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갯속 가려진 '신격호 롯데 왕국'… 머리는 일본에, 몸통은 한국에롯데그룹 정점의 日기업 광윤사· L투자회사 한국 롯데 지배광윤사·L투자회사 지분이 롯데 '형제의 난' 승패 가를 듯'신동주-신격호 vs 신동빈파' 구도… 신동빈 L투자 대표로 유리

안갯 속 가려진 '신격호 롯데 왕국'… 머리는 일본에, 몸통은 한국에
롯데그룹 정점의 日기업 광윤사ㆍ L투자회사 한국 롯데 지배
광윤사ㆍ L투자회사 지분이 롯데 '형제의 난' 승패 가를 듯
'신동주-신격호 vs 신동빈파' 구도 …신동빈 L투자 대표로 유리

반세기 동안 베일에 싸여있던 '신격호 왕국'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지난 일주일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회장 간 공방이 가열되고 있는 와중에, 롯데그룹 정점에 있는 일본 기업인 광윤사, L투자회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롯데의 폐쇄적 기업 문화 영향을 받은 탓인지 두 일본 회사의 정체는 아직까지 모호하다. 그러나 지배구조가 일부 드러나면서 롯데가 수익은 한국에서 거둬들이고 정작 일본이 결정적 지배권을 쥐고 있다는 부정적 여론은 날로 커지고 있다.

태풍의 눈 'L투자회사', 신동빈 손에?

롯데발 '형제의 난'의 가장 큰 쟁점은 장남 신동주 전 일본 롯데 부회장과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중 누가 신격호 총괄회장의 후계자 자리를 물려받느냐다.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을 등에 업은 신동주 전 부회장과 일본과 한국 롯데그룹의 회장으로서 공식적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신동빈 회장 측은 아직까지 치열한 공방을 계속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후계자 자리를 인정받기 위해선 롯데 지분 구조의 핵심인 '광윤사'의 지분을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 광윤사는 롯데그룹 지배구조의 맨 꼭대기에 위치해 있다. 롯데제과와 롯데쇼핑, 롯데칠성음료의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호텔롯데 지분의 5.45%를 광윤사가 소유하고 있다.

국내 제계 순위 5위인 롯데 지분구조에서 최정점에 위치해 있지만 광윤사에 대해선 국내엔 그다지 알려진 사실이 없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는 '광윤사'의 최대 주주는 중광무웅(重光武雄)이며 '기타 종이 상자 및 용기 제조업종'이라 표기돼 있다. '중광무웅'은 신격호 총괄회장의 일본 이름인 시게미쓰 다케오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일본 도쿄 신주쿠에 위치한 광윤사는 직원 3명에 자본금 2,000만엔(약 1억9,000만원)에 불과한 작은 회사이다. 그러나 롯데그룹 지배구조의 맨 꼭대기에 위치함으로써 사실상 한국과 일본에 걸친 국제적 기업 롯데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광윤사는 롯데알미늄(22.84%), 롯데호텔(5.45%), 롯데캐피탈(1.92%) 등 한국 롯데 계열사의 지분을 다수 확보하고 있다. 사실상 직원 3명에 불과한 광윤사가 약 10만명의 직원을 두고 있는 롯데그룹을 좌지우지 하고 있는 것이다.

광윤사와 더불어 롯데그룹 지분 구조의 핵심은 12개로 이뤄진 'L투자회사'다. L투자회사는 광윤사보다 더 큰 지분을 갖고 있는 호텔롯데의 대주주이다. 지난해 7월 호텔롯데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제출한 '최대주주 등의 주식 보유 변동'을 살펴보면 호텔롯데의 주주들 중에 'L투자회사'라는 이름들을 볼 수 있다. L투자회사는 제1L투자회사부터 제12L투자회사까지 총 12개로 이뤄져 있는데 이 12개 회사의 호텔롯데 지분을 다 합하면 총 72.65%로 일본롯데홀딩스의 19.7%를 훨씬 상회한다.

