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號 실용주의 노선에 제일기획 매각설 '솔솔'… 후계구도영향주나

앞줄 왼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 등 삼성 일가가 지난해 10월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3차전 두산과 삼성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사진=연합
佛 광고회사 퍼블리시스, 제일기획 인수 가시화
제일기획, "확정된 것 없으나 협의 중"
실용주의 노선 택한 이재용, 주력 계열사 빼곤 '다 바꿔'
이서현 사장, 이미 패션 부문에 집중… 후계 구도 변화 조짐
제일기획 매각시 삼성 스포츠 위축 가능

국내 1위 광고 회사 ‘제일기획’이 삼성의 그늘을 벗어날까? 지난주 재계에서는 삼성그룹의 제일기획 매각설이 화두에 올랐다.

그동안 외신 보도를 통해 각종 ‘설’이 무성했지만 이번 매각설은 구체적인 외국계 기업의 이름까지 거론되고 있다. 프랑스 광고회사 퍼블리시스가 그 주인공이다. 제일기획은 퍼블리시스를 통해 외국 광고주와의 연결을 용이하게 할 수 있고 퍼블리시스는 삼성 계열사 광고와 함께 아시아 시장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돼 양사 모두 유리한 결정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번 매각설의 주인공은 제일기획이지만 향후 또 다른 계열사가 매각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아직은 ‘설’에 불과하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실용주의 노선에 맞춰 봤을 때 전자, 금융, 바이오를 제외한 계열사들의 매각은 ‘현재 진행형’인 것이다.

한편 재계는 이번 제일기획 매각설이 삼성 후계 구도에도 영향을 줄 것인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통상적으로 차녀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 부문 사장의 몫으로 여겨졌던 제일기획이 매각설에 휘말리며 삼남매의 계열 분리 시나리오가 무너졌다는 분석이다. 이미 지난해 통합 삼성물산 출범으로 제일기획 사장직을 내려놓은 이 사장은 패션 부문에만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이건희 회장의 뒤를 이어 삼성의 전반적인 스포츠 마케팅은 이서현 사장의 남편인 김재열 제일기획 스포츠부문 사장이 지휘하고 있다. 그런데 이 스포츠 사업이 이번 매각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제일기획ㆍ퍼블리시스, ‘윈윈 효과’ 이룰 수 있을까

지난해 강도 높은 사업영역 개편에 나섰던 삼성이 이번엔 광고 계열사 정리에 나섰다. 광고, 스포츠마케팅을 전담하고 있는 제일기획 매각설이 불거진 것이다.

지난 22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은 제일기획을 프랑스 광고회사 퍼블리시스에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중으로 알려졌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퍼블리시스는 제일기획 지분 30%를 공개 매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에 대해 지난 17일, 수요 사장단 회의에 참석한 임대기 제일기획 사장은 매각설에 대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매각 추진에 대해선 “(외신 등에서) 계속 나왔던 얘기”라 언급했다.

하지만 그 날 오후, 제일기획 측은 공시를 통해 “글로벌 에이전시들과 다각적 협력 방안을 논의 중”이라 밝혔다. 확정된 것은 없으나 매각 진행 가능성을 열어 둔 답변으로 해석된다.

이 와중에 제일기획은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에 있는 별관을 삼성물산에 매각한다고 밝혔다. 금액은 256억2500만원이다. 제일기획 관계자는 이에 대해 “무수익 자산 처분에 따른 향후 투자재원 확보를 위한 것”이라 설명했다. 하지만 삼성그룹의 실질적 지주사인 삼성물산이 이번 매입을 한 것이 심상치 않다는 지적도 돈다. 지주회사 전환에 필요한 자금 확보와 매각과 동시에 회사를 떠나거나 소속을 옮겨야 할 직원들의 위로금을 주기 위한 총알을 장전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제일기획 매각의 주체로 알려진 프랑스 광고회사 퍼블리시스는 미국, 유럽에서 매출 80%를 올리고 있다. 제일기획을 인수함으로써 아시아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넓혀갈 것으로 보인다. 퍼블리시스는 지난 2014년부터 M&A 40건을 성사시키며 적극적으로 인수 합병에 나서고 있다.

따라서 이번 매각으로 제일기획과 퍼블리시스가 모두 ‘윈-윈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퍼블리시스는 제일기획 인수를 통해 아시아 시장 비중을 늘리고, 상대적으로 삼성그룹 광고에 치우쳐있던 제일기획은 다양한 국제 광고주들의 일감을 갖고 올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KDB대우증권 문지현 연구원이 분석한 ‘제일기획, 지분변동 시나리오 점검’에 따르면 퍼블리시스와 제일기획은 합병을 통해 아시아를 포함한 미주 시장에서 영향력을 넓혀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제일기획은 지난해 중국 시장에서 매출액 8732억원, 순이익 465억원을 거둔 것으로 집계된다. 이는 전체 실적 기여도에 매출 31%, 순이익 57%에 달한다. 퍼블리시스의 경우 중국시장 수익을 따로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제일기획이 중국에서 이미 사업이 확고하게 자리잡은 상황이라 퍼블리시스와의 보완 하에 점유율을 높여갈 것으로 보인다.

