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진ㆍ장선윤ㆍ정유경 ‘비즈니스호텔’ 경쟁…면세점과 연계해 승부

호텔롯데, 롯데시티호텔ㆍL7 통해 국내 비즈니스 호텔 시장 개척

호텔신라, 신라스테이로 롯데 맹추격 중

신세계, 포포인츠 바이 쉐라톤 열며 합류

삼성家 이부진, 한옥호텔 건립안 통과로 활약

롯데家 장선윤, 호텔롯데 해외사업부로 ‘경영 복귀’

신세계 정유경, 백화점 영향력 날로 커져

‘유커(중국인 관광객) 1000만명 시대’를 맞아 한국을 찾는 해외 관광객들의 발길을 끌어 모으기 위한 유통 대기업들의 숙박 경쟁이 치열하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유통업계의 ‘면세점 전쟁’이 이번엔 호텔로 옮겨진 듯하다.

최근엔 ‘비즈니스 호텔’이 뜨고 있다. 호텔롯데, 호텔신라, 신세계 조선호텔 등 유통 대기업의 고급 호텔보다 저렴하지만 시설 및 서비스는 그에 못지않다는 점에서 좋은 반응을 불러오고 있다. 롯데의 ‘롯데시티호텔’, ‘L7’과 호텔신라의 ‘신라스테이’가 대표적인 국내 비즈니스 호텔이다. 비즈니스 호텔은 한국을 찾는 해외 관광객들 외에도 새로운 놀이 문화를 찾고 있는 20~30대 젊은이들, 업무 차 한국을 방문한 해외 비즈니스맨들까지 수용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특히 오너가는 지난해 면세점 전쟁에 이어 향후 비즈니스 호텔을 기반으로 한 ‘호텔전쟁’에서 경영 능력을 입증하기 위한 자존심 싸움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국내 유통 대기업에는 이미 3세대들이 경영 일선에서 활약하고 있다. 특히 딸들의 활약이 눈에 띄는데 삼성가 3세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롯데 신격호 명예회장의 외손녀인 장선윤 호텔롯데 상무,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의 동생인 정유경 신세계 사장이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북촌 한옥마을을 오가는 노란 인력거의 정체는

서울 중구 명동을 걷다 보면 곳곳에 위치한 호텔들을 볼 수 있다. 이 호텔들 앞에는 캐리어를 끈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관광객들이 줄을 서 공항 버스를 기다리는 모습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미 무리 지어 다니는 관광객은 명동을 상징하는 하나의 풍경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이렇게 해외 관광객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지만 우리나라를 방문한 유커들은 부족한 숙박 업소 때문에 어려움을 겪곤 한다. 유통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유커들은 사전 숙소 예약보다 직접 한국을 방문해 바로 예약을 하는 것을 선호한다. 또 쇼핑에는 큰 돈을 지출하는 것과는 달리 숙박 비용은 아낀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유통업계는 이러한 유커들의 성향을 파악해 강북 지역을 중심으로 ‘비즈니스 호텔’을 늘리고 있다. 호텔롯데의 ‘롯데시티호텔’, ‘L7’, 호텔신라의 ‘신라스테이’, 신세계의 ‘포포인츠 바이 쉐라톤’이 비즈니스 호텔로 분류된다.

제일먼저 비즈니스 호텔 시장에 진출한 것은 호텔롯데이다. 올해 1월, 명동에 문을 연 ‘L7’은 ‘라이프 스타일 호텔’을 표방한다.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이들을 주요 고객층으로 삼았다. 정장을 입은 기존 호텔 직원들관 달리 L7의 호텔 직원은 청바지와 옥스퍼드 셔츠, 슬립온을 착용해 고객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간다. 특히 L7 앞에 주차된 노란 인력거 ‘아띠’가 눈에 띄는데 이 인력거는 L7에 투숙한 관광객들이 서울 골목길의 숨은 명소를 느리게 감상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트래블 컨시어지는 L7 명동부터 시청, 청계천, 명동예술극장을 거치는 60분 코스부터 북촌한옥마을과 인사동을 둘러볼 수 있는 180분 코스까지 총 3가지 코스 중 투숙객이 선택할 수 있다.

비즈니스호텔인 롯데시티호텔은 L7보다 먼저 등장한 롯데의 비즈니스호텔 브랜드다. 서울 마포, 구로, 명동을 비롯해 김포공항, 제주, 대전, 울산 전국 7개 지점을 갖고 있다. 업무 출장 차 한국을 찾은 비즈니스맨들을 주 고객층으로 삼고 있다. 롯데시티호텔 명동의 경우 지하 4층, 지상 27층 규모이며 객실은 총 430개를 갖췄다. 호텔롯데 관계자는 “국내 호텔 시장에서 35년간의 노하우를 가진 만큼 호텔롯데 영업 및 마케팅으로 축적된 직원들의 실무 경험이 롯데의 비즈니스 호텔들이 갖는 장점”이라 설명했다.

