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쉽게 안 물러날 듯… 소송·주주권·주식매수청구권 활용 가능

최치훈 삼성물산 건설부문 대표이사 사장이 17일 오전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제일모직과의 합병계약 안건을 주주 결의에 부치는 임시 주주총회에서 가결을 알리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모든 가능성 열어두고 있다" …엘리엇 장기전 돌입
삼성 압박할 카드 총동원… 합병무효소송 현실성 높아
이사진 교체는 어려울 듯… 그린메일 제기할 수 있어
투자자ㆍ국가소송 활용해 한국 정부 제소 가능성도

"합병이 가결돼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엔터테인먼트(이하 엘리엇)는 국내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넥서스의 최영익 대표변호사를 통해 지난 17일 열린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건 임시주총에 앞서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

같은 날 오후 엘리엇 측은 삼성물산의 합병발표에 대해 "수많은 독립 주주들의 희망에도 합병안이 승인된 것으로 보여 실망스럽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엘리엇이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는 대목이다.

이에 엘리엇이 선보일 '모든 가능성'에 대해 여러 예측이 제기되는 가운데 후속 카드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엘리엇 장기 태세 다양한 카드

엘리엇은 1대 0.35의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비율이 불합리하다며 합병을 반대해왔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지난 5월26일 합병 비율을 공개하며 합병가액을 각각 5만5767원, 15만9294원으로 밝혔다.

삼성물산이 명시한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한 합병 비율은 엘리엇에게 불리하다. 엘리엇의 삼성물산 지분은 합병 이전까지는 7.12%이지만 합병이 본격화되는 오는 9월1일에는 합병 비율로 인해 2.03%까지 줄어들게 된다.

엘리엇은 지난달 5일 서한을 통해 삼성물산 주주인 삼성화재(4.79%), 삼성SDI(7.39%), 국민연금(11.21%) 등에게 "회계법인의 실사 결과 현재 시가 19만7,000원 수준인 제일모직의 실제 기업가치가 7만원 안팎에 그치는 반면 삼성물산(시가 7만6,100원)의 가치는 10만원이 넘는다"는 사실을 알렸다.

엘리엇은 제일모직의 가치가 삼성물산보다 세 배 높게 산정됐다고 주장해왔다. 이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에 유리하도록 주가가 평가됐다며 올바른 합병비율로 1대 0.65를 제시했다.

엘리엇의 합병 비율 문제 제기는 주주로서 따질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상황은 불리하게 진행됐다. 삼성화재, 삼성SDI, 국민연금 등은 삼성물산에 힘을 실어줬다. 엘리엇은 두 건의 가처분 소송에서 패소했다. 우호 세력 확보에서도 소액주주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엘리엇이 오는 9월1일 통합 삼성물산 출격 전까지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세 가지 정도로 예상된다. 첫째는 소송전 본격화, 둘째는 소수주주권 행사, 셋째는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다.

엘리엇은 소송으로 반격할 가능성이 높다. 소송은 엘리엇의 최고경영자인 폴 엘리엇 싱어의 특기이기도 하다. 하버드 로스쿨 출신의 폴 싱어는 엘리엇 창업 전 변호사로 활약했고, 2001년 디폴트에 처한 아르헨티나 정부와 13년 동안 소송해 국채 16억달러를 상환 받은 바 있다.

소송전 본격화해 삼성 압박

엘리엇은 주총무효소송, 삼성SDI·삼성화재 이사진 배임소송, 국민연금 배임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소송을 통해 관심을 끌며 주가 상승을 유도한 뒤 지분을 처분해 차익을 챙기는 것이 헤지펀드 투자의 특징이다.

우선 주총결의 무효 본안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엘리엇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넥서스는 지난달 19일 가처분 심리 공판에서 "주주총회 결의 무효 소송도 준비하고 있다"며 주총에서 삼성이 이길 경우 별도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바 있다.

엘리엇이 삼성물산과 KCC를 상대로 낸 두 건의 가처분소송 항고심은 모두 기각됐다. 이에 엘리엇은 16일 "법원의 결정을 실망스럽게 생각한다"며 "합병안이 불공정하다는 우리의 확고한 믿음에는 변함이 없으며 대법원에 재항고하겠다"고 주장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엘리엇은 삼성과의 본안소송을 이어갈 것"이라며 "재항고는 기각되겠지만 대법원의 판단을 통해 전략을 부분 수정하는 방식으로 재항고 결과를 이용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엘리엇이 삼성물산 지분을 소유한 삼성SDI·삼성화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 엘리엇은 5일 두 삼성계열사의 지분을 1%씩 매입하며 합병에 찬성할 경우 이사회를 상대로 배임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서한을 통해 공식 선언한 바 있다.

