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건설의 일방적 저가품 대체로 납품업체 타격” 주장…입주예정자들도 피해

GS건설, 수년간 인연 맺어온 린노에 “경쟁 입찰 참가하라” 일방적 통보

변경한 최저가 LED 조명제품, 린노 것에 크게 못 미쳐… 입주예정자들 분노

GS건설 결정, 주택법 및 채무불이행책임 위반 소지 있어

GS건설 조치 ‘원가 절감’ 차원으로 해석되나 구체적 해명 유보

‘더 아름답고, 더 혁신적인 LED전구’를 명품 아파트 입주자들에게 제공하길 바랐던 한 벤처기업의 꿈이 물거품으로 돌아갈 지경에 놓였다. 이 회사는 조명과 디스플레이 개발 전문업체 ‘(주)린노’로 GS건설의 아파트 브랜드 자이에 화장대용 조명기구를 납품하던 업체다.

린노는 지난 2012년부터 형광등 조명커버 납품으로 GS건설과 인연을 맺어왔고, 2014년부터는 GS건설에서 분양한 30곳의 자이 모델하우스에 화장대용 첨단 스마트 플랫폼 LED 조명기구를 납품해왔다. 그런데 지난 6월 GS건설 측은 린노와의 거래를 갑작스럽게 중단하고 이들에게 “내부 프로세스가 바뀌었으니 경쟁 입찰에 참여하라”고 통보해왔다.

린노는 구두계약 상 GS건설 측과 협의가 이뤄졌고, 이미 자이 모델하우스에 린노 제품이 납품된 상태였기 때문에 경쟁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다. 결국 GS건설은 린노 제품의 납품가보다 약 3배나 싼 타사의 저가 화장대용 LED 조명기구를 설치하기로 결정했고, 린노는 매출에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됐다. 물론 린노 제품을 설치하기로 했던 평택 자이더익스프레스의 입주예정자들은 이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 위치한 린노 사무실은 혁신적인 제품을 생산하는 벤처기업답게 세련되고 독특한 분위기였다. 비록 규모는 크지 않지만, 세계 최초로 스마트 LED 라인조명을 모듈화로 개발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젊은 직원들이 업무에 열중하고 있었다. <주간한국>과 만난 린노의 김 모 상무와 박 모 감사 등도 본격적인 취재가 들어가기 전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은 채 자사 제품의 특징과 장점에 대해 설명해줬다.

린노 직원들이 GS건설과의 불미스러운 일로 한동안 웃음을 잃었지만, 최근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와의 투자협의가 진행 중이며 GS건설 모델하우스에 납품했던 자사의 화장대용 조명기구가 대기업 유통망을 통해 순조로운 판매가 이뤄지고 있어 웃음을 되찾았다. 그래도 박 감사는 GS건설 이야기를 꺼내자 표정이 어두워졌다.

박 감사에 따르면 린노는 지난 2014년 5월부터 위례자이와 경희궁자이 그리고 <주간한국>의 보도에도 언급된 평택 자이더익스프레스 등 GS건설과의 구두계약이 끝난 30여개 아파트 모델하우스에 자사의 스마트 LED 조명기구를 납품 및 설치했다. 특히 린노는 이를 무상으로 설치해줬고, 자이 30개 아파트 중 위례자이와 청라파크자이, 신금호파크자이의 모델하우스에 설치됐던 린노의 제품 그대로를 아파트 사양으로 확정해 공사에도 반영했다.

이에 추가 납품을 위한 준비까지 완료된 상황에서 지난 6월 GS건설 측은 보문자이와 경희궁자이 등 나머지 27개 아파트 현장에서의 린노 제품의 거래를 중단시켰다. 동시에 ‘경쟁 입찰을 통해 예정가격 내 최저가 업체를 납품업체로 선정하겠다’는 내용의 입찰통보서를 린노 측에 보내왔다.

박 감사는 “GS건설 측에서 갑자기 내부 정책이 바뀌어서 기존 수의계약을 맺어왔던 항목에 대해 경쟁 입찰로 바꾼다며 린노도 이 입찰에 참여하라는 입찰통보서를 보내왔다”며 “이미 린노의 제품이 자이 모델하우스에 납품돼 그 자체가 계약이 이뤄진 상황이었고, 우리 회사가 부정을 저지르거나 제품에 하자가 있던 것도 아니었는데 이런 제안 아닌 일방적 통보를 누가 인정할 수 있었겠는가”라고 호소했다.

