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병 후폭풍, 삼성‘이재용 시대’ 주춤

서울고법, 주식매수가격 ‘너무 낮다’ 결정

이재용 지배구조 강화에 악영향 미칠까

삼성물산 “인위적으로 건설 실적 낮추는 건 말도 안돼”

대법원 결정에 쏠린 재계의 시선

지난해 출범한 통합 삼성물산이 뜻밖의 장애물을 만났다. 서울고등법원이 지난해 합병을 거부하는 주주들에게 제시된 주식 매수 청구 가격에 대해 ‘너무 낮게 측정했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아직 대법원의 결정이 남아있지만 통합 삼성물산의 출범을 성공적으로 마친 삼성그룹 입장에선 분명 달가운 일은 아니다.

재판부, “합병 시 주가, 삼성물산 가치 반영 못해”

지난해 삼성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통해 ‘통합 삼성물산’을 탄생시켰다. 이 과정에서 삼성그룹은 투자펀드 앨리엇을 비롯한 합병 거부 주주들 및 소액주주들을 일일이 만나며 설득에 나섰다. 그만큼 합병이 갖는 중요성이 컸다는 의미다. 결국 합병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런데 지난해 통합 삼성물산 탄생 과정에서 합병 거부 주주들에게 제시된 주식 매수 청구 가격이 너무 낮게 측정됐다는 법원의 결정이 나왔다. 서울고등법원 민사35부(윤종구 부장판사)는 옛 삼성물산 지분 2.11%를 보유한 일성신약과 소액주주 등이 “삼성물산 측이 합병시 제시한 주식매수가격이 너무 낮다”며 낸 가격변경 신청의 2심에서 1심을 파기하고 매수가를 인상하라고 결정했다고 지난달 31일 밝혔다.

이번 재판은 옛 삼성물산 지분 2.11%를 보유하고 있던 일성신약이 삼성물산이 합병 과정에서 제시한 주식 가격이 너무 낮다며 법원에 조정을 신청하면서 시작됐다. 2심 판결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 절차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본 1심 결과를 뒤집은 것이다. 이에 따라 향후 대법원의 결정에 재계의 시선이 쏠리게 됐다.

재판부는 “합병 결의 무렵 삼성물산의 시장주가가 회사의 객관적 가치를 반영하지 못했다”며 5만7234원이던 기존 매수가를 합병설 자체가 나오기 전인 2014년 12월18일 시장가격을 기준으로 산출한 6만6602원으로 새로 정했다.

재판부가 1심 판결을 뒤집은 결과를 내놓은 것은 삼성물산이 고의로 주가 하락을 일으켰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삼성물산의 실적부진이 이건희 회장 등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에 의해 의도됐을 수 있다는 의심에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며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 합병 이사회 결의 전 두 달 간 주식을 지속적으로 매도한 것이 삼성물산 주가 변동을 막은 역할을 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삼성물산 측은 강한 반발에 나섰다. 최치훈 사장은 지난 1일 수요사장단 회의참석 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1심과 2심의 결과가 다르지 않나,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산’ 통해 삼성 지배하려 했으나… ‘난관 봉착’

이번 결정으로 인해 삼성그룹은 예상치 못한 장애물을 만나게 됐다. 지난 3월 일성신약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삼성물산 합병은 무효’라는 취지의 소송을 제기했다. 합병 무효 소송이 이번 재판 결과에 어떤 영향을 받게 될지 주목된다.

삼성 측은 통합 삼성물산 출범에 큰 공을 들여 왔다. 지난해 미국계 투자펀드 앨리엇과 일부 주주 등의 반대를 이겨내고 통합 삼성물산 출범을 이룬 속내를 살펴보면 통합 삼성물산이 삼성그룹 전체의 지주회사 역할을 함으로써 이재용 부회장 지배력을 강화하는 수단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주요 계열사 지분은 그룹을 장악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삼성의 지배구조를 살펴보면 삼성전자가 전자 계열사의 주주 역할을, 삼성생명이 금융 계열사들을 지배하고 있다. 현재 이 부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은 0.58%, 삼성생명의 경우 0.06%로 지배력을 행사하기엔 많이 모자라다. 이를 위해 통합 삼성물산이 전자와 금융 계열사들의 지주 역할을 하게 됨으로써 이 부회장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방법을 택했다. 이 부회장의 통합 삼성물산 보유 지분은 17.08%로 대주주 자리에 올라있다.

만약 대법원이 삼성물산의 합병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에 유리하게 이뤄졌다는 2심의 결정을 그대로 가져간다면 경영권 승계의 정당성이 약화될 수 있다. 이에 따라 증권가에선 삼성전자 분할설, 삼성 전자 관련 계열사 합병 등 삼성그룹이 다음 시나리오를 준비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삼성물산은 합병 후유증을 앓고 있다. 우선 건설, 상사, 패션 등 굵직굵직한 사업을 맡고 있던 계열사가 합쳐지면서 조직이 지나치게 비대해졌다. 삼성물산 건설 부문과 제일모직이 맡고 있던 건설 사업이 겹친다는 지적도 있었다.

실적 또한 적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4분기 적자에 이어 올해 1분기에도 4000억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냈다. 삼성물산은 1분기 매출액 6조4870억원과 4348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해외 건설 프로젝트에 차질이 생기며 건설 부문이 실적에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조직은 비대해졌는데 그에 대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고등법원의 이번 결정에 대해 삼성 측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금융당국이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사안이라는 것이다. 당시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주가를 반영할 때 언제부터 언제까지의 기간을 반영할 것인가에 대해 의견이 엇갈리자 금융감독원은 15개 종목을 임의로 뽑아 주가를 결정하는 기간을 3개월, 6개월로 늘리는 등 기간을 바꾸며 합병 비율을 산정하는 실험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결과 주가 계산 기간이 길어지든 짧아지든 어느 한쪽이 항상 유리한 경우는 없다는 결론을 도출했다고 한다.

주가 반영 기간 또한 기준이 정확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을 한다고 알려진 시기를 기준으로 잡아야 하는지, 혹은 합병이 이뤄진 시기부터 반영해야 하는지 모호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삼성물산이 건설 수주에 소극적으로 나서면서 실적을 조작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이에 대해서도 건설 수주의 경우, 원래 수주 후 자금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손실을 입을 가능성도 있어 주가에는 원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반박을 할 수 있다. 또 합병 당시에도 건설 수주 시장이 침체됐었기 때문에 삼성물산이 일부러 수주에 소극적으로 나섰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보고 있다.

삼성물산 측은 재항고심에 나선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통합 삼성물산 출범은 지난해 삼성그룹이 만들어갈 ‘이재용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첫걸음이었다. 향후 삼성은 사실상의 지주 회사 역할을 할 삼성물산에 신사업 바이오를 맡김으로써 그룹을 이끌어갈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 예정이었다. 통합 삼성물산이 갖는 중요한 역할만큼 향후 대법원이 어떠한 결정을 내릴지 주목된다.

이명지 기자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