호텔신라의 ‘신라스테이’는 서울 역삼을 비롯해 광화문, 서대문, 제주 등 전국 8곳에 설립돼 있다. 가격은 성수기, 비수기에 따라 15만원에서 17만원 사이로 일반 호텔보다 저렴한 편이다. 전체적으로 규모 역시 ‘비즈니스 호텔’에 맞췄는데 화려한 호텔 수영장, 결혼식장 대신 저렴한 가격으로 관광객 및 비즈니스 출장을 위해 한국을 찾은 해외 바이어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신세계조선호텔은 지난해 5월, ‘포포인츠 바이 쉐라톤 서울 남산’의 문을 열며 비즈니스 호텔 시장에 합류했다. 비즈니스 호텔들의 근거지인 명동과는 조금 떨어진 서울역 앞에 문을 연 포포인츠 바이 쉐라톤은 비즈니스맨들의 편한 이동을 돕는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명동을 중심으로 서울 중구 쪽에 속속들이 들어서는 비즈니스 호텔들은 이른바 ‘포화 상태’라는 평을 듣고 있다. 하지만 유커들은 아직도 머무를 곳이 없다고 말한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유커들은 쇼핑에는 큰 돈을 지불하지만 숙박에 드는 비용은 절약하는 특징을 갖는다. 비즈니스 호텔의 1박 가격은 대략 15만원 정도인데 이 또한 비싸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유통업계 관계자는 “여행사 주도로 국내를 방문해 1인당 4~5만원의 숙박 비용을 지출하는 단체여행객보다는 자유여행객들이 비즈니스 호텔의 주 고객층이다”라고 밝혔다. 이미 자유여행객을 대상으로 비즈니스 호텔의 마케팅을 벌인다는 설명이다.

관광객 말고도 20~30대 여성 고객들 또한 비즈니스 호텔을 찾는 경우가 많다. 호텔업계 관계자는 “서울 근교에서 여가를 즐기는 여성 고객들은 조금 더 비용을 주더라도 시설이 좋은 숙박업소를 선택해 서비스를 즐기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유커를 비롯한 관광객의 증가와 신규 고객층의 등장으로 유통업계의 비즈니스 호텔 전쟁은 더 치열해 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경복궁, 광화문, 인사동 등 관광 명소와 쇼핑의 메카 명동이 위치한 서울 강북의 비즈니스 호텔은 세 걸음만 떼면 손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많다. 이에 따라 유통업계는 타 브랜드에 비해 자사의 비즈니스 호텔이 갖는 차별점을 발굴해 숙박객을 유치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한옥호텔 숙원 이룬 이부진, 호텔로 돌아온 장선윤

그동안 유통업계는 서울 시내 면세점 사업권 획득을 위한 치열한 경쟁을 벌여왔다. 기존 면세점 사업자인 롯데, 호텔신라 외에도 두산, 한화 등이 면세점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 과정에서 오너가의 사업 성과가 주목을 받기도 했다.

호텔신라는 현대산업개발과 합작해 용산에 위치한 HDC신라면세점의 서울 시내 면세점 입찰 허가를 따냈다. 이 과정에서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활약이 큰 주목을 받았다.

특히 호텔신라는 최근 서울시에 한옥호텔 건립 허가를 받으면서 고급 호텔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높이게 됐다. 이부진 사장의 숙원으로 여겨진 한옥 호텔 건립 계획이 지난 2012년 7월 이후 ‘4전 5기’만에 성공하게 된 것이다. 지난 3월 2일 열린 ‘제 4차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장충동 신라호텔 부지 내 전통 한옥호텔을 건립하는 안건이 가결됐다. 한옥호텔의 규모는 지하 3층에서 지상 3층까지 91실로 알려졌다. 호텔신라 관계자는 한옥 호텔에 대해 “성곽이 위치한 남산 지역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자연친화적인 특징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이 한옥 호텔은 비즈니스 호텔과는 정반대로 고급화에 무게를 둘 것으로 예상된다.

