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시장에 부는 '외국 빵' 바람…파리바게뜨ㆍ뚜레쥬르 '경고음'

미국 컵케이크 전문 브랜드 매그놀리아 현대백화점 판교점 전경. 높은 가격대에도 불구하고 컵케이크를 구매하려는 고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사진=현대백화점 제공
日ㆍ美ㆍ佛 제빵 브랜드 3년 간 국내 급증
불황 속 값비싼 디저트 수요 늘어 '눈길'
롯데ㆍ신세계ㆍ현대百 해외 브랜드 유치 전쟁
국내 브랜드 "성장 둔화…중기 적합업종 때문"

파리바게뜨, 뚜레쥬르 등 국내 제빵 매장에서 이삼일에 한 번씩 2만여 원어치의 빵을 구매하던 A씨(여ㆍ27세). 지난해부터 그는 '바다 건너 온' 빵을 구매하러 현대백화점 판교점을 가고 있다. A씨는 "해외 유명 브랜드가 진짜 맛있는지 확인해 보려고 갔다가 매주 빵을 사러 가고 있다"고 전했다.

빵 하나를 먹더라도 배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 차별화된 만족감을 느끼고자 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장기화된 경기침체의 여파로 고가 의류, 잡화, 귀금속 대신 사치스러운 느낌이 들면서도 가격 면에서 부담이 적은 일명 '작은 사치' 형태의 해외 브랜드 빵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이러한 트렌드에 발맞춰 국내 백화점들은 앞다퉈 해외 제빵 브랜드들을 매장에 입점시키며 '작은 사치' 열풍에 합류했다. 반면 파리바게뜨, 뚜레쥬르 등 국내의 전통 강자들은 해외 브랜드들의 국내 성장세로 인해 부진을 겪고 있어 제빵 업계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국내 제빵업계 '신 삼국지'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의 르타오, 롯데백화점 소공동 본점의 위고에빅토르, 서울 시내에 위치한 뚜레쥬르한매장, 서울 시내에 위치한 파리바게뜨 한 매장 전경(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다양한 종류를 취급하는 국내 제빵 브랜드와 달리 해외 제빵 브랜드는 한두 가지 종류를 전문으로 취급하고 있다. 사진=윤소영 기자
2013년부터 국내에는 해외 제빵 브랜드가 소비자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빵, 케이크, 쿠키 등 다양한 디저트 종류를 판매하던 국내 제빵 브랜드와 달리 딱 한두 가지 종류를 전문으로 하는 전략이 2030세대 젊은 여성들의 눈길을 끌었다.

국내 시장에 가장 먼저 자리잡은 곳은 일본 브랜드였다. 그 중 일본식 롤케이크 전문점 몽슈슈는 2013년 9월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 1호점을 오픈한 이후 줄 서서 구매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리며 많은 관심을 모았다.

이곳의 대표 아이템은 훗카이도산 우유로 만든 생크림이 듬뿍 들어간 도지마롤. 가격이 1만 8000원으로 국내 베이커리에서 판매하는 롤케이크보다 다소 높은 가격이지만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을 비롯한 국내 4개 매장에서 그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이외에도 크림빵 전문점 핫텐도, 케이크 전문점 몽상클레르, 쿠키 전문점 스윗하토 등 일본 브랜드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업계 관계자 B씨는 "우리(나라)와 입맛이 비슷한 일본 브랜드가 부담 없이 국내 고객들의 입맛에 잘 맞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해외 제빵 브랜드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자 미국 브랜드들도 연달아 국내에 매장을 내고 있다. 미국드라마 '섹스앤더시티'를 통해 국내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매그놀리아는 4000원을 웃도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저녁 시간이면 남은 컵케이크가 없을 정도다.

지난해 국내에 진출한 치즈케익팩토리는 한 조각당 8000~9000원의 가격에도 불구하고 연일 문전성시다. 역시 지난해 국내 1호점을 낸 미스터홈즈는 4000원부터 7000원까지 천차만별의 가격을 자랑하지만 가로수길의 핫한 도넛 가게로 입소문이 나고 있다.

'제빵 명가' 프랑스의 열풍도 만만치 않다. 프랑스 전통 빵인 크루아상 맛집으로 국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프랑스 베이커리 곤트란쉐리에는 2014년 서울 서초구 서래마을에 1호점을 낸 이후 매장 수를 17개까지 늘렸다.

