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업계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 한국의 실리콘 벨리 만든다

액셀러레이터‘스파크랩’은 데모데이를 통해 스타트업이 이룬 성과를 공유하고 있다. 사진 출처=스파크랩
스파크랩ㆍ프라이머 등 국내 20곳 액셀러레이터 존재
패스트트랙아시아, 스타트업 지주회사로 또 다른 지원모델 구축
소프트웨어 발달로 창업 활발하지만 초기에는 도움 필요
액셀러레이터 법안 통과, ‘기다리는 중’

지금이야 전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기업이지만 구글과 애플, 페이스북 또한 혁신적인 아이디어만을 갖고 투자자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구글, 애플, 페이스북과 같은 기업이 탄생할 수 있을까? 박근혜 정부의 ‘창조 경제’ 바람을 타고 국내에서도 ‘스타트업(초기 창업기업) 열풍’이 그 어느 때보다 거세게 불고 있다.

스타트업 열풍은 소프트웨어의 발전으로 아이디어만 있다면 누구나 창업에 나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서 가능해졌다. 이와 동시에 미국의 와이컴비네이터와 같은 ‘액셀러레이터’들이 하나 둘 생겨나면서 스타트업에게 날개를 달아준 것도 열풍의 한 몫을 하고 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을 가졌지만 아직 전쟁터 한 복판에 나서기에는 노하우가 부족한 스타트업 기업들을 지원해 주는 기업들을 ‘액셀러레이터’라 한다. 아직까지 생소한 업종으로 여겨지지만 국내에서도 1세대 창업가들을 중심으로 하나 둘씩 액셀러레이터 기업이 탄생하고 있다.

창의성을 경제의 핵심 가치로 두는 ‘창조 경제’ 하에서 활발한 스타트업 창업 열풍은 그 결실을 맺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자연스레 스타트업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액셀러레이터 또한 지금보다 더 활성화돼야 한다고 말한다. 스타트업 업계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인 액셀러레이터의 세계에 대해 알아봤다.

지난달 11일 서울 송파구 잠실 롯데시네마 월드타워관에서 진행된‘롯데 액셀러레이터 스타트업 데이’에서 롯데 신동빈 회장이 스타트업 소개 부스를 돌아보며 허니스푼 이민진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롯데그룹
한국의 와이컴비네이터를 꿈꾸다

액셀러레이터 기업이란 신생 스타트업의 안착을 위해 투자 및 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업체 혹은 기관을 말한다. 사무실과 회의실 제공 등 물리적 지원부터 투자자 소개, 해외 네트워크 개척 등 스타트업이 사업을 일궈 나가기 위한 모든 토대를 마련해 준다.

물론 무조건적인 지원을 해주는 것은 아니다. 통상적으로 스타트업의 지분 5~10%를 인수해 스타트업이 상장되거나 매각되면 수익을 챙기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 최초의 액셀러레이터로는 2005년 설립된 ‘와이컴비네이터’가 꼽힌다. 지난 2013년까지 스타트업 632개를 키워내며 1500명이 넘는 창업자들을 도왔다. 매년 두 차례에 걸쳐 전세계를 대상으로 85개 내외 초기 스타트업을 선발해 소액을 투자한다. 드롭박스와 에어비엔비는 와이컴비네이터가 투자한 대표적인 기업이다. 미국에는 와이컴비네이터 외에도 2007년 설립된 테크스타, 2010년 설립된 엔젤패드 등이 대표적 액셀러레이터로 실리콘밸리를 성장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와 같은 액셀러레이터들이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지난 8일, 기자는 서울 역삼동에 위치한 국내 대표적 엑셀러레이터 ‘스파크랩’을 찾았다. 유리문으로 나눠진 서너 곳의 회의실에선 웃음소리와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특히 기자가 방문한 날은 스파크랩의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의 졸업식이라 할 수 있는 ‘데모데이’를 사흘 남겨둔 시점이라 그런지 더 분주해 보였다.

스파크랩은 3개월씩 8~10개의 스타트업 기업을 선정해 인적ㆍ물적 네트워크를 아낌없이 지원한다. 초기 자본 지원금으로는 약 2700만원이 지원된다. 스파크랩 윤성일 과장은 “통상적으로 한 기수에 300개가 넘는 스타트업이 신청서를 낸다”고 밝혔다. 신청서를 내는 스타트업들은 각양각색의 모습을 하고 있다. 정말로 순수한 ‘아이디어’만을 갖고 온 스타트업뿐만 아니라 이미 모든 사업 계획을 마친 후 실행만을 남겨 놓은 스타트업들도 있다.

스파크랩이 지원한 스타트업 기업들은 3개월 기간 동안 자본금과 스파크랩의 지원을 등에 업고 사업을 발전시켜 나가며 기수의 마지막 날인 ‘데모데이’에는 그동안 발전시킨 사업 아이템을 소개하는 시간을 갖는다. 투자자들도 참석하는 데모데이를 통해 스타트업은 신규 투자자와 연결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데모데이’는 그동안 진행해 온 프로그램의 ‘꽃’인 샘이다.

