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ㆍ롯데 우선 대상… 대가성 청탁 관련 CJㆍ한화ㆍKTㆍ부영 등 의심받아

SK, 최태원 사면 놓고 거래 의혹… 안종범 증언 수첩, SK 고위층 녹취록 나와

잃어버린 면세점 되찾은 롯데, 의혹 나와… CJ, 이재현 회장 특별 사면 논란

한화, 김승연 회장 석방 관련설… KT 회장 연임, 부영 세무조사 무마 소문 무성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 영장이 기각됐다.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특검팀의 광폭행보에 제동이 걸린 셈이다. 하지만 특검팀은 “흔들림 없이 수사를 진행하겠다”며 강한 의지를 다시금 표출했다. 특검팀이 삼성을 표적으로 삼은 이유는 가장 많은 금액을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출연했고 별개로 최 씨 일가와 직접 거래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과 삼성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입증해낸다면 나머지 기업들의 수사는 수월하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난관에 부딪힌 상황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기업들이 ‘민원’을 해결해주는 대가로 미르ㆍK스포츠재단에 거액을 출연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미르ㆍ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기업은 삼성, 현대차, SK, 포스코, 롯데, LG, KT, 한화, 한진, LS, CJ, 두산, 대림, 금호아시아나, 신세계, 아모레퍼시픽, 부영 GS 등 총 18개 그룹 53개 계열사다. 미르재단 486억 원, K스포츠재단 288억 원 등 총 774억 원 규모다. 이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23개사가 10억 원 이상 출연했다.


18개 그룹 중 9명의 재계총수는 지난 12월 6일 국조특위 청문회에 참석했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한 목소리로 “미르ㆍK스포츠 재단 출연에 대가성이 없었다”고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는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재단 출연과 관련해 “청와대 요청을 거절하기 힘든 게 기업인 입장”이라며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기업들의 주장이 먹힌 것일까. 검찰은 재단 출연금을 놓고 “박 대통령과 최순실 등의 강요에 의한 것”이라며 공소장에 기업들을 ‘피해자’로 규정했다. 당시 검찰은 “출연기업 53곳 중 12곳이 당기순손실을 입고 있는 상태에서 재단에 출연금을 낸 것이다. 이런 사정을 비춰보면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재단에 출연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특검의 생각은 달랐다. 수백억원 규모의 출연금을 뇌물로 봤다. 법원의 이 부회장 영장기각으로 오히려 특검팀이 다른 대기업 수사에 집중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특검팀 대변인 이규철 특검보는 지난 19일 정례 브리핑에서 “향후 다른 대기업에 대한 수사는 이 부회장 구속영장 발부 여부와 관계없이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자금을 출연한 18개 기업 가운데 대가성 청탁이 오간 것으로 의심되는 기업은 6~7개 정도로 분류된다. 삼성 다음 수사대상에 오르내리는 기업들의 ‘민원’은 그룹총수 사면, 사업권 등 다양하고 내막도 복잡하다. 만약 특검팀이 삼성 이외의 다른 기업의 대가성 청탁을 입증할 경우 대통령에게 뇌물죄를 적용할 수 있다. 1차 난관에 부딪힌 특검에게는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 특검팀의 다음 수사대상으로 예상되는 기업들의 사연과 현재까지 나온 증거들을 살펴봤다.

SK, 최태원 사면과 111억 원 거래?

특검의 다음 수사대상이 될 기업은 SK가 유력하다. SK는 SK하이닉스 68억 원, SK종합화학 21억5000만 원, SK텔레콤 21억 5000만 원 등 총 111억 원을 미르ㆍK스포츠재단에 출연했다.

특검은 이 같은 SK그룹의 재단 지원이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사면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SK이노베이션 김창근 회장이 지난 2015년 청와대 인근 안가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독대한 후 20여일 만에 최 회장이 광복절 특사 사면ㆍ복권을 받아 출소한 정황을 눈여겨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SK는 “최 회장이 사면 받을 당시 미르ㆍK스포츠재단은 언급되지도 않은 상황이라 서로 연관이 없다"고 주장했고 지난달 6일 청문회에 나온 최 회장 역시 "허창수 전경련 회장 말대로 기업별로 할당을 받아서 그 액수만큼 낸 것으로 사후 보고받았다”며 "대가성을 갖고 출연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SK의 사면청탁 의혹을 뒷받침해 줄 증거들이 있다. 하나는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비서관의 업무 수첩이다. 2015년 7월 24일 박 대통령과 김창근 회장의 독대를 전후해 SK 관련 대통령의 지시사항이 안 전 수석의 업무 수첩에 빼곡히 적혀 있다. SK그룹의 투자를 요구하는 내용으로 보인다.