프랑스 르더프그룹의 베이커리 브랜드 브리오슈도레 경우 조만간 국내에서 가맹사업을 본격화한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업계 관계자 C씨는 "브리오슈도레가 (공정거래위원회 가맹사업) 정보공개서에 등록한 걸 보니 가맹사업을 하려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브리오슈도레뿐만 아니라 외국계(브랜드)들이 비싸도 한국에서 수요가 있으니까 당연히 늘어나고 가맹 사업을 하려 한다"며 "스타벅스가 한국에 처음 들어왔을 당시 비싸다고 했는데 지금은 다들 손에 들려 있는 것처럼 이 또한 익숙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불황 속 고급 디저트 불티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한 끼 식사보다 비싼 디저트(빵, 케이크, 쿠키 등)에 대한 수요는 늘어나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국내 디저트 시장 규모는 2013년 3000억 원에서 2014년 8000억 원, 2015년 1조 5000억 원으로 성장세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국내에서 고가 디저트의 성장에는 '포미(For me)족'이 큰 기여를 했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포미족'이란 자신에 대한 투자를 중요시하는 이들로 만족을 위해서라면 가격에 상관없이 지갑 열기를 주저하지 않는 소비자층이다.

불황 속에서도 '포미족'은 소비 제품만큼은 최고급을 추구한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유통연구소 김용한 교수는 "'포미족'은 불황일수록 하나를 선택해 거기서 느끼는 만족을 극대화하는 '가치소비'를 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원래 디저트는 식사 이후 먹는 메뉴였는데 '포미족'은 적은 금액이라도 큰 만족을 느끼고 싶어 대표적으로 디저트를 선택한다"며 "이들은 디저트를 식사대용으로 여기고 소비하기 때문에 디저트 시장은 앞으로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앞선 관계자 C씨 또한 "최근의 디저트 문화와 88만원 세대를 결부시켜 설명하는 이들도 있다"며 "고급스러운 소비를 하려면 많은 돈이 들 수밖에 없는데 맛 좋은 디저트는 만원 한 장만 있으면 굉장한 만족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식사와 디저트의 경중을 따지지 않는 최근의 트렌드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결국은 한정된 금액으로 식사와 디저트를 모두 해결해야 하는 경제적인 제약 속에서 만족감이 더 큰 쪽을 선택하는 것으로 풀이됐다.

업계 관계자 D씨는 "업계 전반을 봤을 때 (메뉴 선택의) 다양화로 인해 외식끼리 경쟁하는 시대는 지났다"며 "수요가 많아지고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다양한 형태가 나왔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어 "예전에는 먹는 게 한정적이어서 시장이 양분돼 있었지만 요즘에는 외식이 디저트하고도 경쟁한다"며 "몇 년 전만 해도 밥값보다 비싼 디저트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주식을 아껴서 먹고 디저트에 돈을 더 쓰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김용한 교수는 장기 불황과 단맛의 상관관계를 설명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일시적인 불황일 때는 사람들이 매운 맛을 선호하는데 장기적인 불황일 때는 단 맛을 선호한다"며 "일본의 경우도 잃어버린 20년 동안 디저트 산업이 고도로 발전했다"고 밝혔다.

백화점 3사 '모시기 전쟁'

국내의 해외 제빵 브랜드 열풍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가 백화점 빅3의 유치전(戰)이다. 2030세대 여성들이 해외 유명 디저트를 즐기기 위해 백화점으로 향하면서 백화점 업계가 해외 제빵 브랜드를 강화하기 위한 경쟁에 나섰다는 게 백화점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백화점 빅3의 제빵 상품군 매출은 매년 10~30%씩 성장하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지난해 상반기 매출 신장률이 전년 동기 대비 27%로 대폭 늘었으며 신세계백화점과 현대백화점은 평균 10.4%, 14% 가량의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해외 제빵 시장에는 현대백화점이 가장 먼저 진입했다. 지난해 8월 개장한 현대백화점 판교점은 지하 1층 식품관의 30%(약 4158m²)를 디저트 매장으로 꾸몄다. 몽상클레르(일본ㆍ케이크), 몽슈슈(일본ㆍ롤케이크), 스윗하토(일본ㆍ쿠키), 핫텐도(일본ㆍ크림빵), 르타오(일본ㆍ치즈케이크) 등 일본 브랜드가 다수 입점돼 있다.

현대백화점 판교점의 대표 매장으로 불리는 매그놀리아(미국ㆍ컵케이크)는 지난해 월 6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글로벌 유명세를 떨친 바 있다. 피에르에르메(프랑스ㆍ마카롱) 경우 월 평균 3억여 원의 매출을 올리며 매그놀리아의 뒤를 잇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세계백화점은 한 발 앞선 현대백화점을 따라잡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중이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은 르타오, 홉슈크림(일본ㆍ슈크림빵), 에끌레어드제니(프랑스ㆍ에클레어) 등을 입점시켰으며 해외 유명 브랜드 유치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백화점은 빅3 가운데 가장 최근 경쟁에 합류했다. 지난해 12월 롯데백화점 소공동 본점은 식품관을 디저트 중심의 매장(2350 m²)으로 리뉴얼하면서 위고에빅토르(프랑스ㆍ마카롱 및 타르트), 베이크(일본ㆍ타르트) 등 해외 제빵 브랜드들을 입점시켰다.

