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관만 보면 알 수 있는’ 리스차 손해배상청구권자 착오… 결국 패소 판결

동부화재, 리스차 보상처리 착오로 손해배상청구권자 아닌 사용자에 보험금 지급

“사용자가 리스사로부터 손해배상청구권 위임” 동부화재 주장에 법원은 “인정 못해”

동부화재, 착오 인정… “리스차 사건 계기로 관련 교육 강화”

한민철 기자

동부화재해상보험(이하 동부화재)이 엉뚱한 곳에 보험금을 지급해 법원으로부터 손해배상지급 판결을 받은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동부화재는 리스 차량의 단순한 사용자에 불과한 이들에게 수천만원의 보험금을 지급하며 법적 소송으로 까지 문제를 키웠다. 동부화재는 손해배상청구권자 판단에 있어 업무상 착오가 있었다며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했고, 해당 사건은 법원으로부터 동부화재 등의 손해배상금 지급 판결이 내려지며 원만하게 마무리됐다. 그러나 이번 사건처럼 최근 몇 년 간 사용자가 급증하고 있는 리스차 사고의 보상 판단에 대한 보험사의 보다 세심한 판단이 요구되고 있다.

사건은 지난 2014년 1월 2일 아가방앤컴퍼니(이하 아가방) 서울 강남구 본사 건물 주차장에서 발생했다. 이날 군용발전기 생산업체인 D사 직원은 아가방 건물 주차장에서 회사 소유로 등록된 고급 외제 승용차의 주차를 시도했다.

그런데 차량이 기계식 주차장 안으로 들어가면서 스마트키의 오작동이 일어났고, 갑자기 트렁크가 개방돼 일부가 파손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아가방 측과 책임보험 계약을 체결하고 있던 보험사는 동부화재였다. 이 책임보험 계약은 아가방 소유 건물 부속주차장 시설에서 사고가 발생해 타인에게 손해를 끼칠 경우, 동부화재가 이를 보상한다는 내용이었다.

때문에 D사는 차량 사고 이후 동부화재 측과 수리비 견적 및 기타 조치에 대해 협의했고, 2014년 3월 4일 동부화재는 해당 사고로 인해 발생한 피해 등 일체의 손해에 대해 2700만원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다음날 이 비용은 D사 측에 지급됐고, 해당 사건은 당사자들 사이에서 원만하게 해결된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이후 이 차량의 실질적 손해배상청구권자를 둘러싸고 잡음이 일기 시작했다. 사고 차량은 D사가 직접적으로 소유하고 있던 법인차가 아니었다. 이는 D사가 오토리스 전문 금융사 O사로부터 36개월 간 시설대여 계약을 체결해 사용하고 있던 ‘리스차’였기 때문이다.

리스차는 소비자가 사용하기 원하는 차량을 오토리스 전문 금융사가 자동차 판매사로부터 해당 차를 취득한 뒤, 이를 소비자에게 일정기간 대여하는 서비스다.

주로 캐피털사로 등록된 오토리스 전문 금융사는 소비자에게 차량을 대여한 뒤 그 대가를 정기적으로 지급받고, 대여기간이 끝나면 소비자들은 차량의 리스 기간을 갱신하거나 인수를 할 수 있다.

리스차 약관상 차량의 소유권은 금융사에 있고 소비자는 엄연히 타인의 물건을 빌린 ‘사용수익권자’에 불과한데, 소비자는 차량의 리스 기간이 끝날 때까지 차량의 분실과 훼손 등 일체 사고에 대한 책임을 부담하게 된다.

구체적으로 자동차의 기능 및 외형을 본래대로 복구하거나 차량의 분실 또는 파손 상태가 심할 경우 해당 차량과 모델·사양 및 구성이 동일한 차로 교체하는 등 철저한 보상을 해야 한다.

특히 리스차는 장기렌터카 서비스와 달리 소비자가 직접 보험사를 선정해 사고처리 등에 대한 자동차종합보험에 가입해야 하는데, 차량 손해에 대한 보험금청구권에 대해서는 소비자가 아닌 금융사에 질권이 설정돼야 한다.

때문에 약관상 엄연히 사용자에 불과했던 D사는 아가방 주차장에서 발생한 차량 파손에 대해 동부화재로부터 2700만원의 합의금을 직접적으로 전달받을 자격이 없었고, 이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가지고 있는 당사자는 O사였다.

또 사용자 측은 사고가 발생했을 때 차량의 원소유주인 금융사에 이를 통보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D사는 O사에 이를 통보하지 않은 채 동부화재로부터 보험금을 지급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뒤늦게 해당 사실을 파악한 O사는 2015년 1월 경 해당 사고가 발생한 주차장의 소유주인 아가방 그리고 D사에 보험금을 지급한 동부화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O사는 해당 차량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자는 내부 약관상 엄연히 자신들로 설정이 돼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동부화재가 리스차 약관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D사에 보험금을 지급했다고 주장했다.

