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 된 현대, ‘캐시 카우’ 발굴해야

현대상선 잃고 중견기업으로

계열사 맏형 된 현대엘리베이터 역할 중요

현대아산, 생수 시장 진출 통해 신사업 나서

정지이 전무 보유 지분, 눈길 끌어

삼성그룹과 함께 재계를 호령했던 현대그룹이 중견 기업으로 거듭나게 됐다. 전세계적인 해운업 불황으로 인해 국적선사 현대상선을 잃게 되면서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규모로 작아지게 된 것이다.

현대상선과 현대증권을 잃은 현정은 회장 앞에는 현대그룹의 재건이라는 큰 과제가 주어졌다. 와중에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를 포함, 3세대의 경영 승계 또한 차츰 준비하고 있다.

현대그룹의 지배 구조와 함께 향후 재건을 위한 과제를 살펴 봤다.

재계 1위에서 중견기업으로

한때 재계 1위의 위용을 떨쳤던 현대그룹은 이제 자산 2조원대인 중견기업으로 내려앉았다. 현대그룹에서 현대상선과 해영선박, 현대해양서비스 등이 분리되면서 지난 10월 20일자로 현대그룹은 대기업집단에서 빠졌다. 이에 따라 현대경제연구원, 현대아산 등 현대그룹 소속 12개사도 대기업 계열회사에서 자동으로 제외됐다.

현대상선의 최대 주주는 산업은행으로, 현대증권은 kb금융에 매각되면서 현대그룹은 주축을 이루던 계열사들을 잃게 됐다. 이제 현대그룹에 남은 계열사로는 현대엘리베이터, 현대유엔아이, 현대아산, 현대글로벌 등이 있다.

단순히 대기업 집단에서의 탈락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룹의 토대를 이루던 해운업과 ‘캐시카우’였던 증권사를 잃으며 현대그룹은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야 한다는 과제를 안게 됐다.

현대유엔아이는 물류 IT 인프라와 영업망을 활용하고 있는 물류 산업 전문 IT 서비스 기업이다. 자연스레 현대상선과 함께 성장했다고도 볼 수 있다. 정지이 전무가 현대유엔아이의 직함을 달고 있는 만큼 향후 현대유엔아이 또한 몸집을 늘려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현대엘리베이터와 현대아산의 역할에도 큰 관심이 쏠린다. 국내 엘리베이터 업계 1위를 지키고 있는 현대엘리베이터는 해외법인 개척을 통해 위용을 넓혀 나가고 있다. 지난 7월에는 유럽시장 진출을 위해 터키에 현대엘리베이터 현지 법인을 설립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터키를 포함해 중국 상하이〮옌타이, 브라질, 미국, 인도 등 총 9곳에서 현지 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남북 경협 중단과 개성공단 가동 중단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대아산은 현대그룹에겐 상징성이 깊은 계열사이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사업을 이어받았다는 점에서 범현대가 중 현대그룹의 ‘적통’이라는 상징성도 있다.

그러나 현대아산은 남북 경협 사업의 중단으로 인해 중심축을 잃어버린 상황이다. 이에 따라 현대아산은 국내 건설 및 마이스(MICE) 시장으로 눈을 돌린 상태다. 미국 탄산수 브랜드인 ‘크리스탈카이저’의 국내 공급권을 따내기도 했다.

현정은 회장에게 정주영 명예회장과 고 정몽헌 회장이 이어왔던 남북경협 사업을 도맡고 있는 현대아산은 애착이 가는 계열사일 수밖에 없다. 현대그룹 입장에선 남북경협을 재개할 수 있는 상황이 될 때까지 현대아산이 신규 먹거리를 찾아 버티는 게 최선의 시나리오다.

현대아산뿐만 아니라 현 회장이 애착을 갖고 있던 계열사 중 한 곳은 현대상선이었다. 지난 2010년 현대자동차그룹에게 현대건설을 넘겨줄 때까지만 해도 대기업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현대그룹은 현대상선을 잃게 되면서 자산 2조원 대의 중견 기업이 됐다. 동시에 현 회장은 현대상선 주주 자리에서도 물러났다.

현 회장이 현대그룹의 재건을 이루기 위해선 졸지에 계열사 맏형 자리를 맡게 된 현대엘리베이터의 역할이 중요하다. 현대엘리베이터의 경우 국내 승강기 시장에서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국승강기관리원에 따르면 2016년 국내 엘리베이터 설치 대수는 현대엘리베이터가 1만7667대, 티센크루프가 7537대, 오티스가 5025대로 집계됐다. 지난 2015년 기준으로 국내 엘리베이터 시장 성장률은 7% 정도로 전망된다. 현대상선이 산업은행 자회사가 되면서 현대상선에 대한 지원 부담을 덜었다는 점도 청신호로 평가된다.

다만 현대아산은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현대아산이 새로 발을 들여 놓은 국내 생수 시장의 경우 삼다수가 지난 1998년부터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최근에는 생수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한 신세계 등 유통 대기업들 또한 관심을 보이고 있어 경쟁 또한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승계 논하기보단 그룹 재건이 우선인 현대家

지배구조를 살펴보면 현대그룹은 지주회사 격인 현대엘리베이터를 중심으로 각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현대아산의 지분 67.58%를 갖고 있는 최대 주주다. 현대종합연수원의 지분을 97.10% 보유하고 있다. 또 현대경제연구원의 지분을 44.89% 갖고 있다.

계열사별로 오너 일가의 지분 구조는 탄탄한 편이다. 지주 회사 역할을 하는 현대엘리베이터에서는 현정은 회장이 8.7%를 갖고 있다.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는 0.3%를 갖고 있다.

현대유엔아이의 경우 현정은 회장이 55.13%를 소유해 최대 주주 자리에 올라 있다.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가 6.78%, 정영이 차장이 0.24%, 정영선 씨가 0.31%를 갖고 있다.

현대글로벌은 오너 일가가 주식을 전부 소유하고 있다. 현정은 회장이 91.30%, 정지이 전무가 7.89%, 정영이 차장이 0.23%, 정영선씨가 0.58%를 갖고 있다.

대북정책을 도맡고 있는 현대아산은 현정은 회장이 4.04%, 정지이 전무가 0.51%, 정영이 차장과 정영선씨가 각각 0.45%를 소유하고 있다.

현대그룹의 후계 구도에선 맏딸 정지이 전무에게 눈길이 쏠린다. 정 전무는 정몽헌 회장 사후부터 어머니인 현정은 회장을 도와 현대그룹 경영에 참가해 왔다. 현대상선과 현대유엔아이의 직함을 겸직하고 있었으나 현대상선 매각으로 인해 현재는 현대유엔아이 전무직만 맡고 있다.

현 회장이 아직까지 건재함에 따라 정지이 전무를 비롯한 3세들에게 경영권 승계를 논하기에는 아직 이른 시점이다. 다만 현대그룹은 중견기업으로 내려앉은 기업을 하루 빨리 안정시켜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현 시점에서는 승계보단 현대상선을 떠나보낸 현대그룹의 ‘캐시카우’ 발굴이 더 중요한 과제로 놓여 있다.

이명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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