백화점 업계에서는 다양한 디저트를 찾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해외 제빵 브랜드의 입점 또한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선 백화점 업계 관계자는 "새롭고 트렌디한 글로벌 디저트 브랜드를 계속해서 발굴하고 유치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대형 점포를 위주로 해외 유명 디저트 브랜드들이 입점돼 있는데 전체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라며 "백화점을 이용하는 고객들의 기대치를 만족시키기 위해 백화점 입장에서는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다"고 덧붙였다.

파리바게뜨ㆍ뚜레쥬르 울상

해외 제빵 브랜드들이 프리미엄 정책을 통해 국내에서 고공행진하고 있는 가운데 이러한 현상이 달갑지 않은 곳이 있다. 바로 국내 제빵 브랜드로 파리바게뜨는 매장이 2013년 2월 말 3227개에서 지난해 말 3354개으로 3년 간 127곳(3.9%) 늘어나는 데 그쳤고 뚜레쥬르 경우 같은 기간 1280개에서 1275개로 오히려 5곳(-0.4%)이 줄었다.

소비자로서는 더 맛있는 빵을 선택하다보니 국내 제빵 브랜드가 시장 경쟁력에서 밀리는 것 아니냐는 게 앞선 A씨의 주장이다. A씨는 "해외 브랜드라고 전부 맛있는 건 아니지만 케이크, 타르트 등은 가격이 훨씬 비싼 만큼 훨씬 맛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내 브랜드에도 맛있는 제품이 있지만 대부분 빵이 푸석푸석하고 퍽퍽하며 크림은 느끼하기만 해 아쉽다"며 "무엇보다 케이크는 해외 브랜드와 비교하면 매우 맛이 형편없어 많이 비싸지 않은 경우에는 해외 브랜드에서 구매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국내 제빵 업계에서는 성장 둔화가 소비자들의 외면이 아닌 중소기업적합업종 지정 제도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중소기업적합업종 지정 제도는 2011년 중소기업의 성장력 확보를 위해 일부 업종에서 대기업의 시장진입을 3년 동안 막도록 한 제도다.

제빵업은 2013년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지정됐으며 이후 파라바게뜨, 뚜레쥬르 등 국내 대기업 제빵 브랜드들은 1% 내외로 매장 수 증가가 줄었다. 이 사이를 비집고 외국계 브랜드들이 들어와 중소기업적합업종 지정 제도의 최대 수혜자가 됐다는 게 국내 제빵 브랜드들의 주장이다.

앞선 관계자 C씨는 "대기업에서 빵까지 하느냐는 인식이 있었고 서로 (오해를) 풀기보다는 '모 아니면 도' 식으로 (동네 빵집과의) 대결구도가 굳어져 버렸다"며 "우리와 경쟁사는 대승적 차원에서 동반성장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2013년도에 가이드라인에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500m 안에는 겹치지 않게, 전년 기준 2% 이하로 매장을 내도록 한다"며 "최근 3년 더 가이드라인이 연장됐는데 그런 기준에서는 거의 매장을 낼 수가 없다. 우리는 물론 경쟁사도 3년 간 거의 (성장이) 정체됐다"고 덧붙였다.

또한 "제빵 시장을 보면 대기업, 동네 빵집 외에 플레이어가 없는 게 아니다"며 "그 틈새를 비집고 대기업이 아닌 대상으로 외국계가 들어왔다. 고객은 한 명인데 선택지가 3개고 가이드 안에는 사실상 우리와 경쟁사만 있다"고 강조했다.

소비자들의 고급 제품군에 대한 수요 욕구로 발생한 저성장이 아닌지 묻는 질문에는 "우리와 경쟁사는 가맹 사업이다 보니 대중적인 제품이 많아야 된다"며 "재료에 포커싱을 맞추는 등 제품의 퀄러티를 높여 내실을 다지는 전략을 해 나갈 것이다"고 답했다.

이어 "모든 음식이 컬러 하나로 구매율 자체가 틀려지고 비주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게 중요하지만 R&D(연구개발), 마케팅, 홍보, 영업 등도 중요하다"며 "R&D센터에서 과학적인 데이터로 연구를 하고 있고 단일 매장에서 더 많이 벌 수 있는 마케팅을 하는 등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윤소영 기자 ysy@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