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성공단 중단, 대기업 영향은

개성공단 가동 중단으로 입출경 차량들이 없어진 가운데 통일대교 남측에서 바라본 민통선지역. 바리케이드만 대로를 채우고 있다. 사진=연합
현대그룹, 남북경협사업 사실상 중단… 현대아산 피해 심각
삼성물산·LF·코오롱·휠라·이랜드 등 공단 섬유기업 연관
개성공단 가동 중단, 대기업‘납품 걱정’대책 마련 나서
패션 및 유통 기업, 공단 관련 기업 자금 지원‘팔 걷어’
사태 장기화되면 거래 중단할 수도… 미래 불투명

전격적으로 단행된 개성공단 가동 중단을 놓고 정ㆍ재계에선 갑론을박이 뜨겁다.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촉발된 남북관계 위기에 따라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입장과 개성공단 입주 기업과 그로 인한 경제적 효과를 묵살한 것이라는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국내 대기업의 경우 현대그룹을 제외하곤 개성공단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개성공단 입주 업체들과의 거래로 납품 물량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남북관계의 경직으로 개성공단이 몇 차례 가동 중단 위기를 겪은 탓에 대기업들은 타 공장과의 거래를 통해 납품 물량을 제때 해결할 수 있게끔 대책을 세워놓은 듯하다. 또 ‘상생’을 강조하며 협력사와의 거래를 끊지 않고, 필요하다면 금전적 지원까지 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공장 가동 중단이 장기화될 경우 대기업들 입장에서도 이번 개성공단 중단 사태는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

하루아침에 수입원 잃게 된 입주 기업들

정부는 2월 10일,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응해 개성공단 가동을 전면 중단하는 조치를 내렸다.

통일부는 공식 입장을 통해 개성공단 자금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에 이용되는 것을 막고, 기업들이 희생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개성공단 가동을 중단한다고 설명했다. 통일부는 “지금까지 개성공단을 통해 북한에 총 6160억원의 현금이 유입되었고, 작년에만도 1320억원이 유입되었으며, 정부와 민간에서 총 1조 190억원의 투자가 이루어졌는데, 그것이 결국 국제사회가 원하는 평화의 길이 아니라, 핵무기와 장거리미사일을 고도화하는 데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하지만 갑작스런 정부의 조치에 개성공단에 입주해 있는 124개의 기업들은 하루 아침에 수입원을 잃어버리게 됐다.

개성공단에 입주해 있는 기업들은 현대아산을 제외하곤 대부분 중소기업이다. 이들은 북한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 수익을 내왔다. 그러나 정부의 전격적인 조치에 입주 기업들은 제대로 짐을 싸지도 못하고 터전을 상실하게 됐다.

대기업의 경우 현대아산이 주도적으로 남북 경제협력사업을 벌여 왔다. 금강산 관광 중단에 이어 현대아산은 사실상 남북경협사업을 중단하게 됐다.

발등 불 떨어진 현대, “남북경협 사실상 중단”

남북 경제협력 사업을 주도적으로 진행해왔던 현대그룹은 이번 개성공단 가동 중단 조치로 인해 더 큰 암초를 만나게 됐다.

특히 개성공단, 금강산 사업 등 그룹 내에서 남북 경협 사업을 주도적으로 진행했던 계열사 현대아산의 경우 사업 명분을 잃게 됐다.

현대아산의 대주주인 현대엘리베이터는 공시를 통해 “당사의 자회사인 현대아산이 정부의 개성공단 가동 전면중단 결정에 따라 현대아산의 주요사업인 남북경협 사업이 사실상 중단됐다”고 밝혔다. 영업활동 중단분야의 매출액은 약 284억원이다.

현대아산은 개성공단 내에서 숙박시설인 송악프라자와 송악프라자 내 면세점, 한누리 주유소 등을 운영해왔다. 정부의 개성공단 가동 중단 발표 이후 개성에 머무르던 직원 20여명은 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그룹은 현대상선 실적 부진과 남북관계 긴장으로 큰 위기를 겪고 있다. 현대상선 실적 부진의 경우 대규모의 자구안을 마련한 바 있다. 현대그룹은 지난해 매각이 무산된 적 있었던 현대증권 등 금융 3사에 대한 공개 매각과 대주주 사재출연에 착수한다고 지난 2일 밝혔다. 사재 출연의 경우 현대상선이 보유 중인 현대증권 지분 담보대출과 현대아산 지분 매각으로 700억원을 조달하고 현정은 회장이 별도로 300억원 규모의 사재를 출연해 1000억원의 긴급 유동성을 공급한다.

