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B상품 유통기업, 제조사와 함께 책임

롯데마트, 관련 기업 최초로 사과 나서

검찰 수사 하루 앞둔 사과 시점, 비판받기도

홈플러스ㆍ옥시도 사과 동참

문제가 된 PB 가습기 살균제, 유통업체 책임 관심

무려 146명의 사망자(정부 집계)를 낸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 관련 기업 중 롯데마트가 최초로 공식 사과에 나섰다.

하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사과의 시기와 방법 때문이다. 이번 사과는 검찰의 가습기 살균제 사망 관련 기업 소환 조사가 예정된 하루 전날에 열렸다. 검찰을 향한 보여주기식 사과가 아닌가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피해자 관련 단체와 사전에 어떠한 접촉도 없었다는 점 또한 아쉬운 점이다.

롯데마트와 홈플러스가 판매해 문제가 된 가습기 살균제는 PB(자체 제작 상품)이다. PB의 경우 유통업체의 상표를 달고 나오기 때문에 PB제품이 가습기 살균제 사건처럼 치명적인 결함을 갖고 있을 경우, 유통업체의 책임은 얼마나 될 지 여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뒤늦은 사과 나선 관련 기업, 반응은 싸늘

지난 19일, 옥시를 시작으로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 관련 제조사, 유통사의 검찰 소환조사가 시작됐다.

수사를 하루 앞둔 18일, 제일 먼저 롯데마트가 5년만에 공식 사과에 나섰다. 롯데마트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에 대한 피해보상을 약속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롯데마트 김종인 대표는 검찰 수사가 종결되기 전까지 피해보상 전담 조직 설치, 피해보상 대상자 및 피해보상 기준 검토, 피해보상 재원 마련 등에 대해 철저하게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또 이를 토대로 수사 종결 직후 인과관계가 있는 것으로 발표된 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대상으로 피해 보상 협의를 바로 추진하기로 했다. 롯데마트 측은 “현재 피해자 규모를 파악 중이며 지원금으로는 100억원을 마련해 두고 있다”라고 밝혔다.

지난 2011년,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사망자가 발생한 지 약 5년의 세월이 흐른 후 대기업 유통사 중 최초로 롯데마트가 사과에 나서면서 뒤늦게나마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을 위로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하지만 사과 시기와 방법에서 검찰의 눈치를 보고 있단 비판도 나오고 있다. 롯데마트 김종인 대표의 사과 기자회견 후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 가족모임, 환경보건시민센터 측이 바로 입장을 밝혔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소장은 “사전에 롯데마트의 기자회견 소식을 듣지 못하고 언론 보도를 본 후 참석했다”고 말했다. 최 소장은 검찰 수사를 하루 앞둔 시점에서 열린 사과 기자회견이야 말로 피해자들에게 사과한 것이 아닌 검찰을 향한 사과라고 비판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연루된 기업은 롯데마트뿐만이 아니다. 옥시, 홈플러스 또한 연루됐다.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낸 것으로 알려진 옥시레킷벤키저는 한동안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다가 공식 입장을 내놨다. 지난 21일 옥시레킷벤키저는 ‘가습기 살균제와 관련하여 말씀 드립니다’ 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통해 가습기 살균제 관련 환자와 가족을 지원하기 위한 모든 논의와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조직적으로 유해성 실험 결과 내용을 인멸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 수사와 관련하여 제기된 여러 의혹에 대해 저희는 이를 매우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저희의 회사 정책상 이러한 의혹 관련 행위들은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는 점을 말씀 드리고자 한다”고 말했다. 시민단체에 따르면 가습기 살균제로 사망한 146명 가운데 103명은 옥시 제품을 쓴 것으로 조사됐다. 옥시 대표는 지난 19일 검찰조사를 받았다.

홈플러스는 롯데마트 기자회견이 열린 같은 날 “고객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려 대단히 죄송하며 피해자들의 아픔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향후 검찰의 공정한 조사를 위해 최대한 협조하고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아울러 검찰 수사 종결 시 인과관계가 확인된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제조는 달라도 유통기업, 책임 못피해

문제가 된 제품은 홈플러스의 ‘홈플러스 가습기 청정제’, 롯데마트 ‘와이즐렉 가습기 살균제’, 옥시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이다. 이 중 홈플러스와 롯데마트 제품은 유통사의 상표를 붙이고 나온 PB(Privite Brand, 자체 브랜드) 제품이다.

유통사의 상표를 부착하고 시판된 이상, 제조사만의 책임으로 떠넘길 순 없다. 롯데마트 측은 이에 대해 “PB제품을 판매할 때는 전문회사와 컨설팅을 통해 진행된다. 가습기 살균제의 경우 품질 안전검사를 통해 문제가 없다라는 판단을 받고 판매를 진행했는데 결과론적으론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롯데마트와 홈플러스가 판매한 PB 가습기 상품의 제조사는 용마산업사이다. 그런데 최근 용마산업사 측은 검찰조사에서 “제조 당시 업계 1위였던 한빛화학제품을 모방해 만들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져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한빛화학은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옥시레킷벤키저 가습기 살균제의 제조사이다.

최근 유통업계는 PB상품의 비율을 늘리고 있다. 과거에는 값싼 가격으로 소비자를 잡았지만 요새는 가성비를 높여 연이은 ‘히트작’들을 출시해내고 있다. 이마트의 ‘피코크’는 기존 PB상품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고, 편의점 PB상품들 역시 매출액 고공 행진을 벌이는 중이다.

하지만 식품과 이번 가습기 살균제는 같은 PB 상품이지만 다른 기준으로 봐야 한다는 게 유통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피코크’와 같은 히트 상품처럼 제조부터 상품 기획까지 관여한다기보단 상품의 특성 상 제조사가 더 많이 관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유통업체 또한 책임을 피하는 건 힘들다고 말하고 있다. 한국유통법학회 회장이자 고려대학교 법학전문원 최영홍 교수는 “원제조사가 아니더라도 유통상표가 붙는다면 소비자에겐 100%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최 교수는 “제조사와 유통사 간의 합의가 이뤄질 수도 있지만 그 합의는 양사간 문제고 소비자에겐 무조건 유통사와 제조사 모두 책임이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고 밝혔다.

실제로 유통사의 책임은 제조물 책임법에도 명확히 나와 있다. 이 법에 의하면 ‘제조물 책임자’는 ‘제조물의 제조 및 가공을 업으로 하는 자’는 물론, ‘제조물에 성명, 상호, 상표 등 그 밖에 식별 가능한 기호를 사용해 자신을 가목의 자로 표시한 자’까지 포함한다. 또 연대 책임을 통해 동일한 손해에 대해 배상할 책임이 있는 자가 2인 이상이면 연대해 손해를 배상하라고 명시하고 있다.

마크가 갖는 신뢰도 또한 무시할 순 없다. 소비자들 입장에선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대형 기업의 상표가 부착된 제품을 살 때 그 기업의 인지도도 고려한다는 것이다. 특히 PB상품의 생산 비율이 늘어나는 유통 업계의 특성상 향후 PB상품 판매 문제가 발생할 시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이명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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