지난 2007년 롯데알미늄은 최대 주주인 제 2L 투자회사의 대한 일부 정보를 금융감독원에 공시했다. 롯데알미늄 측에 따르면 제2L투자회사는 그룹의 경영 효율화를 위해 실시한 기업 재편에서 과자 판매업을 하던 주식회사 롯데상사로부터 분리된 투자 부분으로 설립된 회사이다. 일본 도쿄 시부야에 위치해 있다. L2투자회사에 대한 일부 정보가 공개된 반면 나머지 L투자회사들은 비상장인데다가 해외 기업이라는 이유로 여전히 안개 속에 가려져 있다. 추측할 수 있는 건 신격호 총괄회장이 최대 주주라는 점이다. 2007년, 일본 롯데의 개편 과정에서 일본 농림수산성에 보고한 사업보고서를 살펴보면 L투자회사의 실질적 주인은 신격호 총괄회장이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일본롯데가 지난 2007년 농림수산성에 제출한 '플랜 두 2008(PLAN DO 2008)'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이들 12개의 L투자회사는 각각 일본 롯데 계열사인 롯데건강산업ㆍ롯데상사ㆍ롯데빙과ㆍ롯데물류ㆍ일본식품판매ㆍ롯데애드ㆍ롯데리스ㆍ롯데부동산ㆍ롯데데이터센터ㆍ롯데물산ㆍ롯데리아홀딩스 등에서 분리독립하는 방식으로 설립됐다. 당시 일본 당국에 신고한 자본금 총액은 약 57억3,000만엔이었다.

이러한 와중에 지난 6일에는 일본 법무성이 발급한 '법인등기부등본'에 신동빈 회장이 지난 6월30일 L투자회사 10곳(1ㆍ2ㆍ4ㆍ5ㆍ7ㆍ8ㆍ9ㆍ10ㆍ11ㆍ12)의 대표이사로 취임한 후 7월 31일자로 대표이사로 등기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신 회장이 유리한 고지를 먼저 점령한 것이다. 이에 따라 L투자회사는 신격호 대표이사 체제에서 신격호ㆍ신동빈 2인 대표이사 체제로 변경됐다. 아직까지 신 총괄회장 측이 반기를 제기할 가능성은 남아있지만 업계에 따르면 신동빈 회장의 대표이사 취임은 이사회의 합법적 절차를 거친 것이기 때문에 법적인 문제는 없어 보인다.

두 형제간의 난으로 롯데 그룹의 지배 구조를 둘러싼 의견이 분분하지만 롯데 측은 지분구조를 밝히는 것에 대해 폐쇄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지난 4일 쓰쿠다 다카유키 일본 롯데홀딩스 사장은 도쿄 제국호텔에서 국내 언론과 간담회를 갖고 광윤사 및 롯데그룹 지분 구조에 대해선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쓰쿠다 다카유키 사장은 "(일본) 롯데홀딩스의 지분 구조에 대해선 밝힐 수 없다. 광윤사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라고 언급했다. 또 정기적으로 일본 롯데의 주주총회는 6월에 열렸으나 아직까지 자세한 일정은 확정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롯데의 복잡한 지분 구조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칼을 꺼내 들었다. 지난 5일 공정거래위원회 측은 롯데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일본 롯데홀딩스와 광윤사, L투자회사 지분구조 파악을 위해 롯데 측에 자료 제출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만약 롯데가 공정위의 요청을 받아들인다면 롯데 지배구조가 일부 드러날 수도 있다.

바깥 챙기는 신동빈 vs 안에서 맴도는 신동주

지난 3일 귀국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귀국 후 인천공항에서 "국민 여러분께 이러한(롯데 경영권 분쟁) 사태가 일어난 것에 대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후 기자들의 질문에 일일이 답변하며 언론을 상대로 롯데그룹 수장으로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였다.

귀국 후 신동빈 회장은 활발한 대외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귀국 첫날 롯데월드타워 공사 현장을 방문한 데 이어 롯데인재개발원 오산연수원을 방문해 신입사원들에게 격려를 표했다. 또 오산 물류센터 방문, 롯데몰 수원점 시찰을 통해 롯데 최고 경영자로서의 행보를 과시했다.

