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년만의 오너 구속… ‘불법’ 단죄이나 경제계 타격, 승계 영향 줄 수도

공정위 특혜&안종범 수첩, 이재용 구속의 결정적 요인

박근혜 대통령, 특검과 탄핵 심판 모두 불리해져

이재용 승계 차질 줄 수도…국내외 위상 추락, 해외영업 치명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결국 17일 구속됐다. 서울중앙지법 한정석 영장전담 판사는 19시간 장고 끝에 17일 새벽 5시 반경 “새롭게 구성된 범죄혐의 사실과 추가로 수집된 증거자료 등을 종합할 때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구속 판결이 나오자 이 부회장은 대기하고 있던 서울구치소에 바로 수감됐다. 삼성 창업 79년 만에 삼성그룹 총수로는 처음 있는 일이다. 다만 특검팀이 함께 영장을 청구한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에 대해선 “피의자의 지위와 권한 범위, 실질적 역할 등에 비추어 볼 때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특검은 지난 1월 14일 이 부회장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19일 조의연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뇌물범죄의 요건이 되는 대가관계와 부정한 청탁 등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고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기각했다. 이에 특검은 26일 간의 보강 수사 끝에 지난 14일 구속영장을 재청구했고 결국 연매출 270조 원의 글로벌 기업이자 재계서열 1위 삼성그룹 총수를 구속하는데 성공했다. 그룹 1인자가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은 삼성은 패닉에 빠졌다. 삼성 관계자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다. 할 말이 없다”는 반응이다.

공정위 특혜+안종범 수첩→이재용 구속

첫 구속영장 청구 당시부터 이 부회장 구속 여부는 대가성에 달려있었다. 대가성 입증은 뇌물죄의 핵심이다. 이를 위해 특검은 청와대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돕는 대가로 삼성이 최 씨 일가와 미르·K스포츠 재단에 거액을 출연했다는 논리를 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특검은 청와대가 국민연금공단에 압력을 행사,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합병을 도왔으며,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2015년 7월 독대 과정에서 청탁이 오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삼성 측은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은 박 대통령과의 독대 전에 이뤄졌고 대가를 바라고 최 씨를 지원한 것이 아니라고 항변했다. 법원은 삼성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확실한 물증이 부족해 '부정 청탁'과 '대가성'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는다고 봤기 때문이다.

영장 기각 후 특검은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보다는 독대 이후 이 부회장 경영권 승계 과정에 어떤 변화와 도움이 있었는지 큰 그림을 살폈다.

그러던 중 특검은 지난 3일,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위원회를 전격적으로 압수수색했다. 삼성 측에 공정위와 금융위가 특혜를 제공한 정황을 포착했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2015년 10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주식을 모두 보유한 삼성SDI가 삼성물산 주식 1000만주를 처분해야 한다는 해석을 냈다. 6개월 내 처분하지 않으면 순환출자를 제한하는 공정거래법에 따라 과징금이 부과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공정위는 2개월 만에 이를 번복하고 처분 주식 수를 500만주로 줄였다. 이 과정을 파악한 특검은 순환출자 규제에 따라 팔아야할 삼성물산 지분을 1000만주에서 500만주로 줄여주는 특혜를 공정위가 삼성SDI 측에 제공했다고 판단했다.

특검은 공정위가 결정을 번복하는 과정에서 청와대 압력이 작용했다고 봤다.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실무자 업무노트와 관련자 진술도 이를 뒷받침하며 특검 측 주장에 힘을 실었다.

추가로 확보한 안종범 전 수석의 수첩 39권도 한 몫 했다. 이 부회장이 박 대통령에게 청탁을 한 구체적 정황이 있었던 것이다. 안 전 수석의 업무 수첩에는 이 부회장이 박 대통령과의 독대 자리에서 싱가포르와 아일랜드의 사례를 들며 바이오 산업에 대한 세제혜택과 환경규제 완화 등을 요청한 사실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안 전 수석도 특검 조사에서 “독대 직후 대통령이 ‘이 부회장이 금융지주회사 문제와 바이오사업 환경 규제 문제를 도와달라고 하니 살펴보라는 지시를 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안 전 수석 수첩에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기재돼 있는 등 대가성을 뒷받침할만한 내용들도 적혀 있었다.

2015년 7월 제일모직ㆍ삼성물산 합병 당시 제일모직 가치가 높게 평가받은 이유 중 하나는 제일모직 자회사였던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미래 성장가치였다. 특검은 적자 기업인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코스피에 상장해 기업가치를 더 크게 평가받을 수 있도록 금융당국이 상장 기준을 완화해줬다고 보고 있다.

