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구조조정 한파' 더 세진다구조조정 칼바람… 산업계 전 방위 확산장기 불황에 대기업 먼저 '조직 슬림화'나서"내년 상반기에는 다발적으로 구조조정 일어날 것"

새해부터 300인 이상의 사업장이 60세 정년을 보장하지만 대다수 직장인은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것으로 파악됐다. 세계 경기 불황과 해양플랜트 실패로 2000년대 후반 조선 업계에서 시작된 구조조정의 바람은 금융ㆍ제약ㆍIT 등 전 영역으로 확산됐기 때문이다.

장기화된 불황에 '사오정(45세 정년)', '오륙도(56세까지 직장에 있으면 도둑)'는 상시 구조조정의 대상이 됐고, 2030세대 또한 구조조정의 칼날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경제 전문가들이 내년 경제 상황을 불투명하게 예상하는 가운데 구조조정의 현주소와 전망을 살펴봤다.

기업들, 강도 높은 구조조정 칼 빼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은 이달 초 치른 정기 임원인사를 통해 400여 명의 임원을 내보냈다. 지난해부터 실시된 사업구조 재편 과정에서 동반된 구조조정까지 포함하면 1년 새 적게는 수백 명, 많게는 천 명 이상이 퇴직했을 것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추측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의 '조직 슬림화'는 끝나지 않았다고 한 관계자는 귀띔했다. '이재용 체제' 하에서 삼성전자와 삼성엔지니어링 경우 실적 부진에 따른 인력 감축이, 지난 9월 출범한 통합 삼성물산은 각 부문의 중복인력에 대한 구조조정이 예상된다고 전했다.

수출 효자에서 불황 산업의 대명사가 된 '조선 빅3(삼성중공업ㆍ현대중공업ㆍ대우조선해양)' 또한 고강도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1~3분기 영업 손실 1조 5318억 원을 기록한 삼성중공업은 임원을 30%가량 내보내고 직원 200여 명으로부터 희망퇴직을 받았다.

지난해 3조 원이 넘는 손실을 낸 현대중공업은 연초 과장급 이상 1300여 명, 여사원 200여 명 등 전 직원의 5%를 내보냈다. 그러나 올해 발생한 1조 2000억 원의 적자가 더해져 지난달부터는 임원과 부서장의 연봉을 10~50% 줄이는 등 고강도 정책을 이어가고 있다.

경영 위기에 처한 대우조선해양은 대주주인 산업은행으로부터 4조 2000억 원을 수혈받으며 구조조정 주문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정용석 산업은행 기업구조조정 본부장은 지난 10월 29일 "1만 명으로 인력 감축을 고려하고 있다"며 구조조정의 뜻을 내비친 바 있다.

금융권도 구조조정의 한파를 피하지 못했다. 신한은행은 올해 1~3분기 동안 300명의 명예퇴직을 진행했으며 우리은행은 240명의 명예퇴직자를 받았다. 농협은행은 지난해 279명을 내보낸데 이어 이달 말 344명의 명예퇴직을 앞두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상반기에만 1122명을 내보냈고,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이달 초 전체 직원의 20%에 달하는 961명과 이별했다. 신한카드는 임직원을 대상으로 지난 23일까지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으며 삼성카드는 지난달 인사에서 임원 수를 대폭 줄인 바 있다.

제약사에선 영업부서를 대상으로 인력 조정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바이엘코리아, 한국노바티스, 한국화이자제약 등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직원들에게 권고사직을 권유하거나 희망퇴직을 신청받아 노사 갈등을 겪는 중이다.

IT업계에서도 구조조정 한파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으로 드러났다. 성장 둔화와 함께 지속되는 불황으로 예산 확보가 어려운 상황에서 기존의 인프라를 유지하기 힘든 IT 기업이 늘어나 추후 인력 감축이 예상된다고 IT 업계 관계자는 귀띔했다.

반면 유통업계는 업황 악화와 구조조정 속에서 순풍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신세계·롯데·현대백화점과 CJ그룹 등은 각 기업이 직면한 문제를 일차적으로 수습하기 위해 당분간은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하지 않을 듯하다고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전했다.

구조조정 한파 내년까지 이어질 듯

올 연말 인사에서 '조직 슬림화'가 최고조에 달하자 내년 전망 역시 어둡다는 관측이 나왔다. 일각에서는 최근 상황을 부실기업들이 쓰러지자 실직자들이 거리에 넘쳐났던 지난 1997년 외환위기 때와 비교하며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 13일 발표한 '2016년 최고경영자 경제전망 조사'에 따르면 현재 경기 상황은 우려 수준으로 나타났다. 국내 최고경영자 235명의 75.7%가 현 경기 상황을 장기 불황으로 평가했고, 40%는 국내 경기 회복이 '상당 기간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상당 기간 어려울 것'이라는 응답은 중소기업(38.2%)보다 대기업(46.3%)에서 높게 나타났다. 이는 세계 경제의 구조 변화에 따른 해외 수출 부진이 중소기업에 앞서 대기업의 실적에 타격을 가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됐다.

나아가 최고경영자들은 내년도 국내 경제성장률을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2016년 국내 경기가 '회복할 것'이라는 응답은 15.9%에 불과했으며 최고경영자의 52.3%가 내년 경영계획의 방향성을 '긴축 경영'으로 꼽아 구조조정 한파가 내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측됐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 또한 내년도 경제성장률을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한국개발연구원이 지난 9일 공개한 'KDI 경제전망'에 따르면 2016년 경제 성장률을 '3% 내외'라고 전망했지만 전제 조건으로 세계 경제 성장률 3.6% 달성 자체가 어렵다고 봐 경기 침체가 이어질 것으로 분석했다.

고용과 관련해서는 내년도 실업률이 올해와 유사한 수준일 것으로 예상했다. 2016년 실업률은 2015년 실업률인 3.7%에서 소폭 하락한 3.6%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봐 장기화된 불황의 여파로 기업들이 내년에도 극도의 구조조정을 지속할 것으로 해석됐다.

이와 관련, 기업분석 전문업체 한국CXO연구소 오일선 소장은 인력 구조조정이 내년 상반기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오 소장은 "채용 인력은 줄어들고 감원 인력을 늘어나 전체 고용은 올해 수준보다 훨씬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저성장세가 내년까지 이어진다는 위기론 때문에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이룰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올해 하반기에는 외형적으로 대기업에서 (인력감축이) 나타나고 있지만 내년에는 중소기업까지 영향을 미쳐 상반기에는 다발적으로 대기업에서부터 중소기업까지 구조조정이 일어날 듯하다"고 전망했다.

또한 "(기업들이) 보통 구조조정을 할 때는 길게 끌수록 다음 계획을 세우는 데 여러 리스크가 커지기 때문에 가능한 빨리 해결하려는 의지가 강하다"며 "내년 하반기라고 구조조정이 진행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주요 기업들은 내년 상반기 중으로 어느 정도 크게 정리하고 가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윤소영 기자 ysy@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