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 통해 미래 청사진 그려…적임자 중용 '신성장동력' 박차

현대차 정의선 부회장이 1월 11일(현지시간) 개막한 '2016 북미 국제 오토쇼'(NAIAS·디트로이트모터쇼)에 마련된 고급브랜드 제네시스 전용관에서 프레스 콘퍼런스 행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
삼성, 바이오 책임자 승진으로 힘 실어줘
현대차, 제네시스 시장 안착 위해 외국 전문가 투입
삼성ㆍLG, 전기차 배터리 위해 신규 조직 설립
SKㆍGSㆍ한화, 신재생에너지 미래 먹거리로 '낙점'
한진해운 '무인항공기', 두산 '면세점'으로 확장 및 노선 틀기
유통업계, 옴니채널 개발로 온ㆍ오프 소비자 지갑 연다

지난 연말,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인사를 통해 미래 청사진을 그렸다. 연말 인사는 대기업의 미래 먹거리를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기업들은 신규 인물의 등용과 기존 인물의 승진으로 미래 먹거리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미국 경제의 침체 조짐, 중국의 저성장, 저유가 현상으로 올해도 세계 경제 시장에는 찬 바람이 불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기업들은 현재에 안주하기보단 향후 수익을 창출해 낼 수 있는 신사업을 찾아야 한다.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것이다.

바이오 힘 실어준 삼성, 외국인 모셔온 현대차

재계 1위 삼성은 신성장동력으로 바이오를 일찌감치 낙점했다. 바이오산업의 경우 지난 2010년, 이건희 회장이 직접 향후 5대 신성장동력으로 꼽은 바가 있다.

고한승 삼성바이오에피스 사장이 1월 1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본사에서 열린 수요 사장단회의를 마치고 건물을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
삼성은 연말 인사에서 기존과 똑같이 엄격한 신상필벌 원칙을 적용했다. 하지만 신성장동력 바이오의 경우 승진 인사를 배출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 고한승 사장이 그 주인공이다. 부사장을 맡고 있던 고 사장은 사장으로 승진해 삼성의 바이오 관련 사업을 진두지휘하게 됐다.

고 사장은 바이오 벤처기업 근무 이력을 갖고 있으며 지난 2000년 종합기술원에 입사해 바이오헬스Lab장을 거쳤다. 삼성의 초창기 바이오사업을 기획했으며 바이어 시밀러 사업 진출에 주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 부사장은 올해 52세로 오너가를 제외한 사장단 중 가장 젊다.

고 사장의 주도로 삼성은 바이오 분야에서 연일 성과를 올리고 있다. 지난달 17일에는 첫 바이오시밀러 제품인 '베네팔리'가 유럽 허가를 받았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 제품이 해외에서 허가를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베네팔리는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엔브렐의 바이오시밀러로 류마티스 관절염, 건선성 관절염, 축성 척주관절염 등 질환에 대해 사용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고 사장은 "2016년을 베네팔리의 유럽 허가로 시작한 만큼 올해는 삼성바이오에피스가 글로벌 바이오제약 회사로 도약하는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이라며 "가격 경쟁력이 있는 베네팔리로 많은 유럽 국가의 의료 재정이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재계 2위 현대자동차는 고급차 시장 공략에 여념이 없다. 정의선 부회장이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제네시스 브랜드를 성공시키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이 같은 현대차의 기조는 지난 연말 인사에서도 묻어났다. 현대차는 제네시스의 성공적인 시장 진입을 위해 해외 전문가를 영입했다. 벤틀리의 전 수석 디자이너 출신인 루크 동커볼케가 현대디자인센터장(전무)에 임명됐고, 람보르기니 브랜드 총괄 임원 출신인 맨프레드 피츠제럴드를 제네시스 전략담당(전무)에 임명했다.

제네시스의 성공 외에도 눈에 띄는 점은 연구 개발 인력을 늘린 것이다. 승진 규모는 2014년보다 15% 감소했으나 연구 개발 인력을 늘림으로써 친환경 자동차, 자율주행차 연구에 전력을 다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인사에서 연구개발 및 기술부문의 승진자는 전체 대상자 중 가장 높은 42.9%(158명)를 차지해 전반적으로 승진자가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강세를 보였다. 친환경 자동차와 자율주행차가 자동차 업계의 '대세'가 된 만큼 현대차 또한 이 분야에서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다. 지난달 14일에는 국산 최초 친환경차인 '아이오닉'을 세상에 내놨는데 이 아이오닉은 신소재와 신기술이 적용된 새로운 플랫폼을 적용했다는 특징을 갖는다. 아이오닉은 향후 현대차가 내놓은 전기차 모델에도 발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계열사 인사에서도 친환경차와 자율주행차의 기본이 될 전장 부품 쪽을 강화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연말 인사에서 전장부품 R&D 역량 강화를 위해 산학협력 전문기업 현대엔지비 대표이사 박정국 부사장을 그룹 내 자동차 전자제어 시스템 전문기업인 현대케피코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 발령했다. 현대차 그룹 측은 인사에 대해 "갈수록 중요도가 높아지고 있는 전장부품 개발 역량을 향상시키고 그룹 내 전산시스템, IT 정보 관리 능력을 비롯해 산학협력과 R&D 인재육성 부문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보다 한 발 앞선 LG의 전자 배터리 사업

LG 역시 연말 인사를 통해 향후 신성장동력의 밑그림을 그렸다. 구본준 부회장이 신성장사업추진단장으로 자리를 옮겨 그룹의 미래 먹거리를 진두지휘한다. 또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서도 승진자를 배출했다.