특검 보강 수사대로라면 두 가지 뇌물죄 고리가 성립한다. 공정위 관련해서는 ‘독대→뇌물공여→공정위 특혜 지원’ 구조다. 2015년 7월, 박 대통령·이 부회장 독대 이후 삼성은 그해 9월 비덱스포츠에, 10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는 미르·K스포츠재단에 지원금을 보냈다. 공정위에게 특혜를 받은 것은 2015년 12월이다.

안 전 수석 수첩과 관련해서는 ‘독대 과정에서 삼성의 청탁→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 상장요건 완화→최씨 일가에 대한 지원' 구조다. 독대는 2015년 7월, 한국거래소가 상장요건을 완화한 시점은 그해 11월, 최 씨 일가 지원은 2016년 1월까지 계속됐다. 상장요건 완화 1년 후인 2016년 11월 삼성 바이오로직스는 코스피에 상장됐다.

삼성은 공정위 특혜 의혹에 대해 “공정위 가이드라인을 따른 것”이라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 관련된 순환출자 해소 과정에서 어떠한 특혜도 받은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 16일 국회 정무위에 출석해 삼성 바이오로직스 상장에 대해 “삼성바이오로직스 관련 청와대의 지시나 압력이 없었다”면서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하려 했지만, 우량기업 상장을 유도하고자 한국거래소가 수차례 국내 상장을 권유했고, 이를 뒷받침하려고 상장 규정을 고쳤다"고 밝혔다.

이밖에 특검은 이 부회장에게 재산국외도피 혐의와 범죄수익은닉혐의도 추가로 적용했다. 삼성이 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독일의 최순실 소유회사 코레스포츠에 78억원을 송금한 것이 ‘재산국외도피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삼성 측은 컨설팅 계약은 용역계약인만큼 외환거래신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반박했다.

특검은 또 삼성이 비타나V 등 정씨의 연습용 말 두 필을 덴마크 중개상에게 넘기고, 돈을 더 얹어주면서 더 비싼 블라디미르 등 명마 두 필의 소유권을 넘겨받을 수 있도록 했다고 판단했다. 특검은 이 과정에서 허위 계약서가 이용됐고 범죄 수익을 숨겼다고 보고 ‘범죄수익은닉혐의’를 적용했다. 특검은 삼성 측의 정유라 지원을 범죄수익으로 간주했다. 코어스포츠와의 용역계약, 삼성전자의 마필 구입과 매각 계약 등 모두 허위인 만큼 범죄 수익 발생 원인과 처분 사실을 가장했다는 얘기다.

특검은 1차 영장 청구 당시 적용했던 뇌물 공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입증할 증거를 보강한 동시에 재산국외도피 혐의와 범죄수익은닉 규제 및 처벌법 위반 혐의로 추가로 적용해 영장을 재청구했고, 법원을 설득시켰다.


대통령과 삼성에게 미칠 이재용 구속 파장은?

이 부회장 구속 영장이 받아들여짐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은 상당한 부담감을 지게 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반면, 이 부회장 구속으로 인해 특검은 수사에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 이 부회장의 뇌물 공여 혐의를 법원이 인정한 터라 뇌물 수수혐의 피의자인 박 대통령에 대해 대면 조사 압박을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 측이 계속 대면 조사를 거부할 경우 특검 수사기간 연장의 명분도 확보했다. 특검은 이미 수사 기간 연장을 요청했다. 지난 16일, 특검팀 이규철 특검보는 “수사 대상이 많아 오는 28일까지 수사를 모두 완료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고 (기간 연장) 승인 기관인 대통령 권한대행이 (결정하는 데) 상당한 시일이 필요할 것이라는 점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이 특검보는 또 "이번 특검은 수사 대상이 많기 때문에 승인 여부를 일찍 알게 되면 수사 기간을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앞서 법원은 청와대 압수수색 거부에 대해 특검이 신청한 집행정지를 각하했다. 사실상 압수수색 가능성이 낮은 상황에서 대통령 대면조사는 특검에게 필수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법원이 인정한 ‘뇌물죄’를 내세워 대면조사 요구를 강하게 할 명분이 만들어진 셈이다.

특검 대면조사 압박을 받고 있는 박 대통령에게 이 부회장 구속은 탄핵 심판에서 불리한 요소로 부상했다. 그간 대통령 측 대리인단은 탄핵 심판 과정에서 이 부회장 구속영장 기각을 이유로 박 대통령 뇌물 수수 혐의를 방어해왔다. 헌법재판관 출신으로 최근 영입된 대통령 대리인단 이동흡 변호사는 탄핵심판 13차 변론에서 “특검이 이재용 부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법리상 다툼의 여지가 있고 구속사유가 소명이 부족하다고 기각했다”며 “종합하면 삼성과 관련된 뇌물죄는 성립되지 않는다. 피청구인(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의결서 중 삼성 관련 부분은 이유 없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14차 변론에서도 소추 사유 중 법률위배에 대해 반박하면서 “특검 수사 중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면서 “뇌물죄와 제3자뇌물수수죄가 사실관계 규명도 부족하고 법리상으로도 죄에 해당하는지 불분명하다는 이유”라고 주장했다.

