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경영' 통해 '세대교체' 중… 오너가 신세대 약진, 경영 전면에삼성, 예상보다 인력 쇄신 폭 적어… '신상필벌' 대원칙 변하지 않아책임경영 체제 강화한 LG… 전폭적 '세대교체'도이서현·정기선·정유경 등 오너가 세대교체 시작되나

왼쪽 사진부터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 구본준 LG 신성장사업추진단장부회장, 정기선 현대중공업 전무, 정유경 신세계백화점부문 총괄사장.
가는 해를 마무리하고 오는 해를 맞이하는 12월, 대기업들은 신규 인사 꾸리기에 분주하다. 지난달 LG를 시작으로 삼성, 현대중공업, GS, 신세계가 연말 정기 인사를 단행했다.

삼성은 큰 변화보다는 안정을 택했다. 그러나 '신상필벌'이라는 대원칙은 변하지 않았다. 전자ㆍ반도체 분야에서 큰 활약을 펼쳐 온 인물들을 전격적으로 앞에 내세웠다. 신성장동력으로 삼은 계열사에 힘을 실어줘 향후 삼성을 이끌어갈 주요 계열사의 면모도 살펴볼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기업들은 책임경영 강화와 세대교체를 택했다. 연말까지 계속될 임원 인사 단행에 재계의 시선이 쏠려 있다. 향후 재계를 이끌어 갈 '새 인물'들은 누구인지 살펴봤다.

'안정 속 변화' 택한 삼성

재계 1위 삼성은 지난 12월 1일 연말 정기인사를 단행했다. 이번 인사는 사장 승진 6명, 부사장 승진 1명, 이동 및 업무 변경이 8명으로 15명이 대상이 됐다. 이재용 부회장이 그 동안 실용주의를 내세운 것처럼 대대적인 변화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됐으나 생각보다는 소규모라는 게 지배적인 의견이다.

고동진 삼성전자 IM부문 무선사업부장 사장이 2일 오전 서울 삼성 서초사옥에서 2016년 정기 사장단 인사 후 처음 열린 사장단 회의에 참석한 뒤 떠나고 있다. 사진=연합
사장단 규모는 대표 부사장 2명을 포함해 52명으로 지난해보다 1명 줄었으며 평균연령은 53.7세에서 54.8세로 약간 높아졌다.

먼저 삼성전자 권오현 부회장과 윤부근 사장, 신종균 사장의 경우 겸직하던 종합기술원장, 생활가전사업부장, 무선사업부장 자리를 후배에게 물려주게 됐다.

삼성전자 고동진 부사장은 사장으로 승진돼 IM(IT 모바일)부문 무선사업부장에 내정됐다. 삼성전자 신종균 사장은 겸직하던 무선사업부장 자리를 고동진 부사장에게 물려주고 IM부문장 대표이사 사장으로 남게 됐다.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 경영기획담당 사장은 삼성물산 패션부문장(사장)으로 보직이 변경됐다.

올해 출범을 완료한 통합 삼성물산은 4인 대표체제에서 3인 대표 체제로 변경됐다. 최치훈 건설부문 사장과 김신 상사부문 사장, 김봉영 리조트건설부문 사장 세 명이 대표를 맡는다. 윤주화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대표이사)은 삼성 사회공헌위원회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밖에 삼성전자 정칠희 부사장은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사장으로 거취를 옮겼고 삼성바이오에피스 고한승 부사장은 삼성바이오에피스 사장으로 승진했다. 호텔신라 한인규 부사장은 호텔신라 면세유통사업부문 사장으로 승진했다.

