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분명한데 가해자는 아리송…애경ㆍSK케미칼 책임 추궁

애경의 '가습기메이트' 사용으로 인한 폐섬유화 발병을 주장하는 박나영 양의 흉부 CT사진. 흰색 반점들이 폐 전체를 뒤덮고 있어 폐섬유화 진행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애경 '가습기메이트' 사용 후 폐질환 호소 잇따라
피해자, 애경 전ㆍ현직 임원 19명 검찰에 고발
'가습기메이트' 주성분 유해성 여부 '핵심'
애경 이어 SK케미칼 또한 책임 논란 중심에 서

지난해 9월 본지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가족모임(피해자모임)과 환경보건시민센터가 가습기 살균제 '옥시싹싹'의 제조ㆍ판매 본사인 레킷벤키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에 돌입했다고 보도했다. 해당 소송은 곧바로 영국에서 시작됐고 현재 진행 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로부터 6개월이 흐른 지난 7일 피해자모임은 가습기 살균제 '가습기메이트'의 판매사인 애경의 전ㆍ현직 임원을 검찰에 고발했다. 애경의 '가습기메이트'를 사용한 이후 사망하거나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해당사 책임자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게 피해자 측 주장이다.

문제는 2011년 보건복지부 조사에서 '가습기메이트'는 폐질환 소견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피해자모임과 환경보건시민센터가 '가습기메이트' 주성분의 인체 유해성에 대한 보건 당국의 재조사를 촉구하고 있는 가운데 이를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을 살펴봤다.

애경 '가습기메이트' 피해 여럿

가습기살균제피해자가족모임과 환경보건시민센터가 인체 유해성을 지적한 애경의 가습기살균제 '가습기메이트'
지난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연건동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는 '애경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례 발표 및 임원 고발'이라는 주제로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현장에는 '가습기메이트'를 사용한 뒤 정부 조사에서 1등급 '관련성 확실' 판정을 받은 박나원(5) 양이 참석했다.

박나원 양은 목 정면에 산소호흡기를 착용한 모습이었다. 박 양의 부친인 박영철씨에 따르면 박 양이 태어난 2011년 10월부터 '가습기메이트'를 집안에서 사용했으며 2012년부터 박 양의 이상 증세가 포착됐다.

박영철씨는 "2012년 당시 13, 14개월부터 증상이 나타났고 중환자실에서 48일 동안 입원한 후 계속 목에 산소호흡기를 끼고 있다"며 "돌보느라 제대로 생활이 안 됐고 치료기구들을 사느라 돈도 많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이날 공개된 박 양의 흉부 CT사진 속 폐는 크고 작은 하얀 반점들로 뒤덮여 있었다. 이는 폐 조직이 딱딱하게 굳는 폐 섬유화가 진행된 모습으로 폐가 제 역할을 할 수 없어 결국 박 양은 2013년 기관지를 절개하고 산소호흡기를 달아야 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온 가족이 '가습기메이트'를 사용한 이후 천식을 겪고 있다고 주장하는 여성도 참석했다. 그에 따르면 본인을 비롯한 남편과 자녀 두 명이 2014년 정부 조사에서 4등급 '가능성 거의 없음' 판정을 받았으나 일생생활에 큰 지장을 받고 있다고 했다.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소장이애경의 전·현직 임원을 상대로 검찰에 고발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이외에 환경보건시민센터 측은 '가습기메이트' 사용으로 인한 피해 사례를 추가적으로 소개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에 따르면 경기도에 거주한 아동의 경우 위의 여성처럼 지난해 정부 조사에서 4등급 '가능성 거의 없음' 판정을 받았으나 결국 사망에 이르렀다.

또한 '가습기메이트'를 사용하던 중 쓰러져 10년 간 산소호흡기를 착용했던 대구의 한 남성은 지난해 9월 사망했다. 애경이 제조한 이마트의 '이플러스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던 서울의 한 여성은 폐섬유화로 휠체어 없이는 이동조차 불가능한 상태로 알려졌다.

애경 전ㆍ현직 임원 19명 고발

피해자모임과 환경보건시민센터는 기자회견에서 "애경은 1, 2차 (정부) 조사에서만 사망 27명, 상해 101명 등으로 옥시레킷벤키저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피해자를 낸 살인 기업"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장영신 전 대표이사 등 19명의 애경 전ㆍ현직 임원들을 처벌해야 한다"며 "오후 1시 30분부터 30분 동안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1인 시위를 할 예정이고 이후 오후 2시에 고발장을 접수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들이 문제삼은 '가습기메이트'는 2011년 복건복지부의 실험용 쥐 조사에서 폐질환이 나타나지 않아 다른 제품에 비해 독성이 적다는 판정을 받았다. 이로 인해 지난해 9월 경찰이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사 8곳을 기소할 때도 애경은 제외됐다.

