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지침 불투명, 보험사 일방적 공시에 소비자 피해 우려 커져

금융당국의 변액보험 소규모펀드 정리 관련 구체적 가이드라인 없어

금융소비자, 소규모펀드를 ‘부실펀드’로 오해하며 변액보험 불신 가능성 높아져

보험사들 소규모펀드 편의대로 공시해 소비자 선택의 폭 축소 우려

소규모펀드 정리, 자산운용 계열사 몰아주기 기회 될 수 있어

최근 금융당국이 말 많고 탈 많은 변액보험에 소비자 안전장치 마련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 보험상품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로 꼽히는 ‘소규모펀드 정리’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과거 금융위원회 등이 금융소비자들을 보호하는 취지로 변액보험의 소규모펀드 정리를 대대적으로 추진했지만, 법규상 문제로 초반부터 삐걱대며 현재는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문제는 변액보험의 소규모펀드 정리가 흐지부지되며 금융소비자들의 피해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보험사들은 금융당국 측으로부터 법규 제정을 통한 명확한 지침이 내려오고 있지 않기 때문에 변액보험 소규모펀드 정리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금융소비자 단체와 일부 변액보험 가입자들은 금융당국의 소극적인 정책 추진을 비판하며, 보험사 차원에서 소비자 관리에 보다 적극적으로 힘써 준다면 소규모펀드 정리로 인해 생기는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고액의 사업비로 원금회복 기간이 길고 다른 금융투자상품 이상으로 기대수익률이 나지 않는 등 변액보험 가입자들 다수가 이 보험상품에 불신을 키우고 있는 상황에서 소규모펀드를 자칫 ‘부실펀드’로 오해하거나 보험사가 소규모펀드 정리를 악용할 위험성도 높아지고 있다.

소비자보호 취지의 소규모펀드 정리, 행방은 오리무중

지난 2013년 3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금융소비자들의 변액보험 상품에 대한 불만 해소와 보험 내 펀드 수익률 제고를 위해 소규모펀드 정리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금융당국은 변액보험 내 운용 펀드로 설정한지 3년이 지나 원본액이 50억원 미만 또는 설정 3년이 지나고 1개월 간 50억원 미만에 머물렀을 때 이를 소규모펀드로 규정한다고 설명했다. 이 3년이라는 기간은 현재 1년으로 바뀌었다. 당시 금융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50억원 미만의 소규모펀드는 100억원의 기본단위로 거래가 이뤄지는 국채나 우량 회사채 등 주요 채권에 대한 자유로운 투자가 사실상 불가능해지고, 주식형의 경우 효율적 분산투자가 곤란해진다.

또 운용과정에서 해외펀드 수탁비용 등 펀드규모와 상관없이 생기는 고정비가 높아지는 단점이 있다. 특히 이 소규모펀드를 운용하는 자산운용사 입장에서는 이 펀드로 얻게 되는 투자일임보수가 비교적 적기 때문에 관리가 소홀해질 수 있다는 문제도 지적돼 왔다.

이에 금융당국은 같은 해 상반기 안에 소규모펀드 판단기준을 담은 가이드라인을 마련, 약관상 해지사유가 명확하고 소규모펀드 중 약 30%를 차지하는 유사펀드를 포함한 것을 우선적으로 정리하겠다고 밝혔다. 또 보험사별 소규모펀드 정리 계획을 접수해 구체적 절차를 진행했다. 이어 보험업법과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소규모펀드 정리 사유를 법규화 하겠다고 발표했지만, 현재까지도 변액보험 소규모펀드는 그 정리에 있어 구체적 법규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당시 소규모펀드 정리 계획은 ‘모호함’이라는 문제에 직면했다. 일반적인 증권사 펀드의 경우 4개의 금융업법 중 자본시장법에만 해당돼 소규모펀드 해지사유가 법령에 명확히 규정돼 있다. 반면 변액보험은 보험업법과 자본시장법을 동시에 적용 받는 금융상품으로 그 개별약관별 내용의 명확성이 회사별ㆍ상품별로 차이가 있었다.