이서현 사장, '패션' 책임자로

큰 규모의 개편은 아니지만 이번 인사를 통해 삼성이 그려갈 큰 그림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우선 삼성전자 권오현 부회장과 윤부근 사장, 신종균 사장이 겸직을 관두고 '큰 그림'을 그리는 데 집중하게 됐다. 삼성 측은 "그간의 연륜과 경험을 바탕으로 중장기 사업전략 구상과 새로운 먹거리 발굴 등에 전념하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권오현 부회장에 이어 삼성전자 사장이 된 고동진 부사장은 '갤럭시 살리기'특명을 받게 됐다. 고동진 부사장은 갤럭시 S6와 노트 5 개발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의 스마트폰 시리즈인 갤럭시는 애플의 아이폰과 중국산 저가 스마트폰에 밀려 고전을 겪고 있다. 삼성이 고 부사장의 사장 승진을 통해 갤럭시 시리즈의 재건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크다. 특히 신형 휴대폰인 갤럭시 S7의 내년 초 조기 출범설이 돌고 있는 시점에서 고 부사장의 역할은 더욱 중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 측은 고동진 부사장에 대해 "H/W 및 S/2는 물론, KNOX, 삼성페이 등 솔루션과 서비스 개발에도 폭넓은 안목과 식견을 갖추고 있어 무선사업의 제 2도약을 이끌 수 있을 것"이라 밝혔다.

신규 먹거리 사업 챙기기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삼성은 2020년 바이오 분야의 연간 목표 매출액을 1조8000억원으로 잡으며 바이오를 '신 성장 동력'으로 선포한 바 있다. 특히 삼성바이오에피스 사장으로 승진한 고 부사장은 올해 52세로 사장단 중 가장 젊다.

'신상필벌' 원칙 역시 엄격하게 적용됐다. 보험과 증권 등 금융 분야에선 승진이 이뤄지지 않았지만 호텔은 사장 승진자를 배출했다. 시내 면세점 입찰에 성공한 호텔신라 한인규 부사장이 면세유통사업부 사장으로 승진하며 보상을 받았다. 한 사장은 지난 2011년 말부터 호텔신라 운영 총괄을 맡아 싱가포르 창이공항 면세점 진출, 미국 면세기업 DFASS사 인수를 성사시켰으며 지난 7월 서울 시내 신규 면세점 사업권 획득에도 큰 공헌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통적 효자 품목인 반도체의 경우 신임 정칠희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장의 승진을 통해 강화에 나선다. 정칠희 사장은 삼성전자 핵심 사업으로 평가되는 반도체에서 LSI개발실장, Flash 개발실장, 반도체연구소장을 역임하며 반도체 신화 창조의 주역으로 평가 받은 인물이다. 특히 정 사장은 지난 2012년말 종합기술원 부원장으로 부임해 올레드 그린 인광소재 확보, SUHD TV향 퀸텀닷 소재 개발, 스마트폰용 지문인식 알고리즘 개발 등 차별화된 선행 기술 개발에 앞장서 왔다.

삼성가 삼남매 중에선 이서현 사장만이 보직 변경 대상이 됐다. 이서현 사장은 패션부문 경영기획담당 사장과 제일기획 경영전략담당을 겸직하고 있었지만 이번 인사를 통해 삼성물산 패션부문장 사장으로 보직변경되면서 패션에 집중하게 됐다. 이 사장은 세계 3대 패션 스쿨인 미국 파슨스디자인학교를 졸업했으며 제일모직에 입사해 패션에 특화된 경력을 쌓아 왔다. 또 제일모직 입사 후 정구호 디자이너의 '구호'와 정욱진의 '준지'를 영입해 고급화에 성공했다. '빈폴' 역시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키워냈다는 평을 듣고 있다.

SPA 브랜드 '에잇세컨즈'는 이 사장의 대표적인 업적으로 꼽힌다. 그러나 유니클로, H&M 등 해외 SPA 브랜드에 밀려 국내 시장에서 큰 활약을 보이진 못했다. 올 3분기 삼성물산 패션 부문은 22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해 갈수록 실적이 악화되고 있었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 이 사장이 직접 패션 부문을 챙김으로써 향후 얼마나 성과를 이룰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다.

LG 구본준 '큰 그림'…GS 4세대 약진

LG는 지난달 말 일찌감치 인사를 발표했다. 지난달 26일에는 LG전자ㆍLG이노텍ㆍLG화학ㆍLG생활건강ㆍ㈜LGㆍLG디스플레이ㆍLG하우시스가 이사회를 열어 임원인사를 단행했으며 27일에는 LG유플러스ㆍLG CNSㆍLG상사 등이 임원 인사를 마쳤다.

