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ㆍCJㆍ현대차 등 미래 블루오션 농업 진출…‘농업판 골목상권 침해’ 논란에 ‘멈칫’

LG CNS, 새만금 스마트팜 단지 조성 추진했으나 ‘백지화’

농민단체 거센 반대 부딪혀… “먹거리 근간 흔들 것”

식품 회사부터 자동차 회사까지… 다양한 기업 ‘참전 중’

마지막 남은 블루오션 vs 농업단체 거센 반발 버티기, 쉽지 않아

국내 대기업들은 반도체, 바이오 등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사업군부터 최근엔 동네 슈퍼, 치킨집까지 다양한 분야에 손을 뻗고 있다. 이러한 대기업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은 골목 상권 침해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최근 LG그룹의 계열사인 LG CNS의 새만금 스마트팜 사업 진출을 두고 대기업의 농업 시장 진입이 큰 이슈로 떠올랐다. 대기업의 농업 진출을 반대하는 쪽에선 대규모 자본을 앞세운 대기업의 진출로 소규모 농가들이 피해를 볼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반면 선진 농업 기술의 발전을 위해선 대기업의 자본력이 필요하다는 반대 의견도 상당하다.

팜한농부터 LG CNS까지… ‘농업 진출 잔혹사’

LG그룹은 구인회 창업주 시절부터 농업에 큰 관심을 보여왔다. 그룹에서 운영하는 연암대학교를 통해 농업 및 축산 전문가를 양성하고 있다.

올해 LG는 글로벌 IT 전문 서비스 계열사인 LG CNS를 통해 스마트팜 시장에 진출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LG CNS는 터키 등 해외 자본과 투자해 3800억원을 스마트팜 건설에 투자한다는 사업을 구상했다.

그러나 LG CNS의 스마트팜 시장 진출이 알려진 후 전국농민총연맹, 진주시농민단체협의회, 파프리카수출농단, 딸기수출농단, 쌀전업농협의회 등 농업 관련 단체의 반발이 잇따랐다. 특히 대기업의 시장 진출로 인해 농업 시장 전체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른바 농업판 ‘골목상권 침해’라는 것이다.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LG CNS는 새만금 스마트팜 단지 조성 사업을 철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완주 위원은 지난달 21일 LG CNS가 새만금 스마트팜 단지 조성 사업을 철회하겠다는 입장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LG CNS는 박 의원 측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농업계의 우려를 적극적으로 고려해 현재의 외국 투자를 유치하고 해외 전문 재배사가 참여하는 새만금 스마트팜 단지 조성 사업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LG CNS 측은 “농민단체의 의견을 바탕으로 회사 내부 및 투자자 측과 투자 계획을 재검토했지만, 짧은 시일 내 광범위한 지지를 얻는 계획으로 발전시키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왔다”며 “이런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기존 새만금 바이오파크 계획으로는 설비공급 사업참여가 어렵다고 판단해 사업추진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스마트 팜 설비공급 사업은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이라며 “농민이 주축이 되는 생산단지가 구축될 경우 설비 및 시스템 공급사업자로 경쟁입찰에 참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번 LG CNS의 스마트팜 사업 진출 논란은 국정감사에서도 ‘뜨거운 감자’였다. 지난달 26일 열린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서 LG CNS를 둘러싼 ‘질책’이 이어졌다. 당초 김영섭 LG CNS 대표가 출석하기로 돼 있었으나 해외 출장 때문에 이재성 LG CNS 전무가 대신 출석했다. 이 자리에서 이 전무는 “우리나라 농업 발전에 저해되는 사업은 하지 않겠다”고 재차 밝혔다. 박완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새만금 바이오파크 사업을 철회하겠단 입장을 밝혀왔는데 완전히 철회한 것으로 이해해도 되겠냐”고 묻자 이 전무는 “농민단체 및 유관단체와 합의되지 않은 일은 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대기업의 농업 진출과 관련된 홍역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3년에는 동부팜한농이 유리온실사업에 진출하려다가 거센 반대에 부딪혀 무산된 전력이 있다. 동부팜한농의 현재 사명은 팜한농으로 지난 2015년 4월 동부그룹에서 계열분리된 후 LG화학의 자회사로 편입된 뒤 ㈜팜한농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2012년 말, 동부팜한농은 경기도 화성시 화옹간척지에 15만제곱미터(약 4만5000평) 규모의 첨단유리온실단지를 완공했다. 이는 단일 유리온실로 아시아 최대 규모이다. 당초 동부팜한농은 이 온실을 통해 연간 100억원 규모의 토마토를 재배 및 생산해 일본으로 수출하려 했다.

그러나 이 대형 유리온실 사업 역시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전남연맹은 “대기업 계열사가 농산물 생산까지 진출해 300만 농민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한국 농업의 붕괴를 가져온다”며 모기업인 동부그룹에 대한 불매 운동에 돌입했다. 전국토마토생산자연합회 전남대책위원회를 주축으로 ‘대기업-동부그룹 농업생산 진출 저지를 위한 광주전남 공동대책위원회’ 역시 동부그룹에 대한 불매 의사를 밝혔다.

결국 동부팜한농은 유리온실 사업에 대해 중단 결정을 내렸다. 동부팜한농은 “유리온실사업은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 시작한 사업으로, 토마토 공동 생산, 공동 브랜드, 공동 수출을 통해 농민들과 상생하는 기업 영농 모델을 만들어 보고자 했다”며 “그러나 더 이상의 오해를 막기 위해 비통한 심정으로 사업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사업 중단 이듬해인 지난 2014년, 동부팜한농은 화옹 유리온실 자산을 포함해 그간 보유하고 있던 온실 지분 전량을 총 350억원에 매각했다.