맞춤형 화장품앱 개발사인 ‘미미박스’는 스파크랩이 지원한 대표적 기업이다. 미미박스는 스파크랩의 1기 졸업생으로 올해 330억원에 달하는 투자를 유치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또 한국계 기업으로서는 최초로 와이컴비네이터의 투자를 이끌어 내 주목을 받았다.

스파크랩의 모토는 ‘창업가가 창업가를 키운다’이다. 스파크랩의 이한주 대표는 인터넷 호스팅 전문업체인 호스트웨이를 창업한 이력을 갖고 있다. 액셀러레이터 대표들은 창업을 하며 쌓은 노하우와 경험을 스타트업 대표들에게 전수해 준다. 또 해외 네트워크 확보에도 강하다. 국내에서 해외로 사업 영역을 구축하려는 기업은 물론, 국외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려는 스타트업의 사업을 도울 수 있다고 자신한다. 스파크랩 측은 “한국은 스타트업 기업들이 살아남기 좋은 곳이다. 지리적으로도 일본과 중국에 근접해 국제적으로 뻗어 나갈 수 있으며 정부 또한 창조경제로 스타트업 기업들의 창업을 장려하는 분위기를 갖고 있어 한국 시장에 관심을 갖는 해외 스타트업이 상당히 많다”고 밝혔다.

스파크랩 외에도 국내 대표적인 엑셀러레이터 기업으로는 프라이머, K스타트업 등이 있다. 엑셀러레이터 리더스 포럼(ALF) 측은 국내 엑셀러레이터 기업을 약 23곳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니시스, 이니텍을 창업한 권도균 대표를 주축으로 뭉친 프라이머 또한 국내 대표적 엑셀러레이터이다. 지난 2010년부터 현재까지 70여개 초기 스타트업에 멘토링과 함께 투자에 나서고 있다. 프라이머는 지난 3일부터 엔턴십 9기 공식 모집을 시작했다. 엔턴십은 프라이머가 운영해온 초기ㆍ예비 창업자 대상 창업실습 프로그램으로 프라이머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선발된 스타트업에 투자 및 멘토링을 하고 있다. 프라이머가 배출한 대표적 졸업생으로는 중고 직거래 사이트인 번개장터와 당일 호텔 예약 서비스를 펼치고 있는 데일리호텔이 있다.

대기업들 또한 액셀러레이터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롯데는 사회환원의 한 방식으로 액셀러레이터 재단을 설립했다. 스타트업에 초기 자금과 각종 인프라, 멘토링 등을 제공하는 투자법인인 ‘롯데 액셀러레이터’ 설립을 추진해 청년 창업을 지원한다. 롯데는 엑셀러레이터 1호 기업으로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로부터 추천받은 천연벌꿀 생산ㆍ판매 스타트업인 ‘허니스푼’에 2000만원의 자금과 판로 개척 등을 지원한다. 한화 또한 창업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한화 드림플러스’를 운영 중이다. 이 프로그램은 스타트업 기업이 12주간 한화와 사업전략을 공유하며 한화 계열사들이 지역별로 지원 사격에 나서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액셀러레이터 관계자는 “대기업들 또한 기존 액셀러레이터 기업들에게 노하우를 듣기 위해 적극적으로 교류에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창업 1세대, 노하우 전수 앞장서

스타트업을 키워내지만 스스로 액셀러레이터로 불리기를 거부하는 기업도 있다. 국내 최초의 ‘스타트업 지주 회사’를 표방하는 ‘패스트트랙아시아’는 스타트업을 직접 만드는 ‘컴퍼니 빌더’라 칭하고 있다. 단순한 투자 개념에서 벗어나 기업의 시작부터 함께 한다는 설명이다. 말하자면 패스트트랙아시아는 ‘회사를 만드는 회사’인 것이다.

패스트트랙아시아 전아림 매니저는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아이디어를 들고 오면 투자 여부를 결정하는 선에서 더 나아가 직접 비즈니스를 설계한 후 적합한 인물에게 창업을 맡기는 데까지 영역을 확장했다”고 밝혔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하는 O2O 서비스는 최근 각광을 받고 있다. 패스트트랙아시아의 파트너사들 또한 O2O 서비스에 강점을 두고 있다. 대표적인 파트너 기업은 실무자를 위한 강의를 제공하는 패스트캠퍼스, 전국 생산농가로부터 주문 후 수확 시스템을 통해 신선한 농수축산물을 자체 물류센터를 통해 소비자에게 유통하는 ‘헬로네이처’, 디자이너가 직접 치수를 잰 후 맞춤 정장을 만들어주는 ‘스트라입스’ 등이 있다.