독대 이후 8월 14일 최태원 회장은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감옥에서 나오고 업무 수첩에 적힌 사업들은 SK그룹의 기부, 민관협력 등의 형태로 실행됐다. 독대 과정에서 모종의 거래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특검이 확보한 녹취록도 사면 청탁 거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2015년 8월 10일 김영태 SK그룹 부회장은 복역 중이던 최 회장을 만나 메시지를 전달했다. 당시 김 부회장은 “왕 회장이 귀국을 결정했다. 우리 짐도 많아졌다. 분명하게 숙제를 줬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왕 회장’은 박 대통령을, ‘귀국’은 사면을, ‘숙제’는 사면의 대가를 의미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SK 측이 사면 결과를 미리 알고 있었다는 안 전 수석의 증언도 나왔다. 김창근 의장은 최 회장 사면 하루 전인 2015년 8월13일 안 전 수석에게 “하늘같은 이 은혜 영원히 잊지 않고 산업보국에 앞장서 나라 경제 살리기를 주도하겠습니다. 수석님 도와주신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최태원과 모든 SK 식구를 대신해서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라는 문자를 보냈다. 안 전 수석은 검찰 조사에서 “대통령 지시에 따라 사면 사실을 미리 알려주고 받은 문자”라고 진술했고 헌법재판소에서도 이를 인정했다.

헌재에 나온 안 전 수석은 또 “대통령이 전화해 국민감정이 좋지 않으니 사면 정당성을 확보할만한 것을 SK에서 받아 검토하라고 지시했고 이에 김창근 회장의 제안을 받고 자료를 준비했다”고 증언했다. 미르ㆍK스포츠재단 출연 역시 사면 대가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특검 팀의 추측이다.

롯데는 면세점, CJ는 이재현 사면이 출연 조건?

45억 원을 출연한 롯데는 면세점 특허를 추가 획득하는 반대급부로 거액을 제공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롯데는 2015년 11월 면세점 특허 심사에서 월드타워점이 탈락하며 사업에 큰 타격을 입었다. 월드타워점은 2014년 4820억 원, 2015년 6112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심사 당시 롯데는 신동빈ㆍ신동주 형제의 경영권 분쟁으로 회사 안팎으로 시끄러웠고 ‘일본기업’이라는 국민 여론에 큰 뭇매를 맞은 바 있다.

이후 2016년 3월 14일 신동빈 회장은 박 대통령과 독대를 했고 관세청은 4월 서울 시내면세점 추가 선정을 결정했다. 2015년 12월 당시 관세청은 “면세점 신설은 전혀 검토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힌 지 5개월 만에 말을 바꾼 셈이다. 이후 롯데는 2016년 12월 추가 면세사업자로 선정돼 월드타워점을 193일 만에 다시 열어 영업 중이다.

45억 출연과 별개로 롯데는 K스포츠재단의 하남 체육시설 건립사업에 70억 원을 냈다가 검찰의 압수수색 직전에 돌려받기도 했다. 또 롯데백화점과 롯데면세점이 250억 원씩 분담해 총 500억원 규모의 평창 동계올림픽 후원을 결정한 것도 면세점 특허의 대가였다는 의구심이 있다.

CJ가 낸 13억은 이재현 회장의 특별 사면과 연결돼 있다. 이 회장이 지난해 광복절 특사 당시 기업인 중 유일하게 사면을 받는 과정에서 박 대통령에게 청탁한 정황이 안 전 수석의 업무수첩을 통해 드러났다. 손경식 회장은 박 대통령과 독대했을 때 이 회장의 사면을 청탁했고, 2015년 말 작성된 안 전 수석의 수첩에는 대통령의 지시사항으로 '이재현 회장을 도울 일 생길 수 있음'이라는 메모가 적힌 것으로 알려졌다.

CJ는 이어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48ㆍ구속기소)이 주도한 'K컬처밸리' 등 문화융성사업에 1조4000억원대 투자계획을 발표하는 등 적극 지원했다. 특검은 이를 ‘사면 대가성 투자’로 의심하고 있다.

한화, 최순실에 김승연 회장 석방 민원설

미르ㆍK스포츠재단에 25억원을 출연한 한화그룹도 수사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두 재단에 대한출연금이 김승연 회장 석방 대가라는 의혹 때문이다. 게다가 한화의 고위 임원으로 김 회장과 지근 거리에 있는 인사의 증언도 나와 수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하고 있다.

전 한화그룹 핵심관계자 A씨는 한화가 2014년 2월 선고된 김승연 회장의 횡령ㆍ배임사건 파기환송심을 앞두고 최순실(60·구속)씨에게 석방 민원을 했다고 증언했다. A씨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김 회장 부인 서영민씨와 그룹 경영진이 2013년 말부터 최씨에게 ‘김 회장이 파기환송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했고 선고 하루 전(2014년 2월 10일)에 집행유예 판결이 나온다는 걸 미리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A씨에 따르면 최씨를 통해 김 회장 석방 민원을 진행한 이는 김충범 전 비서실장(당시 부사장)으로 최씨는 처음엔 한화 측의 접촉을 꺼렸다. 김 회장 부인 서영민씨가 최씨를 만나고 싶다는 뜻을 전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이후 최씨와 친분이 있는 한화그룹 임원이 거간 역할에 나섰고 최씨는 그를 통해서만 한화 측과 접촉했다고 한다.

