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론 ‘상생’, 대리점주 고통 여전해

협약 후 대리점주로 복귀했으나 ‘더 큰 시련’

남양 측, “계약 당사자 합의 내용 따랐을 뿐"

지난 2013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남양의 갑질 사건’이 발생한 지 벌써 햇수로 3년의 시간이 흘렀다. 대기업이 대리점에게 벌이는 갑질 파문으로 ‘대리점거래 공정화법’, 이른바 ‘남양법’의 탄생까지 이끌어내면서 대기업과 대리점간 계약 관계를 다시 짚어보는 계기가 됐다.

당시 국민적 질타를 받은 남양은 갑질 파문 이후 대리점과 상생협약을 맺으며 사건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갑질 파문 피해자였던 대리점주와 남양 측은 아직도 갈등을 겪고 있었다. ‘남양법’에 대해서도 알맹이는 다 빠진 껍데기 법안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남양과 대리점주의 갈등, ‘현재 진행형’

남양은 지난 2013년 갑질 파문으로 홍역을 치렀다. 당시 30대의 남양 영업사원이 50대 점주에게 욕설을 내뱉는 녹취 파일이 돌면서 전국민적인 반감을 샀다. 불매운동 여파로 남양은 지난 2014년까지 적자를 기록했으며 기업 이미지도 상당부분 실추됐다. 남양은 대국민사과에 나섰고 30억원의 기금을 남양 피해대리점협회에 기탁했다. 또 상생 협약을 통해 대리점주들과의 원만한 협력을 약속했다.

3년이 흐른 지금, 남양 대리점주들의 영업 환경은 나아졌을까? 당시 피해 당사자였던 한 대리점주는 눈에 보이는 욕설과 밀어내기 대신 음지에서 행해지는 갑질이 있다고 주장한다.

당시 남양의 갑질 피해 당사자였던 전국대리점협회 이창섭 대표는 남양이 업계 용어로 ‘대리점 찢어내기’, 혹은 ‘대리점 갈라치기’와 같은 수법으로 영업을 방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왕십리 영업점을 운영하던 이 씨는 남양의 밀어내기 등 갑질 반발 시위를 하다가 지난 2013년 1월, 남양 측으로부터 계약을 해지당했다. 이로 인해 7~8년 동안 거래해 오던 유통기관에 물량을 넘기지 못했고 인간적 신뢰를 쌓았던 이들에게 물량을 확보해주고자 2013년 4월 중간상인 J씨에게 15곳의 거래처 영업권을 넘겼다. ‘중간상인’이란 대리점 개설 코드 없이 대리점에게 물량을 대량 구매해 유통업체에 넘기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 후 이씨는 사측과 상생 협약을 맺고 지난 2015년 7월에서야 왕십리 영업점의 문을 열게 됐다. 그런데 남양 측이 이 씨의 담당 구역인 성동구 안에 '서서울 대리점'을 차리고 중간상인 J씨를 대리점주로 임명했다. 이에 따라 이 씨는 성동구 지역 물량을 상당수 빼앗기게 됐다. 이 씨는 "지난 7월부터 현재까지 5000만원의 적자를 봤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남양 측은 이렇게 설명한다. 우선 이 씨가 대리점의 문을 2013년 1월에 닫은 것은 맞다. 다만 사측은 이에 대해 “이 씨가 시위에 참가하며 영업을 성실히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통상적으로 대리점은 도매상에게 물건을 넘길 수 있는 ‘공급권’과 대형 마트에 물건을 넘길 수 있는 ‘위탁권’을 갖고 있는데 2013년 4월 이 씨가 ‘도매 공급권’을 J씨에게 일정 금액을 팔고 넘겼다는 것이다. 남양에 따르면 이 씨는 2015년 대리점주로 복귀하면서 당시 넘기지 않았던 ‘위탁권’만을 갖고 왕십리 대리점이 업무를 재개했다. 남양 측은 성동구 지역에서 ‘도매 공급권’을 행사할 대리점이 필요해 서서울 대리점을 열어주고 이 씨에게 공급권을 넘겨 받은 J씨를 대리점주로 임명했다. 사측은 이 씨와 J씨간 합의된 내용을 따랐을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씨는 애초에 공급권 전체를 넘겼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주장이라 말한다. 이미 자신은 2013년 1월에 대리점 코드를 상실했기 때문에 공급권 전체를 넘길 수 없으며 자신이 J씨에게 판매한 것은 성동구 지역 15개 거래처와의 영업권이라는 것이다. ‘상생 협약’ 후 진정된 것처럼 보였지만 남양과 이 씨의 갈등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었다.

빅딜 처리 희생양 된 ‘남양법’

남양과 대리점주와의 갈등은 지속되고 있으나 대리점 상생 법안을 통과시켰단 점에서 ‘남양 갑질 사건’은 대리점과 대기업 간 계약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고 평가 받는다. 그런데 이 법안 또한 ‘반 쪽짜리’라고 소상공인들은 말한다.

지난 2015년 12월 국회 문턱을 넘은 이 법안은 대리점 거래에서 본사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처벌 강화를 골자로 하고 있다. 주요내용은 대리점거래에 관한 정의 규정 신설, 대리점 거래 적용제외 사유 명확화, 공급업자가 자신의 거래상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해 물품 등의 구입을 강제하거나 금전ㆍ물품 등 경제상 이익을 제공하도록 강요하는 행위 금지를 포함한다.

전국대리점연합회, 소상공인연합회 등은 이 법안에 가장 중요한 세 가지가 빠졌다고 말한다. 첫 번째는 계약 기간이다. 일부 대기업들은 대리점과 계약을 맺을 때 3개월에서 6개월, 짧게는 15일간 계약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안정적 계약이 1순위인 대리점 입장에선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관행 때문에 대리점연합회 측은 계약의 지속성을 보장하기 위해 계약 기간을 5년으로 정하고 5년의 연장을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을 요구했으나 이것이 빠져버렸다. 두 번째 빠진 부분은 대리점이 단체를 결성할 수 있는 권한이다. 대리점의 단체 교섭권을 법률로 보장해 달라 했으나 역시 이 또한 빠졌다. 대리점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과의 거래 계약은 소상공인 입장에선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벌이는 대결’이나 마찬가지다. 이러한 상황에서 힘이라도 모을 수 있도록 단체교섭권이 생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장 문제가 된 사안은 이른바 ‘총판’이라 불리는 ‘대리점지역본부’에 대한 규정이 빠졌다는 것이다. 만약 대기업이 대리점지역본부를 통해 지역 영업점들을 압박한다면 막을 길이 없다는 것이다.

업계 측은 이 법안의 통과 과정이 아쉬웠다고 말한다. 이른바 ‘빅딜’ 과정에서 남양법 통과가 이뤄졌지만 세부 사항에 대한 검토가 부족했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날은 따뜻해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소상공인들에게 봄은 오지 않았다.

이명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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