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3월 '아시아판다 보스포럼' 인보아오(博鰲)포럼 2015년 연차총회에서 스마트 헬스 사업을 본격화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며‘삼성은 IT와 의학, 바이오의 융합을 통한 혁신에 큰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재용의 '바이오', 정의선의 '친환경 자동차' 전력
이부진·정용진·정지선 '면세점 전쟁' 치열
LG 구광모 '사물인터넷' 기반으로 실적 내기 나서
한화 김동관 태양광 사업 이끌어… 두산 연료 전지 분야
대한항공 조원태 '항공우주사업' 무인기, 항공기 제작
'선대 수혜' 벗어나 '신성장동력' 통해 경영능력 선봬야

2세대 경영자들이 고령과 병환을 이유로 점차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3〮4세대 경영자들이 향후 기업을 이끌어갈 새로운 구심점으로 각광받고 있다.

각 기업별로 이미 독자적인 후계 구도를 구축한 3〮4세대 경영자도 있고, 아직 경영 일선에 뛰어들지 않은 곳도 있다. LGㆍGS, 두산의 경우는 이미 4세대가 경영 일선에 등장하고 있다.

기업별로 승계 과정에 차이가 있지만 공통점은 신세대 경영자들 모두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의 영광을 재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1ㆍ2세대가 가졌던 창업주의 카리스마는 빛을 바랬다. 새로운 시대의 경영자들은 신규 사업 분야를 창출해 경영 능력을 선보여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있다.

재계 1〮2위 삼성〮현대자동차 후계자, '신 성장동력 주목'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지난 2011년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새로운 브랜드 슬로건인 ‘새로운 생각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다’를 주제로 연설하고 있다. 사진=현대자동차
재계 1ㆍ2위인 삼성과 현대자동차는 '회장님의 외아들'이 큰 문제 없이 경영권을 승계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현대자동차 정의선 부회장은 같은 직함, 비슷한 나이로 3세대 경영자 시대를 열어가는 선봉장에 서 있다.

경영권 승계에는 별 탈이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이 부회장과 정 부회장 모두 신규 먹거리 창출을 통해 그룹에 기여할 만한 실적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 아버지 세대에 걸맞는 경영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후계의 정당성을 만들어 내는 게 이 부회장과 정 부회장이 풀어야 할 과제이기 때문이다.

통합 삼성물산 합병을 통해 두 여동생보다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게 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신규 먹거리로 바이오를 일찌감치 눈여겨봤다. 이 부회장이 최대 주주인 통합 삼성물산은 제일모직과의 합병 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최대 주주가 됐다. 이 부회장은 향후 삼성을 이끌어갈 신규 견인차로 바이오 분야를 낙점한 후 아낌없는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삼성의 '바이오 사랑'은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바이오 제약은 삼성의 미래 사업"이라 언급한 바 있으며 바이오 사업을 삼성의 5대 신수종 사업 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

삼성물산은 2020년 바이오 분야의 매출액을 1조8,000억원으로 잡았다. 이를 위해 바이오 의약품 생산사업을 위한 공장 두 곳의 본격 가동을 앞두고 있다. 이 부회장 역시 지난 4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최대 고객 중 하나인 미국 제약사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 최고경영진과 만남을 갖는 등 바이오 분야에서의 행보를 넓히고 있는 추세다. 이 부회장의 지휘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를 비롯해 3건의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내년에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미국 나스닥 상장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1세대 이병철 회장의 '삼성물산', 2세대 이건희 회장의 '삼성전자'를 지나 3세대 이재용 부회장이 바이오 시대를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인지 주목된다.

현대자동차 역시 신성장동력을 찾는 데 분주하다. 현대자동차그룹은 국내를 대표하는 자동차 기업에 걸맞게 세계 자동차 시장의 트렌드인 친환경 자동차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외아들인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또한 활발한 대외 행보를 지속하고 있다. 아직 아버지인 정몽구 회장이 건재하지만 정의선 부회장은 친환경 자동차를 필두로 현대자동차의 새로운 자동차 모델 개발을 지휘하고 있다.