2014년 연말엔 사장 승진자를 배출하지 못했던 LG화학은 지난해 세 명의 승진자를 배출했다. LG화학 김명환 신임 사장은 배터리연구소장으로 중책을 수행했으며 신규 소재 개발 등을 통한 전지 기술 차별화를 바탕으로 자동차용 전지 및 전력저장 전지 시장을 선도한 성과를 인정받았다.

전기차 배터리의 경우 자동차 기업인 현대차뿐 아니라, 삼성과 LG 모두 관심을 기울이는 분야이다. 삼성SDI는 디트로이트 모터쇼를 통해 한번 충전하면 최대 600km의 주행이 가능한 전기차 배터리셀 시제품을 공개했다. 이 제품은 현재 업계에서 샘플로 제시한 500㎞급 셀보다 에너지밀도와 주행거리를 20∼30% 향상시킨 세계 최고 수준의 전기차용 배터리셀이라고 삼성SDI는 설명했다. 오는 2020년께 양산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SDI 조남성 사장은 "특히 고에너지밀도 배터리셀을 비롯해 초슬림 배터리팩과 LVS 솔루션 등을 통해 글로벌 자동차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전장사업팀 신설은 재계의 큰 관심을 불러모으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9일 단행한 조직개편에서 탄생한 전장사업팀은 기존 사업부서와 별도로 움직이며 기존 삼성 계열사에서 수행하던 자동차 부품 사업의 역량을 집중시킨 조직이라 평가받고 있다.

세계 전기차 시장은 2020년에는 2015년의 2.5배 수준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에선 삼성과 LG가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일단은 시기적으로 먼저 진출한 LG가 한 발 앞서 있다는 평가를 듣는다. LG화학은 지난해 중국 난징에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준공했다. 이로써 LG화학은 미국 미시간주 홀랜드, 충북 오창을 포함해 한-중-미 세 곳에서 전기차 생산 기지를 확보하게 됐다. 이미 현대기아차를 비롯해 GM, 폭스바겐 등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을 고객으로 확보해 둔 상태다.

삼성의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이끌 전장사업팀은 아직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다. 최근 모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전장사업팀은 지난해 조직 신설 이후로 세부 조직이 확정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삼성전자 역시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향후 활발한 사업을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신재생에너지, 새로운 먹거리로

지난 연말 인사에서 변화보다는 안정을 택한 SK 또한 신성장동력 찾기에 여념이 없다.

SK는 지난 연말 인사를 통해 사장단 대부분을 유임했다. 이는 SK 최태원 회장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지난 2년간 그룹을 잘 이끌었다는 최 회장의 평가가 있어서 가능했다.

인사에서는 안정을 택했지만 기업으로서 신성장동력을 발굴하는 건 당연하다. SK는 지난달 27일, 그룹 내 신성장동력을 전담하는 '에너지 신산업 추진단'을 신설했다. 이 조직은 수펙스추구협의회 산하에 위치한다. SK는 신규 조직을 통해 신에너지 분야 발전에 나선다.

SK그룹은 선정 배경에 대해 "신에너지 분야는 기후 변화와 미래 에너지로 인해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돼 전지구적으로 중요성이 매우 커진 분야"라고 설명했다. 또한 "SK그룹이 신년회에서 결의한 'SK그룹만의 이익이 아닌 우리 사회와 경제에 도움되는 방향으로 전략을 세우고 투자한다'는 원칙에도 부합한다"고 말했다.

SK그룹의 이번 결정에는 국가 차원에서 에너지 분야를 최우선 국정과제로 선정해 신성장동력 발굴에 나선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SK그룹은 추진단 설립을 계기로 기술력을 가진 해외 유수 업체뿐 아니라 국내 중소기업들과도 다양한 협력을 해나가기로 했다. 에너지 신사업 추진단의 초대 단장은 유정준 SK글로벌성장위원장이 맡았다. 유 단장은 SK이노베이션을 거쳐 현재 SK E&S 대표를 맡아서 SK그룹의 에너지 사업을 두루 경험하면서 자원개발, 에너지원 다양화 작업을 진두지휘해왔다.

GS그룹 또한 신재생에너지를 키워나가기 위한 인사를 지난 연말 단행했다. 기존 GS E&R 하영봉 사장이 GS에너지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겼고 GS파워 손영기 사장은 GS E&R 대표이사와 GS EPS 대표이사를 겸직하게 됐다.