A씨는 또 “한화그룹의 거듭된 요청에 최씨가 ‘알아보겠다’고 답했고 한화 측은 파기환송심 하루 전날 ‘김 회장이 집행유예로 구속 피고인 신분에서 풀려날 것’이라는 전갈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A씨는 “최씨는 판결이 나온 뒤 ‘당장 보답할 필요는 없고 나중에 정부 차원에서 좋은 일을 하게 되면 도와달라’고 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미르ㆍK스포츠재단 출연을 얘기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화그룹은 2015년 10월과 지난해 1월 두 재단에 25억원을 출연했다.

한화 측은 A씨의 주장과 언론 보도에 대해 즉각 반박에 나섰다. 한화는 "파기환송심 재판과 관련해 최순실에게 민원을 한 적이 없다"며 "신원을 알 수 없는 A씨의 증언을 통해 의문만 제기하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또한 한화는 “서영민 여사도 최순실과 만나고 싶다는 뜻을 표명한 사실이 전혀 없었음을 확인했다”고 지적했다.

한화는 "최순실에게 석방민원을 하지도 않았지만 만약 청탁을 해서 어떤 이득을 봤다면 당시 가장 최순실의 관심이 높았던 승마협회 회장사를 집행유예 불과 두달만에 사퇴를 공개적으로 표명한다는 것 자체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판결문을 하루 전날 파악했다는 점에 대해서도 한화는 “최씨의 로비(영향력)가 성사됐다면 하루전이 아니라 상당기간 전에 판결 내용을 파악했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화는 “김승연 회장은 15년, 16년 두번이나 진행된 사면을 받지 못했다”며 “최순실을 잘 알고 최씨의 힘을 빌릴 수 있었다면 그때 활용하지 않았겠나”고 반문했다.

하지만 특검 주변에서는 A씨에 대한 증언을 조사해 한화의 관련성 여부를 확인할 것이라는 얘기가들리고 있다.

KT는 황창규 회장 연임, 부영은 세무조사 무마?

KT는 미르ㆍK스포츠재단에 18억 원을 출연했다. KT는 앞서 언급한 기업들과 달리 오너가 없는 회사다. 이런 이유에도 거액을 출연한 KT는 다른 속셈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해 2월 박 대통령과 만난 황창규 회장은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 합병을 막아달라”는 민원을 넣은 것으로 알려진 것이다. 독대 전 이미 KT는 전경련과 청와대 경제수석실에 합병반대 보고서를 전달하기도 했다.

이 때문인지 2016년 7월 공정위는 ‘유료방송 독과점 심화’라는 이유로 두 회사의 합병을 무산시켰다. KT는 최순실씨와도 연결돼 있다. 최순실씨 소유 광고회사 플레이그라운드에 68억 원 상당의 광고를 몰아줬기 때문이다.

이렇듯 KT가 현 정부 뜻대로 움직인 배경에는 황창규 회장의 연임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KT를 잘 아는 인사는 “이사회 절반 정도가 청와대 실세들과 가깝다. 이들이 연임에 찬성한다면 쉽게 황 회장은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며 “연임을 대비해 청와대 요구에 기꺼이 응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현재 황 회장은 연임을 공식 표명한 가운데 KT CEO추천위원회는 차기 CEO선임절차에 착수했다.

부영그룹도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부영은 재단에 3억 원을 출연하는 과정에 세무조사 무마 청탁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부영은 탈세 등의 혐의로 고발돼 현재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에서 수사하고 있다.

돈은 냈지만 그나마 떳떳한 기업들

신세계와 아모레퍼시픽은 각각 5억, 3억을 출연했다. 기업 규모에 비해 적은 액수다. 이들 그룹은 “전경련 요청에 자금을 낸 것”이라는 입장이다.

신세계는 2015년 10월 당시 미르 재단에 대한 출연은 거절했고 2016년 1월 K스포츠재단에만 5억 원을 냈다. 미르 재단의 경우 문화예술 인재 육성 등의 재단 성격이 기업 활동과 연관성이 없어 거절했고, K스포츠재단은 스포츠 활성화에 기여한다는 전경련 요청에 마지못해 냈다는 것이다. 더구나 신세계는 미르재단에 출연을 거부했음에도 2015년 11월 서울 시내면세점 사업권을 따내기도 했다.

아모레퍼시픽은 미르ㆍK스포츠재단에 총 3억원을 냈다. 이 기업은 재단 출연 전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으로부터 자회사 세무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 당시 세무조사는 5년마다 진행되는 정기 조사 성격이었으며, 최순실 지원과도 무관하다는 게 아모레퍼시픽의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이 최순실 모녀 재단 지원을 강력하게 거부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허인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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