때문에 변액보험은 개선안을 마련할 때 다양한 조건에 동일한 비중을 둬야 했지만, 이 조건들이 충돌해 모호한 기준을 낳거나 개선 완료까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또 정리 대상인 소규모펀드에 적립돼 있던 투자금을 다른 펀드로 이동할 경우 기존과 유사한 투자형태와 위험등급, 자산운용방식 등을 갖춘 펀드에 대해 명확한 규정을 마련하기 어려운 점도 법규 제정에 큰 벽으로 작용했다.

특히 일반 펀드는 기존과 유사한 펀드가 없을 때 회원에게 적립금을 되돌려주게 돼있지만, 변액보험의 펀드는 소규모펀드를 정리할 경우 원칙적으로 적립금을 분배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었다. 때문에 펀드를 청산했을 때 적립금 처리와 기타 비용부담이 금융당국과 보험사, 소비자 간 갈등을 유발할 수 있어 소규모펀드 정리에 대한 논의는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변액보험 가입자, 일방적ㆍ방치된 소규모펀드 정리에 피해 우려만 높아져

변액보험 소규모펀드에 대한 정리가 흐지부지된 채 방치되고 있어 이로 인한 불만을 호소하는 금융소비자도 발생하고 있다.

한 외국계 생명보험사의 변액유니버셜보험에 1년 반 동안 가입 중인 한 금융소비자는 자신이 설정한 펀드가 최근 소규모펀드로 분류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가입 시기 설계사로부터 채권형 60%에 주식형 40%이 혼합된 펀드를 추천받아 설정했지만, 올해 초 국내 주식시장 호황 그리고 미국과 국내 금리인상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자 보다 공격적인 성향으로 포트폴리오를 수정하기로 마음먹었다.

변액보험은 일반 펀드와는 달리 경기흐름과 가입자 자신의 판단에 따라 소정의 수수료를 지급하면 자유롭게 펀드를 변경하며 관리가 가능한 장점이 있다. 때문에 그는 주식형 60%과 채권형 40% 비중으로 변액보험 펀드의 포토폴리오를 변경했다. 그러나 변경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보험사 홈페이지 공시란을 통해 해당펀드가 소규모펀드로 분류됐다는 사실을 인지했고, 자신의 선택권을 침해 받았다는 불만이 생김에도 불구하고 다시 다른 펀드로 바꿀 수밖에 없었다.

