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사태에 재벌개혁 요구 높아…정치권 국감 별러‘땅콩회항’ㆍ자원비리ㆍ메르스 관련 총수들 ‘비상’검찰ㆍ공정위 대상 기업 총수도 거론…정무·산업위 타깃‘망신주기식 채택’ 없어져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찮아

롯데가(家) 경영권 분쟁이 국민의 따가운 질타를 받으면서 재벌개혁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올해 국정감사에서 재벌 총수와 기업 관계자들의 증인ㆍ참고인 채택 요청이 줄을 이을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여야 중진과 의원들이 재벌 총수들의 행태를 비판하면서 국감 증인 채택을 언급해 이같은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원유철 원내대표는 지난 18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새누리당은 문제가 많은 재벌에 대해 비호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면서 “이번 국정감사에서 문제가 있는 재벌 총수는 국감장에 서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롯데 일가의 경영권 다툼이 한창이던 지난 3일 서청원 최고위원은 “국민의 눈과 국가 경제가 흔들리는 건 아랑곳 않고 탐욕을 위해 국민 상대로 여론전쟁을 벌인다는 건 역겨운 배신행위”라고 맹비난을 쏟았다.

여야 중진들의 발언은 형제간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드러낸 롯데그룹의 신동빈 회장과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 등을 겨냥한 것이지만 롯데 사태로 촉발된 재벌에 대한 세간의 인식을 반영한 측면도 있다.

롯데사태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국회 정무위원회 야당 간사인 새정치민주연합 김기식 의원은 “롯데는 지배구조 문제의 민낯이 다 드러냈기 때문에 여당도 비판 여론을 고려하면 증인 채택을 반대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무위 소속 새누리당 한 의원은 “롯데, 삼성 등 재벌로 인한 큰 사건이 잇따라 국민들도 재벌 개혁에 기대를 나타내고 있어 국감에서 총수들에 증인 채택 요구가 많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올해 국감에선 롯데그룹 전ㆍ현 총수들이 최우선 증인으로 꼽힌다.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 직접 당사자인 신동빈 롯데그룹회장과 신동주 전 일본롯데그룹 부회장을 비롯해 신격호 총괄회장 등 주요 관련자들의 국감 증인 및 참고인 채택이 이슈가 될 전망이다.

정무위 여당 간사인 새누리당 김용태 의원은 “야당이 요구한다면 충분히 검토해 볼 수 있다”면서 “공정위 차원의 조사가 진행되고 있으니 그 결과를 토대로 사실 관계에 입각해 판단할 것”이라고 밝혀 롯데그룹 관계자들의 국감 출석이 불가피해 보인다.

또 재벌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의 불ㆍ탈법적인 내부거래, 불투명한 순환출자, 일감몰아주기 등의 문제가 다뤄질 것으로 예상돼 이런 사안과 관련됐던 재벌 총수 및 일가들이 증인ㆍ참고인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위도 롯데사태를 계기로 국감 단골 소재인 대형 유통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 골목상권 침해, 독과점 문제 등을 집중적으로 파헤치겠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기류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경영권을 승계 받는 과정에서 이뤄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상당한 논란을 낳아 국감 대상으로 거론된다. 게다가 삼성공익재단의 이사장을 맡고 있는 이 부회장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에 삼성서울병원이 연루돼 있다는 점에서 앞서 직접 공식사과했음에도 불구하고 야당에서 그를 소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올해 초 발생한 '땅콩 회항' 사건과 관련해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조 부사장의 아버지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도 증인 대상에 오를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도 거론된다. 박범훈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 중앙대에 각종 특혜를 주는 대신 뇌물을 건넨 혐의로 박 전 회장이 기소됐기 때문이다. 야당은 청와대와 재벌 일가가 소유한 대학이 유착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만큼 철저하게 규명하겠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검찰,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등의 조사 대상에 오른 포스코, 신세계 총수도 유동적이다.

이밖에 자원외교 비리 의혹 및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자살사건 등과 관련해, 해외 자원개발에 나섰던 기업 관계자 및 경남기업 주요 임직원들이 증인이나 참고인으로 국회에 불려나오게 될 것으로 관측된다. 또 3조원대의 대규모 영업손실 등 부실 경영 책임을 물어 대우조선해양 전 현직 경영진들도 소환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하지만 여야가 재벌 총수 조사에 합의하더라도 재벌 총수가 이런 저런 이유로 국정감사장에 나오지 않는다면 별다른 강제 수단은 없다. 앞서 2012년 10월 국감에는 대선을 앞두고 경제민주화가 화두가 되면서 대기업 일감몰아주기, 골목상권 침해 등의 이유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등이 국감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대부분 출석하지 않았다.

일각에선 국회가 기업인들을 증인 또는 참고인으로 대거 채택해 국감장에 불러놓고 막상 질문 한 번 제대로 하지 않거나, 국회의 권위를 앞세워 호통만 치고 끝난 경우가 많았다는 점에서 국회가 증인ㆍ참고인 채택에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복지위 야당 간사인 새정치연합 김성주 의원은 “실제 우리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집단은 결국 돈을 갖고 있는 재벌, 대기업”이라면서 “이들의 ‘돈의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은 국회밖에 없고, 국감은 기업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반박했다.

최근 한 여론조사 결과는 재벌개혁에 대해 국민 대다수가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CBS노컷뉴스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해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8월 8~9일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노동개혁과 재벌개혁 중 어떤 것을 더 시급한 과제로 보느냐’는 질문에 51.9%가 재벌개혁이라고 대답한 반면 노동개혁이라는 응답은 38.2%에 그쳤다.(모름/무응답 10.0%)

조원씨앤아이 김대진 대표는 이와 관련해 “심각한 청년실업 등과 관련해 노동개혁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지만, 최근 롯데가(家) 경영권 분쟁 사태에서 보듯 재벌의 문제는 오랫동안 누적된 것으로 우선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국민들의 생각이 강한 것 같다”면서 “노동개혁도 재벌개혁이 선행돼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정치 전문가들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국민 관심사가 높은 이슈들이 국감에서 앞다퉈 다뤄질 가능성이 높으며 재벌개혁과 관련한 총수들의 증인ㆍ참고인 채택 요구도 강력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홍우 기자 lhw@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