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시대’ 갈 길 바쁜 삼성… ‘최순실 걸림돌’ 의혹에 발목 잡히나

이재용 부회장, 8년 만에 검찰 소환

삼성그룹 본사 및 제일기획 압수수색

지배구조 밑그림 ‘통합 삼성물산’, 혜택 의혹?

금융 지주회사 출범 위한 노력 중

삼성그룹이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폭풍을 맞고 있다. 8년 만의 본사 압수수색에 이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검찰 소환됐고, 광고 계열사 제일기획까지 압수수색을 당했다.

삼성과 비선 실세와의 연관성은 결국 삼성그룹이 국내 대기업들 중 가장 큰 규모로 최순실씨와 연관된 재단과 딸의 승마에 기부와 지원을 했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

삼성그룹은 몇 년 전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승계를 준비하는 행보를 보였다. 거침없는 매각과 합병으로 질주하던 삼성그룹의 ‘이재용 승계 지도 완성 프로젝트’가 ‘최순실 걸림돌’로 인해 발목이 잡히는 게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 소환부터 본사 압수수색까지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7월 24일,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지원하는 대기업 총수 17명과 함께 오찬 및 공식 간담회를 개최했다. 공식적 행사가 끝난 후, 대기업 총수들은 박 대통령과 모처에서 면담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언론에 따르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박 대통령과 독대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독대에서 어떠한 대화가 이뤄졌는지가 검찰 조사의 핵심이다.

검찰은 삼성그룹이 승마협회를 지원하는 과정에서 일종의 ‘대가성’이 있지 않았냐는 의혹도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부회장을 상대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대기업 중 가장 많은 규모인 204억원을 출연한 배경을 캐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은 이 밖에도 대한승마협회 회장사를 맡으며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 지원을 위해 독일 비덱스포츠에 35억원을 송금한 경위도 조사받고 있다.

또 삼성은 정유라씨의 훈련비 지원뿐만 아니라 승마장 구입 의혹까지 받고 있다. 문구기업 모나미가 해외 계열사를 통해 지난 5월, 230만유로를 들여 독일 엠스데텐의 루돌프 자일링거 승마장을 구입했는데 삼성이 모나미를 앞세워 사들였다는 추정이 나오는 것이다.

여기에 지난 15일에는 삼성그룹의 광고 계열사 제일기획도 압수수색을 당했다. 검찰은 최순실씨의 조카 장시호씨가 주도한 평창 동계 올림픽 이권 개입 의혹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제일기획 스포츠단이 장씨가 실소유주로 있는 비영리법인 한국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불법 자금을 지원한 단서를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일기획은 삼성그룹의 소유로 있는 스포츠단 업무를 도맡고 있다.

국내 재벌 기업들은 최순실씨와 관련된 재단의 기부금을 출자했을 때, 각자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하나씩 안고 있었다. 롯데는 신동빈 회장의 검찰 소환, SK는 최태원 회장의 석방, CJ 역시 이재현 회장의 석방 문제와 관련해 해결책을 모색해야 하는 시점이었다. 이 중에서도 삼성그룹은 대기업 중 가장 방대한 규모의 지원금을 내놓아 눈길을 끌고 있다.

삼성그룹의 해결 과제는 단연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다. 이건희 회장이 병석에 누운지 2년이 지났다. 현재 이 부회장이 실질적으로 그룹을 이끌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승계에 대한 발판은 준비 중인 상태다. 검찰은 대기업 총수들의 재단 출자가 ‘대가성’을 담보로 이뤄진 것인지 파악 중이다.

삼성그룹은 이 부회장의 승계를 위해 계열사 매각을 통한 실탄 확보, 지주회사 출범의 첫 번째 단계라고 할 수 있는 통합 삼성물산 출범 등의 행보를 밟아 왔다. 이 중 통합 삼성물산 출범 과정에서 삼성그룹이 혜택을 입은 건지 시선이 쏠리고 있다.

국민연금의 수상한 찬성표

시간을 지난해 5월로 돌려보자. 삼성그룹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통해 ‘통합 삼성물산’을 탄생시켰다. 당시 삼성그룹은 합병을 반대하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의 공세를 이겨내기 위해 소액주주들을 찾아가 일일이 합병 찬성 표를 던져 줄 것을 부탁하는 등,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삼성그룹이 합병 과정에서 특혜를 입었다는 의혹에서 삼성그룹뿐만이 아니라 당시 삼성물산의 최대 주주였던 국민연금에도 자유로울 순 없다. 만약 삼성물산의 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 반대한다면 통합 삼성물산은 합병 문턱을 넘기 어려웠을 것이다.

