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은 철저 보상, 한국 오면 ‘딴 얼굴’

이케아, 안전 사고 난 서랍장 판매 ‘논란’

배기 가스 조작한 폴크스바겐, 구체적 배상 대책 ‘모르쇠’

허술한 법망 이용해 서류조작ㆍ유한회사 전환

국내도 美처럼 ‘집단소송제’ 도입?

다국적 기업들의 횡포가 소비자들을 울리고 있다. 유럽이나 미국 등지에선 철저한 보상에 나서는 기업들도 국내에선 얼굴색을 바꾼다. 최근 문제가 된 다국적 기업들의 미비한 보상책을 짚어봤다.

속앓이하는 이케아ㆍ폴크스바겐 소비자들

다국적 가구업체 이케아는 미국 등에서 안전 사고가 일어났던 서랍장을 국내에서 버젓이 판매하고 있어 문제를 일으켰다. 미국에선 이케아 말름(MALM) 서랍장이 넘어지면서 어린이가 숨지는 사고가 잇따랐다. 이에 따라 이케아는 이 서랍장의 북미 지역 판매를 중단하고 미국에서는 2900만개, 캐나다에서는 660만개를 리콜했다. 그러나 이케아코리아는 문제가 된 서랍장을 국내에서 계속 판매하고 있다. 이케아 측은 이에 대해 서랍장이 현지 안전 기준을 충족했고, 원래 벽에 고정하도록 설계된 제품으로 고정했을 시 사고를 당한 사례는 없다고 설명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은 이케아의 서랍장 관련 안전조치가 미흡하다고 판단해 이케아가 관련 내용을 더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서랍장의 국내 판매를 아예 중지하거나 소비자가 벽 고정 서비스를 확실히 받을 수 있게 하라고 요청했다. 이에 따라 이케아 코리아는 2014년 12월부터 이케아 광명점을 통해 판매된 말름 3단, 4단, 6단 서랍장 제품에 대해 무료 벽 고정 장치 제공, 무료 벽 고정 서비스 1회, 전액 환불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판매 중단’과 같은 적극적인 대책에는 나서고 있지 않다. 이케아 측은 이에 대해 “이케아 서랍장은 조립 설명서에 따라 제공된 벽고정 장치를 활용해 벽에 고정할 경우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벽에 올바르게 고정된 서랍장이 넘어지는 사고는 현재까지 보고된 바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폴크스바겐도 마찬가지다. 독일 자동차 회사 폴크스바겐은 환경부로부터 자동차 인증 취소 명령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인증 취소가 확정되면 폴크스바겐은 차종당 최대 100억원의 과징금 부과를 받게 된다. 환경부는 폴크스바겐이 배기가스 및 소음에 대한 시험 성적 서류를 조작해 국내 인증을 받았다며 아우디ㆍ폴크스바겐 79개 모델에 대해 인증 취소 방침을 통보했다. 폴크스바겐이 독일에서 판매하는 차종과 우리 나라에서 판매하는 일부 차종이 다르기 때문이다. 환경부는 폴크스바겐이 국내에서 판매하는 일부 차종은 시험 성적서가 없는 상황에서 서류 조작을 통해 이를 해결하려 했다고 판단했다.

반면 아우디폭스바겐은 미국에서 147억달러(약 16조7000억원) 규모의 소비자 피해 배상 합의안을 승인받았다. 이에 따라 미국 내에서 배출가스가 조작된 2000cc급 디젤 차량 보유자 47만5000명은 1인당 5000달러에서 1만달러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이번 배상액은 미국내 소비자 집단소송 합의액 중 가장 큰 규모다.

국내 소비자들에 대한 보상 대책은 잘 이뤄지고 있을까? 환경부가 79개 모델을 판매할 수 없게 되면서 아우디와 폴크스바겐을 타던 차주들은 속앓이를 하고 있다. 특히 대규모로 판매 모델이 지정되면서 사실상 폭스바겐코리아가 국내 시장에서 철수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브랜드 가치가 떨어지면서 자연스레 중고차 시세도 추락 중이다. 중고차 전문 쇼핑몰 SK엔카닷컴에 따르면 폭스바겐그룹 배출가스 조작 파문이 벌어진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7월까지 홈페이지에 등록된 폭스바겐 브랜드의 연식별 주요 차종 매물을 조사한 결과, 폭스바겐의 중고차 시세는 평균 11.9%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만약 폭스바겐코리아가 국내 시장에서 철수한다면 애프터서비스(A/S)가 어려워진다는 점 또한 중고차 시세를 떨어뜨리고 있다.

폭스바겐코리아는 구체적인 환불 대책이나 보상금 대신 ‘죄송하다’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고차 시세 하락에 대해선 이번 처분 예고는 차량을 수입하면서 제출한 인정 서류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차량의 안전과 성능과는 무관한 사항이라 밝혔다. 때문에 인증 취소가 이뤄지더라도 고객들의 차량 운행, 보증수리, 중고차 매매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단 설명이었다. 차량 환불 역시 차량 안전과 성능과는 무관하므로 없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요리저리 법망 피해가는 다국적 기업

외국계 기업들이 국내 소비자들에 대한 피해보상 대책을 제대로 세워주지 않자 법 개정의 움직임도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피해자 개개인이 소송을 하지 않아도 대표 당사자의 피해가 인정되면 피해 집단 전체에 배상을 해야 하는 ‘집단소송제’ 도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식 집단소송제를 모델로 하고 있다. 개개인이 원고로 참여하지 않아도 대표 당사자의 소송으로 피해자 전원에게 판결의 효력이 미치도록 한다. 앞서 언급한 폴크스바겐 소송의 경우 미국에서는 폴크스바겐 차주들이 개인적으로 소송에 참여하지 않아도 판결에 따라 보상을 받을 수가 있다.

우리나라도 이와 같이 법이 개정되면 최근 확산되고 있는 대규모 피해에 소비자들이 좀 더 손쉽게 배상을 받을 수 있게 된다. 현재는 소송에 참여한 소비자들만 피해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돼 있다.

한국에만 오면 배짱을 부리는 외국계 기업들의 사례는 셀 수 없다. 가습기살균제로 180여명의 사망자를 낸 옥시레킷벤키저는 사태 발생 후 5년이 흘러서야 겨우 피해자들에 대한 피해 보상 규모를 발표해 비난을 받았다. 국내의 허술한 법망을 외국계 회사들이 이용하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옥시라는 것이다. 옥시는 본사와 한국 지사에 각각 다른 기준을 적용했다. 특히 유한회사로 전환하면서 정기적인 외부 감사와 공시를 면제받기도 했다.

이에 따라 법망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소비자원은 지난 6월 29일, 미국에서 문제를 일으킨 서랍장이 국내에서도 판매되고 있고 동일한 사고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해 이케아코리아에 미국, 캐나다와 동일한 시정 조치를 요구했다. 그러나 이케아는 앞서 언급한 대로 소비자가 원하는 경우에만 환불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이에 한국소비자원은 국가기술표준원에 시정 건의를 했고 향후 양 기관이 협력해 공동 대응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외국계 기업들이 권고 사항을 따르지 않는 것은 국내 소비자단체들의 권고가 강제성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상 국내 소비자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 자체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명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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