보험사 측은 고객들이 느낄 수 있는 불편은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다. 금융당국에서 소규모펀드 정리로 인한 민원의 소지가 발생한다 할지라도 이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어 개별민원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현재 보험사에서 변액보험 소규모펀드에 관해 취하고 있는 조치는 각 보험사 공식홈페이지 변액보험공시실을 통해 소규모펀드 현황을 수시로 공시하는 법 외에 없다. 이를 공시하며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제89조와 시행령 제93조에 의해 해당 소규모펀드가 법 제192조 제1항 단서에 따라 금융위원회의 승인 없이 해지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변액보험 가입자들과 금융소비자 관련 단체에서는 소규모펀드 정리에 대한 명확한 규정의 부재와 현재 보험사별 소규모펀드 수시공시에 대한 방식이 금융소비자들에 대한 오해와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식형 60%ㆍ채권형 40% 펀드로의 포트폴리오 수정을 할 수 없었던 변액보험 가입자는 “내가 바꾼 펀드가 소규모펀드로 분류됐다는 것을 확인하고 설계사와 고객센터에 대책을 문의했지만, 소규모펀드가 이후 청산되거나 손실이 날 가능성도 높아 다른 펀드로 옮길 것을 권하더라”며 “내가 부실펀드를 선택했다는 생각과 손실이 날 수 있다는 말에 펀드를 다시 바꿀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내가 선택했던 펀드가 소규모펀드 공시를 확인하기 거의 한 달 전에 바꾼 것으로, 그렇다면 한달 동안 문제가 있던 부실펀드로 내 보험료가 운용되고 있었다는 말인데 미리 알려주지 않은 것이 큰 불만이었다”며 “변액이 펀드변경이 자유로운 장점이 있어 가입을 한 이유도 있는데 보험사가 지정한 자산운용사에서 돈을 잘 굴리지 못해 소규모펀드로 분류된 것이 가입자들의 선택의 폭 축소라는 불이익으로 이어지는 것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물론 이 변액보험 가입자의 주장에는 오해가 섞여 있었다. 변액보험 소규모펀드로 분류됐거나 운용자금의 규모가 작은 펀드라고 해서 이것을 부실하다거나 자산운용상 문제가 있었다고 할 수 없다. 반대로 자산유입규모가 높은 펀드라고 해서 수익률이 반드시 높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소규모펀드도 존속하는 동안은 투자금을 추가로 모집할 수 있는데, 현재 원본액이 50억원보다 낮지만 보험료가 추가로 유입되면 소규모 펀드에서 제외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소비자 측면에서는 이것이 단순한 무지가 아닌 금융당국의 소규모펀드 정리에 대한 방관과 보험사 차원에서의 부족한 고객관리에서 나온 오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금융소비자연맹 관계자는 “소규모펀드라고 해서 부실펀드로 취급해서는 안 되지만, 소비자들은 자신이 선택한 것을 ‘정리한다’라는 말의 뉘앙스를 ‘나쁜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이런 오해는 보험사들의 고객관리에 있어 소홀함을 불러일으켰다고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보험사별로 소규모펀드를 공시하며 이를 금융위원회의 승인 없이 해지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가입자들이 소규모펀드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이미지는 부정적이며 이로 인해 충분히 오해를 할 만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또 금융소비자연맹 측은 소규모펀드 정리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는 현 상황과 소규모펀드 현황공시 외에는 특별한 조치를 취할 수 없는 보험사들의 상황 그리고 고객관리의 소홀함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는 소비자들의 소규모펀드에 대한 오해가 결국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사실 소비자들이 선택 중인 펀드를 소규모펀드로 분류해 정리할 예정이라면 이에 대한 예고는 적어도 몇 개월 전부터 해줘야 한다”며 “소규모펀드를 정리하는 사유의 해명 단계만큼이나 이동시킬 대체 펀드 선정도 중요한 데 고객의 투자성향과 선호 등에 맞는 펀드를 준비해 권하고 이해시키는 과정이 필요해 그 기간을 길게 볼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주간한국>에 취재에 응한 변액보험 가입자들이 소규모펀드 공시에 대해 가장 불만이라고 주장했던 부분은 공시 시기였다. 소규모펀드를 수시로 공시한다고 하지만, 이는 지난달 현황으로 길게는 한 달 동안 이 정리 대상인 소규모펀드를 설정해 자산이 운용되는 경우가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

단순한 운용실적 예측뿐만 아니라 보험사별로 고객관리 차원에서 소규모펀드로 분류될 가능성의 예측 기준을 마련해 이를 미리 안내한다면, 소비자들도 갑작스러운 통보로 당황하거나 불만을 가지는 일을 예방할 수 있다.

