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한 가동연령 추산 등에 패소판결

목욕탕 미끄럼 사고, 주의문구만으로 관리 소홀 책임 회피 못해

메리츠화재 “가동연령은 대학졸업 후부터(?)”… 재판부, 황당한 주장 받아들이지 않아

대형보험사들의 일반 소비자에 대한 소송 압박, 또 다시 도마 위에 오르나

한민철 기자

메리츠화재의 보험금 지급 거부 사유에 재판부가 패소 판결을 내렸다. 치명상을 입은 한 청년에 대한 보상을 두고 메리츠화재는 가동연령 및 향후 치료비 추산에 있어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지급 거부의사를 밝히며, 소송까지 끌고 간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사건은 지난 2012년 말 충청북도 청주시에 위치한 한 목욕탕에서 발생했다.

당시 이 목욕탕에 손님으로 방문한 K씨는 목욕을 하던 중 온탕에서 밖으로 나오기 위해 발을 내디뎠다. 그런데 K씨는 내딛던 발이 목욕탕 바닥에 미끄러져 중심을 잃었고, 발이 온탕 턱에 걸려 앞으로 쓰려지고 말았다.

K씨는 이 사고로 양측성 턱관절돌기의 골절과 하악골 결합부위의 골절, 치관 파절 등 심각한 상해를 입게 됐고, 2013년 1월 초까지 약 한 달 동안 병원 입원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다.

당시 20대 초반으로 군복무 후 일과 대학 학업을 병행하고 있었던 K씨에게 이날의 부상은 많은 것을 잃게 할 수밖에 없었다.

예전과 같은 건강하고 정상적 신체를 가질 수 없었음은 물론이고 향후 후유증을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 K씨가 당장 치료할 비용만으로도 1800만원이 넘었고, 이중에는 향후 치료비로 임플란트와 하악수술과 턱관절 치료, 반흔절제술 등이 각각 1000만원, 900만원, 2000만원 이상으로 계산됐다.

또 병원으로부터 향후 일정 부분 노동능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소견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K씨는 가족들과 함께 목욕탕 업주 D씨에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D씨는 해당 목욕탕에 대한 화재배상책임보험을 가입한 메리츠화재에 이번 일에 대해 지체 없이 통보했다.

D씨 측과 메리츠화재가 맺은 책임보험은 목욕탕 용도에 따른 업무수행으로 인해 배상책임이 발생할 경우 자기부담금을 제외하고 1인당 3000만원을 한도로 보상하는 내용이었다.

K씨 측은 이번 사건의 목욕탕이 이용자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미끄럼 방지시설을 부착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아 이번 사건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D씨와 메리츠화재 측은 목욕탕 내 바닥 재질이 돌바닥으로 미끄럽지 않게 처리돼 있었고, ‘미끄럼주의, 위험! 뛰지마세요’라는 주의 문구를 부착하는 등 고객들의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한 설비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K씨의 일방적 과실로 손해배상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특히 D씨와 메리츠화재 측은 K씨에 대한 손해배상 범위에 대해서도 강하게 이의를 제기했다. 사고 당시였던 2012년 말 K씨는 대학 3학년에 재학 중이었고, 해당 사고로 인해 당시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잠시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K씨 측은 사고로 상실한 가동능력 즉 ‘노동을 함으로써 벌어들일 수 있는 소득’대한 연령별 금전적 평가 역시 추산했다.

그러나 메리츠화재 측은 K씨에 대한 가동연령에 대해 반대의 입장을 내놨다. K씨 측은 퇴원 직후인 2013년 1월 이후부터 가동연령에 포함시켰지만, 메리츠화재 측은 K씨의 대학졸업 시기가 2014년 3월 이후부터라고 추정된다며 2013년부터 2014년 3월까지를 K씨의 가동기간 기산일에 포함시킬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또 메리츠화재 측은 K씨가 사고 직후 치료를 목적으로 병원과 함께 들렀던 한의원 진료에 대한 배상청구에 대해서도 K씨가 해당 한의원에서 받은 치료가 비급여 항목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를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D씨와 메리츠화재 측은 K씨의 향후 치료비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했다. K씨의 임플란트 치료에 대해서도 그가 10년 간격으로 400여만원씩 5회 지출을 예상한다고 했지만, 메리츠화재 측은 임플란트 시술을 통상의 치료방법으로 볼 수 없어 여명기간 동안 1회로 한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어 K씨의 하악수술 및 턱관절치료에 대해서도 장해를 인정하나 치료비를 이중으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지급 거절 의사를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메리츠화재 측의 주장 대부분은 항소 끝에 법원으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사건을 판결한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9부는 메리츠화재가 D씨 목욕탕 내부를 찍어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한 사진만으로는 D씨가 목욕탕을 관리함에 있어 미끄럼 방지에 대한 과실이 없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비록 목욕탕 내에 미끄럼 주의를 당부하는 주의문구를 부착했지만, 목욕탕의 바닥의 특성상 주의문구만으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충분한 조치가 되지 않았다는 설명이었다. 대신 K씨의 주의가 부족했던 점도 인정돼 책임의 제한도 판결에 반영됐다.

무엇보다 재판부는 메리츠화재 측이 추산한 K씨의 가동연령에 대해서도 인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메리츠화재는 K씨의 대학졸업 시기가 2014년 3월 이후부터 추정된다며 이때부터를 가동능력이 있는 기간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가동연령이란 병역복무 기간을 제외한 ‘수입을 연속적으로 얻을 수 있는 사정이 인정되는 경우’가 해당한다.

때문에 사고를 당했다고 할지라도 당시 수입이 있었거나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상태였다면, 가동연령에 포함시키는 것이 지극히 당연했다. 대학졸업 이후부터 가동기간 기산일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메리츠화재의 주장은 비(非) 보험전문가들이 보더라도 전혀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K씨가 한의원에서 받은 치료가 비급여 항목에 해당돼 제외해야 한다는 메리츠화재 측의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첩약 외의 약 및 약침 등의 진료비로 이 사건의 사고와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는 손해로 보이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K씨의 임플란트 치료비와 하악수술 및 턱관절치료비 청구도 배척한다는 메리츠화재의 주장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아 K씨가 청구한 금액을 전액 지불하게 됐다.

이번 사건을 두고 보험금 지급 절차와 구체적 법 조항, 지급 사유 등에 무지한 일반 보험소비자들에게 소송으로까지 끌고 가려는 대형 보험사들의 행태에 또 다시 한 번 비난의 목소리가 일 전망이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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