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쿠, 공기청정기 사태 대처 소홀… 소송도 어려워

소비자, 필터 교체 아닌 렌털 무료 해지 원해

쿠쿠, 90%는 이미 필터 교체 끝난 상황

방출된 OIT 유해 여부 밝혀야 하나 불확실한 실험 결과

유해 물질이 함유된 필터를 사용한 공기청정기, 차량용 에어컨의 제품명이 밝혀지면서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발생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생긴지 벌써 3개월의 시간이 지났다. 소비자들은 과연 그들이 원하는 보상을 받았을까? 쿠쿠전자의 공기청정기를 사용했던 고객들의 호소를 들어 봤다.

쿠쿠, 전화도 안 받았다 vs 먼저 소비자에게 연락했다

지난 7월, 환경부는 OIT가 함유된 향균 필터를 사용하고 있는 제품의 명단을 공개했다. 차량용 에어컨, 공기청정기 등 소비자들의 실생활에서 사용되는 각종 가전제품에서 OIT 함유 향균 필터가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가 된 OIT(2-Mthyl-3(2H)-isothiazolone)는 옥틸이소티아졸론이라는 물질이다. 이 물질이 함유된 향균필터는 3M이 제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안이 불거지자 제조사들은 필터 교체를 통해 사후 대책에 나섰다. 그러나 쿠쿠전자의 공기청정기를 사용한 일부 고객들이 쿠쿠전자 측 대응에 대해 불만을 제기해 눈길을 끌었다.

쿠쿠전자의 공기청정기 일부 제품에서 사용된 필터에 OIT가 함유됐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것은 지난 6월 14일이다. 당시에는 회사의 이름 대신 이니셜로 보도됐다. 이니셜 보도에 불안감을 느낀 많은 소비자들이 쿠쿠 측에 사실을 요청했다. 소비자들에 증언에 의하면 쿠쿠의 고객 상담센터는 자사의 제품이 절대 아니라 주장했다. 그러나 다음 날, 실명 보도가 나오면서 OIT가 함유된 필터를 사용한 ‘C사’는 ‘쿠쿠전자’로 밝혀졌다.

실명 보도와 환경부의 명단 발표로 쿠쿠의 공기청정기에서 OIT 함유된 필터를 사용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소비자들은 즉각 항의에 나섰다. 소비자들은 위약금 없는 해지를 원했으나 쿠쿠전자 측은 대책으로 필터 교체를 앞세웠다. 이 과정에서 소비자들이 더 화가 난 이유는 쿠쿠 고객센터, 공기청정기 사태 전담팀의 태도였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소비자는 쿠쿠 측에게 먼저 전화가 오지도 않았고, 고객센터 등에 전화를 걸자 그제서야 ‘전산이 누락됐다’라는 해명만 들었다고 밝혔다. 한 소비자는 “왜 우리집은 필터 교체를 해 주지 않느냐고 묻자 지역에 있는 매니저가 실수한 것이라며 지역 매니저에게 떠넘기는 태도를 보였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한 본사의 해명을 들어봤다. 쿠쿠 본사 측은 “이미 6월, 이니셜로 보도가 나간 후부터 바로 소비자들에게 먼저 연락을 취해 필터 교환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소비자들이 고객센터 및 전담팀과의 대응 과정에서 불만을 느꼈다고 하자 “당시 통화량이 많아 전화 연결이 안됐을 수도 있지만 회사 측이 먼저 고객들에게 연락을 취하고 있으며 90% 가량이 필터 교체를 완료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부 소비자들의 증언과 상당한 입장차이가 있었다.

소비자들의 분노는 거세다. 한 소비자는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를 하려면 찬 바람을 쐬면 안되기 때문에 쿠쿠 공기청정기를 구입해 하루 종일 틀었다. 안 그래도 아기가 태어난 후부터 원인 모를 감기에 걸려 지금까지 병원을 들락날락거렸는데 아기의 병이 공기청정기 때문인지 의심이 간다”며 울분을 토했다.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렌털에 대한 무상 해지를 요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소비자들은 36개월 동안 공기청정기를 렌털한다는 계약을 체결했다. 소비자의 변심으로 렌털을 해지할 경우에는 36개월 동안 매달 2만9000원의 위약금을 물어야 하는데, 이번 사태의 경우 소비자의 변심이 아닌 제조상의 문제이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렌털 해지는 커녕, 필터 교체 또한 원활히 이뤄지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일부 소비자들은 온라인 카페를 통해 쿠쿠전자를 대상으로 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보상, 억울함 더해지는 소비자들

그렇다면 쿠쿠전자 소비자들은 원하는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소비자 단체들과 법조계는 이에 대해 난색을 표현하고 있다.

당시 환경부는 안전성 검증을 위해 가정용 공기청정기 필터는 실험챔버(26m3)에서, 차량용 에어컨 필터는 실제 차량에 장착한 후 기기를 가동해 사용 전ㆍ후 OIT 함량을 비교ㆍ분석하는 내용의 실험을 했다고 밝혔다. 이 결과, 5일간 가동한 공기청정기 내 필터에서는 OIT가 최소 25% ~ 46%까지 방출되었고, 8시간 가동한 차량용 에어컨 내 필터에서는 최소 26% ~ 76%까지 방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환경부는 “실험 전ㆍ후 필터 내 OIT 함량 비교·분석결과를 적용하여 위해성을 평가한 결과, 일부 공기청정기와 차량용 에어컨 내 필터에서 위해가 우려되는 것으로 평가됐다. 공기 중의 OIT를 포집해 분석한 결과 OIT가 미량 검출되었는데, 이 경우 위해도가 높지 않아 방출된 OIT가 실제 인체로 얼마나 흡입되는지 여부는 학계, 전문가 등과 논의를 지속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냈다.

한국소비자원에도 이번 OIT 필터 함유에 관한 민원이 다수 접수됐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당시 환경부 조사 결과에서도 인체에 유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된 것이지 유해성을 확실히 입증한 실험 결과는 아니었기 때문에 기업도 필터 교체 차원에서 그친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필터 교체에 대해선 “만약 필터 교체 과정에서 교체된 필터가 원래 필터와 가격 차이가 난다면 차액 환급 정도는 요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법조계에서도 소비자들의 소송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형 로펌에 소속된 한 변호사는 “OIT 필터의 경우, 환경부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확실한 결과를 내놓지 않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필터 교체 외에 배상을 받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만약 공기청정기를 렌털 할 때 광고 문구 등에서 허위성이 있는지 검토해 볼 순 있겠지만 OIT와 관련된 내용이 광고 문구에 들어가지는 않았을 테니 이 또한 입증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밝혔다.

단순히 법적인 보상만을 논하기에 앞서 소비자들의 불안감은 크기만 하다. 쿠쿠전자의 공기청정기를 올 3월부터 렌털해 사용했다는 한 소비자는 “OIT가 필터에 함유됐다는 걸 알았으면 당연히 구매하지 않았을 것이다. 안전한 공기청정기라고 해서 구매했는데 이것은 엄연한 거짓 광고”라고 말했다.

이명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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