지난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본사 앞에서 가습기살균제피해자모임과 환경보건시민센터 회원들이 SK케미칼 전·현직 임원 고발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에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소장은 "지난해 정부가 (가습기살균제) 피해 추가 신청을 받으면서 애경 제품만 사용했는데도 심각한 호흡기 질환을 겪은 환자들과 사망자들이 접수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부 2차 조사에서 (2등급) '가능성 높음' 판정을 받은 환자가 지난해 8월 사망했는데 애경 제품만 사용했다"며 "부산의 어린이는 (1등급) '관련성 확실' 판정을 받고 목을 뚫어 호흡하는 등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고 덧붙였다.

국내 시판된 가습기 살균제들은 각 사마다 3가지 살균성분을 사용하고 있다. 레킷벤키저ㆍ롯데ㆍ홈플러스의 가습기 살균제는 PHMG를, 세퓨ㆍ아토오가닉의 제품은 PGH를, 애경ㆍ이마트ㆍGSㆍ다이소의 제품은 CMIT/MIT를 주성분으로 한다.

보건복지부의 2012년 동물실험에선 3가지 성분 중 독성 강도가 PGH, PHMG, CMIT/MIT순으로 CMIT/MIT의 유해성은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더불어 1, 2차 정부 조사에서 CMIT/MIT가 포함된 제품의 사용자 대부분은 3등급 '가능성 낮음'또는 4등급 '가능성 거의 없음'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최예용 소장은 "독성학 전문가들이 CMIT/MIT는 상대적으로 독성이 약하다고 판단해 CMIT/MIT를 넣은 제품으로는 사망이나 중증 피해가 나오기 어렵다고 봤다"며 "CMIT/MIT를 넣은 제품만 사용한 사례에서도 피해가 큰 사례가 나왔다"고 주장했다.

1차 정부 조사에 참여했던 안정성평가연구소 김용화 전 연구원 또한 "초기엔 애경 제품에 들어간 성분의 인체위해성이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됐으나 독성이 적은 것이지 없는 것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시간이 지나면서 CMIT/MIT (성분이 포함된) 제품 단독 사용자 중에서 1, 2등급 판정이 나오고 있고 사망한 사례도 있다"며 "제품위해성에 대한 추가조사 및 위해성평가의 결과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피해자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는 안성우씨도 "독성이 약하다는 인식 때문에 CMIT/MIT를 넣은 제품을 추가로 조사하지 않았다"며 "독성이 약하다고 해서 피해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검찰이 애경을 조사해서 처벌할 수 있도록 고발장을 접수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오후 피해자모임과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애경의 안용찬 현 대표이사를 비롯한 19명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이들은 고발장을 통해 "검찰조사에서 이 부분이 제대로 짚어지고 나아가 정부가 추가로 조사하도록 해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고 취지를 전했다.

"애경은 판매만, SK케미칼 제품"

2000년대 들어 국내에 원인 미상의 폐질환 사례가 급증하자 보건복지부는 2011년 역학조사, 동물실험 등을 통해 가습기살균제와 폐질환의 상관관계를 조사했다. 그 결과 이듬해인 2012년 가습기살균제 성분인 PHMG, PGH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사실을 공표했다.

피해자모임과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사망 및 피해 사례를 들며 CMIT/MIT의 인체 유해성에 대한 보건 당국의 재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정부의 1차 조사위원회 책임자였던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또한 "판정기준이 폐손상 중심인데 천식이나 비염을 일으킬 수 있는지 면밀히 조사해 이를 판정기준에 반영해야 한다"고 전했다.

보건복지부는 이를 산하기관인 질병관리본부와 추후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 질병정책과 한 관계자는 "질병관리본부 소관으로 돼 있다. 그 쪽에 위원회가 있고 가습기살균제 피해도 질병관리본부에서 책임을 많이 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질병관리본부) 위원회에서 1차적으로 진행하고 이쪽으로 연락이 오면 진행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질병관리본부 측 담당부서는 "담당 연구원이 국외 출장 중"이라며 추가적인 답변을 주저했다.

CMIT/MIT의 인체 유해성 여부가 논란 종결의 관건인 가운데 피해자모임과 환경보건시민센터로부터 고발당한 애경 측은 책임을 원료 제공사인 SK케미칼에 떠넘겼다. 애경의 한 관계자는 "'가습기메이트'는 1994년부터 SK케미칼에서 제조하는 제품"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게 우리 제품이 아니고 SK케미칼 제품이다. 우리는 판매만 하고 있다"며 "판매를 한 것에 대해서는 판매처에 대한 잘못의 유무를 고발한 것이니까 검찰에서 조사가 진행되면 조사를 성실히 받을 것이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SK케미칼 측은 "아직까진 뚜렷한 답변을 할 수 없다. 지금 상황에서 조심스러워 대답할 말이 있을까 한다"며 "현재 관련 조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별도의 입장을 말하기 어렵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한편 피해자모임과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지난 9일 SK케미칼 최창원 부회장 등 전ㆍ현직 임원 14명의 처벌을 촉구하는 고발장을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제출했다. 검찰의 조사 과정에서 '가습기메이트'의 주성분인 CMIT/MIT와 피해 사례들의 상관관계가 밝혀질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윤소영 기자 ysy@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