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업 살리기, 해법은 두 기업 묶기?해운업 불황으로 국내선사 연이은 '적자'선사들 자구책 마련으로 살길 모색현대상선 거취 두고 '감 놔라 배 놔라'균형 잡힌 지원으로 해운·조선업 동반 성장해야

양대 선사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합병설이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수그러들었다. 정부와금융당국이 날로 악화되는 해운업계 경쟁력 극복을 위해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을 합병하는 방안을 논의했다는 것이었다. 해양수산부 등은 즉각 이를 부인하고 나섰으나 업계 관계자들은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말하고 있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합병은 해운업계가 위기를 겪을 때마다 꾸준히 제기됐던 시나리오 중 하나다. 하지만 이번만은 양상이 조금 다르다. 특히 더 깊은 침체의 나날을 겪고 있는 현대상선에 초점이 맞춰진 듯하다.

해운업계 관계자들은 합병은 불황 타개의 정답이 아니라 말하고 있다. 국내 해운 업계의 경쟁력을 위해서라도 양대 선사 체제를 유지하는 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현대상선의 경우 한진해운과의 합병이 아니더라도 범현대가로의 매각 등 거취에 대한 다양한 설이 돌고 있다.

합친다고 효과 보는 것은 아냐

해운업계는 지난 2008년도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극심한 불황에 시달려왔다. 물동량 침체로 운임은 날로 떨어졌으며 수송량은 제자리걸음을 걷는 중이다.

늘 한발 빠른 구조조정과 비용 절감으로 해운업계를 이끌던 덴마크의 머스크라인 또한 지난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동기 7억4000만달러에서 59% 감소한 3억300만달러로 '반토막'났다. 머스크조차 휘청거리는 상황에서 양대 국내 선사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또한 불황을 피해갈 순 없었다. 현대상선의 올 3분기 실적은 매출액 1조4289억원, 영업손실은 747억원으로 전년 동기에 비해 매출액은 줄고 영업손실은 확대됐다. 한진해운 또한 매출액 1조9087억원, 영업손실 57억4985만원으로 전년 동기에 비해 매출액이 8.9% 줄고 영업이익 또한 적자로 전환했다. 3분기가 해운업계의 전통적인 성수기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저조한 실적을 올린 것이다.

실적뿐만 아니라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더 시급한 문제는 해외 선사들과의 경쟁력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점이다. 컨테이너 선사들은 초대형 선박 발주를 통한 비용 절감을 통해 살길을 모색하고 있다. 이미 덴마크 선사 머스크라인은 1만8000TEU급 선박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최대 운영 선박은 1만3000TEU급이며 이마저도 약 4년 전인 2011년에 인도받은 것으로 경쟁력에선 한참 도태됐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러한 위기 때문에 금융권을 중심으로 나온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합병안이 힘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양사는 이에 대해 들은 바가 없다고 일축했다. 해양수산부 또한 합병 추진 소문을 적극적으로 부인했다.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은 지난 1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합병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생각해본 일도 없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해서 합병설이 완전히 가라앉은 것은 아니다. 김영석 해수부 장관은 "양대 선사의 내부적 정리는 몰라도 큰 틀은 유지했으면 좋겠으나 금융정책이나 경제정책적 차원에선 끝까지 끌어안을 수 없다"고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 금융권 등에서는 아직까지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합병을 바라는 기조가 남아 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해운업계 관계자들은 합병에 대해 별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없을 것이라 말하고 있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미주와 유럽을 주 노선으로 영업하고 있다. 주요 노선이 겹치기 때문에 합병되더라도 영업적 측면에서 시너지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얼라이언스 또한 발목을 잡는다. 세계 컨테이너 선사들은 아시아와 미주, 아시아와 유럽 노선에서 '얼라이언스'를 이뤄 공동 운항을 함으로써 비용 절감에 나서고 있다. 한진해운은 CKYHE, 현대상선은 G6에 속해 있다. 서로 다른 얼라이언스에 속해 있기 때문에 타 선사들과의 협조 관계 또한 합병의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이다.