신동빈 회장이 무엇보다 유리한 점은 한국과 일본 사측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4일 일본롯데홀딩스의 쓰쿠다 다카유키 사장은 국내 언론들과 만나 "경험이 많은 신동빈 롯데 회장으로부터 지도를 받으며 일본 롯데가 발전할 수 있는 여러 기획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힘으로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한국과 일본 롯데를 경영해 갈 책임자라는 점을 강조했다. 한국 롯데 사장단들도 '후계자 신동빈 체제'에 힘을 보태기 시작했다. 롯데그룹 계열사 사장단 37명은 지난 4일 긴급회의를 열고 "오랫동안 경영 능력을 검증받고 성과를 보여준 신동빈 회장이 그룹을 이끌어갈 적임자"라 밝혔다. 사장단은 성명서를 통해 "일련의 사건들로 국민에게 걱정을 초래하는 현 상황을 심히 우려하며, 합리적이고 조속한 해결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 밝혔다. 사측에 이어 노조측 또한 신동빈 회장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롯데그룹 노동조합 협의회는 지난 5일 회의 후 공동성명을 통해 "신동빈 회장에 대한 무한한 지지와 신뢰를 보낸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양국 롯데 사장단과 한국 노조의 지지까지 얻어내면서 신동빈 회장 쪽으로 저울의 추는 기울고 있다.

반면 신동주 전 부회장은 현재 뚜렷한 공식활동 없이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을 보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형제의 난'이 발발하던 시기만 해도 신동주 전 부회장이 유리한 카드를 쥐고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우선 신격호 총괄회장의 큰 신임을 받는 것으로 알려진 신영자 롯데복지재단 이사장이 신동주 전 회장을 지지하고 있다. 아버지와 누나의 지지를 얻은 신 전 부회장은 언론에 "신동빈 회장을 후계자로 인정한 적이 없다"는 내용이 담긴 신격호 총괄회장의 육성을 공개하며 승부수를 띄우는 등 공격적 행보에 나섰다.

하지만 점차 상황은 신동주 전 부회장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우선 신동주 부회장은 올해 초 롯데홀딩스 부회장 자리에서 해임됐기 때문에 신동빈 회장과는 달리 사측에 대해 영향력을 전혀 행사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또 신격호 총괄회장의 육성공개와 서명 문서 역시 사측의 의견과는 전혀 상관없는 오너 집안끼리의 폐쇄적 의견 교환으로 여겨지면서 신격호-신동주 부자를 둘러싼 반감도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신동주 전 부회장이 한국어를 거의 못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롯데는 결국 일본 기업'이라는 국내 부정적 이미지에도 불을 지피고 있다.

신동빈 회장이 L투자회사 대표이사직에 취임까지 한 상황에서 신동주 전 부회장이 쥐고 있는 유일한 끈은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이다. 신동빈 회장이 활발한 행보를 벌이고 있는 와중에도 신동주 전 부회장이 아버지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신 총괄회장의 측근에서 눈과 귀를 독점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초 지난 3일 일본으로 출국하려 했던 신 전 부회장은 당분간 신 총괄회장의 근처에서 머무르는 방안을 택했다. 대신 아내인 조윤주씨를 일본으로 보내 광윤사 관계자 및 친지들을 만나 자신에 대한 지지를 호소할 것으로 알려졌다.

두 형제는 롯데 계열사에 비슷한 지분 구조를 갖고 있다. 롯데쇼핑의 경우 신동빈 롯데회장이 13.46%,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이 13.45%를 갖고 있다. 롯데제과는 신동빈 5.34%, 신동주 3.92%, 롯데칠성은 신동빈 5.71%, 신동주 2.83%이며 롯데푸드는 두 형제 모두 1.96%를 갖고 있다. 물론 지분 소유의 핵심은 국내 계열사가 아닌 지배구조 맨 위에 위치한 광윤사와 L투자회사다. 신동빈 회장이 7월말부터 L투자회사 대표이사로 등록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여러모로 상황은 신 회장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 신격호 총괄회장 측이 반기를 들 가능성도 남아 있다.

롯데 후계자 자리를 굳히기 위해 형제는 광윤사와 L투자회사 측 지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신 총괄회장과 광윤사 지분 20%를 갖고 있다고 알려진 어머니 시게미쓰 하쓰코 여사 및 친지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할 것으로 보인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