성은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인 국민연금(11.21%)을 우호세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사활을 걸었다.

금융투자 전문가들은 지난 17일 합병주총에 앞서 국민연금이 찬성권을 행사할 것으로 전망했다.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또한 지난 13일 보도자료에서 "국민연금은 지난 10일 장시간 논의 끝에 삼성물산 합병에 대해 찬성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주총에서의 역할을 감안할 때 국내 자본시장에서 국민연금의 위상은 막강하다. 국민연금은 국민연금 가입자에게 연금보험료를 징수해 국내외 기업의 주식, 채권 등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기금을 운용한다.

재벌전문조사사이트 재벌닷컴이 지난 8일 공개한 바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지분이 5% 이상인 국내 상장사는 296개사다. 그룹별로 지분율 5%를 넘는 회사 중 삼성이 전체 상장사 17개사 중 13개사로 가장 많았다.

이어 LG가 11개사, SK가 9개사, CJ가 8개사, 현대차가 7개사, 신세계와 한솔이 각각 5개사, 롯데와 현대백화점이 각각 4개사로 밝혀졌다. GS, LS, 금호아시아나, 두산, 한진, 한화, 현대, 현대중공업은 3개사씩, 포스코, OCI, 세아, 한라는 2개사씩 등 국민연금 지분이 5%를 넘는 상장사가 2개사 이상인 곳은 20개 그룹이었다.

회사별로 국민연금 지분율 10%를 넘는 곳은 72개사다. 한솔 계열사인 한솔케미칼의 국민연금 지분율이 14.89%로 최고였고, 종근당(14.64%), LG하우시스(14.47%), 한솔제지 (13.97%), CJ제일제당(13.76%), 휴켐스(13.63%), 대상(13.59%), CJ CGV(13.58%), 리노공업(13.44%), 나스미디어(13.34%), 한섬(13.34%) 순이었다.

서흥(13,33%), 코오롱인더스트리(13.33%), 롯데푸드(13.31%), 한솔홀딩스(13.27%), LG이노텍(13.24%), 한세실업(13.22%), LS산전(13.07%), 한진칼(12.59%), BNK금융지주( 12.92%), LG상사(12.82%), 동아에스티(12.81%), SBS(12.8%), 한라홀딩스(12.79%), 솔브레인(12.65%)이 뒤따랐다.

이어 호텔신라(12.61%), SKC(12.53%), 신세계인터내셔널(12.53%), 한솔로지스틱스(12.53%), 대림산업(12.5%), 동아쏘시오홀딩스(12.48%), 현대글로비스(12.47%), 신세계 (12.45%), 현대위아(12.41%), 풍산(12.36%), 롯데하이마트(12.33%), SK케미칼(12.31%), 롯데칠성(12.18%), 현대건설(·12.18%), 코스맥스BTI(12.02%)로 나타났다.

이외에 국민연금이 5%이상 지분을 보유한 주요기업을 보면 삼성전자(8%), 현대차(7.01%), SK C&C(8.09%), LG(6.03%), 포스코(7.45%), GS(8.05%), 한화(10.47%), 현대중공업(5.03%), CJ(8.49%), SK하이닉스(9.1%) 등이 포함돼 있다.

경영권 취약 기업에 힘

국민연금이 지분을 보유한 주요기업에는 SK(8.26%), 삼성전자(8%), 현대차(7.01%), 현대중공업(5.03%)이 있다. 이들은 실적이 안정된 회사다. 반면 총수일가의 지분율이 낮아 경영권 공격에 취약하다. 불투명한 지배구조, 오너가의 경영권 승계 등의 상황이 발생하면 해외 투자자의 약점 공세에 무참히 흔들린다.

실제로 SK㈜ 지분을 0.02% 소유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2003년 당시 15% 지분을 보유한 영국계 헤지펀드 소버린자산운용의 경영구조 개선 및 경영진 교체를 요구받았다. 삼성은 지난 17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의결할 때까지 엘리엇의 방해공작에 시달렸다.

현대차는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로 현대모비스가 현대차의 실질적 지주회사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현대모비스와 현대차 지분을 각각 6.96%, 5.17% 보유 중이지만 외국인지분이 각각 51.1%, 44.44%로 정 회장의 지분을 압도한다.

현대중공업은 오너인 정몽준 전 새누리당 의원이 최대주주(10.15%)로 알려졌지만 경영선에 있는 최길선 현대중공업 회장의 지분은 1.1%로 보유율이 저조하다. 또한 정 전 의원의 장남이자 현대중공업 차기 후계자로 지목되는 정기선 현대중공업 상무는 지분이 없다.

이렇듯 대기업 총수들의 경영권 방어막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국민연금은 국내 기업에 적극적 동조하며 투기자본에 위협당하는 국내 산업의 방패막이가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국민경제 전반의 침체를 예방하는데 일조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국민연금은 지난 2012년 미국계 비스테온의 한라공조 상장폐지를 무산시킨 전례가 있다. 당시 한라공조의 최대주주인 비스테온이 한라공조 지분 95%로 상장폐지를 주장하자 지분 7%를 보유했던 국민연금이 공개매수에 불참하며 국가 산업에 미칠 타격을 방어한 바 있다.

