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강화됐지만 편법 통해 계열사 ‘부당 거래’… 총수 일가 부 축적 ‘한몫’

대기업 3곳 중 하나 꼴로 내부거래 의존하는 '캥거루기업'

20대그룹 내부거래 매출액 149조2000억원…SK,현대차,삼성 순

10대 기업 일감몰아주기로 부 26조2128억원 증가, 수익률 5512%

한진, 오너가 최초로 공정위 고발…CJ, 후계 승계 위해 특정 계열사 키우기

‘경제 민주화’ 바람에 따라 대기업의 일감몰아주기를 보는 사회적 시선은 몇 년 전부터 급격히 차가워졌다.

지난 2014년 2월에는 총수 일가 사익 편취 금지 규정이 신설됐다. 이에 따라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의 총수 일가가 지분 30%, 비상장사는 20% 이상을 가진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줄 경우 총수 일가까지 사법 처리할 수 있도록 했다. 내부 거래액이 연간 200억원, 또는 연 매출액의 12% 이상인 회사를 규제하도록 하고 있다.

대기업은 총수일가의 사익 편취, 유리한 승계, 친인척에 대한 부당한 지원을 목적으로 일감몰아주기를 하곤 한다. 제도가 강화됐지만 허점을 파고 들어 여전한 부당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일감몰아주기는 ‘현재 진행형’

지난 8월, 재벌닷컴은 자산 순위 20대 그룹의 2015회계연도 매출을 분석해 내부거래 비율이 50% 이상인 계열사 수는 전체(926곳)의 28.2%인 261개사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재벌닷컴의 표현에 따르면 대기업 계열사 3곳에 1곳 가까이가 일종의 내부거래에 의존하는 '캥거루기업'이라는 뜻이다.

LG그룹은 전체 67개 계열사 가운데 33곳이 내부거래비율 50%를 넘었고 KT는 40개 계열사 가운데 17곳이, 현대자동차 그룹은 51개 계열사 가운데 20곳이 내부거래 비율 50%를 넘겼다. 또 금호아시아나그룹은 9개로 전체 계열사의 37.5%가, CJ그룹은 21개로 33.9% 내부거래 비중 50%를 넘었다. 대기업 계열사들이 내부거래로 만들어낸 매출액은 149조2000억원으로 집계됐다.

그룹별로 보면 SK그룹이 33조3000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현대차그룹 30조9000억원, 삼성그룹 19조6000억원, LG그룹 16조8000억원, 포스코그룹 11조5000억원 순으로 나왔다.

이처럼 대기업의 내부거래는 계열사의 독자적 성장을 저해하고, 이 과정에서 재계 전체에 악영향을 주곤 한다. 대기업과의 거래를 통해 성장할 수 있는 중소기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며 대기업의 배만 불리는 상황을 만들기 때문이다.

올 해만 해도 10대 기업 대부분이 일감 몰아주기와 관련해 발목을 잡혔다. 재계 2위 현대자동차그룹은 사돈 일가를 부당 지원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지난 10월, 국민의당 채이배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자회사 현대건설을 통해 삼표, 삼표산업, ㈜남동레미콘, 삼표피엔씨에 일감을 몰아주며 삼표그룹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도 공사에 필요한 레미콘 물량을 삼표그룹에 몰아줬다는 의심을 받았다.

GS그룹은 허창수 회장의 친족들에게 부당한 지원을 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GS그룹이 허창수 회장의 친족이 경영하는 알토, 창조건축사무소, 피플웍스 등에 GS건설, GS칼텍스를 통해 일감을 몰아줬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총수일가가 최초로 고발당하기도 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계열사와의 내부 거래를 통해 총수 일가에 부당한 이익을 제공한 대한항공, 싸이버스카이, 유니컨버스에 총 14억3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또 대한항공 법인과 조원태 대한항공 총괄 부사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기내 면세품 판매 사업을 하는 싸이버스카이는 조원태 부사장을 비롯해 조현아 전 부사장, 조현민 전무가 각각 33.3%의 지분을 갖고 있는 회사다. 대한항공은 지난 2009년부터 직원들을 동원해 기내면세품 인터넷 광고 업무를 하도록 하고, 모든 광고 수익을 싸이버스카이에 몰아준 것으로 드러났다. 조원태 부사장에 대한 고발은 향후 일감 몰아주기와 관련해 총수 일가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경영권 분쟁을 겪은 롯데그룹 역시 일감몰아주기 규제에 포착됐다. 신격호 총괄회장과 사실혼 관계에 있는 서미경씨가 실소유주로 있는 유기개발에 일감을 몰아줬다는 혐의다. 유기개발은 롯데백화점에 입점해 있는 외식 업체들을 운영하는 회사로 지난해 82억8000만원의 매출을 올린 바 있다.