린노는 그동안 좋은 인연을 맺어왔던 GS건설 측의 통보를 쉽게 납득할 수 없어 처음에는 이미 납품을 약속한 30개 아파트가 아닌 차후 추가 분양에 대한 경쟁 입찰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오해할 정도였다. 기계약에 대해 법적 문제가 없었다고 판단한 린노는 결국 GS건설 측이 요구한 지난 6월 16일 경쟁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고, GS건설은 7월 19일 린노 측에 공문을 통해 ‘린노는 계약 체결에 대한 우선적 권리가 없으므로 당사는 린노와 LED 등기구에 대한 납품계약을 체결할 의무가 없다’고 전했다.

사실 GS건설의 이런 결정은 임병용 GS건설 대표가 한 말과 전혀 반대로 향하고 있었다. 임병용 대표는 올해 신년사에서 출혈경쟁 입찰의 지양과 수의계약의 지속적 추진을 통해 국내외 시장의 돌파구를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린노 측의 계약이 중단된 것도 GS건설의 상부에서 업체 선정방식을 경쟁 입찰로 바꾸라는 지시가 있었고, 지난 5월 말 그동안 경쟁 입찰을 거치지 않아왔던 다른 항목의 납품 업체들에게도 입찰통보서를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린노의 김 상무는 “경쟁 입찰을 통해 공정성을 확보한다는 목적이 좋아 보일 수도 있겠지만, 큰 문제는 소비자들이 모델하우스에서 봤던 린노의 제품보다 낮은 품질의 저가 화장대 LED 조명이 들어간다는 점”이라며 “GS건설은 이런 변경 절차에 있어 입주예정자들의 동의도 얻지 않았고, 여러 부분에서 위법성이 제기됐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린노 측이 공개한 견적서에서 린노는 자사의 스마트 LED 조명기구를 화장대 제작 가구사에 8만 8000원에 납품했다. 이 제품은 일반 LED 조명과는 다른 첨단 스마트 플랫폼 조명시스템으로 이용자가 램프 교체 시 스마트폰이나 리모콘을 통해 화장대 조명의 색상과 밝기 등을 조절할 수 있는 기능을 탑재해 국내외 특허를 받은 상태였다. 취재 결과 평택 자이더익스프레스 모델하우스를 방문했던 일부 입주예정자들도 현장에서 접했던 린노의 화장대 LED 조명 제품을 인상 깊게 보며 분양 계약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GS건설이 통보한 경쟁 입찰에 성공해 린노 제품을 대신할 ‘최저가 낙찰 제품’은 납품가 3만 800원이다. 물론 이 제품에는 린노의 스마트 기능 등은 탑재돼 있지 않고, 단순한 LED 조명 기능만이 있다. 특히 모델하우스에 설치됐던 린노 제품과 ‘외관’만 비슷하게 설정돼 공사에 들어갈 예정인 것으로 나타났다.

김 상무는 “조명의 ‘불을 밝힌다’라는 단순한 기능을 구현할 수 있겠지만, 또 다른 내부 기능이 추가됨에 따라 이용자들의 편의성과 제품의 품질이 올라가게 된다”며 “저가 제품에 외관만 똑같이 할 경우 불을 밝힐 수는 있겠지만, 입주예정자들이 낸 거액의 분양대금과 GS건설이 항상 강조하는 ‘명품아파트 자이’에 걸맞을 수 있겠는가”라고 주장했다.

린노 측에 따르면 “린노 제품과 변경한 제품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던 우무현 GS건설 부사장도 린노 사무실에 방문해 스마트 LED 조명기구를 소개받았다. 우 부사장은 외관만 비슷한 저가 제품과 린노 제품의 성능 차이를 인정하면서 “모델하우스에 납품된 제품은 저것(린노 제품)이 아니지 않느냐”라고 착각한 것으로 전해졌다.

GS건설 측은 린노 제품의 우수한 성능과는 별도로 납품계약서를 작성한 적이 없으니 계약을 중지한 것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타 건설사 관계자는 린노의 사례를 접하고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수의계약으로 인연을 맺고 있었던 업체에 갑작스럽게 경쟁 입찰 통보를 한다면 신뢰를 잃을 뿐더러 소송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특히 오랫동안 수의계약인 상태의 상호 간에 납품계약서는 작성하지 않고 일하는 것이 업계 관행이기 때문에 이를 법적인 무기로 들고 나온다면 회사 간 신뢰는 더욱 깨질 수 있고, ‘갑질논란’이 일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평택 자이 입주예정자들, 저가제품 설치 사실에 ‘분노’