이렇게 긴급 자구안 마련으로 현대상선에 놓인 ‘발등의 불’은 껐지만 개성공단 가동 중단으로 현대그룹은 또 한번의 위기를 맞게 됐다. 현대아산은 국내 남북 경제협력 사업을 주도해 온 산 증인이다. 그룹 차원에서도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며 현정은 회장 역시 현대아산에 큰 애착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명인 ‘아산’은 창업주인 정주영 명예회장의 호이며 현 회장의 남편인 고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 역시 대북사업에 큰 관여를 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현대아산은 끊임없는 위기를 겪어 왔다. 지난 2010년 천안함 피격후 이명박 정부가 내린 5ㆍ24 경제제재 조치 이후로 개성공단에 신규 투자를 금지당했으며 북한 핵 실험 이후 개성공단 체류 인원이 제한을 받으며 숙박 사업에서도 수익을 거두기 힘들어졌다. 관광 사업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 피살 사건 이후 금강산 관광 또한 중단했고, 같은 해 12월 북한의 조치로 개성관광 역시 중단된 바 있다.

그 후 현대아산은 국내 건설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아파트, 오피스텔 등 건설 사업을 비롯해 MICE(국제회의, 관광, 컨벤션, 전시) 사업으로 수익을 올리려 했다. 하지만 남북 경협 사업의 중단은 현대아산에겐 치명타였다. 지난해 현대아산의 1∼3분기 매출액 1073억원에 영업손실 35억원을 기록했다. 인적 규모도 1000여명에서 현재 200여명의 직원으로 줄었다.

이번 개성공단 중단으로 현대아산은 남북경협 사업을 철수하게 됐다. 현재로서는 개성공단이 재개될지, 폐쇄될 지 알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현대그룹은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잇달아 ‘상생’ 밝힌 대기업들

개성공단에는 총 124개의 기업이 입주해 있다.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에 따르면 입주 기업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기업은 섬유 기업으로 58%를 차지한다. 그 뒤를 이어 기계금속, 전기전자, 화학 등 생산 기업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섬유 기업들은 패션 대기업과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이에 따라 삼성물산 패션 부문, LF 등은 개성공단 가동 중단에 따른 대책을 세우고 있다.

개성공단 가동 중단 결정이 내려진 후 지난 15일, 패션 대기업들은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과의 거래를 계속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업계에 따르면 남북관계가 한창 긴장 관계에 들어섰던 지난달 중순, 삼성물산은 1차 협력 업체들과 간담회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물산은 로가디스 등 남성복 부문을 개성공단에서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LF는 3개의 개성공단 입주 기업과 거래하면서 셔츠, 잡화 등을 생산하고 있다. 코오롱Fnc, 휠라, 이랜드 등도 개성공단 업체들과 거래를 하고 있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섬유 기업들은 대기업과의 거래가 끊길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이러한 걱정과 여론 때문인지 패션 대기업들은 오랜 시간 동안 거래를 지속해 온 만큼 당장 입주 기업들과의 거래를 철회하지는 않을 것이라 밝히고 있다. ‘상생’을 강조하는 것이다. 하지만 속내는 그리 편치만은 않다. 남북관계가 긴장 국면에 들어서면서 패션 기업들 입장에선 납품을 받지 못할까봐 조마조마해 왔다는 것이다. 특히 공단 가동 중단이 장기화될 경우, 전반적인 대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물산 패션 부문은 전체 물량의 3~4%를 개성공단에서 납품받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다. 남북관계 경직으로 개성공단이 몇 차례 위기를 겪으면서 생산 라인 또한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일대로 분산시켜 놨기 때문에 큰 지장을 입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패션 기업들 또한 ‘상생’을 강조하긴 했지만 무작정 기다리기보단 국내 및 해외 공장을 통한 가동으로 대책을 강구할 전망이다. 패션 기업뿐만 아니라 유통 기업들도 개성공단 기업들과의 상생을 강조하고 있다. 롯데마트는 개성공단 중단으로 피해를 보고 있는 입주 파트너사들을 돕기 위한 지원 활동에 나선다고 밝혔다. 롯데마트는 ‘좋은사람들’, ‘평화유통’ 등 기존 거래하고 있던 12개 파트너사와 연간 100억원의 매입액을 지속적으로 유지해 나가며 이를 통해 파트너사의 피해를 최소화할 것이라 밝혔다. 또 향후 상기 협력사의 재고 보유상품 처분이 필요할 시 롯데마트 점포를 활용해 재고 처분 행사를 지원하고, 파트너사가 요청하면 100억원 규모의 동반성장펀드를 활용해 낮은 금리로 대출을 지원해주는 자금 지원도 진행할 전망이다. 류경우 롯데마트 대외협력부문장은 “개성공단 중단으로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파트너사들에게 힘이 되기 위해 이번 지원 활동을 기획했다”며 “앞으로도 파트너사들과의 상생 활동을 위해 지속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백화점그룹 계열 현대홈쇼핑 또한 개성공단 전면중단에 따라 어려움을 겪게 된 ‘세신 퀸센스’, ‘AD 인터내셔널’, ‘슈 크레이션’, ‘좋은 사람들’ 등 4개 협력사에 상품개발기금, 무료 방송, 무이자 대출 등 총 17억여원을 지원한다. 현대홈쇼핑 관계자는 “지난 10일 정부의 개성공단 전면중단 발표 직후 개성에 대량생산 설비가 있는 홈쇼핑 협력사들을 대상으로 긴급 조사를 진행한 결과 30억원의 원자재 및 완제품이 개성에 남아있는 것으로 조사됐다”며 “이들을 돕기 위해 이번 지원 대책을 신속하게 결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CJ제일제당 역시 거래 업체 돕기에 나섰다. CJ제일제당은 개성공단에 생산 공장을 둔 식품 용기 마개 전문 생산업체 ㈜성림에 10억원의 금융지원을 하기로 했다. ㈜성림은 식초, 콩기름 등 CJ제일제당 식품 4종의 병 마개를 공급하고 있고 CJ헬스케어의 숙취해소음료 ‘컨디션’의 마개도 공급하고 있다. 연간 거래규모는 CJ제일제당과 CJ헬스케어를 합쳐 43억 원 가량이다. CJ제일제당은 자금 지원과 함께 개성공단이 중단된 만큼 ㈜성림이 운영하고 있는 인천 공장으로 개성공단 생산 물량을 이전해 성림의 기존 거래 물량을 계속 유지하기로 했다. 박태준 CJ제일제당 전략구매팀장은 “㈜성림은 기술력이 뛰어난 우수 협력업체로, CJ제일제당 입장에서 매우 소중한 협력회사다. 이번 개성공단 폐쇄로 경영상 어려움이 없도록 금융지원과 함께 기존 거래물량을 지속 유지해 우수한 상생관계를 이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에너지 업계도 다소 피해를 볼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공단 가동 중단을 선언하면서 개성공단으로 가는 에너지도 공급이 끊어지게 됐다. 규모는 미미하지만 E1(전 LG칼텍스가스), 현대오일뱅크 등은 개성공단의 연료 및 경유 공급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특히 현대오일뱅크는 현대아산이 운영하던 주유소에 휘발유 및 경유 등을 공급해왔는데 현대아산이 남북경협사업을 중단하게 됨으로써 공급도 끊어지게 됐다.