패스트트랙아시아를 비롯해 국내에서 스타트업을 지원하고 키워나가는 업체들의 공통점에는 이미 창업을 한 번 경험해 본 대표들이 있다. 스파크랩 이한주 대표, 프라이머 권도균 대표, 패스트트랙아시아 박지웅 대표 등은 모두 창업 경험을 갖고 벤처 업계에서 노하우를 쌓아왔으며 이를 통해 후배 경영인들이 스타트업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과거 제조업 중심으로 발전해 왔던 기업 환경과는 달리 IT를 기반으로 한 창업이 활발하다는 점도 액셀러레이터 업계의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제조업과는 달리 막대한 투자 비용이 필요하지 않아 탁월한 아이디어만 있다면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연계를 통해 충분히 창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액셀러레이터 역시 자본에 대한 부담을 덜고 오직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지원 기업을 심사한다.

물론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스타트업의 탄생도 필요하다. 앞서 언급한 스파크랩은 이를 위해 인천 송도에 ‘IoT 센터’를 설립할 예정이다. 이 센터에서는 스마트 기기를 생산할 스타트업들을 지원하는데 현재 운영되고 있는 스파크랩의 교육 프로그램보다 기간도 더 길고 초기 투자금도 더 많다. 제조업을 중심으로 하는 스타트업의 경우 자립하는데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창조경제 여파가 낳은 ‘블랙 멘토’라는 부작용

스타트업을 지원하기 위해선 액셀러레이터 자체도 수익을 거둬야 한다. 액셀러레이터는 그럼 어떠한 수익 구조를 갖고 있을까.

액셀러레이터는 스타트업 기업 지분의 3~6%를 갖게 된다. 기업이 성장하면 지분에 대한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국내 엑셀러레이터들은 사업 초기 단계로 이렇다 할 수익 구조를 확보하지는 못한 상태다. 국내 대표적 엑셀러레이터들은 2010년부터 설립됐기 때문에 이제 막 걸음마 단계를 넘어섰다고 볼 수 있다. 지금은 향후 수확을 위한 씨앗을 뿌리는 시기인 것이다.

지난 12일, 국회 입법예고를 통해 ‘액셀러레이터 법’이 공개됐다. 법의 골자는 액셀러레이터들이 투자 펀드를 조성하는 것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현재 국내에선 아직 지위가 모호한 ‘액셀러레이터 기업’에 대한 정의가 확실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액셀러레이터들은 주식회사로 등록이 돼 투자 펀드를 만들 수가 없다. 만약 투자한 스타트업이 상장되거나 매각되면 지분을 회수해야 하는데 이때는 또 세금을 내야 하는 ‘이중고’를 겪기도 한다. 법이 통과된다면 액셀러레이터들도 투자 펀드를 조성할 수 있어 좀 더 안정된 환경에서 스타트업 지원에 나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국내 액셀러레이터 대표들이 모인 ‘액셀러레이터 리더스 포럼(ALF)’은 지속적인 대화로 법안의 골자를 다듬었다. 현재 업계는 한 마음으로 법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펀드 조성도 중요하지만 관계자들이 원하는 것은 액셀러레이터 법을 통해 국내에서도 액셀러레이터들에 대한 정의가 명확해지는 것이다. 특히 액셀러레이터 업계에선 투자를 빌미로 뒷돈을 챙기는 이른바 ‘블랙 멘토’의 근절을 위해서라도 이번 법안의 통과가 시급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창업 자본금이 절실한 스타트업 관계자에게 접근해 자본금을 빌려준 후 더 큰 액수의 돈을 요구하는 불량 투자자들 때문에 스타트업 관계자들이 난처한 상황을 겪고 있는 것이다. 특히 최근 스타트업과 액셀러레이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러한 기업들에 대한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업계 관계자는 “법안 통과로 액셀러레이터에 대한 기준이 명확해진다면 기준에 미달하는 기업들은 정리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생각보다 국내에 창업 전문가가 많지 않다는 것 또한 액셀러레이터들의 고민이다. 업계 관계자는 “실질적으로 창업을 경험해 본 전문가가 많지 않아 스타트업이 양질의 조언을 받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창조 경제’ 바람을 타고 만연한 각종 창업경진대회에 자격을 갖추지 못한 심사위원들이 몰리기도 하며, 동시에 ‘블랙 멘토’를 양성하게 됐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취재를 하면서 만난 업계 관계자들은 한국에서도 다양한 스타트업 기업의 탄생을 통해 젊은이들에게 일자리 창출과 창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부를 세습하기보단 ‘자수성가’를 통해 성공한 젊은이가 많아져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예전보다 창업이 활발해졌다곤 하지만 아직도 10개의 스타트업 중 9곳이 사라지는 게 일반적인 추세다. 특히 실패한 스타트업의 대부분은 사업을 시작한 지 1~3년 내에 사라지곤 한다. 이를 위해 전문가들은 사업 초기에 스타트업이 제대로 일어설 수 있도록 적절한 지원을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국내에서도 액셀러레이터가 발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