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 물질 함유한 공기청정기ㆍ차량에어콘 교체 외면, 필터 교체만

환경부, 유해물질 필터 사용한 공기청정기 모델 공개

삼성전자ㆍLG전자 제품 포함

필터만 교체… 제품 환불 및 렌털 중단은 불가?

소비자들 단체로 집단소송 준비 중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보는 시민들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한 것은 아이들의 건강을 지키려 했던 엄마들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유해 물질이 든 가습기 살균제를 뿌리고 또 뿌렸다는 점이었다. 피해자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손으로 아이의 건강을 해쳤다’며 절규했다.

최근 환경부가 유해물질이 담긴 향균필터를 사용한 공기청정기와 차량용 에어컨의 명단을 밝혔다. 소비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공기청정기에서 나온 유해 성분이 가족들의 건강을 해치지 않았나 걱정하고 있다. 깨끗한 물을 마시기 위해 구입했던 정수기에도 중금속이 발견됐다. 이쯤 되면 믿고 사용할 물건이 없는 수준이다.

회수 권고에서 필터 교체로 바뀐 권고책

환경부는 지난달 20일, OIT 향균필터를 사용한 공기청정기, 차량용 에어컨의 모델명을 공개했다. OIT 향균필터를 사용한 제품으로는 공기청정기 7개사, 차량용 에어컨 7개사의 제품이 포함됐다. 공기청정기는 위니아, 쿠쿠, LG전자, 삼성전자, 청호나이스, 프레코의 제품이 OIT 향균필터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가 된 OIT(2-Mthyl-3(2H)-isothiazolone)는 옥틸이소티아졸론이라는 물질이다. 이 물질이 함유된 향균필터는 3M이 제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환경부는 안전성 검증을 위해 대형챔버 내 공기청정기 2대를 동시 가동해 공기 중 OIT 방출량을 분석했다. 그 결과 5일간 가동한 공기청정기 내 필터에는 OIT가 최소 25~46%까지 방출됐고 차량용 에어컨의 경우 8시간 가동한 필터에서 최소 26~76%까지 방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환경부는 “실험 전 후 필터 내 OIT 함량 비교 분석 결과를 적용해 위해성을 평가한 결과 일부 공기청정기와 차량용 에어컨 내 필터에서 위해가 우려되는 것으로 평가됐다”고 밝혔다. 일단 환경부는 20일 기준으로 사전 예방 조치로 논란이 된 제품명을 공개하고 공동으로 제품안전기본법 제10조에 따라 회수권고 등을 조치했다.

한편 코웨이는 ‘중금속 정수기’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코웨이는 중금속 이물질(니켈)이 섞여 나와 논란이 된 얼음 정수기 회수와 대여료 환불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분노는 거세다. 일부 소비자들은 코웨이를 상대로 대규모 집단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 소송에는 소비자 160여명이 참가하는 것으로 보인다. 코웨이의 얼음 정수기 모델 3개를 사용한 소비자들은 약 16억원 규모의 소송을 접수한다. 특히 이들은 소장을 통해 정수기가 온 가족이 함께 쓰는 생활가전제품인 점을 고려해 코웨이가 정수기 렌털(대여)계약자뿐 아니라 4인 가족을 기준으로 배상금을 책정(가구당 1000만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만약 사태가 점차 악화된다면 정수기뿐만 아니라 공기청정기, 차량용에어컨을 사용한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집단 소송이 번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환경부가 20일 입장 발표에서 엿새가 지난 26일 OIT 필터를 사용한 제품들에 대해 ‘정상적으로 사용하면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고 입장을 바꾸면서 소비자들 사이에선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당초 환경부가 발표한 명단 안에 포함됐던 제품들 중 일부는 국내 판매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외되면서 이 명단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오락가락하는 실정이다.

필터 교체만 가능, 렌털 해지는 안돼?

공기청정기, 차량에어컨 등은 우리 실생활에서 사용되는 물건이다. 이 때문에 ‘제 2의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재현되는 것이 아니냐는 두려움도 커지고 있다.

환경부가 발표한 목록에 포함된 제품을 만든 제조사들은 부랴부랴 사태를 수습하는 모습이다. 공기청정기의 경우, 가정에서 깨끗한 환경을 위해 사용했지만 오히려 유해물질 함유로 건강만 해쳤다는 소비자들의 비난이 빗발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22일, 홈페이지를 통해 환경부가 발표한 OIT 함유 공기청정기, 에어컨에 대해 필터를 무상 교체해 준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8개 품목에 대해 OIT 필터를 사용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삼성전자는 “해당 항균 필터가 적용된 공기청정기는 2012년, 에어컨은 2009년에 단종됐다”며 “현재 판매 중인 공기청정기와 에어컨은 OIT 성분이 없는 무해한 제품”이라고 말했다.

LG전자 역시 필터 무상 교체를 시행 중이다. LG전자 측은 이미 지난 6월 18일부터 공기청정기, 에어컨 등 일부 모델의 OIT를 함유한 필터에 대해 무상 교체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LG전자는 “(LG전자가) 판매한 일부 공기청정기의 OIT 검출 필터는 위해가 우려되는 수준은 아니라고 평가 됐다. 그러나 고객이 느낄 수 있는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필터에 대한 무상 교체를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LG전자 역시 현재 판매 중인 모든 공기청정기, 에어컨 제품의 필터에 OIT 물질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쿠쿠전자 역시 홈페이지를 통해 ‘환경부의 예방적 차원에서의 필터 회수 권고를 받기 전 지난 6월부터 OIT가 포함되지 않은 필터로 무상교체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업들이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소비자들의 불안감은 가시지 않고 있다. 특히 일부 기업들의 대처는 아쉬움으로 남고 있다. 소비자들은 교체해 주는 향균 필터의 안전성도 믿을 수 없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또 환경부가 제품 자체엔 문제가 없다라고 입장을 바꾸면서 고객들은 제품 환불, 렌털 해지 등을 하지도 못한 채 필터 교환에만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재 OIT 향균 필터가 장착된 제품을 사용했던 소비자들의 항의가 각 고객센터로 빗발치고 있지만 일부에선 렌털료 해지나 위약금 환불은 안 된다는 입장을 내비쳐 화를 돋우고 있다.

이명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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