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갑질'심각…유통업계 속앓이백화점ㆍ대형마트 고객 '갑질'잇따라감정노동자 실태 부각…개선책 마련 절실유통업계ㆍ고객 모두 의식 변화 필요해

인천광역시 관교동에 위치한 신세계백화점 인천점 1층스와로브스키 매장에서 지난 16일 점원 2명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여성 고객 앞에서 사과를 하고 있다. 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백화점, 대형마트 등 유통업체들이 '갑질'을 하는 진상 고객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고객은 왕'이기 때문에 위협, 폭언, 금품 요구 등 진상 고객들의 도를 넘는 횡포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속만 태우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진상 고객의 '갑질' 논란이 불거지며 유통업계 현장에서 근무하는 감정노동자들의 노동 인권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들에 대한 보호책이 절실하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가운데 이와 관련한 유통업계의 상황을 살펴봤다.

무릎 꿀리고 뺨 때리고 '갑질'

지난 16일 신세계백화점 인천점에서 직원 2명이 한 여성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과하는 영상이 공개돼 파장을 일으켰다. 영상 속 여성은 직원들에게 "야 너희 둘 다 똑바로 해. 지나가다 마주치면 나보고 죄송하다고 하게 내 얼굴 외워"라고 외쳤다.

사건은 이 여성의 모친이 지난 10일 해당 백화점의 스와로브스키 매장을 방문해 7년 전 구입한 목걸이와 팔찌의 무상 수리를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데서 시작됐다. 매장 직원은 여성의 모친에게 품질 보증서가 없고 서비스 기간이 지나 무상 수리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여성은 사흘 뒤인 13일 스와로브스키 한국 본사에 전화를 걸어 따졌고, 스와로브스키 측은 예외적인 무상 수선을 약속했다. 그럼에도 여성은 다음 날 매장을 재방문해 1시간 동안 직원들에게 항의했고 매니저가 착용하고 있던 제품을 무상으로 달라고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1월에는 롯데백화점의 매장 관리자의 뺨을 때린 고객이 폭행 혐의로 불구속 입건되는 사건이 있었다. 당시 고객은 해당 백화점의 여성복 매장에서 구입한 의류를 교환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의류에 립스틱이 묻은 이유로 거절당했다.

이 과정에서 고객은 직원들에게 30여분 동안 고함을 쳤으며 카운터에 있던 물건들을 바닥으로 던졌다. 이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온 매장 관리자의 뺨까지 때렸으나 직원들은 고객에게 "고객님"이라고 부르며 어쩔 줄 몰라 했을 뿐 항의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천 백화점 모녀' 사건은 사회적 이슈로 확대되며 전 국민의 공분을 산 바 있다. 지난해 12월 27일 현대백화점 부천 중동점을 방문한 모녀는 지하 4층 주차장에서 해당 백화점의 주차요원 4명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강요하며 이 중 한명의 뺨을 때린 혐의를 받았다.

사건을 두고 모녀와 주차요원 양측의 입장은 상반됐다. 모녀는 경찰 수사 과정에서 "주차요원이 주먹질을 해 모멸감을 느껴 사과받고자 했을 뿐 욕설을 하거나 뺨을 때린 적은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반면 주차요원은 "추워 복싱으로 몸을 풀려고 했을 뿐"이라고 맞섰다.

결국 모녀 중 어머니는 1월 23일 폭행 혐의로 불구속 입건돼 검찰에 송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모녀 중 딸은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지만 무혐의 처리됐다. 경기도 부천 원미경찰서 관계자는 "무릎을 꿇은 주차요원 4명 중 밀쳐진 한 명이 처벌을 원했다"고 밝혔다.

감정노동자 보호 위한 노력 필요

고객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감정노동자들의 고충이 재조명되고 있다. 이들로서는 폭언, 폭행을 일삼는 고객에게 대응하면 불이익이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기 때문에 화를 내는 것도, 정당방위를 하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다.

한명숙 전 총리는 2013년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 '민간ㆍ공공서비스산업 종사자 건강실태조사'를 공개한 바 있다. 자료에 따르면 백화점 판매원 등 감정노동자 2259명 중 81.1%가 고객으로부터 모욕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고객 응대 시 피해를 보았을 경우 회사 차원의 직원 보호 조치는 소극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회사가 휴식을 제공한 비율은 23%에 불과했고, 심리상담 교육 및 병원 치료 등은 거의 취하지 않았다.

최근 들어 감정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부천 백화점 모녀'·'대구 백화점 갑질녀'·'인천 백화점 갑질녀' 등의 사건이 연달아 발생하자 백화점, 대형마트 등 유통업계가 고객의 무차별적인 행동에 엄격히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롯데백화점의 경우 직원들에게 상황 별 자기 보호 업무 매뉴얼을 공개해 진상 고객에 대응하도록 지시했다. 매뉴얼에 의하면 고객의 무분별한 행동에 '정중한 중지 요청', '단호한 중지 요청', '녹화·녹음', '서비스 리더(진상 고객 응대 직원) 동원' 순으로 대응하도록 돼 있다.

이와 관련,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점포마다 비치한 책자를 통해 직원들이 상황 별로 각각 대응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또한 모든 점포에 힐링 센터를 마련해 스트레스 측정 등 진단과 미술 치료를 접목한 프로그램으로 직원들을 케어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대백화점은 폭언, 폭행을 가하는 고객에게 업무 방해 혐의로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통보를 하도록 직원들에게 지시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또한 직원들에게 유사 상황 시 경찰에 즉시 신고하도록 교육시키고 있으며 직원들을 위한 힐링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롯데마트는 올 7월 서울시, 녹색소비자연대와 '감정노동자 인권보호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업무협약을 통해 감정노동자의 권익보호를 위한 인식을 교육하고, 피해를 입은 감정노동자를 위한 힐링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마트는 진상 고객 상대는 이를 전문으로 하는 고객만족센터 상급자가 담당하도록 돼 있다. 홈플러스 경우 폭언, 폭행을 가하는 고객을 이슈 고객으로 지칭하고 있으며, 이슈 고객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내부적으로 공유하고 있다.

이처럼 유통업계의 '고객 갑질' 병폐를 해소할 방안은 무엇일까? 중앙대 사회학과 이민아 교수는 이들 기업들이 직원들을 보호할 장치를 마련하는 것뿐만 아니라 기업ㆍ고객 간 상호 의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평했다.

이 교수는 <주간한국>과의 통화에서 "해외 기업의 경우 소비자가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를 하는 경우 단호하게 대처하는데 국내 업계는 '손님은 왕'이라며 노동자를 보호하기보다는 소비자 위주로 일을 해결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감정 소모가 심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는 "국내 백화점, 대형마트에서는 고객에 대한 대처방안을 고객 위주로만 교육시키고 있다"며 "기준을 정해 고객이 기준 이상의 행동을 할 경우 노동자가 아닌 중앙 차원에서 문제를 처리하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소비자 입장에서도 의식을 바꿔야 한다"며 "국내 소비자들은 돈이 있으면 (그에 응당한) 서비스를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해 감정 노동을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한국 사회의 이러한 물질주의적 의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윤소영 기자 ysy@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