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구설 기업들, 결국 ‘제자리?’

불매운동 타격 입은 남양유업, 최근 실적 회복세

미스터피자, 회장 갑질로 가맹점주들만 몸살 앓아

기업가 윤리적 기대치 애초 낮아… 주가 영향 없어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기업인들의 갑질과 비윤리적 행동은 비단 어제 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그런데 최근 재계면을 도배하는 기업인들의 비상식적 행동이 도를 넘었다. 4월만 해도 미스터피자, 현대비엔지스틸 경영자가 부적절한 행태로 비난을 받았다.

구설수를 겪은 기업들은 당장의 주가 하락, 더 나아가서는 매출액 타격과 함께 불매 운동이라는 큰 산을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평생 구설수에 오른 회사 제품들을 불매할 것처럼 냉정했던 소비자들도 시간이 지나면 파문을 잊기 마련이다. 오히려 불매운동이 갑질 당사자인 회장님보단 가맹점주들에게 타격을 주는 ‘오발탄’이 되기도 한다. 투자자들 또한 기업 윤리에 대해선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탄탄한 실적과 확고한 사업 영역만 뒷받침해 준다면 경영자의 비윤리적 행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갑질 파문’을 겪은 기업들의 그 후를 살펴 봤다.

갑질 파문으로 실적 내리막길 탄 남양유업, 지금은?

지난주 재계는 회장님들의 갑질로 떠들썩했다. 미스터피자 MPK 정우현 회장은 폭행죄로 구설수에 올랐다. 정 회장은 지난 2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건물에서 경비원 황모씨의 뺨을 두 차례 때린 혐의로 경찰서에 출두했다. 범현대가 3세인 정일선 현대비엔지스틸 사장은 수행기사들에게 폭언과 폭행을 일삼아 온 것이 드러나 질타를 받았다. 수행기사 폭행은 대림산업 이해욱 부회장에 이어 올해만 벌써 두 번째다.

기업을 대표하는 경영진들의 부적절한 행태가 구설수에 오른 국내 기업은 셀 수 없다. 올해만 해도 대림산업, 현대비엔지스틸, MPK가 있다. 이 밖에도 대한항공의 땅콩회항, 포스코의 라면 상무가 있다. 경영진은 아니지만 하청업체에게 벌인 갑질로 비난을 받은 남양유업도 빼 놓을 순 없다.

구설수에 오른 기업들은 매출액에도 영향을 받았다. 남양유업이 대표적인 예다. 남양유업의 영업이익은 2012년 474억3000만원에서 갑질 파문 후인 2013년 -220억원, 2014년 -261억2000만원으로 적자 전환했다. 특히 영업사원의 대리점주를 향한 욕설 파문으로 이른바 ‘남양유업 방지법’으로 알려진 ‘대리점 거래 공정화법’이 탄생하기도 했다.

주가에도 영향을 미친다. 정우현 회장이 최대 주주로 있는 MPK의 4월 12일 오전 10시 20분 기준 주가는 2810원이다. 사건 발생 후 주가는 계속 하락해 52주만에 신저가 경신을 눈앞에 두기도 했다.

구설수 오른 기업 주가 하락은 통상적인 매매?

하지만 회장님의 갑질이 주는 영향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반대 의견도 존재한다.

2013년, 기내 승무원에게 갑질을 한 것으로 구설수에 오른 포스코에너지 상무 사건 당시 보도를 인용하자면 사건 발생 후 포스코의 주가는 종전일과 같은 32만500원에 마감됐다. 전체적으로 주가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은 것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기업의 윤리 경영 여부는 투자자들이 평가하는 기업 가치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흥국증권 서동필 수석 연구위원은 “투자자들은 재무 실적이나 사업 확장을 투자 판단에 기준점으로 잡는다. 오너의 개인적인 행태가 주가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번 미스터피자 갑질 사건 역시 사건이 일어난 바로 다음날, 하루에서 이틀만 주가에 다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일시적으로 주가가 떨어진 것 또한 갑질 영향이 아닌 통상적인 투자자들의 매매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일각에선 이미 국내 기업인들에게 바라는 윤리적 기대치가 아주 낮기 때문에 갑질 파문이 보도되더라도 주가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자조적인 해석도 나왔다.

포스코, 대림산업 등과는 달리 남양유업, 미스터피자 등 유통 기업들은 불매 운동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불매운동 또한 마냥 꾸준하진 않다. 2013년부터 내리막길을 걸었던 남양유업의 실적은 최근 업계 최고치까지 회복했다. 지난해 연결기준 영업이익은 201억3000만원으로 흑자 전환했으며 매출액은 전년에 비해 5.5% 증가한 1조2150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서서히 갑질 파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추이를 보이는 것이다.

불매운동의 영향력에 대해서도 의견은 엇갈린다. MPK 정우현 회장의 ‘안하무인’ 행동으로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미스터피자 점주들이었다. 정 회장의 갑질로 인해 미스터피자 불매운동이 생기면 즉각적으로 타격을 입는 건 가맹점주들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가맹점주들은 지난 6일, MPK 본사 앞에서 회장을 대신해 사과에 나서기도 했다. 회장의 갑질로 인한 불매운동이 정작 기업에게 영향을 주기 보단 똑같은 ‘을’입장인 가맹점주들에게 불똥이 튀게 됐다.

반복되는 기업 오너들의 비윤리적인 행동에도 나아지는 것이 없자 시민단체들은 더 장기적이고 즉각적인 대응을 시사했다. 대림산업 이해욱 부회장, 현대비엔지스틸 정일선 사장, MPK 정우현 회장을 검찰에 고발한 서민민생대책위원회는 24시간 콜센터 운영을 통해 기업들의 갑질에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서민민생대책위원회 김순환 사무총장은 “올해만 해도 벌써 기업 회장들의 비윤리적인 행동으로 인해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 이러한 갑질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콜센터 운영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불매운동 등이 장기적으로 이어지지 않고 한때의 바람으로 그칠 것을 우려했다는 게 콜센터 운영의 취지인 것이다.

이 때문에 기업가들 또한 당장의 비난을 모면하려는 데에 급급하다. 사과의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행기사 폭행으로 구설수에 오른 대림산업 이해욱 부회장은 주주총회에서 간단한 사과를 했고, 현대비엔지스틸 정일선 회장은 홈페이지를 통해 사과문을 올렸다. MPK 정우현 회장은 맨 처음에는 폭행을 당한 경비원에게 회사 직원들을 보내 사과를 했으나 경비원은 이에 대해 진정성을 느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비난이 거세지자 정 회장은 직접 사과했다. 이렇듯 구설수에 올라도 조금만 기다리면 잠잠해진다는 생각에 기업가들이 당장의 면피에 급급하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이명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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