채찍 주기 전에 당근도 줘야

합병을 둘러싸고 해운업계의 볼멘소리가 흘러 나오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상대적으로 지원이 후한 조선업에 비해 지지부진한 지원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수출입은행은 지난 8월 기준으로 국내 조선업계의 26조원의 여신을 지원했다. 그에 비해 해운업계를 향한 지원은 미미하다.

한 쪽에만 쏠린 지원으로는 해운ㆍ조선 업계 모두 성장하기 힘들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중국이 중국 수출입 화물은 중국 선박으로 수송하고, 중국 선박 또한 중국 조선소에서 건조해야 한다는 '국수국조(國輸國造)'정책을 내세워 해운ㆍ조선 산업을 육성하고 있는 것처럼 골고루 지원하는 게 업계 발전을 이끌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다. 중국은 자국 선사인 코스코와 차이나쉬핑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중국수출입은행은 5년간 코스코와 차이나쉬핑에게 각각 95억달러씩 지원하고 있다.

조선업계에만 쏠린 지원은 결국 외국 선사의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외국 선사들이 국내 조선소에 앞다퉈 선박 발주를 의뢰하고 있지만 국내 선사들은 지난 2011년 이후로 신규 컨테이너선 발주를 꿈도 꾸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각각 자구책 마련을 통해 실적 개선에 나서고 있다. 한진해운은 지난해 대한항공에게 긴급 자금 수혈을 받았고 당시 최은영 회장이 시숙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겼다. 아직 부채가 남아있긴 하지만 이를 통해 한진해운은 6분기 연속 영업이익을 달성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 때문인지 한진해운은 현대상선과 함께 묶이는 것에 대해 다소 억울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일각에서 제시된 한진해운의 현대상선 인수설에 한진해운 관계자는 "합병에 관해서는 구체화된 것이 없다"고 부인했다.

두 선사 중 더 급한 쪽은 현대상선이다. 합병 외에도 현대상선을 둘러 싼 시나리오는 많다. 우선 한진그룹이 한진해운을 인수한 것처럼 현대상선 또한 현정은 회장의 시숙인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인수하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돈다. 혹은 제3의 기업이 현대상선을 인수하는 시나리오도 있다.

자구책 마련을 위해 현대상선 또한 각고의 노력을 펼치고 있다. 현대상선은 컨테이너 매각부터 시작해 LNG운송 부분과 현대로지스틱스 매각을 통해 1조8000억원을 확보하는 등 강도 높은 자구책 마련을 해 왔다. 그러나 현대증권 매각을 통해 유동성 위기를 넘기려 했으나 일본계 금융자본 오릭스와 협상이 결렬되면서 이 또한 무산됐다. 아직까지 현대상선이 갈 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크루즈선 진출 또한 아직 실행되고 있는 것은 없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9월 보도가 나온 이후로 크루즈 산업 진출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지 내부적으로 확인해 봤으나 현재까지 구체적으로 이야기가 오간 것은 없다"고 밝혔다. 현대상선 측은 자구책 마련에 분주하기 때문에 크루즈산업에 진출하는 것에는 상대적으로 무리가 있다는 평가를 내리는 듯하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합병설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두 선사는 지난 2013년에도 한 차례 합병설에 휘말린 적이 있다. 이는 합병 등 각고의 방법을 통해 해운선사들에게 살길을 모색해 보라는 정부의 압박으로도 풀이된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실질적 합병이 어렵지만 이러한 소문이 계속 도는 것은 얼른 자구책 마련을 하라는 당국의 의지가 담긴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선사들에게 자구책 마련을 요구하기 전에 당국에서도 그에 걸맞은 지원이 필요하다는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무조건 채찍만 휘두르지 말고 당근도 함께 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