먼저 오너가 일원인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이 지주사인 ㈜LG의 신성장사업추진단장으로 이동한다. LG 측은 "소재부품, 자동차부품, 에너지 등 그룹 차원의 성장동력을 찾아내고 관련 사업의 포트폴리오를 고도화하는 역할"이라 설명했다.

LG 역시 성과에 따른 보상을 전면에 내세웠다. 대표적 인물이 LG 디스플레이 한승범 부회장이다. 사장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한 한승범 부회장은 차별화된 기술 선도로 대형 LCD 패널 시장 6년 연속 글로벌 1위와 14분기 연속 흑자를 달성했다. 또 중국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메이저 고객사를 확보하고 광저우 패널 공장을 성공적으로 가동하는 성과를 거뒀다.

파격적 인사도 눈에 띈다. LG전자 생산기술원장 홍순국 전무는 두 단계나 뛰어 올라 사장으로 승진했다. 신임 홍 사장은 신성장사업인 에너지와 자동차부품 분야 장비기술 개발로 수주 확대한 것을 인정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LG전자의 경우 '책임경영'을 강조했다. 기존 CEO 중심 체제에서 각자대표이사 체제를 확대해 사업본부별 책임 경영을 강화한다. 정도현 사장(CFO), 조준호 사장(MC 사업본부장), 조성진 사장(H&A사업본부장)의 3인 각자대표체제로 확대했다. 조준호 사장과 조성진 사장은 주주총회를 거쳐 대표이사로 선임될 예정이다.

이번 개편으로 LG전자는 각 본부장의 강력한 책임경영으로 운영된다. 특히 판매량이 지속적으로 떨어지면서 6분기 연속 적자를 면치 못한 LG전자의 스마트폰 사업이 '위기'를 겪고 있다. LG는 위기 상황에서 혁신보다는 안정 체제를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조준호 사장의 경우 이른바 '조준호폰'으로 불리는 슈퍼 프리미엄폰 V10을 통해 돌풍을 기대했지만 그 효과는 미미했다. LG전자는 오히려 조준호 사장의 권한을 강화함으로써 책임 경영을 통해 돌파구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구본준 부회장이 LG전자를 떠나며 전문경영인의 권한을 확대함으로써 힘을 실어 주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전폭적 세대 교체도 눈에 띈다. 정보통신부 장관을 역임한 LG 유플러스 이상철 부회장이 퇴임하고 권영수 전 LG화학 사장이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권영수 LG 유플러스 대표는 LG전자 재경담당 부사장, LG전자 재경부문장, LG디스플레이 대표이사, LG화학 전지사업본부장 등 LG그룹의 주요 계열사 사장을 두루 거쳤다. 맡은 사업마다 승승장구했으며 재무에 밝아 구조조정 전문가로 불리고 있다. 권 부회장은 앞으로 통신을 포함한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전반에 대한 새로운 시각으로 LG유플러스의 통신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신성장동력 발굴에 집중할 예정이다. 또 풍부한 해외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글로벌 사업 추진에 박차를 가해 내수 시장의 한계를 극복할 것으로 알려졌다.

GS그룹은 2세 경영 시대를 마무리하게 됐다. 허만정 창업주의 2세들 중 유일하게 계열사 대표이사직을 맡아왔던 허승조 GS리테일 부회장이 퇴진했다. 허 부회장의 자리는 CVS 허연수 사장이 맡게 됐다.

2세대 경영 시대를 마무리한 GS는 4세대들의 약진을 알렸다. 허창수 그룹 회장의 외아들인 허윤홍 GS건설 상무는 이번 인사에서 전무로 승진했으며 역시 오너 일가인 허준홍 GS칼텍스 법인사업부문장이 전무로 승진하고 허서홍 GS에너지 전력ㆍ집단에너지사업부문장이 상무로 신규 선임됐다.

