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 내리막길 가속, 도미노 현상

알리안츠 35억 매각 충격, 타보험사 매각에 영향 끼치나

고금리상품 비율 44%… 운용자산 이익률도 내리막

손보사 실손보험 손해율에 보험료 인상, 소비자 울상

국내 생명보험업계 11위인 ‘알리안츠 생명’이 지난 7일 중국의 안방보험(安邦保險)에 단돈 35억원에 매각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시장에 충격을 줬다. 알리안츠 생명은 지난 1999년 독일 알리안츠그룹이 국내 보험회사인 ‘제일생명’을 4000억원 가량에 인수하면서 국내에 둥지를 틀었다. 이후에도 1조원에 가까운 돈을 투자해 모두 1조2000억원이 들어갔다. 그러나 이후 수년째 적자가 쌓이면서 매각 초읽기에 들어갔고 결국 중국 보험업계 큰손인 안방보험의 손에 들어가게 됐다.

IFRS4 2단계 직격탄, 도미노 우려

알리안츠 생명의 지난해 순손실은 874억원에 육박한다. 가만히 있어도 돈이 줄줄 새는 상황에서 알리안츠 측이 매각을 서두른 것은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35억원이라는 인수금액은 그동안 알리안츠가 조 단위의 돈을 투자했다는 점과 업계 11위라는 입지, 약 16조6000억원에 육박하는 자산규모 등을 고려했을 때 터무니없이 낮은 금액이다. 알리안츠생명의 매각설이 나돌았을 때 “2000억~3000억원은 받을 것”이라던 전문가들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러한 알리안츠의 ‘헐값매각’의 배경에 대해 추측이 난무하는 상황이다. 그 중 가장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IFRS4(보험계약의 국제회계기준)’의 2단계 도입이 가까워졌기 때문에 헐값에라도 알리안츠생명을 팔아 치웠다는 의견이다. 오는 2020년부터 적용되는 IFRS4 2단계는 보험사의 자산이나 부채를 과거 시점의 금액이 아니라 현재 시가로 평가하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한다. 즉 보험사가 보험 계약자에게 돌려줘야 하는 보험금이 현재 시가로 매겨져, 그 금액이 더 올라간다는 말이다. 결국 보험회사들은 높아진 보험금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에 알리안츠생명이 가장 먼저 백기를 든 게 아니냐는 추측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제2, 제3의 알리안츠생명 사태가 벌어지는 도미노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매물로 나와 있는 KDB생명, ING생명, PCA생명도 그 도미노 중 하나로 거론된다.

KDB생명의 경우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전년대비 380억원 떨어져 274억원을 기록했다. ING생명과 PCA생명은 그보다는 더 나은 편이다. 국내 최대 사모펀드 MBK파트너스가 지난 2013년 1조8400억원을 들여 인수한 ING생명은 실적 향상에 총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자산규모를 30조원으로 불렸다. 영국계 보험회사인 PCA생명도 지난해 자산규모 5조2079억원, 당기순이익 216억원을 기록해 선방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 세 업체의 매각금액은 높게 점쳐지지 않고 있다. 알리안츠 생명이 헐값에 팔리면서 인수 의사가 있던 후보들의 눈을 확 낮췄다는 분석이다. 이에 현재 매각을 추진 중인 보험사뿐만 아니라, 앞으로 매각이 될 가능성이 큰 생보사들의 가치 평가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고금리 제품 ‘시한폭탄’에 한숨

전문가들은 생보사들의 운용자산이익률은 계속해서 떨어지는 데 반해 판매한 금리확정형 상품이 많아 지속적인 역마진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알리안츠ㆍKDBㆍINGㆍPIA생명 뒤를 이어 매각될 생보사가 속출할 수도 있다고 전망하는 이유다.

금융감독원이 공개한 생명보험사 별 운용자산이익률을 분석한 결과 국내 생보사 톱3인 삼성ㆍ한화ㆍ교보생명 모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삼성생명의 경우 각 년도 9월 기준으로 2012년 4.6%, 2013년 4.3%로 떨어졌다가 2014년 4.4%로 반등했으나 지난해에는 3.8%로 곤두박질쳤다.

한화생명은 2012년 5.7%에서 2013년 5.1%, 2014년 4.8%로 떨어졌다가 지난해 4.9%로 약간 올랐다. 교보생명도 상황은 비슷하다. 2012년 교보생명의 운용자산이익률은 5.2%였지만 2013년 5.0%, 2014년 4.8%, 2015년 4.6%로 하향세가 뚜렷하다.

전체 생보사의 운용자산이익률 추이도 톱3 사정과 다르지 않다. 지난해 9월 기준 생보사의 평균 운용자산이익률은 4.2%였다. 5년 전인 2010년 9월에 5.6%를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초라한 수치다.

여기에 새로운 회계기준인 IFRS4까지 덮치면서 과거 고금리 상품을 많이 판매한 보험사들은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꼴이 됐다. 앞서 언급했듯 보험 부채를 평가하는 방식이 원가에서 시가로 바뀌어 추가적인 자본이 필요한데, 고금리 상품일수록 필요 자본은 더 많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이 돈이 수조원에 달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보험업계에서 20년 넘게 종사한 전문가 A씨는 “보험사의 호황기는 지난 지 오래”라고 했다. A씨는 “90년대 중후반에서 2000년대 초중반까지는 금리가 높았기 때문에 보험 가입자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면서 “당시 6~8%대의 확정금리 상품을 많이 판 것이 결국 현재 생보사들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A씨의 말대로 국내 생명보험회사 상품 중 연 7% 이상의 확정금리를 적용해야 하는 상품은 44.3%에 달한다. 돈으로 환산하면 그 규모는 무려 92조4000억원이다.

손보사도 실손보험 누수로 막막

손해보험사도 상황이 녹록지 않다. 커지는 손해율 때문이다. 높은 손해율의 원인으로는 ‘실손보험’이 꼽힌다. 병ㆍ의원 및 약국에서 실제로 지출한 의료비를 최대 90%까지 보상하는 보험인 실손보험의 가입자는 약 3만4000명 정도이고 이 중 보험금을 지급받은 가입자는 20% 가량이다.

그러나 금융감독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이러한 ‘국민보험’인 실손보험으로 인한 손해율은 꾸준히 늘고 있다. 2012년 112.3%, 2013년 119.4%, 2014년 122.9%, 2015년 상반기 124.2%였다. 보험가입자가 100원을 들였을 때, 보험사는 124원을 들여야 한다는 말이다. 지난해 9월 기준 손보사의 평균 운용자산이익률도 4%에 불과해 5.1%를 기록한 2010년 9월과 비교해 1.1% 떨어졌다.

손해율의 원인은 보험가입자의 과도한 진료와 보험사기 등이 꼽힌다. 실제 지난해에만 보험사기로 인해 5조원에 육박하는 돈이 샜다. 손보사는 늘어나는 손해율을 갈음하기 위해 보험료 인상의 카드를 들었다. 삼성화재, 현대해상, 동부화재, KB손해보험 등은 올해에만 실손보험료를 20.1~27.3%씩 인상했다.

앞서 언급한 A씨는 “보험사의 손해가 커질수록 결국 손해 보는 것은 보험가입자들”이라면서 “자신의 잇속만 챙기다 결국 모두가 손해를 보게 되는 ‘공유지의 비극’이 생기지 않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오보람 인턴기자 boram3428@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