호텔신라의 한옥호텔 건립안이 4번의 반려 끝에 통과된 것은 서울시가 재벌 특혜 논란에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란 해석이 있었다. 호텔신라는 서울시의 심사를 통과하기 위해 자연경관을 해치지 않는 범위로 네 차례 이상 건립안을 수정해 왔다. 이번에 통과된 건립안은 2013년 7월 호텔신라 측이 제시한 부지(4000㎡) 기부채납, 지하주차장 건립, 공원(7169㎡) 조성에 도성탐방로 야간 조명, 폐쇄회로(CC)TV 설치, 대형버스 18대 규모 지하주차장 조성 방안이 더해졌다. 호텔과 한양도성의 이격거리도 29.9m로 늘어났다. 교통이 혼잡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반영해 장충단로 차량 출입구를 2개에서 1개로 줄였다.

이부진 사장 외에도 호텔을 비롯한 유통업은 오너가 여성들의 활발한 경영 참여로 눈길을 끄는 분야다. 롯데가 3세 중에서 활발한 경영 참여로 주목 받고 있는 신영자 롯데복지재단이사장의 딸 장선윤씨는 호텔롯데를 통해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롯데그룹은 지난해 4월 2일, 장선윤씨가 롯데호텔 해외사업 개발담당 상무를 맡는다고 밝혔다. 신 이사장의 둘째 딸인 장 상무는 지난 1997년 롯데면세점에 입사해 롯데백화점 해외명품통합 팀장, 해외명품 담당 이사 등을 거치면서 해외 사업 파트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해 왔다.

호텔신라 이부진 사장이 한옥호텔을 통해 국내 고급 호텔 시장을 개척한다면 호텔롯데 장선윤 상무는 해외 사업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 롯데의 3세대 경영인들이 어떤 라이벌 구도를 벌일지 주목된다.

정유경 신세계 사장은 지난 1996년 웨스턴 조선호텔 마케팅부에 입사해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지난해 연말 인사에서 사장으로 승진한 정 사장은 올해 오빠인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각자 갖고 있는 계열사 지분을 맞교환하며 계열분리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정용진 부회장이 이마트를, 정유경 사장이 신세계백화점을 가져가는 구도다. 승진과 지분 확보로 인해 신세계그룹에서 정 사장의 영향력은 점점 커지고 있다. 다만 지난 18일 문을 연 신세계면세점 명동점은 ‘빅 3’라 불리는 에르메스, 샤넬, 루이비통이 입점하지 못한 상태로 영업을 시작해 영향력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오너가 딸들의 자존심 싸움?

명동에 빽빽이 들어선 비즈니스 호텔들은 면세점들과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특징을 갖는다. 유커를 비롯한 외국 관광객들의 편리한 동선을 위해 설계된 것이다. 숙박 비용은 아끼지만 쇼핑하는 데에는 아낌없이 주머니를 여는 유커들 때문에 면세점-호텔 간 ‘시너지 효과’는 상상 이상으로 평가된다.

서울 시내 면세점이 경쟁이 치열했던 것과는 달리 공항면세점은 높은 임대료로 인해 ‘계륵’이란 평가를 듣고 있다. 지난 1분기 호텔신라의 실적을 살펴보면 매출액은 전년 대비 7.3% 늘어난 8889억원을 기록했지만 영업이익은 42.6% 줄어든 193억원, 순이익은 19% 감소한 126억원을 기록했다. 이와 같이 호텔신라의 실적이 저조했던 것은 인천공항면세점의 높은 임대료가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비즈니스 호텔은 실적에 큰 기여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호텔신라의 매출액은 비즈니스호텔 신라스테이 신규 오픈 등의 영향으로 11.8% 증가한 3조2517억원을 나타냈다. 올해 1분기는 신규 신라스테이 영업점이 문을 열어 영업비용 지출이 늘었지만 대체적으로 실적에선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울 시내 면세점으로 관광객들을 끌어올 수 있는 비즈니스 호텔의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롯데와 신세계는 백화점, 면세점에 이어 비즈니스 호텔 시장에서도 맞수답게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울산의 경우, 롯데시티호텔 울산과 신라스테이 울산이 불과 10m도 채 안 되는 거리에 나란히 세워져 있는 ‘진풍경’으로 유명하다.

비즈니스 호텔이 새로운 고객층의 창출과 관광객들의 발길을 끌어 모으는 신규 업종으로 부상한 만큼, 호텔을 통한 오너가 딸들의 경쟁도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서울 시내 면세점 입찰권을 둘러싸고 오너가가 경영 능력 검증에 나섰다. 호텔 투숙객 증가가 면세점 매출을 이끌 수 있는 만큼 비즈니스 호텔, 고급 호텔 등 호텔 브랜드 선점 싸움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이명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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