대기업들은 전반적으로 ‘상생’ 기조를 유지하는 추세다. 이는 지난 2013년과는 사뭇 달라진 분위기를 반영한다. 지난 2013년, 북한의 개성 공단 폐쇄 결정으로 개성공단 가동이 중단되자 일부 패션 기업들은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과의 거래 중단을 선언해 여론의 질타를 받은 적이 있었다. 특히 이번 경우에는 북한이 아닌 우리 정부가 직접 ‘중단’ 카드를 꺼내든 만큼, 입주 기업들과의 상생을 꾀하며 피해 규모를 최소화하는 방법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공장 가동이 정상화되더라도 이미 몇 차례 납품 위기를 겪은 대기업들이 계속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과 거래를 이어갈지는 미지수다. 개성공단 기업 관계자는 “예전부터 개성공단이 가진 위험성 때문에 대기업들이 물량 공급을 중단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있어왔다. 중소 업체들은 대기업과의 거래로 먹고 살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한폭탄’ 남북경협 사업, 뛰어들기 쉽지 않아

개성공단 측은 그 동안 공단 활성화를 꾀하기 위해 삼성, 현대자동차 등 대규모 기업이 공단에 입주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번 개성공단 전면 중단화로 이는 ‘바람’으로 끝나게 됐다. 대기업들 입장에선 많은 불안 요소를 갖고 있는 개성공단에 참여할 만한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나진-하산 프로젝트’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러시아산 유연탄 수송을 위해 러시아 극동 하산과 북한 나진항을 잇는 철도길을 여는 프로젝트다. 하지만 프로젝트 역시 경직된 남북 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정부는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한 대북 제재 방침에 따라 나진-하산 프로젝트 또한 무기한 연기하는 방향으로 가게 됐다. 이는 북한으로 흘러갈 수 있는 자금 유입을 막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만약 나진-하산 프로젝트가 실현된다면 우리는 북한에 나진항 사용료를 지급해야 한다. 나진-하산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기업들은 포스코, 코레일, 현대상선이다. 당초 정부는 지난해 말 수출입은행을 통해 나진-하산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기업들 세 곳에 남북협력기금 1000억원을 연 2%의 낮은 이자를 받고 대출해주기로 했었다. 하지만 지난 6일 북한 핵실험으로 정부의 대북 제재가 강화되면서 이는 전면 백지화되게 됐다.

애초부터 위험 요소를 안고 있었지만 이번 개성공단 가동 중단 사태로 남북 경제협력 사업의 불씨는 꺼지게 됐다. 특히 현대그룹의 경우 그룹의 중요한 상징 중 하나였던 남북경협이 중단되면서 큰 타격을 받게 됐다. 나머지 대기업들은 향후 공단 중단 추이를 지켜본 후 납품에 대한 대책을 세울 것으로 보인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