린노 측은 GS건설의 결정으로 인해 제품 공급계약 체결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고 있으며, 주택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주택법 제38조 ‘주택의 공급’의 제6항에 따르면 마감자재 생산업체의 부도 등으로 인한 제품의 품귀 등 부득이한 사유로 인해 마감자재 목록표의 마감자재와 다르게 이를 시공·설치하려는 경우에는 당초의 마감자재와 ‘같은 질 이상’으로 설치해야 한다. 또 같은 조 제7항에는 사업주체가 6항에 따라 마감자재 목록표의 자재와 다른 마감자재를 시공·설치하려는 경우에는 그 사실을 ‘입주예정자에게 통지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판례에도 제시돼 있었다. 지난 2009년 광주고등법원이 판결한 내용에 따르면 견본주택에 자재를 납품하는 업체가 부도 등으로 자재를 공급할 수 없게 되는 등 자재의 품절 및 품귀, 단종 등의 사정이 존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시공사가 임의로 자재를 변경해 시공한 것에 대해 입주예정자들에 대한 ‘채무불이행책임’을 인정했다.

린노 측은 GS건설이 주택법 제38조 제7항에 따라 자재 변경 사실을 자이 입주예정자들에게 알렸는지의 사실 확인을 위해 각 지역 자이 입주예정자 커뮤니티에 등록했다. 린노 측은 30개 자이아파트에서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입주예정자들을 확인할 수 없었다.

<주간한국>의 취재에 응해준 평택 자이더익스프레스 1차 입주예정자들은 린노 측의 사연을 접하고 ‘소비자 우롱’과 ‘소비자 권익 침해’라며 분노했다. 특히 입주예정자들은 분양대금을 그대로 받고 계약했지만, 차후에서야 원가절감을 위해 저가 제품으로 변경했다는 사실에 ‘공사비 부풀리기’가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또 GS건설이 절감한 금액의 행방은 어디에 있는지 우려하고 있었다.

자이더익스프레스 1차 입주예정자 L씨는 “화장대 LED 조명을 변경한다는 사실을 GS 측으로부터 전혀 들은 적이 없었고, 입주예정자들과 아무런 상의도 없이 기존 것과 3분의 1의 저가 제품으로 바꿨다는 것이 황당할 뿐”이라며 “왜 우리가 GS건설의 원가절감 정책의 희생양이 돼야 하는가”라고 주장했다.

GS건설 측의 입장을 들어봐야 했다. <주간한국>은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온 린노와의 수의계약을 깨고 이들에 경쟁 입찰을 제안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궁금했다. 린노 측의 주장과는 맞지 않게 이들 회사와 제품에 문제가 있을 수 있었고, 임병용 대표의 신년사 내용과는 다르게 경쟁 입찰을 할 수밖에 없었던 GS건설만의 사정이 존재했을 가능성도 있다.

특히 서울대학교 법학과 출신이자 GS그룹의 법무 업무까지 총괄했던 임 대표의 GS건설이 위법의 소지를 남길만큼 허술한 법무 조직을 꾸릴 리 없기 때문이다.

GS건설 측이 주택법 제38조 제6항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새롭게 낙찰한 저가의 제품이 당초 마감자재였던 린노의 제품과 같은 질 이상이라는 것도 설명해야 한다. 무엇보다 같은 조 제7항에서처럼 조명 변경 사실을 입주예정자들에게 제대로 알렸는지, 만약에 그렇다면 왜 평택 자이더익스프레스 입주예정자들은 그런 보고를 받은 적이 없다고 하는지 GS건설 법무팀을 통해 들어봐야 했다.

GS건설 측은 이에 대해 즉각 해명할 수 없다며 차후 보도를 요청했다. <주간한국>은 공정한 보도를 위해 GS건설 측의 해명에 대해 보도할 것을 약속했다.

린노는 갑작스럽게 전해진 GS건설 측의 통보로 인해 심각한 타격을 입어야 했다. 때문에 한때는 회사의 존폐 위기가 거론될 정도였지만 현재는 자사 제품의 힘과 벤처기업의 열정으로 위기를 극복해 나가고 있었다.

린노 김 상무는 “사실 언론 보도를 통해 GS건설과 그동안 맺어온 인연에 금이 가고, 피해를 입을 수 있지 않을까 염려해 제보를 망설였다”라며 “그러나 소비자들이 모델하우스에서 본 제품이 아닌 다른 저가 제품이 달린 집에 입주하는 것을 원치 않았고, 소비자들이 GS건설의 일방적 결정에 따라야만 하는 것은 있을 수 없기에 용기를 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기업 간 경쟁보다 상생이 중요한 요즘 시기에 대기업이 중소기업과의 관계를 매몰차게 끊은 것에 다들 실망하고 있다”며 “겉만 똑같고 속은 완전히 다른 조명 제품이 다른 아파트에 또 설치될 수 있어 이를 막고, 우수한 고가 제품을 이용할 수 있는 소비자들의 권익이 침해받지 않도록 이번 일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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