그러나 2년 전부터 대기업의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형성되자 실적이 차츰 악화됐다. 지난해 적자는 6억6000만원을 기록했다. 롯데그룹은 서미경씨의 회사 외에도 현재 구속 수감 중인 신영자 롯데장학복지재단 이사장이 시네마통상과 시네마푸드를 통해 롯데시네마와 내부거래를 한 전례가 있다. 오너가가 영화관 내 매점을 통해 수익을 올려 온 전형적인 일감몰아주기 사례였다. 이 사안이 문제가 되자 시네마통상과 시네마푸드는 폐쇄 절차를 밟았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 멀티플렉스는 일감몰아주기의 온상으로 지적받았다. 지난 9월, 공정거래위원회는 CJ CGV를 이재현 회장의 동생이 대표로 있는 ㈜재산커뮤니케이션즈를 부당하게 지원했다는 혐의로 7억7000만원의 과징금 부과와 함께 검찰에 고발했다. ㈜재산커뮤니케이션즈는 이재현 회장의 동생 이재환씨가 대표로 있는 회사로 이재환씨는 이 회사의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다.

공정위는 CJ CGV가 지난 2005년 7월 재산커뮤니케이션즈가 설립되자 기존 중소기업과의 거래를 끊고 재산커뮤니케이션즈에 유리한 조건으로 스크린 광고 영업 대행 업무를 전속 위탁했다고 지적했다. 재산커뮤니케이션즈는 광고와 관련된 사업 이력이 전무한 회사였다. 이로 인해 재산커뮤니케이션즈는 약 7년간 경제상 이익을 제공받아 국내 스크린 광고 영업 대행 시장에서 1위 사업자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시장 점유율은 2005년 33%에서 2011년 59%로 상승했다.

합병 통해 지분 낮춘 후 계속해서 내부 거래

대기업의 일감몰아주기는 규제가 강화되기 전부터 알음알음 시행돼왔다. 그러나 제도가 바뀐 후에도 이를 악용해 현재까지 어떠한 제재도 받지 않은 사례도 많다.

지난 6월 열린 ‘일감몰아주기 규제의 문제점 및 개선방안’을 위한 간담회에서는 재벌가의 일감몰아주기를 통한 사익편취행위의 사례로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 등의 사례가 소개됐다.

현재 삼성물산인 (구)삼성에버랜드에 대해 지난 1996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총수일가는 계열사를 실권한 전환사채를 인수해 지분 45.56%를 취득했다. 그러다 2015년 9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으로 인해 총수일가의 지분은 30.4%로 하락했다. 이 과정에서 물적 분할된 급식 사업 계열사 삼성웰스토리는 총수일가의 지분이 간접화됐으며 경제적 이익을 동일하게 향유하면서도 직접 지분이 없어 규제대상으로 제외되게 됐다.

삼성웰스토리는 간접 지분에 의한 증여세 과세는 이뤄지지만, 지분율이 3% 미만으로 낮아진 이건희 회장은 과세에서 제외되고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3남매의 과세 금액도 현격히 감소하게 됐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자동차 운반을 맡고 있는 현대글로비스는 물류 업계의 일감몰아주기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간담회에 따르면 설립 당시 현대글로비스는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현대제철 등 주요 계열사와의 내부 거래가 90%를 넘었으나 최근에는 그 비중이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내부거래 비중이 낮아지는 것은 국내 내부거래만을 대상으로 비중을 산정하기 때문이다. 현대차 해외 계열사와의 거래를 반영하면 2014년 기준 68%로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이는 현대글로비스의 종속 회사를 제외한 내부 거래 금액이 감소하지 않았으며 외부 매출이 늘어나 내부 거래 비중이 감소한 것 뿐이라는 지적이다.

CJ그룹은 향후 승계에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이는 CJ올리브네트웍스를 부당 지원함으로써 계열사를 키우려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CJ올리브네트웍스는 이재현 회장의 장남인 이선호씨가 17.97%, 딸 이경후씨가 6.91%의 지분을 갖고 있는 계열사다.

