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2년간 20억원 불법행위…‘개인 일탈’ 넘어 조직 방관과 동조자 정황

한국투자증권, 사건 조사 중으로 신중한 입장… ‘개인 범죄’로 선 그어

피의자 강서지점 차장, 고객돈 거액 사취해 잠적… 현재 ‘정직’ 조치

금융권, 처우불만으로 “터질 것이 터졌다”는 문제점 지적

최근 국내 대형 증권사인 한국투자증권의 강서지점 간부가 고객들 돈 수십억원을 사적으로 받아 운용하는 대형 금융사기 사건이 발생했다. 현재 금융당국과 함께 사건조사가 한창 진행 중인 가운데 한국투자증권 측은 이번 일에 대해 “아직 조사 중으로 자세한 말씀을 드릴 수 없다”며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번 사건은 한국투자증권 내부뿐만 아니라 여의도 증권가 그리고 금융소비자들에게까지 알려져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직원이 개인계좌를 활용해 고객의 투자금을 수십억이나 사적으로 운용한 점, 금융사고 예방 시스템이 회사 내부에 마련돼 있고 이를 위한 직원교육과 고객안내가 이전보다 한층 강화됐음에도 불구하고 피의자가 약 2년 간 불법행위를 지속해 왔다는 것이 심각한 상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어서다.

무엇보다 지점 간부가 불법금융 사고 피의자 신분이 될 수밖에 없었던 현재 직원들에 대한 열악한 처우 등 금융업계 전반에 깔려 있던 문제점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며 파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개인 범죄로 보기 어려운 ‘2년 간 20억원’의 불법행위

“월 또는 분기별 25%의 수익금을 보장하겠다”는 말에 속아넘어간 피해 고객들의 민원이 접수되자 강서지점 차장 김씨는 곧바로 잠적했다. 이에 금융감독원은 한국투자증권 사고에 대한 현장 조사에 들어갔고 회사 측도 지난달 11일 내부감사를 실시하며 김씨를 고발했다. 이후 일부 언론 보도를 통해 이번 사건 소식이 알려지며 다양한 문제점이 제기됐지만, 한국투자증권 측은 “개인 간 통장 거래로 이뤄진 일”이라며 선을 그었다.

한국투자증권의 이런 해명도 납득할 수 있을 만한 사정이 있었다. 이번 사건의 피의자 김씨는 고객들에게 25%라는 수익금을 약속하면서 회사에 등록된 고객계좌가 아닌 개인 은행 계좌를 통해 은밀하게 일임매매를 해왔다. 사실 회사 측에서는 직원 개인의 일임매매를 미리 파악할 방법이 없다. 또 회사 전화를 사용하지 않고 개인 휴대폰을 사용했기 때문에 회사 측은 사전 적발에 충분히 애를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사고를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이번 사건에 대해 의아해하며 굉장히 이례적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증권사 본점이나 인원이 특히 많은 지점을 제외하고 중소 규모의 지점 내에서는 한 직원과 고객 간 이뤄지는 거래와 그들의 관계에 대해 다른 동료들도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경기도 구리시의 한 금융사 지점 직원은 “지점마다 다르겠지만, 서울 외곽이나 경기도권 증권사 지점 직원은 지점장과 준법감시인, 연구원, 안내직원 등 다 합쳐봐야 대략 10명 가량으로 직원들이 정말 무관심하지 않은 이상 어느 누가 무슨 계약을 했고 어떤 고객이 있는지 등을 모를 리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아무리 고객의 돈을 받아서 불법 운용을 했고 회사 밖에서 몰래 일어난 일이라 할지라도 2년이라는 장기간 이어갔고 특히 20억원은 혼자서 사기를 치기에 상당히 부담스러운 액수”라며 “사건을 저지른 사람이 매우 주도면밀하거나 누군가가 대충 알고서도 눈감아 줬을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기자가 직접 찾아가 본 한국투자증권 강서지점은 직원들이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 중소 규모의 사무실로 평일 오후 4시경임에도 불구하고 한산했다. 어렵게 취재를 할 수 있었던 주변 지역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이곳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고, 그뿐만 아니라 그 지역 업계 종사자들 사이에서는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특히 그는 지역 고객들이 한국투자증권 강서지점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알고, 혹시나 증권사를 찾는 고객들의 발길이 끊길까 염려하며 말을 아꼈다.