다만 국민연금의 국내 기업 백기사 역할을 어느 수준까지 허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가 지난 3일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반대지침을 내린 것과 관련해 국민연금의 이번 합병 찬성표가 재벌특혜논란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 지분 보유 기업 합병에 변수

지난 17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주총에서 국민연금은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해석된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지분을 각각 11.61%, 5.04%씩 가진 주주로서 주총 전 주가 수준 유지를 전제로 합병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삼성뿐만 아니라 차후 발생할 국내 그룹들의 합병 건에서도 변수로 작용할 수 있음을 뜻한다. 삼성의 이번 계열사 합병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장치로 해석되듯이 3세 경영 본격화를 앞둔 그룹들 또한 같은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국민연금이 지분을 보유한 주요 그룹 중 현대차의 3세 경영승계가 가장 가깝다는 지배적인 평이다. 현대차는 삼성과 같이 지주사 체제가 도입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너 일가가 순환출자 구조를 통해 현대모비스의 지분율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 부회장은 23.29%의 현대글로비스 지분만을 보유하고 있다. 정작 현대차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현대모비스의 주식은 없다. 정 부회장이 경영 승계를 위해 지분을 늘리는 법은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합병만이 유일무이한 길이다.

현대차의 이러한 상황에 맞춰 국민연금은 현대차의 지분 매입 속도를 가속화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9일 공개한 바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 2월부터 현대글로비스 주식 130만9078주를 사들여 정 부회장 다음으로 지분이 많은 2대 주주에 등극했다.

일각에서는 삼성과 같이 현대차 또한 국민연금의 대차거래가 현대모비스-현대글로비스 합병에 변수로 등장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국민연금 측은 개별 기업에 대한 대차거래 내역은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 향후 국민연금이 합병에 어떤 역할을 할지 관심을 자아낸다.

이와 관련, 현대차 측은 "현재 정몽구 회장이 건재하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후계 관련 문제는 추후에 일어날 일"이라며 "다만 삼성의 합병과 국민연금 문제는 삼성으로만 봐야 할 일이다. 현대차를 비롯한 다른 그룹까지 적용하는 것은 잘 모르겠다"고 밝혔다.

국민연금 대차거래 '약인가 독인가'

국민연금은 17일 삼성물산 합병에서 '백기사' 역할을 했지만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의 수익사업 중 하나인 유가증권 대차거래가 주가를 떨어뜨릴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국민연금이 주식을 대여할 때마다 해당 종목의 주가는 증시를 뒤흔들어 개인투자자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는 것이다.

대차거래란 주식을 빌려서 매도한 후 기격이 떨어지면 이를 다시 매입해서 갚는 거래를 말한다. 이는 매도가와 매입가의 차익을 얻기 위해 활용하는 방법이다. 대차거래를 할 경우 의결권은 소유자인 차입자에게 생긴다.

홍문표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5월29일 국민연금의 대차거래가 공매도를 부추긴다며 국민연금의 주식매매 및 대여조항에서 대여 부문을 삭제하는 내용의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민연금이 빌려준 주식 중 상당수가 기관들의 공매도에 활용돼 개인투자자들은 공매도 된 주식을 갖고 있다가 손해를 본다는 내용을 골자로 했다.

홍 의원은 지난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종목별 대차거래 수량과 대차거래로 인한 수익을 근거 자료로 제시했다. 대여 수량 1위는 국민연금이 지분 4%를 보유한 한진중공업(1,278만4,363주)이었다. 한진중공업은 지난해 국민연금에 2억155만2,266원의 수익을 안겼지만 연초 주가 1만2,000원대에서 연말 주가 4,000원대까지 하락했다.

대여 수량 2위는 국민연금이 5.01% 지분을 소유한 대한항공(1,002만6,294주)이었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국민연금에 3억41,61만7,074원의 차익을 남겼지만 연초 5만1,000원대에서 연말 3만5,000원대로 떨어졌다. 지난해 12월5일 발생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이 영향을 끼쳤다고 보더라도 같은 해 1분기에 5만1,000원대에서 4만6,000원대로, 2분기에는 3만4,000원대에서 2만9,000원대로 떨어졌다.

이 외에도 국민연금이 4.95% 지분을 보유한 GS건설의 대여수익은 지난 2013년 18,54만6,517원에서 2014년 3억83,64만7,256원으로 급증했다. 지난해동안 상당수의 GS건설 지분이 대차거래에 이용된 것으로 파악된다. GS건설의 지난해 연초 주가는 3만원대였다. 반면 연말에는 2만3,000원대로 떨어져 대차거래량이 증가할수록 주가하락이 동반되는 점을 입증했다.

국민연금의 대차거래 시점과 해당 종목의 주가하락 시점이 대부분 일치했다. 대차거래량이 증가할수록 해당 주가가 수직 하강했다. 금융투자 업계에서 국민연금의 대차거래에 대한 시각은 세 가지로 나뉜다.

국민들의 연금을 극대화하기 위한 필수적인 선택이라는 입장과 정보력이 부족한 개인투자자들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 그리고 국민연금의 대차거래가 증시 변동성을 높이지만 그 덕에 주식시장이 활황세를 띈다는 필요악이라는 측면이 있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전반적인 증시를 봤을 때 대차거래 자체는 가치중립적이다. 국민연금이 대차를 할 때는 일시적으로 주가가 떨어지지만 일정기간 후에는 주식을 되사서 갚아야하기 때문에 다시 주가가 오른다. 국민연금의 규모 때문에 일시적으로 증시가 출렁일 수는 있으나 대차거래 자체는 큰 문제없다"고 했다.



윤소영 기자 ysy@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