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집·슈퍼마켓에 손 댄 대기업, 미용에도 손 뻗나

헤어제품 ‘큰손’ LG생활건강·아모레퍼시픽 ‘눈총’

충북 오송 ‘규제프리존’ 논란으로 미용업계 경각심 커져

대기업, “미용업 진출, 고려하지 않는다”

미용업계 “대기업 진출, 경계 늦추지 않겠다”

미용실은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이는 사랑방에서 대규모의 프랜차이즈숍 형태로 변화해 왔다.

최근에는 대기업 진출의 ‘청정 지역’으로 꼽혔던 미용 업계에도 대기업이 진출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여론이 흘러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면허업’인 미용업은 자격증이 있어야만 가게를 낼 수 있어서 상대적으로 대형 자본의 진출이 쉽지 않은 곳으로 꼽혀 왔다.

그러나 업계는 여전히 대기업의 진출을 경계하고 있다. 대형 자본만 있다면 손쉽게 침투할 수 있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미용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이 아닌 이유는

미용업계는 대기업들의 진출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충북 오송의 ‘지역전략산업육성을 위한 규제프리존 지정과 운영에 관한 특별법(규제 프리존 특별법)’에 미용업이 지정되면서 미용관련 단체들이 반발에 나선 일이 있다. 당시 이미용업계의 반발로 인해 충북 오송에서 대기업의 미용업 진출을 허용하는 조항은 삭제됐다.

미용업계의 골목상권 침해는 규제프리존특별법으로 수면 위에 떠오르긴 했지만 사실은 이 다음부터가 더 문제라는 의견이 많다. 실제로 대기업들은 규제 프리존을 통해 충북 오송에서 미용업을 시작하는 것에 대해선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용업계 관계자는 “대기업 입장에선 충북보다는 도심까지 규제가 풀리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강남 등 도심에서 미용실 사업을 벌여야 수익성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라 밝혔다.

미용업계는 규제 프리존을 시작으로 대기업의 미용업 진출이 전국으로 퍼질지 모른다는 우려를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미용사중앙회 관계자는 “당시 협회가 적극적으로 반대에 나선 이유는 충북 오송을 시작으로 타 지역에서도 미용업에 대한 대기업의 진출이 허용될 수 있기 때문”이라 밝혔다.

대한미용사중앙회는 대기업의 진출을 막을 수 있는 방법으로 미용업을 중소기업 적합 업종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그러나 동반성장위원회가 지정하는 중소기업 적합 업종 목록에서 이미용업은 현재 빠져 있다. 대한미용사중앙회 관계자는 “중소기업적합 업종 지정을 위해 서울시와도 논의를 나눴으나 관련 기관에서 ‘미용업은 면허를 취득해야만 운영할 수 있는 업종으로 현재도 보호를 받고 있는 것’이라 답해 지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대한미용사중앙회를 포함한 미용 업계는 대기업의 진출을 여전히 경계하고 있다. 자본을 앞세운 대기업이 시장에 진출한다면 영세 업장들이 도산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대한미용사중앙회 관계자는 “미용실을 운영하는 영세 자영업자들은 적자가 나면 바로 가게를 접어야 하지만 대기업 영업장은 웬만한 적자는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하다. 게다가 고객 입장에서도 편한 입지와 뛰어난 서비스를 갖춘 대기업 계열 미용실을 선호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여론 부담스럽지만, 헤어케어는 매력적 시장

표면적으로 대기업들은 절대 미용업에 진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는 대기업의 골목 상권 침해에 대해 민감한 여론이 형성돼 있고 기존 미용업계의 반발도 거셀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국내 미용 관련 대기업인 아모레퍼시픽은 자회사 ‘아모레프로페셔널’을 통해 헤어제품 관련 사업을 펼치고 있다. 아모스프로페셔널은 미용실에서 사용하는 헤어제품을 주로 판매한다. 국내 미용실 헤어제품 시장에서 아모스프로페셔널이 차지하는 비중은 가장 높다. 이에 따라 지난 5월, 규제 프리존 논란 당시 미용업계는 아모스프로페셔널 불매 운동에 나서겠다고 밝힌 바 있다. 아모레 입장에서는 적잖은 부담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미용 대기업들도 헤어케어 사업에 관심이 많다. LG생활건강은 최근 미국의 헤어케어 전문기업 파루크 시스템즈와 합작사를 설립한 후 국내외에서 헤어케어 사업 확대에 나선다는 계획을 밝혔다. LG생활건강은 파루크 시스템즈와 합작회사 ‘LG 파루크 주식회사’를 설립해 지분을 5대 5로 나눠 갖는다. 이 합작사를 통해 기존에 LG생활건강이 수입해 판매하던 파루크 샴푸와 염모제, 헤어에센스 제품을 국내에서 직접 생산한다.

특히 중국인들에게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화장품 브랜드로 ‘K-뷰티’ 열풍을 이끌며 성장한 뷰티 기업들은 새로운 먹거리로 헤어케어 시장을 노리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한방 샴푸 ‘려’를 통해 중국 시장을 노리고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LG생활건강 역시 신규 헤어케어 브랜드를 통해 국내 헤어케어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데 주력한다.

표면적으로 대기업들이 미용실 사업 진출을 발표하고 있진 않지만 업계에서는 언제라도 손을 댈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직접 매장을 운영하지는 않지만 미용을 O2O(Online to Offline)에 접목시킨 카카오도 기업 진출 사례로 분류된다.

해외의 경우, 미용실에서 화장품 판매를 병행하며 화장품 기업들이 수익을 올리고 있다. 국내 뷰티 기업들 또한 미용업 진출과 동시에 자사의 화장품 판매를 병행하는 새로운 형태의 매장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미용업의 경우, 자본만 있으면 손쉽게 진출할 수 있다는 점도 대기업의 구미를 당기게 한다는 의견이 있다. 미용업계 관계자는 “미용업은 인건비와 점포 관리비가 가장 많이 소요된다. 이 때문에 대기업들은 실력 있는 미용사의 고용과 자본을 통해 좋은 상권에 대형 점포를 낸다면 손쉽게 시장을 점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명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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