한국투자증권 측은 이번 사건이 김씨 혼자가 아닌 내부 직원과의 협력을 통해 조직적으로 이뤄졌을 가능성에 대해 단호히 부정하며 김씨 개인의 사기 사건으로 선을 그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석연치 않은 점이 발견됐다. 실제로 20억원이라는 거액의 금융사기를 겪은 피해자들이라면 사건 해결을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한국투자증권 측은 피해 고객들에 대한 구체적 설명에 대해 자신들이 말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며 극구 답변을 거부했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금융사기의 피의자는 잠적했고 이로 인해 큰 돈을 날린 피해 고객들은 과거 동양그룹 사태에서 보듯이 시위를 하거나 언론보도를 통해 억울함을 알리는 것이 보통”이라며 “직원이 비고객을 대상으로 사기를 친 것도 아니고 직원과 고객 사이에서 벌어진 수십억대 금융사기인데 피해 고객들이 조용한 것은 흔하지는 않은 일”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한국투자증권의 이번 사건과 비슷한 시기에 벌어진 한 증권사 직원의 불법행위의 경우 일부 언론보도와는 다르게 고객이 아닌 그의 지인들에게 벌인 개인적인 일로 증권사 측에 대한 피해자들의 항의나 피해보상 요구, 언론보도 요청 등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한국투자증권 사건의 경우 피해자들이 김씨의 고객들로 충분히 회사 측에 대한 적극적인 조사 요구와 언론보도 요청 등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말을 아끼던 한국투자증권 측은 김씨가 내부 직원의 협조가 아닌 김씨로부터 피해를 입었다고 밝혀진 고객들이 일임매매의 불법행위에 일부 동조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것이 이번 사건을 키운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 홍보팀 관계자는 “김씨가 고객들에 수익금을 보장하되 비밀유지를 전제 조건으로 했고, 사건에 대한 감사 기간 중 피해를 본 고객들을 파악했으나 당시에는 그 고객들이 금전거래 사실을 전부 부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감사 후에도 모니터링을 지속적으로 진행하던 중, 추가 피해자인 한 고객의 위탁계좌에서 해당 고객의 은행계좌로 자금을 이체한 사실을 발견했다”며 “당일 피해 사실을 문의한 결과, 당시 그 고객은 김씨와 금전이 오갔다는 점을 부인했으나 현재는 민원을 제기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이는 그동안 일부 언론이 이 사건에 대해 김씨의 개인에게만 모든 잘못을 떠넘기듯 보도한 것과는 다른 사실이었다. 고수익을 위해 비밀보장을 전제조건으로 입을 다물고 있던 김씨의 고객들도 회사 측에 보상을 요구할 ‘피해자’가 아닌 이번 사건의 일부 책임이 있었던 것이다.

한국투자증권 불법금융거래 예방 노력 소홀

사실 한국투자증권 측의 이 해명은 최근 금융당국이 강조하는 금융사와 고객 간 쌍방 불법금융거래 예방 노력이 부실했다는 점을 인정한 꼴이었다.

이전부터 불법금융거래의 문제점과 예방에 대해 꾸준히 강조해왔던 금융감독원은 최근에도 민생침해 5대 금융악 등 불법ㆍ부당한 금융행위 척결을 목표로 한 특별대책을 발표했다. 여기서 불법ㆍ부당한 금융행위는 단순히 금융당국과 업계의 일뿐만이 아닌 일반 금융소비자들도 해당하며 시민감시단까지 설치해 그 감시의 폭을 넓혔다.

때문에 회사 내부의 직원들로부터 생길 수 있는 금융사고와 함께 일반 금융소비자들로부터 빚어질 수 있는 사고의 예방이 강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은 이에 대한 충분한 노력이 결여된 결과였다.

한국투자증권에서 마련한 불법금융거래 예방 시스템은 직원의 불완전거래 및 이상매매에 대한 모니터링 실시, 직원 개인의 비위행위 근절 및 예방을 위한 공지ㆍ교육 등이었다. 또 고객 계좌에서 200만원 이상의 출금시 자동문자를 발송하는 시스템과 고객 금융교육을 위한 유의사항도 회사 홈페이지 및 각 영업점 그리고 안내문 발송을 통해 제공하고 있었다.