이 부회장 구속은 사법부에서 특검이 주장한 뇌물공여 혐의 등에 대해 일리가 있다는 판단에서 내린 결정이다. 때문에 탄핵심판에서 뇌물수수 혐의를 받고 있는 박 대통령 측에 불리하게 작용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대리인단 측은 “이 부회장 구속영장에 새롭게 적시된 순환출자 관련 사실관계가 탄핵소추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탄핵심판에 영향이 없을 것”이라면서도 대책 마련에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그룹 측은 1인자의 구속에 망연자실한 반응을 보이면서 파장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있다. 삼성 측은 이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지만 단기적인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당장 미래전략실 해체 등 ‘삼성 쇄신안’에 브레이크가 걸리는 것을 비롯해 삼성 지배구조 개편 이슈도 장기간 표류할 것으로 전망된다. 초유의 비상 상황 속에서 그나마 현실성 있는 삼성의 모습은 계열사 사장단이 꾸리는 협의체가 전면에 나서는 것이다. 물론 오너가 없는 상황에서 사장단협의체는 현상만 지킬 뿐 장기적 투자나 대규모 구조개편은 불가능하다.

재계도 우려를 표시했다. 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우리나라 제조업 전체 매출액의 11.7%, 영업이익의 30%를 차지하는 대한민국 대표기업"이라면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인 삼성의 경영공백으로 인한불확실성 증대와 국제신인도 하락은 가뜩이나 어려운 우리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이건희 회장이 3년째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더해, 삼성그룹의 사업계획 차질뿐만 아니라 25만 임직원과 협력업체, 그 가족들까지도 불안감이 가중되는 등 그 충격이 매우 클 것"이라면서 "모쪼록 삼성그룹과 관련해 제기된 많은 의혹과 오해는 향후 사법절차를 통해 신속하게 해소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의 구속으로 승계 과정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국민연금을 활용하는 것과 같은 승계의 안전판 마련이 쉽지 않은데다 승계를 위한 방편으로 쓰였던 순환출자도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을 계기로 ‘승계’에 무리수를 두지 않을 것라는 분석이 나온다. 재계 한 인사는 “이건희 회장 부재에 따른 삼성의 위기를 극복해가는데 이재용 부회장으로의 안정적 승계가 필수적인데 이 부회장 구속으로 차질이 불가피해졌다”며 “삼성이나 이 부회장 모두 승계 과정에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한편,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 구속으로 ‘오너 리스크’는 큰 문제가 아니라 미국 등에서 실행 중인 해외부패방지법(FCPA)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FCPA란 기본적으로 미국 기업이 해외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거나 회계 부정을 저지르는 것을 처벌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1977년 제정한 법이다. 미국 증시에 상장돼 있거나 증권거래위원회(SEC)에 공시하게 돼 있는 기업 또는 기업의 자회사가 적용 대상이다. 해당 기업이 미국 외 다른 나라에서 뇌물을 주더라도 미국 내 사업이 제한되고 거액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법인은 최대 200만달러, 개인이나 지사 등은 최대 10만달러의 벌금과 최대 5년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2008년 독일 기업 지멘스가 뇌물 스캔들에 휘말려 미국 법원에 8억 달러의 벌금을 냈다.

최근에는 브라질의 건설업체 등 2곳이 세계 10여개국에서 약 100건의 프로젝트와 관련해 총 7억8천800만 달러의 뇌물을 공무원에게 제공했다가 미국에서 35억달러(4조2천억원)의 벌금을 부과 받았다. FCPA 법에 적용되면 과징금과 함께 미국 내 공공 조달사업에서 퇴출당한다. 미국 내 기업과 인수합병(M&A)도 어려워진다.

재계 관계자는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 인도, 영국, 브라질 등 여러 국가에서 FCPA와 유사한 형태의 부패방지법을 적용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뇌물 혐의가 드러난다면 삼성의 글로벌 사업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특검이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결정이 삼성 측 로비에 의한 것으로 결론 낸다면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 이슈로도 번질 수 있다.

ISD는 해외 투자자가 상대국의 법령, 정책 등에 피해를 봤을 경우 국제기구를 통해 중재를 받는 제도다. 특히 삼성물산 합병에 반대했던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ISD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합병 건은 이미 마무리된 만큼 소급 적용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가 2015년에 올린 연간 매출액은 약 200조원 규모이며 이중 42조원 가량이 미주지역 매출이다. 유럽매출은 약 17조원 규모이며 그중 일부가 영국 관련 매출이다.

허인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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