증권계 한 관계자는 "삼성SDIㆍ삼성화재 이사진을 향한 배임 소송은 엘리엇이 지분을 매입했을 때부터 예상됐다"며 "주주들이 손해 볼 걸 알면서도 이들이 찬성표를 던졌다고 배임 혐의로 소송을 걸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엘리엇이 국민연금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엘리엇은 합병이 있기 전 국민연금에 서한을 통해 자국 기업 보호를 이유로 합병 찬반 결정을 의결권전문위원회에 회부하지 않는다면 소송을 걸겠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엘리엇이 궁극적으로 투자자ㆍ국가소송(ISD) 제도를 활용해 한국 정부를 제소할 가능성도 높다고 보고 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가 삼성물산 합병에 찬성하는 과정을 문제 삼을 수 있다는 얘기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ISD 제소를 위해서는 투자 행위 이후 해당 국가 정부가 법제도를 편파적으로 운용해 손해를 입혔다고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며 "공적 기관인 국민연금이 합병안에 대한 의사결정 과정에 문제가 있고 그 근거도 명확히 밝히지 않아 엘리엇이 ISD 제소를 제소할 수 잇는 근거를 확보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소수주주권 행사로 손해 책임 추궁

일단 엘리엇은 1% 이상의 지분을 소유한 주주로서 주주대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지난 17일 합병을 통해 7.12%에서 2.03%로 지분이 감소했다. 자산가치의 하락을 이유로 삼성물산을 향해 손해에 대한 책임을 추궁할 가능성이 높다.

엘리엇은 삼성물산 지분 외에도 삼성SDI와 삼성화재 지분도 보유하고 있다. 엘리엇이 지난 5일 두 삼성계열사의 지분을 매입한 것과 관련해 합병안 통과 시 대표소송권을 행사하기 위한 전략적인 투자였다는 것이 관련 업계의 분석이다.

엘리엇이 지분을 추가적으로 매입해 3%를 보유할 경우 대응력은 더욱 강력해진다. 상법상 3%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주주는 주총소집권, 회계장부열람권, 이사해임 건의권을 행사하며 경영에 간섭할 수 있다.

특히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사례를 봤을 때 사외이사 선임을 요구하거나 이사진 교체를 시도할 수 있다. 엘리엇은 지난 3일 보도자료를 통해 "필요하다면 삼성물산 이사진을 신선한 시각을 가진, 독립적이고 경륜이 있는 인재로 교체하는 것을 고려해 볼만하다"고 밝혔다.

투자전문가들은 엘리엇이 지분을 추가로 매입할 가능성은 낮다고 관망했다. 엘리엇의 총 자산운용 규모가 260억달러(약 29조)임을 감안할 때 삼성물산과 삼성물산 지분을 보유한 삼성계열사에 1조원 이상을 투자한 엘리엇이 무리한 투자에 나서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주식매수청구권으로 합병 저지

엘리엇은 합병을 반대한 소액주주들과 합세해 주식매수청구권을 수단으로 합병을 저지할 수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하는 주주가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간은 이달 17일부터 오는 8월 6일까지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계약서에 따르면 양사 합쳐 1조5,000억원을 초과하는 주식매수청구권이 행사되면 합병이 취소될 수 있다.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가격은 삼성물산 5만7234원, 제일모직 15만6493원이다.

투자전문가들은 합병안 통과 이후 급락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주가가 추가적으로 하락할 여력은 있지만 주식매수청구권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했다. 삼성그룹 차원에서 주가가 계속 떨어지도록 두지 않을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주주들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낮고, 엘리엇도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해 합병을 부결시킬 수 있다는 확신 없이는 섣불리 손해를 감수하고 청구권을 행사하지는 않을 것으로 관측한다.

때문에 엘리엇은 대신 그린메일(경영권을 담보로 보유주식을 시가보다 비싸게 되파는 행위)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 주가 하락과 주식매수청구권을 무기로 삼성물산을 압박하면서 사측에 보유지분을 높은 가격에 매입하도록 강요하는 것이다. 그동안 엘리엇이 5~10% 안팎의 지분을 매입한 뒤 사측에 지분을 비싸게 팔아넘긴 전례가 다수다.

증권계 한 관계자는 "엘리엇이 한편으로는 합병안을 통과되길 바랐을 것이다. 오히려 단기 차익을 얻기는 더 쉽다"며 "합병 반대를 이유로 삼성물산을 계속 압박하다 지분을 삼성물산에 비싼 가격으로 팔고 나가면 되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엘리엇은 구체적인 후속 카드를 아직 드러내지 않고 있다. 엣리엇 측 법무법인 넥서스도 21일 소송, 주주권, 주식매수청구권을 이용한 반격 가능성을 묻는 본지의 질문에 노코멘트로 일관했다. 또한 엘리엇의 국내 홍보를 담당하는 뉴스커뮤니케이션스 측은 "현재로서는 확인할 수 없다. 엘리엇으로부터 공식 입장을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윤소영 기자 ysy@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