호텔신라 이부진 사장(오른쪽)과 중국 최대 온라인 여행사 '씨트립(C-trip)'의 량찌엔장 CEO가 9일 중국 상하이 씨트립 본사에서 한국 관광 활성화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있다. 사진=호텔신라
특히 일명 '정의선 자동차'로 불리는 쏘나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출시로 정 부회장이 현대자동차의 친환경 자동차 개발에 중심에 서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지난 1월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2015 북미 국제 오토쇼'에 참석해 "친환경차 개발은 글로벌 시장에서 미래 생존을 위한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다"라고 언급했다. 또 쏘나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직접 소개하며 현대차의 친환경차 시대를 선포하기도 했다. 정 부회장이 소개한 쏘나타 PHEV는 국내 최초의 양산형 PHEV모델이다. 현대차는 이 모델을 통해 국내 업체로는 최초로 독자 개발에 성공했다. 쏘나타 PHEV는 지난 7월 국내 출시됐으며 올해 하반기 친환경차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에 출시됨으로써 본격적인 국제 무대 데뷔에 나선다. 그러나 미국에서 친환경차에 대한 관심이 전 같지 않고 유가 하락으로 친환경차의 메리트가 떨어졌다는 어려움이 남아 있다.'정의선 자동차'가 향후 현대차의 실적 개선에 얼마만큼 기여하냐에 따라 정 부회장의 사업 능력을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자존심 건 '면세점 싸움'에 나선 3〮4세대들

3세대 후계자들이 본격적으로 활약을 펼치는 대표적인 곳은 면세점 사업이 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의 장녀인 이부진 신라호텔 사장은 지난 7월 현대산업개발과 손잡은 HDC신라면세점으로 시내면세점 입찰권을 따내며 경영 능력을 과시한 바 있다. 특히 이부진 사장이 심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잘 되면 여러분 덕, 안 되면 내 탓"이라 말한 발언은 큰 화제를 불러오기도 했다.

이부진 사장은 시내 면세점 입찰을 따내기 위해 수개월 간 중국 관광객 유치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 면세점 사업은 곧 관광 사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면세점 입찰을 따 낸 후에도 다시 중국을 찾아 중국 최대 온라인 여행사 시트립과 관광 활성화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면세점 입찰을 계기로 활발한 행보에 나서며 3세대 경영인 중 두드러진 활동을 보이고 있다.

올 연말에도 롯데면세점 소공점과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 SK넥트윅스의 워커힐면세점 등 굵직굵직한 입지를 가진 총 3곳의 면세점 특허가 종료된다. 이에 따라 지난 면세점 입찰에서 고배를 마셨던 현대백화점과 신세계가 절치부심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특히 유통 대기업인 신세계의 경우 시내 면세점 진출은 숙원처럼 여겨졌다. 지난 7월 한차례 좌절을 겪었지만 올 연말 특허가 만료되는 시내 면세점 사업 입찰권을 따내기 위해 다시 한 번 도전장을 내밀 것으로 보인다. 신세계그룹의 대외적인 후계자로 여겨지는 정용진 부회장은 면세점 사업을 중심으로 신세계의 미래를 대비하고 있다. 정 부회장은 지난 2012년 부산 파라다이스면세점을 인수했고 지난해 김해공항, 올해 인천공항 면세점 입성으로 공격적 행보를 보였다. 7월 시내면세점 입찰 시에도 신세계백화점 본점 명품관 전체를 앞세우는 승부수를 띄우기도 했다.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 역시 통 큰 결단을 내렸으나 시내 면세점 입찰에는 실패했다. 지난 7월 입찰 경쟁 시 정 회장이 이끄는 현대백화점 그룹은 강남이라는 지리적 이점과 함께 영업이익 20%를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며 야심차게 서울 시내면세점 사업권에 도전장을 내밀었으나 좌절을 겪었다.

아직까지 신세계와 현대백화점 모두 연말로 예정된 시내 면세점 입찰 참여 여부는 밝히지 않은 상태다. 신세계의 경우 다시 한번 도전장을 내밀 것이라는 전망이 크며 현대백화점은 참여 여부를 심사숙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범삼성ㆍ범현대가의 3세들이 면세점 사업을 주목하는 이유는 날로 늘어나는 해외 관광객을 등에 업고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면세점 사업이 이른 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리기 때문이다. 정체되기 시작한 유통 업계에서 면세점 사업은 신성장 동력으로 각광받고 있다. 또 입찰 경쟁을 통해 대외적으로 경영 능력을 과시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앞으로 대규모 면세점 입찰 경쟁이 남아 있어 면세점을 무대로 한 3〮4세대의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신성장동력 중심에 선 '회장님의 아들들'

아버지 세대의 건재와 젊은 나이로 본격적인 후계 구도에 오르진 않았지만, 특정 분야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이고 있는 3〮4세대 경영자들도 눈길을 끌고 있다.