CJ올리브네트웍스는 내부거래금액이 계속 증가하나 총매출은 증가해 내부거래 비중이 낮아지는 추세다. 특히 CJ올리브네트웍스는 미용 및 건강식품을 판매하는 한국판 드럭스토어 ‘올리브영’을 운영하는 CJ올리브영과 합병했다. 사업적으로 큰 연관이 없어 보이는 두 계열사를 합병시킴으로써 내부거래 비중을 낮추기 위한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부 매출 금액과 비중이 큰 CJ올리브영과의 합병으로 내부 거래 비중이 30% 미만으로 하락한다면 과세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 밖에 대기업의 일감몰아주기 규제 회피 사례로는 지배주주 지분 일부 매각으로 지분율을 낮춘 사례, 지배주주의 지분이 낮은 회사와 합병하는 사례, 내부 거래가 없거나 적자회사와 합병하는 사례가 있다.

특히 지주회사 설립 및 지분 승계가 이뤄지지 않은 대기업들은 야당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 법안이 발효되기 전, 지배구조 개편을 이뤄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 때문에 삼성그룹, 현대차그룹 등이 언제쯤 지주회사를 어떠한 방법으로 설립할 지 주목되고 있다.

10대 기업, 일감몰아주기로 이룬 부의 증가 ‘26조’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는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지난 10년간 대기업 집단 및 오너일가는 일감몰아주기를 통해 수천억원의 부를 축적해 왔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 12월 ‘회사 기회유용과 일감몰아주기를 통한 지배주주 일가의 부 증식 6차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국내 기업들을 10대 민간기업집단과 그 외 기업집단으로 나누어 기업들이 일감몰아주기를 통한 부의 증식을 얼마나 이뤘는지 분석했다.

10대 기업은 분석 대상이 아닌 두 곳의 민간기업집단(포스코, 현대중공업)을 제외하고 8개 기업 집단의 31개 자회사와 동일인 등 65명이 분석 대상이 됐다.

경제개혁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10대 기업이 일감몰아주기 의심 사례를 통해 얻은 부의 증가액은 26조2128억원이며 최초 취득금액은 4756억원으로 단순 수익률은 5512%에 달한다.

10대 기업을 제외한 나머지 24개 기업의 80개 회사와 동일인 155명을 분석한 결과 이들의 부의 증가액은 4조9303억원으로 나타났다.

10대 기업 오너가 중 부의 증가액이 높은 사람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순으로 나타났다. 수익률로 따지면 최태원 회장이 가장 높다. 상위 10인의 부의 증가액은 10대 기업집단 전체 부 증가액에서 93.6%를 차지했다.

10대 기업을 제외한 기업 집단에서는 대림그룹이 부 증가액 1,2위를 기록했다. 대림그룹 오너가 이해욱 부회장은 전체 기업집단 총수 일가 중에서도 부의 증가치 9위에 올랐다.

기업집단의 부 증가액은 삼성그룹-현대자동차-SK 순으로 나타났다. 개별 기업의 부 증가액 순위는 (구)삼성에버랜드-(구)SK C&C-삼성SDS-현대글로비스 순으로 나타났다. 일감몰아주기 발생 기업 중 매출 규모가 1000억원을 넘는 회사를 중심으로 살펴봤을 때 전체 매출액 146조원 중 97조원이 내부 거래로 생성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내부거래비중이 3분의 2에 달하는 수치다.

10대 기업을 제외한 기업 중에서는 대림-두산-중흥 순으로 부가 증가했다. 개별기업의 부 증가액 순위는 대림코퍼레이션-㈜두산-현대백화점 순으로 나타났다. 대림코퍼레이션과 ㈜두산의 부 증가액은 전체 기업집단으로 순위를 메겼을 때도 10위권 이내에 들었다.

경제개혁연구소는 “일감몰아주기를 통한 편법적 부의 증식을 막기 위해서는 상장회사의 지분율 기준을 20%로 비상장회사와 동일하게 조정하는 등 지분율 또는 거래비율의 기준을 조정하거나 금액 기준을 추가해 불필요한 예외 조항을 삭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또 “일감몰아주기를 연결재무제표 관점에서 파악하거나 일감몰아주기 등의 수혜 회사가 상장되는 시점에서 상장에 따른 이익을 지배주주 일가에 대한 증여로 봐 과세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명지 기자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