관건은 유럽이다. 유럽의 제일기획 네트워크는 삼성전자 매출 의존도가 높은 현지 법인이 대부분이다. 퍼블리시스는 프랑스의 본사가 있는 유럽 중심의 그룹들로 수많은 브랜드 기업들의 광고를 통해 유럽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국내의 경우 퍼블리시스의 어떤 자회사보다 제일기획의 매출액이 10배 높으므로 기존 사업의 틀이 유지될 것으로 봤다.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문지현 연구원은 “현재 제일기획의 지분 변동이 베스트 시나리오는 아닐지라도 물량이 즉시 감소하는 최악의 경우는 아닐 것”이라 평가했다. 또 계열 물량의 유지 조건이 5년 정도는 가능하고, 삼성그룹의 실용주의 경영 노선을 감안했을 시 다른 인하우스 광고사가 설립될 가능성이 제한적이라는 점에서도 제일기획의 미래를 밝게 한다고 분석했다.

국내 1위 광고 회사도 피하지 못한 ‘실용주의 행보’

제일기획은 지난해 매출액 2조8607억1400만원, 영업이익 1272억1800만원으로 전년도와 비교했을 때 매출액은 5.27%, 영업이익은 0.35% 상승해 비교적 안정적 실적을 내고 있다. ‘삼성’이라는 브랜드를 등에 업은 명실상부 국내 1위 광고 회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회장이 제일기획 매각 카드를 꺼내든 것은 그룹 차원에서 비주류 계열사는 모두 정리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이재용 부회장은 급격한 실용주의 노선을 택한 후 유력 사업이 아닌 분야는 과감히 정리하고 있다. 지난해 삼성은 통합 삼성물산 출범을 통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에 성공했다. 또 석유, 화학, 방산 계열사를 한화와 롯데에 매각함으로써 실탄을 챙기고 비주력 계열사를 과감히 정리했다.

제일기획 매각설 또한 이러한 움직임에서 시작됐다. 전자, 금융, 바이오를 제외한 모든 계열사들이 매각 대상이라는 것이다. 특히 기존 제일기획 사장과 제일모직 사장을 겸직하던 이건희 회장의 차녀 이서현 사장이 통합 삼성물산 출범 후 패션 부문에 집중하는 것으로 보직 변경이 되면서 제일기획 매각설이 힘을 얻기도 했다.

최근 삼성은 지주회사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원샷법의 통과로 지주회사 전환의 청신호가 켜진 가운데 삼성생명이 삼성카드의 지분을 인수하며 삼성카드 1대 주주에 등극했다. 삼성생명은 지난달 28일, 삼성전자가 보유했던 삼성카드 지분 37.45%를 1조 5405억원에 인수해 1대 주주에 올라섰다. 재계에서는 이를 금융지주사 전환을 위한 장기적 포석이라 분석한다. 지배구조의 단순화로 금융은 삼성생명 아래로 모이고 통합 삼성물산 합병으로 주력 사업 부문을 묶어 양 날개를 구축했다는 지적이다. 특히 최근 통과된 ‘원샷법’으로 지주회사 전환이 쉬워져 전환 속도에 가속화가 붙게 됐다.

이렇듯 최종적으로 삼성물산을 중심으로 한 지주회사 전환을 하기 전 제일기획을 비롯해 비교적 주력 사업 부문에서 빗겨난 계열사들의 매각이 더 이뤄질 수도 있다. 실제로 지난해부터 삼성그룹의 계열사들은 끊임없는 ‘매각설’에 시달려야 했다. 지난해 불거진 삼성카드 매각설은 지난달 삼성생명이 삼성카드의 지분을 인수하면서 사그러들었다. 지난 23일에는 의료기기 자회사 삼성메디슨의 매각설이 의료 업계에서 나왔으나 삼성전자는 이를 부인했다.

이번 제일기획 매각설 또한 임대기 사장이 직접 기자들을 만나 부인했으나 제일기획은 곧 공시를 통해 ‘협의 중’이라 밝힌 바 있다. 구체적인 사항은 아직까지 정해지지 않았으나 일단 지분 매각 과정이 이뤄진다는 점은 인정한 것이다.

삼성 라이온즈, 제일기획 매각의 걸림돌?

대기업 광고 계열사의 경우 모회사의 광고라는 안정적 일감을 갖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일감 몰아주기’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대기업이 광고 회사를 운영할 경우, 모기업의 전반적인 마케팅을 전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동시에 몸집을 줄이기 위해선 1순위 매각 대상이 되기도 한다.

