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 특별사면으로 ‘경제살리기’참여기회 주어야”

박근혜 대통령은 중동 순방 이후 제2의 중동 붐을 조성해서 경제를 도약시키겠다며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데 이어 70주년 8ㆍ15 광복절에 즈음해 특별사면 단행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건설산업은 한국경제 중흥을 이끌어 온 견인차 역할을 해왔음에도 최근 몇 년간 국제경제 침체로 인한 해외수주 불황과 내수 시장 악화 등으로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정재계 안팎에서 8ㆍ15 특별사면이 논의되는 가운데 이번 사면의 필요성의 하나로 ‘국가발전’을 내세운 만큼 건설업계에서는 과거 정권 하에 공공공사 담합에 따른 국내 유수 건설사들의 입찰참가제한조치의 집행면제 등이 포함될 수 있다는 기대도 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내 건설업계를 선도하는 대형건설사들의 단체인 한국건설경영협회 김세현 부회장을 23일 사무실에서 만나 국내 건설업계가 처한 상황과 입찰참가제한조치의 해결방향, 그리고 건설산업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한 다양한 해법들을 들어봤다.

-건설산업은 한국경제를 살리는 견인차임에도 건설업계가 많이 어렵다고 하는데 어느 정도인가?

“우리 건설산업은 그동안 수많은 도전을 극복하면서 세계 건설시장에서 건설강국으로 명성을 알리며 국민경제의 선도산업으로 발전해 왔다. 하지만 지금 우리 건설업계는 저성장 구조가 심화되면서 수주물량 감소, 수익성 악화, 입찰 담합으로 인한 과징금ㆍ행정제재 처분 등의 악재가 이어지는 가운데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국내 건설업계를 대표하는 100대 건설사 중 상당수 건설사가 법정관리, 워크아웃 등에 처해 있고, 그렇지 않은 건설사들도 전반적으로 정상적인 영업활동과 이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

건설업체로서는 일감 부족과 이익을 내지 못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저가낙찰을 유도하는 가격경쟁 위주 입찰정책으로 어렵게 공사를 수주하더라도 결국은 이익을 내지 못한다. 회사가 어려우니 일단 공공공사를 수주해서 정부에서 선금을 지급받아 우선의 위기를 넘기고 또 다른 공사를 저가에 낙찰받아서 메우려는 그야말로 ‘돌려막기식’ 경영으로 내몰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현 정부 출범 이후 대형 공공건설공사 입찰담합에 대한 정부의 지속적이고 강력한 처벌로 인해 건설업계가 또 다른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하는데.

“2010년 판교신도시를 시작으로 최근까지 입찰담합으로 공공공사 입찰참가 제한처분이 내려진 건설업체는 72개사(중복 제외)나 된다. 이중 상당수는 시공능력평가 순위 100위에 속하는 업체이며, 이들 업체에 부과된 과징금만 총 1조2,768억원에 달한다. 과징금만으로 업계가 감내할 수준을 넘었음에도 여기에 과징금의 2~3배 수준인 손해배상까지 이어진다면 문을 닫는 기업이 속출할 수 있다. 입찰참가마저 못하게 된다면 대형업체도 견디기 힘든 상황이다. 수주산업이라는 건설산업의 특성상 공공공사 입찰참가가 불가능해지면 해당 업체는 경영상 심각한 타격을 받거나 존폐의 기로에 설 수밖에 없다. 입찰담합은 현행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불법행위이지만 건설업체들이 폭리만 취하려고 했다기보다는 지나친 가격경쟁을 피하고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측면도 상당하다.”

-국내 대형건설사들 대부분이 공공공사 입찰담합에 연루돼 있는 데 일부 업체의 일탈 행위라기보다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가 있을 것 같은데.

“건설공사 입찰담합은 성숙하지 못한 국내 건설문화와 공공공사 입찰시스템의 후진성에 원인이 있다. 정부가 국책사업 조기완공 그리고, 업체간 물량 균형배분을 위해 하나의 사업을 여러 개의 공구로 분할해 동시발주하고, 업체당 1개 공구만 수주하도록 해서 사실상 건설사들이 담합 아닌 담합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4대강 사업이다. 정부는 10년 이상 걸리는 대규모 치수사업을 조기완공을 목표로 동시발주 했다. 그리고 호남고속철도 사업도 한 개의 업체가 다수의 공구에서 낙찰받더라도 하나의 공구만 낙찰을 인정하는 등 입찰담합의 빌미를 제공했다. 정부도 이러한 문제점을 인지하고 지난 1ㆍ21 경제장관회의에서 입찰담합방지대책을 발표해 담합을 유도하고 있다는 ‘1사 1공구제’를 폐지한 것이다.”

-많은 대형건설업체가 담합 징계를 받는다면 국책건설사업에도 차질을 빛을 것 같은데.