하영봉 GS에너지 사장은 종합상사에서의 오랜 근무경험을 바탕으로 GS E&R이 자원개발사업과 GS동해전력 건설 등 신시장 개척에서 성과를 거두는 등 GS그룹의 새로운 포트폴리오로 자리잡는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하 사장은 앞으로 신재생에너지 및 국내외 자원개발을 비롯하여 각종 에너지/발전 관련 사업 분야의 성장을 도모해 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GS E&R 대표이사와 GS EPS 대표이사를 겸임하게 되는 손영기 사장은 GS그룹 내 손꼽히는 발전사업 전문가다. 손 사장은 GS E&R의 발전사업 역량을 한층 강화해 나가고, 특히 2016년 완공되는 민간기업 최초의 대규모 화력발전소인 GS동해전력의 안정된 사업화와 GS EPS가 운영 중인 바이오매스(Biomass) 발전소가 신규 성장 사업으로 자리잡는데 큰 역할을 담당할 전망이다.

한화는 미래 먹거리로 태양광 사업을 낙점하고 그룹차원에서 전폭적인 지지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한화큐셀은 미국 에너지회사 넥스트에라와 태양광모듈 공급 계약을 맺고 오스틴에너지와 태양광발전소 건설 계약을 체결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한화큐셀 김동관 상무가 전무로 승진하며 그룹 차원에서 힘을 실어줬다.

옴니채널 구축 중인 유통업계, 두산 뛰어드나

롯데 또한 연말 인사를 통해 변화보다는 안정을 택한 바 있다. 2014년 207명의 임원을 승진 및 신규 선임한 롯데는 전년보다 소폭 줄어든 199명의 임원을 승진 또는 신규 선임했다. 그러나 신성장동력 분야의 임원은 과감하게 발탁했다고 롯데 측은 설명한다. 롯데는 신성장동력으로 ICT(정보통신기술) 분야를 낙점한 바 있다. ICT를 담당하고 있는 롯데정보통신과 현대정보기술은 연말 인사에서 5명의 신임임원을 추가했다. 지난해 2명을 배출한 것에 비하면 대폭 늘어난 숫자다. 이는 롯데가 ICT관련 업종의 임원을 적극적으로 발탁해 향후 그룹의 옴니채널 등 정보통신 기반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특히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아우르는 옴니채널은 유통업계의 새로운 먹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유통업계는 모든 유통채널의 경계를 허물고 소비자가 어디서든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옴니채널 구축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탈하는 고객들을 잡기 위해서라도 유통 기업들은 오프라인 매장과 온라인을 연결시킬 수 있는 옴니채널의 구축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롯데는 L페이, 신세계는 SSG페이, 현대백화점은 H월렛을 내놓으며 국내 주요 유통 기업들이 모바일 간편 결제 시장에 모두 뛰어들었다.

중공업으로 기반을 닦아왔던 두산그룹은 면세점 시장 진출을 통해 유통업계에 발을 디디게 됐다. 두산은 동대문 두타 면세점 승인을 계기로 향후 그룹의 기반을 중공업에서 유통업으로 바꿔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수시 인사를 통해 새 인물을 선임해 왔던 두산은 연말이나 연초에 따로 임원 인사를 하진 않았다. 대신 박용만 회장의 장남인 박서원 오리콤 전무가 두산 면세점 임원을 겸직한 것이 눈에 띈다. 두산은 유통업계에선 후발주자라는 약점을 갖고 있어 이미 탄탄한 오프라인 매장을 구축한 후 옴니채널 확보에 여념이 없는 다른 유통 기업들을 어떻게 따라잡을지 주목된다.

한진그룹은 대한항공을 통해 하늘길을, 한진해운을 통해 바닷길의 새로운 활로를 개척한다. 대한항공은 차세대 항공기와 미래 신사업을 내세웠으며 신규 노선을 늘려가는 데 적극적으로 나설 예정이다. 특히 무인항공기의 경우 한진해운이 내세운 미래 먹거리 사업이다. 한진해운은 무인항공기를 통해 우주산업에 진출할 것으로 보인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장남인 조원태 대한항공 총괄 부사장이 항공과 육송에 이어 해운 계열사 이사로 처음 선임되며 영향력을 높인 점이 눈에 띈다. 지창훈 대한항공 총괄사장은 역대 사장 중 처음으로 3연임에 성공했으며 진에어 대표이사인 마원 상무 또한 전무로 승진되며 전반적으로 LCC(저비용항공사) 사업에도 역점을 기할 것을 시사했다.

전반적으로 대기업들은 연말 인사에서 변화보다는 안정을 택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실적을 거둔 임원과 향후 신성장동력을 이끌어갈 임원을 승진시키면서 힘을 실어주는 방법을 택했다. 현대차의 경우 외국인 전문가 영입을 통해 신규 사업 추진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삼성, LG, SK 등은 신성장동력을 이끌 신규 조직을 개설해 전담 마크를 부탁했다.

세계 경기 침체로 인해 반도체, 철강, 제조업 등 대기업의 기존 성장 동력들의 전망은 밝지 않다. 기업들은 신재생에너지, 사물인터넷, 친환경 등 미래에 각광받을 사업으로 눈을 돌려 미래를 대비하고 있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