정부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와 광고 시장 정체로 주요 대기업 계열 광고 회사들은 많은 부침을 겪었다. 이에 따라 대기업들은 광고 회사를 정리하거나 혹은 몸집을 키우는 쪽을 택했다. 한화와 포스코가 대표적 사례다. 지난해 한화그룹은 광고계열사 한컴을 204억원에 두산그룹 광고계열사 오리콤으로 넘겼다. 포스코 역시 광고계열사를 매각했다.

반면 몸집을 키운 광고 계열사들도 있다. 한컴과의 합병으로 몸집을 키운 오리콤의 경우 두산그룹 박용만 회장의 장남 박서원 오리콤 부사장이 직접 진두지휘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광고 계열사인 이노션은 지난해 미국 광고 대행사인 호라이즌미디어와 합작사를 설립했다. 이노션은 정몽구 회장의 장녀인 정성이 고문이 27.99%의 지분을 갖고 있는 대주주이다. 신세계그룹의 이마트 역시 3월 정기 주총을 통해 광고업 진출을 타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정용진 부회장의 의지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박서원 두산 오리콤 부사장, 정성이 현대이노션 고문을 비롯해 오너가 자녀들이 광고 계열사 경영에 전면적으로 참여한 것처럼 삼성그룹에선 제일기획이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의 몫으로 분류됐었다. 삼성그룹의 후계 구도는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전자 및 금융,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호텔 및 유통, 차녀 이서현 사장은 패션과 광고를 맡는 쪽으로 일단락된 듯했다. 이서현 사장의 남편인 김재열씨가 제일기획 스포츠단 사장을 맡고 있는 것 또한 이 시나리오에 힘을 실어 줬다.

그러나 이번 제일기획 매각설로 인해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사장의 계열분리는 가능성 없는 시나리오가 됐다. 특히 제일기획 매각으로 이서현 사장의 입지가 축소되지 않겠냐는 지적도 돈다.

당초 제일기획과 삼성물산 패션 부문 사장을 겸직했던 이서현 사장은 지난해 통합 삼성물산 출범 후 제일기획 사장직을 내려놓고 삼성물산 패션 부문 사장을 맡는 것으로 보직이 변경됐다. 삼성 측은 이에 대해 지난해 12월부터 이서현 사장은 패션 부문에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물론 이서현 사장이 제일기획을 떠난 것이 이미 매각을 고려한 절차였다는 의견도 있다.

제일기획 매각의 가장 큰 걸림돌은 스포츠 사업이다. 현재 삼성의 모든 스포츠 사업은 제일기획이 총괄하고 있다. 축구단 수원 삼성을 비롯해 남녀 농구, 배구단 운영을 맡아왔으며 지난해에는 삼성 라이온즈 주식 12만9000주를 6억7596만원에 인수해 통합 절차를 마무리했다.

그동안 삼성이 운영해 왔던 스포츠단이 전부 제일기획에 속해 있는 상황에서 삼성그룹이 제일기획 매각을 통해 스포츠 사업에도 차차 투자를 줄이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삼성이 제일기획 매각을 고려했는데도 불구하고 스포츠 사업의 이관을 차차 진행했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매각 주체인 퍼블리시스가 스포츠 사업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스포츠 사업은 ‘골칫덩이’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사실 외국 광고 회사가 국내 스포츠 사업에 관심을 가질 가능성은 전무하다. 이는 삼성그룹이 스포츠 사업을 타 계열사로 이관하거나, 혹은 아예 다른 국내 회사로 매각하는 방안을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삼성이 스포츠 사업에서 쉽사리 손을 떼지 못하리라는 관측도 있다. 이건희 회장의 경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 등 스포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개인적으로도 삼성라이온즈 지분 2.5%를 갖고 있다. 아버지 때부터 지원을 아끼지 않아 왔으며 상징적 의미도 큰 스포츠 사업을 쉽사리 넘기는 게 이재용 부회장 입장에선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이재용 부회장이 실용주의 노선을 탄 이상, 상징적 의미를 가졌다는 이유로 스포츠 사업을 정리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재계 관계자는 “스포츠를 제일기획으로 전부 이관한 것이 심상치 않다. 만약 스포츠 사업이 수익을 내지 못한다고 판단할 경우, 정리하는 쪽을 택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국내 스포츠 구단들은 모기업의 지원을 받고 운영되는 실정이다. 삼성 라이온즈 역시 지난해 순손실 171억원을 기록했다. 시간이 날 때면 야구장을 찾아 삼성 라이온즈를 응원하던 모습이 종종 포착되던 이 부회장이지만, 과감한 실용주의 행보에서 스포츠 사업도 예외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