“담합에 연루된 건설사에는 국책사업 수행 능력을 갖춘 상위 100개 건설사 중 52개가 포함돼 있다. 이들이 징계를 받는다면 국책사업 입찰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만한 건설업체가 없어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드렇게 되면 제2경부고속도로, 새만금 남북2축 고속도로, 울산ㆍ울릉ㆍ제주 항만공사, 김포~파주 간 고속도로사업 등 내년에 발주 예정인 주요 국책사업에 악영향을 미칠수 있다.

건설업계가 법원에 행정 소송으로 시간을 벌고 있지만 이르면 올해 하반기부터 무더기 입찰 자격 박탈이 현실화돼 당분간 지하철ㆍ교량ㆍ항만 입찰 자격을 갖춘 건설사가 아예 사라지고 철도ㆍ댐 공사는 유효 경쟁 입찰이 성립되지 않아 공사 발주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고 본다.”

-국내SOC 공사 입찰 자격이 박탈되면 해외 건설공사 수주에도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시각이 있는데.

“올해 해외 진출 50주년을 맞아 국내 건설사들의 누적수주액도 7,000억달러에 달했다. 그러나 국내에서 받은 입찰 제한 탓에 해외공사 입찰에서 불이익을 받는 사례가 속출해 정부 목표 ‘누적수주 1조달러 돌파’는 공염불이 될 것이란 우려가 크다.

지난 4월 현대건설 계동 본사 사옥에 동티모르 석유광업자원부 공무원 실사단이 방문해서 4대강 담합 등으로 받은 입찰 참가 제한에 대해 조사한 사례가 있는데 우선협상자로 선정돼 최종 계약만 남겨놓은 상황에서 입찰에서 탈락한 타국 경쟁사가 발주처에 입찰 제한 처분 사실을 제보해서 일어난 일이었습다. 또한 지난해 노르웨이 오슬로 터널사업 입찰에 참여한 SK건설과 삼성물산은 발주처로부터 ‘공정위에서 받은 처분에 대한 해명자료를 제출하라’는 통보를 받기도 했다.

올 상반기 국내 건설사들이 따낸 해외공사 규모는 255억달러로 지난해(375억달러) 같은 기간보다 32% 줄었다. 저유가로 중동 지역 일감이 급감한 탓도 있지만 해외업체 흑색선전 영향도 적지 않다고 본다.”

-잘못된 관행에 대해서는 건설업계의 반성과 준법경영에 대한 실천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건설업계는 담합관행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고 잘못된 관행을 근절하기 위하여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개별기업별로 담합 근절의지 표명을 하고 있으며, 전직원을 대상으로 윤리경영, 투명경영에 대해 주기적인 교육을 진행 중이다. 건설관련 단체들도 자정결의, 준법경영 실천 결의를 표명하고 있고, 작년 7월 23일에는 한국건설경영협회 건설사 대표들이 모여 입찰담합을 근절하고 준법경영 실천을 다짐하는 선언을 하기도 했다.

이제 건설업계는 윤리경영과 공정경쟁에 대한 의식의 변화, 그리고 각 기업별로 사내에 규율과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도입함으로써 불공정한 과거의 관행과 단절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정부의 건설공사 입찰담합 조사 및 처벌 정책을 어떻게 풀어야 한다고 보나

“부정당업자 제재는 해당 건설사들의 불복 소송과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에 의해서 일시 보류된 상황이다. 하지만 올 하반기쯤 제재가 확정되면 국책건설사업의 막대한 차질이 예상되며 제2의 중동 붐은 정말 ‘그림의 떡’이 되고 말 것이다.

건설사들의 입찰 담합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그렇더라도 지금은 ‘경제 살리기’를 위한 마지막 ‘골든타임’이라는 점을 감안했으면 한다. 과징금 부과에 더해 관련 임직원 형사 처벌, 부정당업자 제재라는 3중의 처벌은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라고 생각한다.

국민경제 활성화를 위해서 건설업체의 공공공사 입찰에서 발생한 모든 입찰참가자격 제한 등의 행정처분을 해제하는 조치를 이번 광복절 특별사면에 포함되길 기대한다. 입찰참가자격 제한 등의 행정처분에 대한 광범위한 해제 조치를 함으로써 건설업체들이 과거의 굴레를 벗고 다시 한번 국가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도록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본다.”

- 끝으로 전할 말이 있다면.

“기업이 살아야 일자리도, 경제도 살아난다. 지금은 ‘경제 살리기’를 위한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언제까지 입찰담합 등 과거의 잘못에 대한 비난과 처벌에 연연하며 시간을 낭비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경제 살리기에는 건설업 만큼 효과적인 산업도 없다. 우리 건설사들이 다시 한번 국민경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건설업계에 채워진 무거운 족쇄부터 풀어주는 정부 차원의 대승적 결단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우리 건설사들이 침체된 국가경제를 살리고 새로운 시대의 성장을 견인할 수 있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길 바란다.”

이홍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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