LG 구본무 회장의 장남인 구광모 상무는 LG의 '장자승계'원칙에 따라 향후 LG의 후계자로 유력시되고 있다.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횟수가 적고 38세라는 젊은 나이로 후계구도를 논하는 건 일러 보이지만 구 상무의 일거수일투족은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구 상무는 사물인터넷(IoT)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LG는 계열사인 LG유플러스와 LG전자를 통해 사물인터넷 시장을 점령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데 구 상무 또한 이 분야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향후 사물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실적내기 선봉에 설 것으로 보인다.

한화 김승연 회장의 장남인 한화큐셀 김동관 상무는 한화의 주력 사업인 태양광 분야를 이끌고 있다. 2010년 한화솔라원을 인수하며 태양광 사업에 뛰어든 한화그룹은 2012년 독일 큐셀을 인수했으며 올 초 한화솔라원이 한화큐셀의 지분 전량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합병 절차를 마무리했다. 한화큐셀의 셀 생산규모는 연간 3.28GW로 세계 1위이다. 올 2분기 영업이익이 흑자전환하면서 안정화에 들어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한화큐셀은 미국 시장 진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데 이러한 사업을 전두지휘하는 데 김 상무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한화큐셀이 올 4월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전력회사인 넥스트에라 에너지와 총 1.5GW 규모의 모듈을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는데 이 계약 체결의 뒤에는 김 상무의 활약이 있다는 것. 아직 사업 초기인 만큼 성과를 단정짓기에는 이르나 한화그룹이 주력사업으로 태양광을 개발하고 있고 그 사업의 중심에 김 상무가 있는 만큼 향후 한화의 미래 먹거리를 개발할 차기 후계자의 경영 성과에 재계가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땅콩회항'으로 홍역을 치른 대한항공의 경우 조양호 회장의 세 자녀 중 아들인 조원태 대한항공 부사장에게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대한항공은 여러 차례 항공우주 분야를 미래 먹거리로 밝힌 바 있다. 대한항공 항공우주사업본부는 오는 2020년까지 매출 3조원이라는 목표를 세웠다. 주력 사업은 무인기와 항공기 제작사업이다. 지난해 매출액은 9201억원으로 그룹 전체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도 안 되지만 매년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조원태 부사장 역시 항공우주사업의 중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조 부사장은 지난 2월 "대한항공은 항공기 구매자이자 부품을 납품하는 파트너로서 장점이 있다"고 말하며 대한항공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두산은 4세대 경영자들이 점차 경영폭을 넓혀가고 있다. 대표주자는 박용곤 두산 명예회장의 아들인 두산건설 박정원 회장이다. 올해 59세인 박용만 회장이 아직 현역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박정원 회장의 나이도 이미 52세라 한 그룹의 수장을 맡기에 충분해 보인다. 지분확보로 두산의 4세대 중 가장 앞서가는 행보를 보이곤 있지만 박정원 회장이 두산의 '4세대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선 경영 성과를 입증받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두산의 신성장 동력으로는 연료전지 분야가 꼽히고 있다. 지난해 신성장 동력으로 연료전지 분야 진출을 선언한 두산은 올해 6월 첫 번째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두산은 한국남동발전이 분당에 건설하는 복합화력발전소에 들어갈 280억 규묘의 연료전지 경쟁입찰에 선정됐다. 지난해 7월에는 국내 주택용 연료전지 업체인 '퓨얼셀파워'를 합병하고 건물용 연료전지 원천기술 보유업체인 미국 '클리어에지파워'를 사들인 후 '두산퓨얼아메리카'를 출범시키기도 했다. 이러한 연료전지 분야의 성과에 삼촌인 박용만 회장을 도운 박정원 회장의 활약이 있었다고 알려졌다.

기업을 세운 1세대, 기업을 성장시킨 2세대에 비해 3ㆍ4세대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수혜를 입었다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이러한 부정적 인식을 극복하기 위해 향후 3〮4세대 경영인들은 신성장동력 발굴을 통한 경영 성과 내기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한 재계 관계자는 "3ㆍ4세대 경영인들이 단순한 얼굴마담에 머무를지, 윗세대만큼 경영 능력을 발휘할지는 신성장동력을 만들고 이를 기업 실적에 얼마나 반영시킬지에 달렸다"고 언급했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