GS에너지 대표이사로는 GS E&R 하영봉 사장이 임명됐으며 GS파워 손영기 사장은 GS E&R대표이사 겸 GS EPS 대표이사로 발령했다.

현대중공업 '세대교체'… 신세계 정유경 백화점 총괄사장으로

현대중공업의 경우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님인 정기선 상무가 전무로 승진했다. 정기선 전무는 지난달 11일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석유회사인 아람코와의 협력관계를 주 내용으로 하는 양해각서(MOU) 체결을 주도한 바 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정기선 전무는 사우디 아람코 및 인도와의 협력사업을 책임지고 수행할 뿐 아니라 조선과 해양 영업을 통합하는 영업본부의 총괄부문장을 겸직해 영업 최일선에서 발로 뛰면서 해외 선주들을 직접 만나는 등 수주 활동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기술연구원 신현수 전무와 현대오일뱅크 강명섭 전무 등 6명은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와 관련해 현대중공업은 "해양플랜트 납기 지연 등으로 인한 대규모 적자 책임을 물어 해양사업 임원 교체 폭이 컸다"고 전했다. 또 "연구개발 분야의 중요성을 감안해 중앙기술연구원장을 부사장급으로 격상했다"고 덧붙였다.

현대중공업 또한 세대 교체를 전면에 내세웠다. 신규 상무보 선임자 57명 중 40대가 절반인 28명을 차지했다. 책임 경영 체제를 확립한 것도 눈에 띈다. 현대중공업은 이번 인사와 함께 조직을 정비해 각 사업대표에게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는 사업대표 책임경영 체제를 확립할 것이라 밝혔다. 이를 위해 인사, 구매, 원가, 기획, 안전 등 기존 경영지원 기능을 각 사업부로 대폭 이양한다.

신세계 그룹은 부회장 승진 1명, 사장 승진 3명, 신규 대표이사 내정자 4명을 포함한 85명에 대한 정기 임원인사를 단행했다. 전략실 김해성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해 ㈜이마트 대표 이사를 맡았다.

이명희 회장의 딸 정유경 부사장은 신세계 백화점 부문 총괄사장으로 승진했다. 전략실 기획총괄 권혁구 부사장은 신임 전략실장 선임과 함께 사장으로 승진했다. ㈜신세계 대표이사 장재용 대표도 사장으로 승진했다.

SKㆍ롯데 '중순'… 현대차 '연말'에 인사 단행

이번 대기업들의 연말 인사 키워드는 '책임경영'과 '세대교체'를 꼽을 수 있다.

삼성의 권오현 부회장과 윤부근 사장, 신종균 사장이 겸직을 관두고 중장기 사업 구상과 신규 먹거리 발굴에 집중하게 됐다. 그 자리는 후배 경영인들이 대신한다. LG 또한 '1세대 정보통신인'인 이상철 부회장이 퇴임하고 권영수 사장이 그 자리를 이어받게 됐다. GS 또한 2세대 경영 시대를 마무리했으며 현대중공업은 정기선 전무의 승진으로 '3세대 경영'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책임 경영을 강화해 경영인이 특정 사업 분야에 집중하도록 배치한 것에 눈에 띈다. 이서현 사장의 경우 패션 부문을 전두지휘하게 됐다. 이로써 삼성은 이재용의 전자, 이부진의 호텔에 이어 이서현의 패션까지 이건희 회장의 3남매가 모두 전문 분야에 집중하게 됐다. 스마트폰 사업분야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던 LG는 조준호 사장에게 힘을 더 실어주며 책임 경영 체제를 확고하게 다졌다. 현대중공업 역시 책임경영 체제를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오너일가에서는 삼성가 이서현 사장의 보직 변경과 현대중공업 정기선 상무의 승진과 더불어 신세계 정유경 부사장의 사장 승진이 눈에 띈다.

한편 아직 연말 인사를 발표하지 않은 SK와 롯데는 이달 중하순에 인사를 마무리하며 현대차는 크리스마스 전후로 사장단 및 임원 인사를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