또 D사에 대여한지 약 20여일밖에 지나지 않았던 고급 외제차량이 아가방 주차장 설비로 인해 사고를 당해 취득가액 절반으로 교환가치가 감소해 아가방도 이에 대한 손해배상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동부화재 측은 차량 리스계약 기간 동안 차량 훼손에 대한 모든 책임은 D사가 부담하기로 돼있는 만큼, 이는 D사가 사고로 인한 손해에 대해서도 청구권자(O사)로부터 일체의 권리를 위임받은 것을 의미한다고 반박했다. 때문에 손해배상청구권은 D사에 귀속되며, 이들에 합의금을 지급한 것도 정당하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해당 사건의 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손해배상청구권자를 둘러싸고 O사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의 판결 내용에 따르면 O사는 해당 사건 차량의 실질 소유자이자 차량 파손 사고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자이며, 동부화재의 주장처럼 D사가 O사로부터 손해배상청구권까지 위임받았음을 인정할 증거는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실질적으로 동부화재에 차량 파손으로 인한 손해 배상을 받아야 할 당사자는 O사였다는 설명이었다.

당시 재판부의 판결은 과거 대법원의 판결 내용과 다르지 않았다. 지난 2009년 3월 26일 대법원 판결 내용에 따르면 어떤 제3자의 채권자가 그 제3자의 변제 등으로 인해 직접적 피해를 입지 않았을지라도 불법행위의 피해자로 볼 수 있다면 그는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때문에 이 사건의 경우처럼 제3자(D사)의 채권자(O사)가 주차장 사고로 인해 직접적 피해를 입지는 않았지만, 불법행위의 피해자로서 엄연한 손해배상청구권자에 해당한다는 설명이다.

이에 재판부는 해당 사건의 피고인 동부화재와 아가방이 연대해 원고인 O사에게 이자를 덧붙여 수천만원의 손해액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사고로 인해 발생한 차량 가격의 감소 또는 평가 하락에 대한 손해배상액 지급에 있어서의 O사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재판부는 차량 수리 이후 일부 수리가 불가능한 부분이 남아있는 경우 교환가치 감소로 볼 소지가 있지만, O사가 해당 차량을 즉시 처분하지 않고 공매처분 했고 수리 후 차량의 내식성 및 내구성, 충격흡수율의 저하 등이 발생했음을 인정할 만한 구체적 근거가 없다고 판결했다.

‘업무상 착오’ 인정한 동부화재… “관련 교육 철저히 하겠다”

이번 사례에서 O사에 손해배상금을 지급하게 된 아가방의 경우 차량 파손 사고가 자신들이 소유한 주차장에서 발생했을 뿐 주차장 설비 결함 등의 문제가 사고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따가운 지적을 받을 당사자들은 아니었다.

아가방은 사고 이후 동부화재 측으로부터 보험처리가 원만하게 끝났다는 보고만 받았을 뿐, O사 등에 어떠한 손해를 끼칠 의도가 없었다는 입장이었다.

아가방 측은 “아가방은 주차장 설비·정비 및 관리와 관련된 모든 규칙을 준수하며, 해당 사고 전후 동일하게 매월 주차 설비업체로부터 철저한 점검을 받고 있다”라며 “(당시 사고가) 주차장 시설 결함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서울시로부터 시정조치도 받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해당 사고가 발생하고 2015년 1월 (O사로부터의) 소송제기를 인지하기 전까지 당사는 사고 차량이 O사 소유 차량임을 알 수 없었다”라며 “당사가 영업배상책임보험에 가입한 동부화재가 배상 처리를 진행했는데, 이 과정에서 D사는 O사에게 사고 사실을 통보하지 않은 채로 보험사와 합의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해당 사고를 소송까지 키웠다는 지적을 받을 당사자는 동부화재 측에 있었다. 실제로 동부화재는 본지에 해당 사건에 대해 자신들의 실수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물론 사고가 난 차량이 리스차임을 알게 됐고 차량리스 약관을 조금이라도 살펴봤다면, 손해배상에 대한 통보와 보험금 지급을 위해 차량 원소유주인 O사와 협의를 거쳐야 한다는 판단은 굳이 보험 전문가들이 아닐지라도 할 수 있었다.

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엉뚱한 곳에 보험금을 지급했고, 심지어 원소유주가 해당 사실을 알게 된다면 합의금이 더욱 커질 수 있었기 때문에 D사와 수리비 지급 후 조용히 사건을 마무리하려 했다는 합리적 의심마저 살 수 있었다.

동부화재 관계자는 “저희가 피보험자가 누구인지를 꼼꼼히 따져봤어야 했는데 업무 상 착오가 있었다”라며 “어차피 향후 법률상으로 다 밝혀지기 때문에 O사에게 보험금을 고의적으로 덜 주기 위해 D사와 합의를 본 것이 절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어 “보험사 보상과 직원들도 전에는 (리스차 관련) 사례를 거의 접하지 못했기 때문에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라며 “해당 사건을 계기로 내부적으로 관련 교육을 더욱 강화하게 됐고, 앞으로도 사고 조사 절차에 있어서 피보험자 및 가입자 판단을 철저히 하겠다”라고 밝혔다.

렌터카 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사례에 대해 접하고, 보험사뿐만 아니라 리스 차량 사용자 역시 사고가 발생했을 때 리스사에 이를 지체 없이 통보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업계 관계자는 “장기렌터카는 렌터카 회사에서 보험사를 지정해주기 때문에 사용자의 사고로 인한 보험사 처리 내용에 대해 빠르게 파악할 수 있지만, 리스차는 사용자가 개인 보험을 들어야 하기 때문에 사고로 인한 보험처리를 했을 때 이를 리스사에 알리지 않는다면 향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라며 “만약 사용자가 사고를 당해 차량 내부 기능 및 교환 가치를 현저히 떨어뜨렸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을 리스사에 제대로 밝히지 않은 채 겉만 멀쩡히 수리해 반환한다면 약관상 위반 사항에 해당하고 법적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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