한국투자증권 측은 금융당국의 불법금융거래 척결을 위한 노력과 사내 철저한 예방 시스템을 갖추고도 이번 사건이 일어난 것에 대해 “개인 은행계좌를 통한 거래와 비밀유지 각서 작성 등이 회사 밖에서 은밀히 이뤄져 모니터링이 불가능했다”고 거듭 해명했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의 반응은 달랐다. 고객들에 개인통장을 이용한 일임매매의 불법성과 손실을 볼 경우 책임은 투자자 자신에게 있다는 심각성을 고객들에 보다 적극적으로 강조했다면 이번 사건을 예방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또 한국투자증권의 불법금융거래 예방 시스템은 이미 각 금융사마다 일반적으로 설치한 상태로 특별한 점이 없었고, 직원과 고객이 말을 맞춰 금융범죄를 일으키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이다. 때문에 회사 측의 사고예방을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금융소비자 단체 관계자는 “불법금융거래의 경우 회사 내부 직원끼리나 아니면 고객으로만 이뤄져 발생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직원과 고객이 동조해 일을 벌이는 것은 굉장히 큰 일이고 그만큼 회사 내 관리감독이 부실했다고도 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한국투자증권 지점 직원들로 인한 금융사고는 김씨가 불법금융 행위를 시작했던 지난 2014년에도 두 차례나 일어났다.

그해 3월 한국투자증권 서울 영등포지점에서는 차장급 직원이 고객 명의의 출금신청서를 위조해 약 1년 3개월 간 50차례에 걸쳐 고객돈 17억원을 횡령한 사실이 적발돼 금융업계 충격을 안겼다. 또 같은 해 11월 창원지점에서는 직원이 고객의 돈을 횡령해 파생상품에 투자, 30억원 규모의 금융사고가 일으켜 또 다시 논란이 됐다.

당시 한국투자증권 측은 이번 사건과 같이 “해당 직원이 개인적으로 벌인 사고”라며 “내부 감시 시스템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2년 전과 유사한 사고가 반복됐지만, 회사 측의 해명은 마치 복사해 붙여넣기를 한 듯 변함이 없었다.

이에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당사는 영업점의 내부통제활동 평가 시 분기별 준법감시인 지수를 산출해 우수 지점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등 타사 대비 우수한 준법감시체계와 투자자 보호 시스템을 구축·운영 중에 있다”며 “고객보호를 위해 거래관계를 따져 회사가 책임질 부분이 있으면 회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응할 예정”이라는 형식적 해명을 내놨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사건을 비롯해 최근 발생하고 있는 금융권 직원들의 불법금융행위에 대해 현재 국내 경제상황과 금융권 전반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직원 처우 문제가 주요 원인이 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최근 여의도 증권가 곳곳에는 장기간의 임금동결 등 처우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HMC투자증권 여의도 본사 앞에는 ‘직원 고혈 빨아 성과급 잔치 벌인 HMC증권 임원들은 배부르십니까’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어 현재 금융업계 내 일반직원과 임원진 간의 연봉 차이에서 오는 불만과 박탈감이 고조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저금리 기조 지속으로 돈이 증시에 몰리기는 했지만 이것이 장기화되며 금융사별 자산운용 실적이 저조해졌고, 가계부채 증가와 브렉시트 이후 국내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며 금융업계는 불황 아닌 불황을 예고하고 있다. 때문에 열악한 처우에 불만을 느낀 금융업 일부 종사자들이 불법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한국투자증권이 밝힌 지난해 사업보고서에 따른 임원진과 직원들의 평균 보수를 살펴보면, 등기임원이 7억 6395만원이었고 직원들의 경우 8761만원이었다. 임원과 직원간 연봉 차이가 무려 6억 7000만원으로 특히 직원들의 연봉의 경우 같은 기간 사업보고서를 제출한 증권사 29곳의 평균 연봉인 8600만원을 조금 넘어가는 수준이었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사실 지난해 증권사들은 전반적으로 연봉이 오른 상태로 연봉과 처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불법을 저지르는 것은 개인의 큰 잘못이고 이를 제때 알지 못했던 회사 측의 실수도 부정할 수 없다”며 “직원들도 개인의 부정으로 회사와 업계 이미지가 나빠질 수 있고, 고객들에게 투자 리포트부터 시작해 증권사 전체 시스템에 불신을 준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한국투자증권은 이번 불미스러운 사건이 생긴 것에 대해 조속한 해결을 힘쓸 것을 약속하며 피의자인 김씨를 정직 조치하고 감독자인 강서지점장에도 관리감독자의 책임을 물어 ‘주의’ 징계조치를 취한 것으로 전해졌다. 향후 이번 사건에 대한 정확한 조사가 나온 뒤 이에 상응하는 추가적 징계도 있을 예정이다.



한민철 기자 kawskhan@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