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입사 '역사' 대세로대기업 입사시험 역사적 소양 평가 강화난이도 강화… 지원자 고민 깊어져우수 인재 선발 위해 변별력 강화

지난 4월 12일 서울 대치1동에 위치한 단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에서 취업 준비생들이 삼성그룹 대졸 신입사원 공개채용 직무 적성검사에 응시하기 위해 교내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이규연 기자
"광개토대왕, 진흥왕, 법흥왕, 장수왕, 근초고왕 각 왕의 시대적 순서를 올바르게 나열한 것은?"

이는 '삼성고시'로 불리는 올해 하반기 삼성그룹 대졸 신입사원 공개채용 직무적성검사(GSAT)에 출제된 문제로 전문가들은 역사적 지식 암기에 이해를 수반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그룹뿐만 아니라 최근 치러진 국내 대기업 하반기 입사시험에서 역사적 소양 평가가 강화된 모습이 눈에 띄었다.

대기업들이 신입사원 공채를 하면서 역사에 비중을 두는 배경과 이에 대한 취업준비생들의 대비 및입장 등을 살펴봤다.

'고시'만큼 어려운 대기업 역사시험

지난달 18일 치러진 삼성의 직무적성검사(GSAT)에서 역사 문제의 수는 15개로 전체 문항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다. GSAT는 언어논리, 수리논리, 추리영역, 시각적사고, 직무상식 등 총 160개 문항으로 구성돼 있으며 역사 문제는 직무상식 부문에서 등장했다.

이번 GSAT는 한국사 부문에서 고구려 건국, 고려시대 원 간섭기, 훈민정음, 거문도사건, 국채보상운동 등을, 세계사·중국사 부문에서 1·2차 세계대전, 중국 당·송 시대 등을 물었다. 지방 국립대 법학과를 졸업한 A씨(29)는 "디테일한 역사적 지식을 묻는 문제들은 과감하게 패스했다"고 전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공개채용 인적성검사(HMAT)에서 역사적 지식을 바탕으로 지원자의 가치관을 묻는 역사에세이를 출제해왔다. HMAT는 언어영역, 수리영역, 추리영역 등 총 105개 문항과 인성검사 112개 문항, 역사에세이 2개 문항으로 구성된다.

지난달 9일 실시된 역사에세이는 국내 경제 발전과 인류 발전에 대한 지원자의 역사관을 물었다. '역사적 사건 하나를 선정해 현대자동차의 5개 핵심 가치 가운데 2개 이상을 연관 지어 서술하시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전을 긍정적으로 보는지 부정적으로 보는지 서술하시오'가 문항으로 출제됐다고 지원자들은 귀띔했다.

지난달 25일 치러진 SK그룹 종합역량적성검사(SKCT)에는 10문항의 한국역사영역이 포함됐다. 장군총, 석굴암, 고려청자, 팔만대장경, 훈민정음 등과 관련된 시대적인 설명을 묻는 문제와 광복 이후의 사건들을 나열하는 문제가 나온 것으로 파악됐다.

SK네트웍스에 지원한 B씨(26)는 "10문제 중 10문제를 다 맞혔다. 전체적인 맥락을 잡는 문제 위주라 어렵지 않았다"며 "시중 한국사 문제집 중 난이도가 높은 것으로 준비했는데 SKCT는 그에 비해 난이도가 높지 않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LG그룹은 지난달 10일 시행한 LG그룹 적성검사(웨이핏 테스트·WAY FIT TEST)에서 한국사문제 10개 문항을 출제했다. 이번 웨이핏 테스트에는 한국사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를 묻는 문제가 출시됐다는 게 지원자들의 평이다.

서울 소재 상위권 대학의 신소재공학과 졸업을 앞둔 C씨(27)는 "다른 기업들에 비해 평이했다. 중학교 역사 문제 수준으로 누구든지 쉽게 풀 수 있었다"고 전했다. LG상사 해외영업부서에 지원한 D씨(26)는 "시중에 나온 한국사 문제집 수준이었다"고 밝혔다.

GS칼텍스는 2008년부터 한국사시험을 채용 전형 단계에 포함시켰다. 한국사검정능력시험 3급 이상의 자격증을 보유한 GS칼텍스 지원자는 한국사시험을 면제받는다. 이외의 지원자는 30분 동안 30문항을 풀어야 한다.

올 하반기 GS칼텍스 서류전형에 합격한 지원자들은 지난달 17일 GS칼텍스 부합도 검사(GSC WAY), 직무능력검사, 한국사능력시험을 치렀다. GS칼텍스 생산관리직에 지원한 E씨(26)는 "GS칼텍스 지원자들은 대부분 한국사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사시험을 보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고 귀띔했다.

"부담 가중"vs"우수 인재 선발"

국내 대기업 입사시험에서 한국사 문항의 비중이 점차 높아질 전망이다. 삼성그룹, 현대자동차그룹, SK그룹, LG그룹 등을 비롯한 기업들이 인문학적 소양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때문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삼성그룹 GSAT의 역사 문항은 올 하반기 입사시험에서 가장 어려웠다고 지원자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일부는 삼성그룹이 매년 역사 문항의 비중을 강화하며 난이도 또한 높이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앞선 A씨는 "이번 GSAT의 난이도는 상반기와 비슷했지만 중국사 문제는 매우 어렵고 당황스러웠다"며 "시험장에 가서 문제를 보면 GSAT 역사 파트는 공부하기에도 애매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삼성그룹 관계자는 "역사 문항은 대기업의 입사시험에서 전반적으로 나오는 부분"이라며 "대기업들이 상식 영역에서 인문학적 지식, 특히 역사에 대한 이해를 지닌 융합형 인재를 선발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삼성 또한 다양성을 수용하는 인재상을 요구하다 보니 역사와 관련된 문항의 난이도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며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기 위한 이러한 흐름은 앞으로도 계속될 듯하다"고 덧붙였다.

다른 기업들에 비해 이공계 채용이 많은 현대자동차그룹의 경우 역사적 소양을 장문으로 서술하는 데 익숙지 않다는 게 지원자들의 전언이다. 이들은 포괄적인 에세이 주제를 바탕으로 이와 관련된 역사적 이슈를 접목해 논지를 펼쳐나가는데 어려움을 느꼈다고 전했다.

현대자동차그룹 연구개발 직무에 지원한 E씨(26)는 "전공에만 충실해 온 공대생들한테 많은 걸 요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역사를 당연히 알아야겠지만 너무 방대하고 어려워 취업준비생으로서 역사에세이를 위한 공부를 하는데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된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와 관련, 현대자동차그룹 관계자는 "역사관이 뚜렷한 인재가 자신과 회사, 국가를 일류로 이끌 수 있다는 판단에서 역사에세이를 도입했다"며 "현대차는 자동차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의 문화를 판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독일(브랜드)차의 판매율이 높은 것은 해당 브랜드에 대한 믿음뿐만 아니라 독일이라는 국가에 대한 (소비자들의) 믿음 때문"이라며 "자기 자신과 국가에 대한 뚜렷한 정체성을 지닌 인재가 현대차의 미래 경쟁력을 강화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대기업들이 신입사원 채용에 역사 비중을 높이는 가운데 취업준비생들은 EBS 한국사 강의 등을 통해 한국사검정능력시험 공부를 병행하거나 사설 기출 문제집을 구입해 풀어보는 등 또 다른 '역사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으로 조사 결과 드러났다.



윤소영 기자 ysy@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