소규모펀드 정리에 관한 가이드라인의 부재로 생길 수 있는 고객 피해는 이뿐만이 아니다. 소규모펀드 공시 후 보험사들이 대체 펀드로 기존 소규모펀드와 비슷하거나 고객들의 투자성향에 알맞은 것이 아닌 전적으로 보험사 중심으로 이들의 입장에서 관리가 편하거나 자산규모가 큰 펀드로 권하게 되는 위험성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변액보험 가입자들 중에는 소규모펀드 정리로 인해 자신들의 펀드선택 폭이 축소될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또 소규모펀드 정리가 일부 자산운용사에만 일감을 몰아주는 ‘꼼수’의 기회도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금융소비자연맹 관계자는 “변액보험을 판매할 수 있는 자격증은 주로 짧은 기간 공부해 쉽게 딸 수 있고, 변액보험 설계사 대부분은 사실 영업직이기 때문에 이들에게 일반 증권ㆍ은행사 펀드매니저만큼의 펀드와 자산운용평가 등에 대한 전문 지식은 없다고 본다”며 “아무리 고객투자성향을 조사한다고 해도 이 설계사들이 고객들에 추천하는 변액보험 펀드는 고객의 성향에 가장 알맞은 것이 아닌, 결국 회사에서 정해준 몇 가지밖에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사실 보험 설계사들의 근속기간이 짧고 이로 인해 관리소홀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보험사들마다 기존 고객들의 성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지적은 이전부터 제기돼 왔다. 이는 금융소비자연맹 관계자의 설명처럼 ‘영업직’ 설계사들의 펀드와 자산운용에 대한 지식 부족으로 소규모펀드 정리를 위한 대체 펀드가 고객 맞춤형이 아닌 보험사의 일괄적 방침대로 향할 위험성이 있다. 실제로 지난해 보험업계 내외에서 논란이 됐던 ‘변액보험 자산운용 계열사 몰아주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당시 삼성생명은 지난 2014년 말 전체 변액보험의 41%를 차지했던 규모인 약 9조3722억원의 변액보험 자산운용을 계열사인 삼성자산운용에 맡긴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정치권과 금융당국에서 계열사 간 일감 몰아주기 관행을 개선하자는 목소리가 커진 바 있지만, 여전히 확실한 개선책은 마련되지 못한 상황이다.

결국 소규모펀드 정리로 인한 대체 펀드가 회사 중심의 선택으로 현실화된다면, 변액보험 자산운용 계열사 몰아주기도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금융당국, 소규모펀드 법적규정 마련은 여전히 “알 수 없다”

보험사와 금융당국은 소규모펀드 정리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고,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소비자 피해도 지나친 우려라고 지적하고 있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변액보험의 소규모펀드를 정리할 기준이 없어 보험사들이 알아서 정리할 수 는 없는 상황”이라며 “펀드운용을 회사에서 직접 하는 것이 아니고, 자산운용사들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현재는 소규모펀드를 제때 공시하고 운용사가 자산을 제대로 운용할 수 있도록 주의ㆍ관리하는 것뿐 특별한 대책이 없다”고 설명했다.

미래에셋생명 관계자도 금융당국에서 내린 명확한 지침이 없어 소규모펀드를 마음대로 정리할 수 없고, 해당 펀드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이에 설정한 모든 고객들의 동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절차상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소규모펀드 정리를 위한 대체 펀드가 고객이 아닌 회사 중심의 선택으로 향할 위험성에 대해서도 일축했다.

그는 “소규모펀드를 정리한다면 현 상황에서는 분류코드에 맞춰 대체 펀드를 지정할 수밖에 없다”며 “물론 회사에서 나쁜 것을 추천할 리가 없고, 더 나은 게 있다면 별도로 추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금융당국 측은 소규모펀드 정리에 대해 “현재는 시간이 걸릴 것 같아 정확히 언제 법적 가이드라인을 정할지 알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금융소비자연맹 관계자는 “보험사들이 변액보험을 저금리시대의 대안이라고 광고하지만, 최근 저금리 기조로 원금회복 기간이 더 길어져 이 상품에 불만을 가지는 사람도 부쩍 많아졌다”며 “소규모펀드 정리가 흐지부지 해진 것을 누구의 탓으로만 돌릴 것이 아닌,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소비자 피해를 막기 위해 관련 법규 제정과 고객관리 그리고 자산운용사 관리ㆍ감독에 철저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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