당시 국민연금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비율이 1:0.35로 산정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찬성표를 던졌다. 국민연금은 통합 삼성물산 출범 전 삼성물산 지분 11.21%, 제일모직 지분 5.04%를 갖고 있었다. 삼성물산의 보유 지분이 훨씬 많음에도 불구하고 삼성물산에게 불리하게 책정된 비율에 찬성표를 던진 것이다. 당시에도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 결정이라는 이야기가 많았다.

논란이 커지자 국민연금은 지난 15일 본격적인 해명에 나섰다. 삼성물산 합병에 지지한 것에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는 설명이다. 국민연금은 “합병을 찬성한 것은 국민연금이 보유한 두 회사 주식의 평가금액이 비슷하면서 국내주식 포트폴리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2조4000억원)에 달하는 특수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 “합병에 따른 시너지 효과와 주식 가치의 상승 여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했다”고 덧붙였다. 국민연금은 “기금의 장기적 수익제고를 통한 연금재정의 안정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주어진 원칙과 절차에 따라 보유 주식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했다”고 부연 설명했다.

통합 삼성물산의 출범으로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는 30.4%의 지분을 보유하게 됐다. 특히 이 부회장은 17.04%의 지분을 보유해 통합 삼성물산의 최대 주주로 올라설 수 있었다. 삼성그룹의 경우, 지주회사 출범이 아직까지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통합 삼성물산이 현재에선 실질적 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다. 오너가의 영향력이 더 커진 것이다.

이밖에도 삼성그룹은 롯데 및 한화와의 대규모 ‘빅딜’을 포함한 계열사 매각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비주력 계열사를 매각하려는 실용주의 행보로 비춰졌지만 한편으로는 향후 승계를 위한 실탄을 확보하는 과정으로도 보고 있다. 특히 삼성그룹은 한화그룹에 방산 계열사인 ‘테크윈’을 매각하는 과정에서도 정부로부터 특혜를 받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승계’ 걸림돌에 부담 큰 삼성

20대 국회가 여소여대로 문을 열면서 현재 국회에서는 삼성그룹의 승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여러 법안이 표류 중이다. 이 부회장 입장에서는 하루 빨리 승계를 마무리지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내년 상반기로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변화가 가시화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삼성그룹은 삼성전자를 필두로 전자 계열사를 정렬하고, 삼성생명 아래에 금융 계열사를 집합시키는 최종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러한 행보에 맞춰 지난 11일 삼성생명은 삼성증권이 갖고 있던 지분 10.94%에 해당하는 자사주 835만9040주를 2900억원에 매입했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 14일 “삼성생명은 삼성증권의 주식 총 30.1%를 보유하게 되면서 금융지주회사 전환에 한층 다가섰다”고 분석했다.

이 연구원은 “삼성그룹은 경영권 승계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해 금융과 제조부문의 지배구조 변환을 가시화시킬 것”이라며 “금융부문은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한 금융지주회사 전환, 제조부문은 삼성전자의 인적분할 이후 지배력 확충에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했다. 또 “제조부문의 경우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전자 등기이사 선임으로 인해 조직개편 절차를 거쳐 내년 상반기에 경영권 승계를 위한 지배구조 변환이 본격적으로 가시화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삼성생명이 현행법상 금융 지주회사가 되려면 금융 자회사의 지분을 30% 이상 보유해야 한다. 이미 삼성생명은 금융지주회사가 될 수 있는 조건은 갖춘 셈이다. 하지만 녹록지 않다는 반대 의견도 있다. NH투자증권 한승희 연구원은 “삼성생명은 금융지주사 면모를 갖춰 나가고 있으나 삼성전자 지분 매각, 중간 지주사 도입 가능성, 새로운 국제 보험회계기준(IFRS 17)과 신지급여력제도 도입에 따른 자본력 문제 등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달 27일 삼성전자 등기이사직에 이름을 올렸다. 그동안 비등기임원으로 존재하며 책임 경영을 회피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갤럭시노트7 폭발 사고 후 경영자로서의 무게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또 삼성전자는 신성장 분야인 자동차 전장 사업을 본격화하고자 미국의 전장 전문기업 하만(Harman)을 전격 인수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거침없었던 이 부회장의 행보 앞에 놓여진 ‘최순실 게이트’와의 연루 의혹은 삼성그룹 입장에서도 큰 부담이 될 전망이다. 특히 이 부회장 입장에선 그 무엇보다 급한 과제인 경영권 승계에 빨간 불이 켜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명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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