8개 기업집단의 25개 계열사, 농업 시장 진출

전문가들은 대기업의 농업 진출에는 법적으로 문제가 될 것은 없다고 말한다. 기업들은 토지를 직접 소유하고 재배하는 농업생산법인과 재배된 농작물을 유통하는 농업서비스법인 설립을 통해 농업에 진출할 수 있다. 특히 식품 기업들은 자사의 유통망 구축을 통해 다양한 농작물 사업에 진출해 있다.

기업들 또한 농업 진출에 대한 비난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2013년 동부팜한농 사태에서도 동부팜한농은 유리 온실을 통해 재배한 작물을 내수가 아닌 해외에 수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또 쌀 농사보다는 특수 작물 및 시설 작물 재배를 통해 최대한 국내 농가와 겹치지 않는 농작물을 재배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선진화된 유리온실과 플랜트 구축을 통해 중동 등 해외 국가로의 시설 수출에 초점을 맞춘다는 밑그림을 그렸었다.

하지만 농민 단체의 반발은 생각보다 거셌다. 일부 단체들은 당시 ‘해외 수출 계획을 믿을 수 없다. 해외 수출 실적이 신통치 않다면 국내 시장으로 시선을 돌릴 것’이라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농업 관련 단체들은 대기업의 농업 진출로 농가뿐만이 아니라 국민들 또한 피해를 입을 것이라 말한다. 전국농민회총연맹 관계자는 “대기업의 농업 진출은 단순히 농가의 생존권 침해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 먹거리 시장이 대기업에 의해 좌지우지 될 수 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고 설명했다. 대기업의 대형 자본을 통해 농업 시장을 잠식한다면 중소 농가는 당해낼 길이 없다는 지적이었다.

농민들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의 농업 시장 진출은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철민 의원은 지난달 26일 “8개 기업집단 25개 계열사가 농업분야에 진출해 지난해 4365억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밝혔다. 특히 식품 기업인 하림과 CJ뿐만이 아니라 자동차 기업인 현대자동차, IT 기업 카카오 등 농업과는 큰 연관이 없어 보이는 기업들 역시 농업 시장의 진출해 있다.

김 의원에 따르면 현대차는 현대서산농장(곡물및기타식량작물재배), 서림환경기술(젖소사육) 서림개발(채소작물재배)을, 한화는 그린투모로우 (기타시설작물재배). 카카오는 만나씨이에이(채소작물재배) 등을 통해 농업에 진출했다. 또 아모레퍼시픽의 오설록농장(음료ㆍ향신용작물재배), 하이트진로의 팜컬쳐(과실재배) CJ의 CJ돈돈팜(양돈,양돈정액판매)과 CJ브리딩(곡물및기타식량재배) 등도 농업을 영위하고 있다. 농협의 농우바이오(종자 및 묘목생산)를 비롯해 하림은 그린피그팜스(양돈), 봉화(젖소사육), 봉화제네틱스(양돈), 한사랑(양돈) 축산업과 종자·묘목생산 등을 하고 있다.

농가와 기업 모두 ‘윈윈’ 할 수 있는 전략 필요

대기업에게 농업은 흔히 ‘마지막 남은 블루오션’으로 불린다.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이 쉽사리 농업 시장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국내 대기업들로 구성된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달 26일, 마르크 뤼테 네덜란드 총리의 한국 공식 방문을 맞아 세계 2위 농산품 수출국인 네덜란드로부터 농업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밝혔다. 전경련은 네덜란드의 농업 개방화와 유리온실 및 수경재배 등 새로운 농법 기술을 소개하며 이를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경련 엄치성 상무는 “농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농업의 기업화가 필요하며 농업인도 기업인 마인드를 갖출 필요가 있다”며 “대규모 농사를 지으려면 유리온실, 수경재배와 같은 첨단농법의 도입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대기업의 농업 진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 농업 분야에서 대기업의 진출이 농업 발전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게 대기업 관련 단체의 입장인 것이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전경련은 오는 27일 네덜란드경제인연합회와 한-네덜란드 경제협력위원회 설치·운영을 위한 MOU를 체결하고 앞으로 농업을 포함해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하지만 대기업들 또한 관련 단체들의 거센 반발과 사회적 비난을 무시할 순 없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김수석 박사는 “LG CNS와 동부팜한농이 거센 반대에 밀려 시장 진출을 철회한 것처럼 대기업들 입장에선 농업 관련 단체의 반발을 뚫고 시장에 진출하는 것에 부담을 느낄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농업 시장 진출을 계획했다가 무산된 일부 기업의 관계자는 사업 추진 과정에서 큰 상실감을 경험한 후 다시는 농업 진출을 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대기업들이 보유하고 있는 유통 구조를 이용해 농업 시장을 장악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대해 김수석 박사는 “아직까지는 국내 농업 시장에서 소비자들이 직접 찾는 대형마트, 백화점보다 중간 매개자라 볼 수 있는 도매 시장과 농가가 맞닿는 비중이 더 크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마트 및 백화점으로 농산물 판매에 이득을 볼 것이라는 해석은 다소 무리가 있다”라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고 언급했다. 간척지를 담보로 대기업들의 농업 진출을 적극적으로 권하면서 막상 농민들과 갈등이 생기면 중간에서 무마하기는커녕 그냥 빠져 버린다는 지적이다. 한 농업 전문가는 “정부의 정책에 일관성이 없어 농민과 기업들 모두 이도 저도 아닌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명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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